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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일동승준장로화(與日東僧俊長老話)> 차시茶詩의 역사적 배경/
'현암 최정간 님'의 '학술 논문'을 부분 발췌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
여일동승준장로화(與日東僧俊長老話) 차시茶詩는 『매월당집』 제12권 「유금오록遊金誤錄」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준 장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다가, 차문화 연구가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 글에 참고한 자료는, 2021년 12월 17일 서울 삼룡사에서 개최되었던 제1차 매월당 김시습 초암차법 전승학술대회 《매월당 김시습 초암차법의 재발견》 논문집을 참고하였다. 준 장노에 관해서는 차문화연구가 현암 최정간의 논문 <동아시아 다도사에 있어서 매월당 초암차 연구의 가치>를 참고하였으며, 그 논문 내용에서 매월당과 준 장노에 관한 내용을 발췌 및 요약한 글이다.
현암 최정간의 논문 <동아시아 다도사에 있어서 매월당 초암차 연구의 가치>는 <여일동승준장노화> ‘차시’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다. 이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 시에 깊게 들어가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직접 옮겨 적었다.
일본 스님 준俊 장로와 이야기하며 / 여일동승준장노화(與日東僧俊長老話)
멀리 고향을 떠나오니 마음이 쓸쓸하여 遠籬鄕曲意蕭條원리향곡의소조
옛 부처와 산꽃으로 고적함을 달래네 古佛山花遣寂寥고불산화견적요
무쇠 주전자에 차를 달여 손님에게 대접하고 銕鑵煮茶客飮철관자다객음
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 瓦爐添火辦香燒와로첨화판향소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을 넘어오고 春深海月侵蓬戶춘심해월침봉호
비 멎으니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네 雨歇山麛踐藥苗우헐산미천약묘
선의 경지와 나그네의 정이 모두 맑고도 맑으니 境旅情俱雅淡선경려정구아담
깊은 밤에 이야기가 막힘없이 잘 통하리라 不妨軟語徹淸宵부방연어철청소
아래는 논문집에서 준 장로에 대한 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준 장로에 대한 야야기는 『세조실록』 세조 9년(1463) 윤 7월 신축조(辛丑條)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일본국왕 사절 정사正使 준초서당俊超西當과 부사副使 앙지범고仰止梵高가 불타버린 교토 덴류지(天龍寺천룡사) 재건 자금을 ‘세조’에게 청하기 위해 한양에 도착했다.”
일본 사료에서 찾아낸 준 장로의 신원은 이러하다.
“오산문학승五山文學僧이자 교토 덴류지(天龍寺천룡사) 부주지(西當)이며, 몽창화상파夢窓和尙派 화상문파 소속 외교 선승인 월종준초越宗俊이다.”
준초 사행은 한양에서 조선의 국왕 세조를 알현하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하려고 왜관이 있는 울산 염포로 향했다. 그리고 신라 천년고도 경주를 방문했다. 경주는 그들이 동경해 온 신라의 선진 불교 문명이 산재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준초는 이문화異文化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준초는 경주 용장사 초암을 먼저 방문했다. 비로소 김시습의 시 <여일동승준장로> 차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준초 일행은 대마도를 거쳐서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대마도에서 봉변을 당하였다. 준초와 함께 조선에서 돌아온 하카다 출신 무역상 다마이와 대마도주의 농간에 의해 세조로부터 하사 받은 재물들을 몽땅 빼앗겨 버렸다. 부사 앙지범고도 대마도주의 협박과 회유로 대마도 경덕암에 눌러앉아 버렸다. 앙지범고는 조선 외교관계 문서를 위조하고 조선에 위사僞史를 파견하는 일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을 하며 평생을 비운으로 살아갔다.
준초와 범고에게 갑자기 닥친 시련은 감내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마침내 준초는 교토로 돌아와 무역상인 다마이를 막부에 고소했다. 문학승으로 수행하는 승려로서 장시간에 걸친 법정송사는 준초에게 ‘본래무일물’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했다.
준초와 동시대를 살아간 교토 덴류지 근처의 다이토쿠지(大徳寺대덕사)에는 불세출의 풍광 선객인 잇큐소준(一休宗純일휴종순/1394~1481)이 새로운 선풍을 진작하고 있었다. 잇큐가 살던 그 시대는 오닌(應仁응인)의 난으로 교토 전체가 불타버리고 주검이 난무하는 등 광기의 시대였다.
