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 '루저 남편' 홍수… 시청률은 '위너'
각방 쓴 사연도 공개, 카타르시스 주지만
"돈 없으면 남자는 끝" 性역할 굳어질 우려
7번의 사업 실패 끝에 집에 개업 축하 화분 70개가 쌓였다는 남편(개그맨 이봉원),
아내 속을 너무 썩여 이젠 속죄하며 살겠다는 남편(개그맨 김학래),
룸살롱에서 묻은 파운데이션 때문에 아내와 각방을 써야 했다는 남편(가수 김종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못난 남편들'이 쏟아지고 있다.
웃음을 주기 위한 코드지만, '망가짐'이 예사롭지 않다.
가장과 남편의 위상을 깎아 먹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심지어 자청하기도 한다.
'못난 남편'들은 지난해부터 방송된 연예인 부부 토크 프로그램들에 본격 등장했다.
SBS '스타 부부쇼-자기야'와 MBC '세바퀴'가 대표적. 밤 11시 방송이지만, 각각 10%와 20%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동시간대 평균 시청률보다 최대 두 배 이상 높다.
MBC '세바퀴'를 비롯한 토크쇼에서 박미선의 남편 이봉원은 만년 '루저(패배자)'로 조롱받는다.
그는 지나친 오지랖 때문에 늘 술값을 뒤집어쓰고, 하는 사업마다 말아먹는 무능력한 남자로 나온다.
아내 박미선은 "제발 사업은 더 하지 마세요" "또 술집이시네요. 오늘은 집에 들어올 거죠?"라 핀잔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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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BS‘ 스타부부쇼-자기야’에서 아내에게 구박받는 사연을 털어놔 관심을 받고 있는 뮤지션 김종진(사진 왼쪽), MBC‘ 세바퀴’등에서‘못난 남편’캐릭터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개그맨 이봉원(사진 오른쪽).
SBS '자기야'는 연예인 부부의 싸움을 생중계하며 남편들을 조롱거리로 만든다.
과거 애인 사진을 들켜 아내에게 앨범으로 얻어맞은 남편, 갖가지 자린고비 작전으로 치사하게 구는 남편 등
"못났다"는 감탄사를 유발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SBS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와 지금은 종영한 KBS 신동엽·신봉선의 '샴페인'도 이들의 주된 무대였다.
최근엔 이들 '못난 남편'을 '남자'로 만들자는 리얼 버라이어티까지 등장했다.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은 '한물간 개그맨' 설정으로 등장하는 이경규와 '안 웃기는 국민약골' 이윤석,
왜소한 외모로 '할머니'로 찍힌 가수 김태원 등을 전면에 내세운다.
달리기·자격증 따기 등으로 '못난 남편' 신세를 벗어나려 하지만, 그럴수록 기러기 아빠와 저질 체력 등 초라한 처지만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예전엔 드라마·시트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조롱받는 남편'이 실제 상황 같은 리얼 예능에까지 등장하고 있다"며 "이들의 못난 모습을 보며 남성 시청자들은 '내가 저 남자보단 나은 남편이지', 여성 시청자들은 '그래도 내 남편이 저 남자보단 낫지'하며 은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못난 남편들'의 등장이 오히려 성 역할 편견을 공고히 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주 교수는 "예능 프로의 '루저' 남편들은 결국 '경제력 없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다'라는 고정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라며 "결국 남편에게 있어야 할 '경제력'이 보다 능력 있고 당당한 아내가 '대신하고 있다'고 말할 뿐, 여전히 남자가 경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에서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