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때 잠시 다녀간 아들아이가
7월이 끝날 무렵에야 포항으로 내려왔어요.
겨우 이틀 밤을 보내고 서둘러 다시 떠나간 아이...
내려올 때마다 하는 말인즉,
초등 시절 엄마 얼굴만 떠올리다 문득 현관문을 들어서면
뜻밖에 나이 든 엄마 얼굴이 나타나 실망스럽다는 얘기...
세월 거스르는 장사 없다지만 들을 때마다 좀 씁쓸하대요.
저 역시 청년이 된 그 얘가 믿음직스럽긴 하지만
어느새 성큼 웃자라 버린 듯한 거리감에
반갑게 얼싸안기는 해도 예전보다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져요.
다음날 선심 쓰듯 시내 영화 보러가자고 권하기에
'포항 시네마'에서 골라잡은 프로가 이 영화였어요.
내일이면 헤어짐을 전제로 한 피차 접대차원에서 행해진,
그 놀아주기 위한 대상이 아들인지... 엄마인지...
밖은 꽤 무더웠지만 에어컨 빵빵한 영화관은
머물수록 너무 추워져 결국 손수건까지 두른 채
스팩터클한 장면 속으로 깊숙이 빠져든
마이클 베이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아일랜드’...
심심풀이 삼아 줄거리만 소개해 볼까해요.
때는 지구상에 발생한 생태적 재앙으로 인하여
일부만이 살아 남은 2019년,
생존자들 중 한 사람인 주인공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와
그 여자 친구 '조던 2-델타'(스칼렛 요한슨)는
이미 오염된 바깥세상과 철저히 차단된
주변이 검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지하 도시에서
수백 명의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엄격한 통제와 규율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지요.
날이 흐를수록 재앙 속 살아남은 기쁨도 희석되어가고
지하도시 관리자들에 의해 철저히 강제된 삶의 스타일에
주인공 링컨의 자유의지는 판에 박힌 일상에 대한 지겨움을 토로해요.
그래도 죄수인양 철저히 통제된 그곳 생존자들을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은 하루 한번씩 진행되는 추첨의 시간이에요.
지구상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유토피아 지역인 '아일랜드',
그곳에서의 자유로운 여생을 보장받는 당첨의 순간,
모두의 선망과 환호 속 전광판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나타나는 그 순간을 기다림이 그네들의 유일한 소망이었어요.
오염된 지구에서 가까스로 구출 당해
다시금 지상낙원 '아일랜드'로 뽑혀갈 날을 위해
아침마다 자기 이름이 호명될 순간을 기다리다
그 기다림에 지친 생존자들간의 불만 또한 깊어져가고...
게다가 밤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똑같은 악몽에 의해 잠깨곤 하던 주인공 링컨은
시설물 최고 관리자에게 상담 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잊어버린 과거에 대한 의문도 자리잡기 시작하지요.
그러던 와중, 마음을 터 놓던 동료에게 몰래 놀러간 링컨은
우연히 그곳에서 바깥세상에서 날아든 날벌레를 보자
생명체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믿었던 바깥 세상이
말과는 달리 그다지 오염되지 않았음에 의아해하며
그것이 들어온 길을 따라 나섰다가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합니다.
지상낙원으로의 티켓이라 믿었던
아일랜드 당첨자들의 실상이 알고 보니
장기이식의 대상자로서 선발된 황천길이었음을...
관객들도 그제야 주인공이
일반적 인간이 아닌 복제된 클론임을 깨닫게 되지요.
이제부터 영화는 인간이 아닌 클론들의 입장에 서게 되지요.
과학 기술의 교묘한 발달은 클론의 대뇌 기억회로에
그 상품성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억요소만 주입했지만
품질 관리자들도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일어난
에러 발생으로 클론들의 대뇌 기억회로에 이상이 생겨
주인 격인 유전자 제공자의 지혜와 지식이 그대로 전이되어
생산 판매자 입장에서 보면
주인공 링컨의 경우는 엄청난 불량품이 되고 말았어요.
