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마음’
친정 어머니는 고희이신데도 손자 손녀들과 잘 어울리신다.
오빠네는 아이가 셋이다. 셋이면 가운데가 항상 치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할머니를 제일 많이 찾는 애가 가운데 희야일 것이다.
아들보다, 며느리보다, 딸이 말 동무가 더 되고 더 재미있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어왔다. 우리 어머니도 예외는 아닌 모양인지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일이 생기면 번번이 내가 그 말동무가 돼야 했다. 늘 하시는 이야기야 주변의 이야기고, 그러자니 늘 오빠네 이야기가 전부였다. 설거지를 하며 옷장을 정리하며 들려주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있었다. 아직도 젊은이처럼 감수성도 예민하고, 일단 마음에 잡힌 사건을 그렇게 재미있게 묘사할 수 없었다. 타고 난 소설가인데 시기를 놓치신 분같이 보였고 늦게나마 나도 40이 넘어 데뷔했으니 이 기회가 이미 어머니를 거쳐 내게 온 것처럼 종종 생각되었다.
어제는 둘째 손녀의 이야기를 듣고 오셔서 내 곁에 앉아 눈물까지 찔끔거리셨다.
사연인즉, 아파트에서 땅집으로 옮긴 첫봄이라 병아리 세 마리를 학교 앞에서 사 들고 온 아이가 천더기 둘째 손녀였단다. 첫째 딸은 첫째라 위해주고, 셋째는 막내라 귀엽지만 둘째는 그 사이에서 납작이가 돼서 항상 징징거리는데 병아리를 사들고 왔으니 있는 잔소리는 다 챙겨 들었다. 어찌 그 작은 것들이 삐약거리는지 금새 집안이 시끌시끌해져서이다.
이리저리 쫓기다 할수없이 할머니 방에 이 병아리들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박카스 상자에 정성스레 헝겊을 깔고 울어젖히는 병아리를 상자에 넣어 방구석에 놓으며 학교 다녀올 때까지 봐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맡겨 두고 갔다.
그러나 문제는 친정 어머니도 권사일로 바빠 그 병아리를 지킬 수 없는데서 터졌다. 파출부가 청소를 하다가 너무 요란하게 우는 병아리들을 앞 마당에 쏟아냈다. 손 쓸 새 없이 앞마당의 주인인 바둑이가 장난기 어린 동작으로 냉큼 물어서 셋을 모두 죽여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병아리 주인인 둘째 손녀는 정원에 버려진 병아리를 쓰다듬으며 섧게섧게 울었다. 울음 끝이 하도 질겨 애 엄마인 며느리가 고함쳤다.
“울 일도 많다. 사람이 죽었나. 니 에미가 죽었나! 주책이야.”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외치는 며느리의 음성은 가시 돋친 음성이었다.
“시골에서나 기르는 것을 왜 사왔어?”
막내의 핀잔.
“닭고기도 먹는데 왜 그래.”
언니의 이죽거림.
둘째는 그럴수록 더 악을 쓰며 흐느꼈다. 외출했다 돌아온 할머니는 병아리들을 묻어주고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혔다.
아이는 젖은 눈을 감고 간정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불쌍한 우리 병아리가 얼마나 아팠겠어요. 날개가 찢어질 때 병아리의 엄마도 아빠도 집에 없고, 나도, 할머니도 옆을 떠나 있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흑흑------. 지금은 그들이 천국에 가 있지요. 그곳에서 이렇게 아프게 하는 일이 없지요. 우리 병아리를,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했으니 하나님이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돌봐주세요. 흑흑------.”
아이의 흐느낌은 끝이 없었다. 일곱 살짜리 손녀의 기도를 들으며 함께 울어버린 할머니는 며느리와 아들이 고까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방을 향해 고함을 쳤다.
“돌 같은 마음을 가진 너희들이 이 애만도 못하니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니?”
방안에서 인기척도 없더란다.
대화를 나누려 찾아오신 친정 어머니는 병아리 세 마리의 죽음을 놓고 흠뻑 젖어 있었다.
“어머닌, 지금 돌아가셔도 바로 천국 직행감이에요.”
“뭐?”
의아해서 처다보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며 그 여린 마음을 부러워했다.
사랑이란 이렇게 마음 밭이 여릴 때 베풀어질 것이다. 배고픈 사람을 볼 때, 아파하는 사람을 볼 때, 또 괴로워하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이 저려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마음이 사랑보다 앞서야 하리라. 이런 여린 마음을 갖는 것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야지 어찌 내가 마음을 여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돌같이 단단한 마음에서 어찌 눈물이 흐르리요.
얼음같이 찬 마음에서 어찌 사랑이 흐르리요.
어린아이처럼 여린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오 주여!
내 일생 이 여린 마음을 갖게 하소서.
눈물 많은 사람이 되게 하오소서.
*이건숙, 서울출생으로 서울대 사대를 졸업하고 1981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양로원으로 당선. 수필집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