잇큐의 사상은 허위가 진리를 도금하는 현실을 타파한다는 점에서 조선 매월당의 선禪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잇큐의 삶은 매월당과 흡사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위선과 형식을 타파하는 삶을 지향했다. 그는 진정한 선禪의 실천자였다.
잇큐의 근본적인 선은 세상과 우주 만물을 직관할 수 있는 사유에 있었다. 잇큐는 자신의 선에 대해 여자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놀이에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스스로 광운狂이라 하였다. 형태가 어찌하든 그 진짜만을 감각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진짜를 흐리는 가짜에 대해서는 극도로 엄격하였다. 특히 오산의 승려들이 권력에 빌붙어 진정한 참선을 멀리하고 외형적인 형식에 치우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맹비난했다.
파격적인 행동과 독특한 선법은 당시 교토 오산의 전 사찰에 알려지게 되었고, 준초 역시 잇큐의 명성을 듣고 찾아간 것이다. 준초는 잇큐라면 그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준초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대덕사의 선승 잇큐를 만났다. 당시의 오산 선승들의 시스템으로 준초가 대덕사로 옮겨 가서 잇큐를 만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잇큐가 남긴 시집 『광운집』과 『자계집』에는 월종준초를 만났다고 직접적으로 서술된 시는 없다. 반면에 조선의 매월당의 학문세계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시가 『광운집』에 있다. ‘이류중행異類中行’이라는 시다.
다른 종류의 말과 길을 가는데
異類馬牛行途이류마우행도
동상 양개의 무리는 위산과 양산 두 스님이 올바르게 공부했네
洞曺潙仲正工夫양조위중정공부
우매한 학자는 잘못 영역을 해석하여
愚昧學者頷解우매학자암해
정히 이 사람들을 짐승의 무리라 하네
看來正是畜生徒간래정시축생도
이외에도 ‘피모대각皮毛戴角’을 소재로 시를 남겼다. ‘이류동행’과 ‘피모대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당나라의 남정보원 선사의 “소가 되고 말이 되어 어려운 중생을 위해 ‘이타행利他行’을 하라”는 법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법어는 원래 무상선사의 ‘두타행頭陀行’의 핵심적인 실천사상이기도 하다.
김시습은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를 저술하면서 ‘이류중행’, ‘피모대각’적인 선을 실천했다. 정황을 볼 때, 준 장로가 조선에서 매월당을 만난 후 일본에 귀국하여 잇큐선사에게 매월당의 학문과 초암차의 정신세계를 전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잇큐는 이밖에도 신라국을 묘사한 내용의 몇 편의 시를 남겼다. ‘신라선新羅禪’과 매월당의 학문적인 세계에 상당한 이해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둘이 아닌 법문에 애써서 깨끗한 이름으로 不二法門勞淨名불이법문로정명
한 점의 우레가 대중을 놀라게 하여 一点如雷大衆驚일점여뢰대중경
신라국 속에 어둡게 화살을 쏘고 新羅國裏暗放箭신라국리암방전
깊은 밤에 일본은 태평하네 夜半扶桑則太平야반부상즉태평
이 시는 『광운집』에 실린 ‘문수보살과 유마의 대담(文殊菩薩對談)’이란 시다. 원래 원오극근의 『벽암록碧巖錄』 제1칙 ‘무제문달마武帝問達磨’의 송(頌/기리다) 성제확연聖諦廓然의 전과신라箭過新羅에 나오는 대목을 잇큐식으로 변용한 것이다. 잇큐가 신라에서 밤중에 화살을 쏘았는데, 일본은 태평하다고 표현한 것은 일본 선림을 향해 분발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문수보살과 유마거사의 대담을 통해 신라선禪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신라선과 잇큐와의 관계는 ‘매월당의 초암차 일본 동전動轉’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諦살필 체, [본음] 살필 제, 울 제
*箭화살 전
*過지날 과, 넘다. 건너다.
*동전動轉 /동존하다/(무엇이)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여 달라지다.
잇큐는 나이 60세에 허위와 가식이 난무하는 권력과 부의 도시 쿄토에 싫증나 한적한 산촌 다키기무라(薪村신촌)에 정착했다. 자신이 직접 설계하여 ‘고규안(虎丘庵호구암)’이란 초암을 지었다. 고규안은 ‘주온암(酬恩庵주은암)’ 경내에 있으며, 주온안은 현재 잇큐사(一休寺일휴사)라 부른다. 잇큐선사가 63세인 1456년에 주온암을 낙성하였고, 이곳에서 훗날 있을 오닌의 난까지 피하게 된다.