이때부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영특하기 이를 데 없는 클론인, 주인공 링컨의
목숨을 건 필사적 사투가 시작됩니다.
시험관속에 사육되고 있는 무수한 클론들을 목격하고선
자신들의 존재가 지구 오염으로 인한 생존자들이 아니라
바깥 세상 인간들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인위적으로 제조된 인간 복제품, 클론으로서
인간 복제 회사 경영진에게 철저하게 기만당했음을 깨닫지요.
클론 사육사업가인 시설 관리자들에 의해
대뇌피질에 주입된 기억들 또한 그 의도에 맞게 날조된 거짓이었음도...
홀로그램에 의해 조작된 바다 속 지하 도시의 실상은
이윤 추구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치된
인적 드문 황무지에 설치된 클론 사육단지였어요.
공교롭게도 그날 아침 축복 속 '아일랜드'행에 당첨된
여자 친구 '조던'의 생명이 명재경각임을 깨달은 링컨은
그녀와의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회사측에서도 극비리에 진행된 사업내용이
클론 사육단지 내부는 물론이고 바깥 세상에
있는 그대로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
그들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지요.
살인청부업자들과 주인공 남녀 클론간의 사투는
헐리웃 영화의 일반적 특성에 맞게
눈요기 감으로 제몫을 다합니다..
바깥 세상으로 탈출하여 가까스로 만난 그들의 주인인 DNA 제공자.
그 누구도 인간과 상품을 구별할 수 없는 완벽한 동일체들.
외모 뿐 아니라 내면까지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만난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요?
링컨의 주인은 엄청난 부의 향유로 인해
이미 육신과 정신이 병들대로 병든 질 나쁜 인간임에 비해
인간보다 더 깊은 인간애를 지닌 클론인 링컨은
주인 역을 대행하며 바깥 세상에서 편히 살아갈 기회를 포기하고
아일랜드행을 기다리며 기만당한 채 살고있는 동료 클론들을
구출하기 위해 사지로 귀환하여 사생결단 끝에
동료 클론들에게 새 삶을 열어주는 걸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얼마 전 황우석 박사의 복제 개를 다룬 기사는
장기 이식을 위한 줄기세포를 이용한 인간 복제의 날도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경고해 주는 듯했어요.
영화 '아일랜드'처럼 이 순간도 어느 비밀스런 장소에서는
부유층을 위한 희생양으로서의 인간복제가
불법적으로 이미 횡행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영생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어찌 멈출 수가 있을까요?
불치병인 자기 자신이 좀더 오래 살 수 있는 길이
바로 눈앞에 있다면 그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생명연장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용기가
과연 일어날 수 있을는지요.
첫댓글 아일랜드.. 저도 꼭 보겠습니다. /수업땜시 이만..
감명 깊어 소개한 게 아니고요, 새글이 없기에 심심풀이 삼아 그냥 한 번...
난 영화 안 볼래, 앞으로도. 영화 보고 후이쩐님처럼 글 올리려면 백발이 대머리까지 될 테니.
디스토피아. 터미네이터가 생각나네요. 인공인간이 더 인간적인 역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삶을 그대로 믿어버리는데 양코배기들은 '내'가 '나'임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지요. 어쩔 수 없는 데카르티잔들. 멋진 자들.
하나의 획기적인 과학 기술이 발견되었을 때, 그 위해성 때문에 그것이 실용화되지 않은 적은 없다고 그러데요, 지금까지는. 만약에, 이런 복제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어 생명이 연장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수십 년을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은, 후세에게도 자신에게도 재앙이 아닐런지요.
이목, 솔울, 큰샘의 논술 자료네. / 바쁜 사람들이 주막에 자주 들르시네요.
복제 인간에 대해서는 문화지체 현상을 겪고 있는 듯. 그러나 이런 영화나 문학을 통해 미리 그 부작용과 해결책을 알아보는 것도 진보의 한 과정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