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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경제 생활정보♡ 스크랩 6월 27일 오늘의 역사
김영복 추천 0 조회 38 07.06.27 09: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6월 27일 오늘의 역사


국내
  1388  최영장군, 고봉현에 유배
  1408  태조 이성계 별세
  1469(조선 예종 1) 봉선사 창건
  1514(조선 중종 9) <속삼강행실> 편찬
  1864(조선 고종 1) 불탔던 종각 중건, 중단됐던 인정 파루 계속
  1883(조선 고종 20) 무기를 제작하는 기기국 창설
  1909  독립운동가 이은찬 의병장 순국
  1910  광화문 우체국 낙성식 거행
  1950  이승만 대통령, 국민총궐기 요청 방송하고 정부는 대전으로 임시이전
           유엔 안보리, 북한 침략 규정 한국군 원조를 결의
           트루만 미 대통령, 한국전쟁에 미군 출동 명령
  1958  서울운동장 개장
  1968  주요 도시에 대공미사일 설치, 서울에만 7개 호크 기지
  1970  경부고속도로 준공
  1975  방위세 신설
  1984  88올림픽고속도로(광주-대구 173.3km) 개통
  1985  서울 지하철 3호선 개통
  1989  안기부, 평민당 서경원 의원 밀입북사건으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


해외
  1880  헬렌 켈러(1880-1968) 출생
  1905 포템킨호 수병 반란 발생
  1968  체코 자유파 인사 70인, 2천어선언 발표
  1972  로저스 미 국무장관, SEATO회의 연설에서 북한을 DPRK로 호칭
  1974  닉슨 미국대통령 소련 방문
  1998  클린턴 미대통령,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과 북경에서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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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유명한 금언을 남긴 최영장군이 반란군 이성계의 신진군벌에
의하여 고봉( 지금의 경기도 고양)으로 유배를 떠났다.


최영 [崔瑩]장군은 1316년 고려 충숙왕 때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서 태어나 16세 때
아버지가 남기신 유훈을 지키며 평생을 청렴 결백하게 살다간 관리였다. 고려의 건국 이상인
옛 고구려 땅 만주 벌판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며 무인으로 살면서, 침입한 홍건적을
격파하고 1360년 남쪽 지방을 괴롭히는 왜구를 섬멸하였으며 1375년 홍산대첩(鴻山大捷) 등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고려 우왕은 최영 장군에게 시중(侍中: 지금의 국무총리) 벼슬을 주고 전토와 노비를 상으로
주었으나 모두 사양하다가 73세(1388) 고령에 이르러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을 맡았다.


1388년 3월 원을 멸하고 새로 출발한 명나라가 우리의 북쪽 지방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기의
땅이라고 하자, 장군은 팔도도통사가 되어 옛 고구려 땅인 요동정벌에 나섰으나 유학을 정신적
바탕으로 하여 유학의 근원인 상국(중화)를 칠 수 없다는 사대사상으로 무장한 신군벌의 태두
이성계의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성계가 이끈 쿠테타군이 개성에 난입하자 굴하지 않고 이를 맞아 싸우다가 체포되어
고봉(고양)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개경(開京)에서 참형(斬刑)되었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성계는
최영 장군을 복권시키고 벼슬을 추증한 것은 이성계의 행위가 정당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임오군란과 비슷한 일이 러시아에서도 벌어졌다.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군에게
지급되어야 할 급료나 식품이 빼돌려 지거나 상한것과 섞어서 지급하거나 하여 군인들의
불만이 도화선이 된 사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임오군란이 그런 예의 하나이다.


1905년 러시아의 전함인 포템킨號의 반란도 그런 예의 하나였다.


1905년 6월 27일 발생한 이 사건의 발단은 '썩은 고기'였다. 제정러시아의 귀족정치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평화적 시위에 정부군이 발포한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러시아 전역으로 폭동이 확산되던 시기에 포템킨호의 수병들에게 썩은 고기가 배급되자
이에 분노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켜 전함을 장악했다.


수병들에 의해 점령된 포템킨호가 오데사 항에 입항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이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부두에 집결했고 정부의 진압군이 출동하여 서로 충돌하며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이를 계기로 시민들과 수병들이 합세하여 1차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 역활을 하였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후 12년뒤 볼세비키 혁명의 또 다른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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