고규안의 초암은 전형적인 조선의 초암 양식이다. 내부 양식으로는 방 한 칸에 앞쪽 쪽마루와 댓돌이 있어 더욱 조선의 남부지방의 초암과 닮아 있다. 고규안의 정원은 일본 초암차의 창시자인 무라다슈코(村田珠光촌전주광)가 만들었다. 잇큐는 만년에 고규안에 머물면서 차생활도 하고 많은 예술가들을 가르쳤다.
매월당의 초암차가 승려집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 민중에게도 개방했던 것처럼, 초암차 정신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잇큐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예능 속에 진정한 불도佛道가 있다고 가르쳤다.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위해 일편단심 정진하는 길이 불도이자 선禪의 길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일본으로 초암차 전래 경로는 다음과 같다.
조선의 매월당 김시습 -> 일본 천룡사 부주지 월종준초 -> 잇큐선사 -> 초암차의 계승자이자 일본 와비차의 창시자 무라다슈코
잇큐가 조선의 매월당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영향받은 초암차의 정신적 배경인 자연과 청빈, 불교의 최소유最少有 세계를 일반 민중들에게 확산시킨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승려가 아닌 평민 출신 무라다슈코였다.
초암차 확산의 정치 사회적인 배경은 다름 아닌 ‘오난의 난’과 ‘분메이(文明문명)’의 난이었다. 무로마치(室町실정/한 구역) 문화의 상징인 교토 시가지가 잿더미 속에 주검의 시체 더미로 변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신과 물질의 절대 무상을 경험했다.
잇큐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청정선淸淨禪’을 내세운 새로운 수행법으로 ‘선차일여禪茶一如’를 선택했다. 화려함을 배제하고 격식이 없는 반칸 초암에서 초암차가 가지는 소박한 세계를 무라다슈코를 비롯하여 여러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재가在家 출신들에 의한 초암차의 전승은 불세출의 차인 센리큐(牛利休우리휴)에 의해 새로운 일본 다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서기 8세기 중반 당 제국의 쓰촨성 청두에서 두타행과 탁월한 사유 능력, 그리고 동서사상을 두루 이해한 후 선종 불교가 남북종으로 갈리기 이전의 전통 선풍을 진작시킨 신라 출신 무상선사는 선차문명의 창시자였다. 무상선사는 차 한 잔에 온갖 번뇌를 잊게 만드는 돈오頓悟적이고도 창조적인 선禪사상을 바탕으로 최초로 선차일여의 세계를 개창했다.
무상선사의 법맥은 어는 개인의 종파와 혈맥에 의해 전승된 것이 아닌 넓은 의미에서 문중과 종파를 초월해 중국 전역에 전파되어 신라 땅 구산선문으로 동전東傳되었다. 무상선차를 15세기 조선의 매월당은 탈구조주의적인 사유를 통해 신 개념인 초암차, 즉 한차韓茶로 탄생시켰다.
초암차 정신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 교토의 차인들에게 전파되어 16세기 중반 조선의 남부지장에서 구워진 고려 다완이 역사적으로 일본차회에 등장하게 된다. 오랜 연구에 의해(논문 저자에 의해) 경남 웅동과 하동 사기마을 도요지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이토 다완의 일본으로의 전래 경로는 다음과 같다.
진해 웅동, 하동 사기마을 도요지 -> 대마도 조선 무역상 바이캉(海岩해암) 하카다 국제무역상 시마이소우시스(島井宗室도정종실) -> 크리스천 다이묘 오오토모소오린(大友宗麟대우종린) -> 사카이 무역상 덴노지야우씨쯔(天王寺屋 道叱 천왕사옥 도질) -> 사카이(堺계) -> 교토(京都경도) 에치젠(越前월전) 가미가다 다회(上方茶會상방다회)
일본다회는 형이상학적인 이념과 형이하학적인 다기茶器 등 차에 관한 모든 것을 조선으로부터 수용한 후 일본적 미의식으로 ‘와비차’를 창조해 냈다. 외비차는 오늘날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많은 이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고 있다.
