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은 피혁 상점을 운영하던 부친 덕택에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서당과 소학교를 거쳐 경신학교에 이르기까지 학업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그는 경신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남강 이승훈(南岡 李昇薰, 1864-1930)에 의해
오산학교로 초빙되어 교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다석과 오산학교와의 인연은 그가 일본 유학을 마친 후 1921년 9월 이 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함으로써 다시 이어지게 되는데, 이 시기에 재학생이었던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을 만나게 되어 사제 간의 연을 맺게 된다.20)
다석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게 된 시기는 그가 16세 때로, 게일
(James S. Gale, 1863-1937) 선교사와 함께 황성기독청년회(YMCA)를
창립한 후 수석간사로 활약했던 김정식(金貞植, 1862-1937)의 인도로 연동교회를 나가면서부터이다. 당시 그는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초대교회인 새문안교회, 연동교회, 승동교회 예배를 모두 참석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21) 그러던 중 1912년 동생 유영묵의 죽음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