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으로 오신 예수님(마 2: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겨울인지라, 매우 추운 날씨가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젯밤, 광화문 일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즉각 파면”을 외치는 사람들과 “수사가 내란”이라고 외치는 사람들로, 두 쪽이 난 광화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그를 따랐던 사람들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이 추운 겨울 날,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최고로 높은 자리에서, 그 자리가 무엇인지,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내려와야 할 자리인데, 그 자리에 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그를 좋아했던 사람이건, 그를 미워했던 사람이건 간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추운 겨울 날,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수 최희준 씨가 불렀던 ”하숙생”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 하는 나그네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린 순간,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무엇이든, 손에 쥐고 갈 수 없습니다. 놓고 가야 합니다.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욕심이 지나쳐 탐욕에 빠짐으로, 어느 자리에 있든지간에, 누구든지간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천국”이라고 하는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너무나도 멀고 험해, 넘어지기도 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평탄한 길을 만나기도 하고, 넘기 힘든 험한 고개를 만나기도 합니다. 어떤 길을 만나든지 간에,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도달할 때까지, 오직 천국을 소망하고, 오직 믿음으로, 이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머나먼 동방으로부터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캄캄한 어둠을 뚫고, 험하고 낯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직 빛나는 별 하나만을 바라보고,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별 하나만을 바라보고,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왔습니다. 다양한 여행의 경험이나, 자기 스스로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여,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여 주신 별을 따라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계 22:16)라고 말씀하셨고, 사도 요한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 빛나는 별을 보고, 동방박사들은 동방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왕이 태어났다”라는 말에, 그 당시 유대를 다스리고 있던 헤롯 왕은 당황하였고, 예루살렘 거리는 온통 술렁거렸습니다. 왜냐하면, 궁궐에서 왕자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을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밝고 환하게, 비추어 주는 진리의 빛이 되십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왔다고 하는 것은 진리의 빛을 따라왔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오는 길에, 어찌된 일인지, 그만 별을 놓쳐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에 있습니다. 가까운 곳이기 하지만, 가는 길이 달랐습니다. 방향이 달랐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오다가, 그 별을 놓쳐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별을 보고 오다가, 별을 놓쳐버리자,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 “왕으로 오신 이”는 당연히, 궁궐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루살렘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실패했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실패를 통하여, 후일, 어린아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엄청난 박해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놓쳐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 행동에 옮겼을 때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하지만, 말씀을 멀리 하는 순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언제든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별을 보고 와야 하는데,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큰 성을 본 순간, “왕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궁궐에서 태어나겠지”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과 판단으로, 하늘의 별을 보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들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로 가는 길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미가 선지자는“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라고, 아주 정확하게, 왕으로 오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미 오래전에 예언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알지 못한 것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헤롯 왕도, 그의 계보를 따져보면, 정통 유대인이라고 할 수 없는 이방인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에 푹 빠져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떠나면, 실수하거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고, 잘못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되고, 우리가 가는 길에 빛이 될 때, 우리는 딴 길로 가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등이고 빛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놓쳐버렸지만, 그래도, 그들이 왜 동방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 그 머나먼 길을 와야 했는지, 그것만큼은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인 헤롯이나 그의 자녀가 아니라, 이 세상을 구원할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왕이 태어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예루살렘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머물러서는 안될 곳이라고 한다면,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계신 곳입니다.
헤롯은 기원전 47년경부터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면서, 능력있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몇 번의 큰 전쟁을 계기로, 로마 통치자들의 호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잔인할 정도로, 정적들을 철저하게 제거하였고, 결국 유다의 왕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무자비한 싸움꾼이었으며, 교활한 협상가였고, 영리한 외교가였습니다. 그는 로마와는 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기에, 로마로부터, 성공적이고, 중요한 통치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두메 출신인지라,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헤롯은 유대인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율법을 존중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반대자들을 더욱 잔인하게 억압하기도 했습니다. 헤롯은 자기의 왕권을 절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느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권력 투쟁의 와중에, 자기 아내와 자식, 친척을 비롯하여, 자기의 정적이라 판단된 사람들은 가차 없이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권력욕 때문에, 동방박사들로부터 “왕이 태어났다”라는 말을 들은 헤롯은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 왕들은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백성들의 삶을 평안하게 하고, 항상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평안과 웃음을 오히려 빼앗아 버릴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의 최고 통치자였던 이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도, 믿고 의지했는데,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그에 대한 믿음이 박살나고,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낙심과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때,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왕이 계신 곳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진정한 왕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가 친구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나다나엘이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8)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9)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그 사랑과 그 은혜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명과 평안을 빼앗고, 우리에게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을 주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염려거리들을 다 제거하고, 오직 생명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로 가야 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지,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캄캄한 어둠이 덮였습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합니까? 누구를 믿어야 이 어둠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때,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늘의 별을 놓쳐버렸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올바른 길을 알게 되었고, 그 길을 갔던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 믿음의 사람들은 주저앉아 낙심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다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이요, 실수하고 실패한 인생이 다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안정을 찾고, 다시 평안을 찾고, 다시 웃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이방 여인에게 빠졌던 삼손은 그의 머리카락이 잘린 후, 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도 잃어버렸습니다.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삼손은 그의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삼손에게 다시 힘을 주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실수하고, 실패한 인생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찾았던 요나가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머리카락이 잘려져 힘을 잃었던 삼손이 하나님을 찾았을 때, 다시 힘을 얻게 되었던 것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으면 다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다시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던 둘째 아들이 가장 잘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왔기에, 그는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일곱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별을 놓쳐버렸던 동방박사들이, 말씀을 듣고 따라가다가, 하늘의 별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실패한 인생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며,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들려주시는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23:3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 말씀은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라는 말씀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당시 왕의 무능함과 지도자들의 타락과 불법과 불의, 편법과 탈법으로, 그리고, 바벨론의 침략으로, 고통과 아픔 속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라고 말하며,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9-11)라고 외쳤습니다. 더 나아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품에 안아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새 힘을 주실 것이다.”
지금과 같은 어둠의 때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친히, 이 땅에 왕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새 힘을 얻게 되고, 올바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왕이신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새 힘을 얻고,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왕이신 주님,
우리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피곤하지 않도록, 낙심하지 않도록, 새 힘을 주옵소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