15~16세기 조선의 매월당에 의해 창시된 초암차의 탄생 배경과 일본으로 이전 및 수용된 루트에 대한 연구는 40여 년의 세월 동안 다수의 학문적 업적으로 축적되었다. 동아시아 다도사적 관점에서 매월당의 초암차 연구의 가치는 ‘중세 한차문명의 동전’이라는 새로운 학술 분야의 개척 가능성이다.
*薪섶나무 신 *虎범 호 *丘언덕 구 *庵암자 암 *酬갚을 수, 보답할 주, 갚을 주 *珠구슬 주 *頓조아릴 돈, 갑자기. 급작스레 *悟깨달을 오 *麟기린 린 *屋집 옥 *越넘을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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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연의 ≪조동오위曹洞五位≫
이러한 경향을 알려주는 자료로≪삼국유사≫와 함께 일연이 직접 관계한 저술 중에서 현전 하는 것으로서 근년에 발굴된≪중편조동오위≫가 있다. 일연은 고종 43년(1256)부터 중국 조동종曹洞宗의 기본서인≪조동오위曹洞五位≫의 보완에 착수하여 원종 원년(1260)에≪중편조동오위≫를 초간하였다.≪조동오위≫는 ‘동산양개洞山良介(807∼869)’가 제창한 것에 ‘조산본적曹山本寂이 주를 더하여 유포함으로써 조동종의 기본서가 된 저술이다(주/蔡楨洙,<五家七宗禪의 歷史的 性格>(≪丁仲煥博士還曆紀念論文集≫, 東亞大, 1974), 382∼386쪽). 이러한 성격을 띤≪조동오위≫를 단지 일연이 편수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선사상의 경향을 조동종에 가깝다고 할 수는 없다(주/閔泳珪,<一然과 陳尊宿>(≪學林≫ 5, 延世大, 1983), 5쪽). 늦어도 13세기 초에는 고려사회에 전래되었던≪조동오위≫를 일연이 중편한 의도는 당시 대표적인 선사상으로 풍미하던 간화선과 다른 계통의 선사상인 조동선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여러 갈래의 선사상을 융합하고 조화시키려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주/일연이 禪宗의 일파인 雲門宗계통의 저술로서 일종의 事典이랄 수 있는≪祖庭事苑≫을 편수한 것도 그의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특정 사상에만 머무르지 않는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출처: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21_0030_0040_0030_0010 우리역사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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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산본적(曹山本寂, 840년-901년)은 중국 당나라 승려이다. 선종 5가 최초로 조동종을 창시했다. 동산양개의 제자이며, 조산의 ‘조’ , ‘동산의 동’을 합쳐 ‘조동종’이라고 한다.
* 조동종(묵조선)의 역사
조산본적의 휘(諱)는 본적(本寂)이며, 천주(泉州) 포전(蒲田) 황씨(黃氏) 자손이다. 어려서는 유학(儒學)을 공부하다가 19세에 복주(福州)의 영석산(靈石山)에 가서 출가하였고, 25세에 구족계단(具足戒壇)에 올랐다.
중국 장시성(江西省)의 조산(曹山) 보적사(宝积寺)에서 조산스님이 조동종을 창시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육조혜능의 다음으로 남악회양이 제7대 조사라고 본다. 남악회양 밑에서 임제종과 위앙종이 창시되었다. 육조혜능의 제자인 청원행사 밑에서 조동종, 법안종, 운문종이 창시되었다. 후에는 이러한 선가 5종이 모두 임제종에 통합되어, 조동종과 임제종 둘만 남게 되었다.
조동종은 일본으로 건너가 2018년 현재 일본불교 최대 종파이며, 중국은 1980년대부터 일본에 유학을 보내 조동종을 다시 역수입해왔다.
조산에는 조산스님의 사리탑만 남아있었는데, 중국 정부가 최근 200억 원의 예산을 투입, 조산에 보적사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2017년 7월 10일, 조산 보적사에서 제1회 중국 조동종 선학 국제 연구토론회를 개최, 한국, 일본 등의 스님들을 대거 초청했다.
도겐은 중국 조동종의 묵조선을 받아들이고,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고려에서는 조동종의 묵조선은 주목하지 않고 주로 임제종의 간화선 위주로 받아들였다.
선종오가의 가풍은 조동사민(曹洞士民) 임제장군(臨濟將軍) 운문천자(雲門天子) 위앙공경(潙仰公卿) 법안상인(法眼商人)이라 한다. "임제는 통쾌하며 위앙은 근엄하고 조동은 세밀하며 법안은 상세(상명)하여 분명하고 운문은 고상(고고)하여 옛 풍취가 있다."라고 표현한다.
