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 유방의 처 여황후(呂皇后). 진나라 진시황 말엽, 패현(沛縣) 현령의 집에 뜻밖의 손님 여공(呂公)이 찾아왔다. 여공은 본시 단부(單父-지금의 산동성 단현) 사람인데, 원수들의 핍박을 피하여 집을 패현으로 옮기고 친구들에게 의지하여 살고 있었다. 고을 내의 유지들과 관리들은 현령의 집에 귀한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지가지 예물을 준비하여 인사하러 왔다. 공조(功曹) 소하(蕭何)는 당상(堂上)에서 예물을 접수하고 있었는데, 소하는 방문객들이 너무 많았으므로 한 가지 규정을 만들었다. 즉, 축하 예물이 천냥에 미치지 못하는 방문객들은 당에 오르지 말고 당 아래에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때, 유계(劉季)라는 이름을 가진 한 정장(亭長)으로부터 하례 금으로 일 만 전(一萬錢)을 올리겠다는 전갈이 왔다. 소식을 전해들은 여공은 서둘러 유계를 불러 들였다. 여공은 평소 사람들의 관상을 보는데 일가견이 있었는데, 그는 유계를 보자마자 크게 놀랐다. 우뚝 솟은 코와 긴 목이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여공은 기뻐하며 유계를 당상으로 올라오게 하였다. 유계는 비록 정장의 신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큰 뜻을 품고 있었으므로 작은 관리들 따위는 눈에 없었다. 유계가 이렇게 온 것은 사실 여공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모욕을 주고자 함이었으며, 그는 일 만 전은커녕 푼의 돈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유계 자신도, 여공이 영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자신을 당상으로 청하여 향연을 배푸리라 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떠나기 전에, 여공은 유계에게 말했다. "저는 평소에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즐겨하며, 이미 많은 사람들을 보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귀관만큼 좋은 관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공께서 평생 배필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유계는 말단 정장 신분으로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또 아내까지 얻게 되었으니 실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계는 그저 술에 취한 여공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어, 그의 말에 따르겠다는 대답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였다. 여공의 아내 여온(呂온)은 남편이 사람 보는 눈도 없이 시골 정장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조하였다는 말을 듣고 노발대발하여 여공을 질책하였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 같으니라구. 날이면 날마다 딸에게 귀인(貴人)을 찾아서 짝을 지어주겠다고 떠들어대더니, 현령의 청혼은 거절하고 이제 와서 유계인가 하는 놈에게 딸을 주겠다는 거요." 여공의 아내는 쉬지 않고 불평을 쏟아냈지만, 여공은 별 대꾸를 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했다. "이 일에 담긴 도리를 당신과 아낙네가 어찌 알겠소?" 이렇게 하여, 여공의 딸은 결국 유계의 아내가 되었다. 촌구석의 정장에게는 변변한 재산이 없었으니, 생활 역시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여공의 딸 여치(呂雉)는 유계에게 시집을 온 후, 시골 아낙이 되어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며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였다. 어느 날, 여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노인이 다가오더니 여치에게 물을 달라고 하였다. 여치는 공손하게 물 한 사발을 올렸다. 그 노인은 물을 마시면서 여치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인은 천하의 귀인(貴人)이시구료." 여치는 기인(奇人)을 만난 것이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여치는 두 아이들을 불러 노인 앞에 서게 하였다. 노인은 먼저 남자아이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렇소. 부인이 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아이 때문이오." 이어서 노인은 딸을 보더니 같은 칭찬을 하였다. "이 아이 역시 대귀(大貴)의 상을 하고 있구료." 노인은 말을 마치자 몸을 돌려 천천히 그 자리를 떠났다. 이때 유계가 밭으로 나왔다. 여치는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그에게 이야기하였다. 유계는 그 노인이 멀리 가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급히 그를 뒤따라갔다. 과연 유계는 노인을 만날 수 었었다. 노인은 유계를 보자 이렇게 말했다. "방금 부인과 이이들의 귀상(貴相)을 보았는데, 그대와 비슷하였소. 하지만 그대는 이루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상이군요." 유계, 그는 훗날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이라 불리게 되었고, 여치는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여황후(呂황后)가 되었다. 두 아이들 가운데 아들은 한나라 혜제(惠帝)가 되었고, 딸은 노원공주(魯元公主)가 되었다. 유방이 초패왕과 천하를 다투던 시절, 그의 부인 여씨는 2 년 반 동안 잡혀 있었지만, 이때 유방은 젊고 아름다운 척희(戚姬)를 만나 또 다시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았다.
[출처] 한고조 유방의 처 여황후(呂皇后)
[출처] 한고조 유방의 처 여황후(呂皇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