한국에는 조동종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고려의 보각국사 일연이 중편조동오위란 책을 썼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2%B0%EB%B3%B8%EC%A0%81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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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겐(道元도원/1200~1253)은 일본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선종 승려이다. 조동종을 중국에서 배우고 계승하여 일본에 돌아와 전파하였다. 노년에 접어들어 기겐(希玄きげん)이라는 휘를 사용하였다. 조동종 승려들 사이에서는 고소(高祖こうそ) 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시호는 불성전등국사(仏性伝燈国師), 조요대사(承陽大師)이다. 일반적으로 도겐 선사라고 불린다.
조요 대사[承陽大師], 기겐 도겐[希玄道元 1192~1333]의 유명한 승려.]이라고도 한다. 선(禪)을 조동종의 형식으로 일본에 소개했다. 창조적인 개성의 소유자로서 좌선과 철학적 사색을 결합시켰다. 황실 귀족 출신으로 7세에 고아가 되었고 13세에 출가하여 천태종의 중심지인 히에이 산[比叡山]에서 불경을 공부했으나 그의 영적 갈망을 채우기에는 불충분했다.
1223~27년에는 중국에서 선을 공부했고 선승 여정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는 여러 사찰을 전전하면서 좌선을 전파했으며, 나고야[名古屋] 북서쪽에 에이헤이 사[永平寺]를 짓고 거기에서 말년을 보냈다. 그는 첫 저작인 〈후칸자젠기 普勸坐禪儀〉(1927)에서는 좌선을 간단히 소개했으며, 그밖에 지침서도 많이 썼다.
대표작인 〈쇼보겐조 正法眼藏〉(1231~53)는 총 95장으로 20년 이상 걸려 집필한 것인데, 불교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 책이다. 그는 지관타좌, 곧 좌선전수를 열심히 할 것을 가르쳤으며 수행과 깨달음의 합일을 강조했다. 가마쿠라鎌倉時代 시대 승려이다.
* 가마쿠라鎌倉時代 시대 1185년 ~ 1333년
鎌낫 겸 , 倉곳집 창, 庫곳집 고 /
가마쿠라는 ‘낫 창고’ 더 확대 해석하자면 ‘무기창고’라는 의미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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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 ≪십현담요해≫
1책. 목판본. 1495년(연산군 1)에 간행하였다. 중국선종의 대가였던 양개(良介)의 학설을 독창적으로 해설한 선서(禪書)이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오위(五位)의 설을 설명하였다.
① 도륭오위군신도서요해(道隆五位君臣圖序要解)에서는 조동선(曹洞禪)에서 말하는 오위가 군신(君臣)의 상의관계와 같은 것이라고 해설하였다. 즉, 오륜(五倫)·오상(五常) 등 신하의 도리를 열거하면서 그 각 항을 조동오위와 대비시켜 배열하고 있다. 이것은 조동선이 가진 호국적 경향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유사한 저술로 지겸(支謙)의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 등이 있다.
② 자순오위도서(子淳五位圖序)에서는 그 오위의 배열을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만다라의 행의(行儀)에 따라 중앙에 일점을 찍고 그 사방으로 오위를 배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③ 조동종지(曹洞宗旨)에서는 임제선과 다른 학풍임을 강조한다. 특히, 간화(看話)나 공안(公案)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 궁극적 실재(實在)에 대한 형이상학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역설하였다. 그 종지는 무상(無相)을 이상으로 삼으면서도 유무(有無)의 상대적 편견을 넘어서야 한다고 가르친다.
④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에서는 『화엄경』에서 가르치는 십현의 대의를 상징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체로 이 책은 지겸·일연(一然) 등 고려말의 전통 선문구산(禪門九山)이 취하던 입장을 답습하고 있으며, 김시습이 자유분방한 선객(禪客)이었으면서도 사상적으로는 조동선에 속하고 있었다는 반증(反證)이 되는 저술이다. 필사본을 서울의 민영규(閔泳珪)가 소장하고 있다.
<출처: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1682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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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화異文化 : 지정학적인 거리를 둔, 다른 집단들 사이의 문화 차이
* 이류중행異類中行: 다르고 같은 것을 함께 한다.
* 위경(僞經, 혹은 疑經) 즉 중국에서 찬술된 경전으로 보는 입장이 없지 않다. 위경은 거짓경전이며 의미가 없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종교 교의는 그 시대 사회의 인민을 구제할 때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인데, 문화체계가 다른 교의가 이문화(異文化) 세계를 만났을 때 원래의 교의에 의거하여 새로운 해석의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 위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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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일동승준장노화> 시에 사용된 한자어
遠원/멀 원 , 籬리,이/울타리 리(이) , 鄕향/시골 향, 曲곡,/굽을 곡/간절하다. 정성을 다함 , 意의,억,희/뜻 의. 의지(意志). 생각하다 , 蕭소/쓸쓸할 소/쓸쓸하다. 고적한 모양,
條조/가지 조. 멀다. 뻗어나감.
=> 遠籬鄕曲意蕭條원리향곡의소조
古고/옛 고 , 佛불,발,필/부처 불 , 山산/메 산 , 花화/꽃 화 ,
遣견/보낼 견. 시름을 풀다. 마음을 달램 , 寂적/고요할 적, 寥요,료/쓸쓸할 요(료)
=> 古佛山花遣寂寥고불산화견적요
銕철/쇠 철 , 鑵관/두레박 관, 煮자/삶을 자.(자다법/煮茶法) , 茶다/차 다 , 供공/이바지할 공 , 客객/손 객 , 飮음/마실 음
=> 銕鑵煮茶供客飮철관자다공객음
瓦와/기와 와 , 爐로,노/화로 로(노) , 添첨/더할 첨 , 火화/불 화, 辦힘쓸 판 , 香향/향기 향, 燒소/불사를 소, 사를 소
=> 瓦爐添火辦香燒와로첨화판향소
春춘/봄 춘 , 深심/깊을 심 , 海해/바다 해 , 月월/달 월 , 侵침/침노할 침 , 蓬봉/쑥 봉 , 戶호/집 호/지게 호
=> 春深海月侵蓬戶춘심해월침봉호
雨우/비 우 , 歇헐/쉴 헐. 그치다. 멎음 , 山산/메 산 , 麛미/사슴 새끼 미 ,
踐천/밟을 천 , 藥약/약 약 , 苗묘/모 묘
=> 雨歇山麛踐藥苗우헐산미천약묘
禪선/선 선/물려줄 선. 전위할 선 , 境경/지경 경 , 旅려,여/나그네 려(여) , 情정/뜻 정 , 俱구/함께 구/갖출 구 , 雅아/맑을 아/바를 아 , 淡담/맑을 담
=> 禪境旅情俱雅淡선경려정구아담
不부,불/아닐 부. 아닐 불 , 妨방/방해할 방 , 軟연/연할 연, 보들보들하다. 몰랑몰랑함. 부드럽다. 문사(文詞)가 딱딱하지 않음 , 語어/말씀 어 , 徹철/통할 철 , 淸청/맑을 청,
宵소/밤 소
=> 不妨軟語徹淸宵부방연어철청소
* 遊金誤錄유금오록/ 遊놀 유 , 金쇠 금 , 誤그릇할 오(다른 표현: 그르칠 오), 錄기록할 록
* 俊준걸 준(다른 표현: 순임금 순)
* 長老장노/장로 :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불교]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스님을 높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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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큐 시에 시에 사용된 한자어>
* 頷 끄덕일 암/턱. 아래턱. 끄덕이다.
* 解 풀 해/풀이하다. 통달하다
* 看 볼 간/ 보다. 지키다. 관찰하다. 결정되다. 대접. 대우
* 曺 성 조, 무리 조
* 畜 짐승 축. 개간한 밭
* 徒 무리 도, 동류. 제자. 문하생
* 勞 일할 로/ 일하다 . 힘들이다. 애쓰다
* 淨 찰 정/ 차다. 싸늘하다. 깨끗하다
* 点 점 점/다른 표현: 시들 다
* 淨名經정명경: 유마경’의 다른 이름
* 雷 우레 뢰
* 衆 무리 중
* 驚 놀랄 경/움직이다.
* 裏 속 리/ 내부. 안쪽
* 暗 어두울 암 / 숨기다. 보이지 않다
* 放 놓을 방/ 놓다. 내쫓다. 내놓다.
* 箭 화살 전
* 扶도울 부, 돕다, 어리광부리다 , 멈추다, 정체하다
* 桑 뽕나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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