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3 07:30
대선이 가까워져 올수록 방송, 특히 종편에서는 온종일 정치 관련 뉴스만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치 뉴스가 많으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여론조사입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의 지지율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는 많은 국민의 관심사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털 검색어에도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박근혜 지지율, 문재인 지지율, 안철수 지지율이라는 검색어입니다. 이렇게 많은 유권자가 관심이 있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그동안 왜곡됐거나 조작됐다는 의혹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일보 종편채널 채널A의 '이언경의 세상만사'라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대놓고 여론조사를 조작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여론조사를 조작했는지, 방송과 언론에 등장하는 여론조사 진짜 믿을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 채널A의 뻔뻔한 여론조사 조작'
'이언경의 세상만사'라는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지난 11일 '박근혜,새누리 내홍 수습..전화위복 될까' 라는 제목하에 정연정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교수와 함께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지지율에 관한 분석을 했습니다.
▲채널 A의 보도 내용과 실제 리얼미터 여론조사 지지율. 출처:중앙일보,채널A
채널A가 도표로 제시한 자료를 보면 10월 5일 박근혜 후보가 46.8%로 46.5%인 문재인 후보를 앞섰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10월 10일 문재인 후보는 44.6%, 박근혜 후보는 46.6%로 근소하게 하락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채널A는 이 여론조사를 리얼미터와 jTBC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리얼미터 조사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실제 리얼미터 조사결과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후보가 46.6%로 박근혜 후보를 앞섰고, 박 후보는 44.6%로 2,2%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예 조사결과를 반대로 조작한 것입니다. 이들이 어떤 의도로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선을 불과 68일 남은 상황에서 이런 여론조사의 조작은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채널A는 이런 여론조사의 조작에 대해 중앙일보 11일자 3면 기사에 게재된 도표를 흑백프린터로 출력해 CG팀에서 그래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흑백으로 바꾼 화면, 출처:중앙일보
채널A의 해명처럼 중앙일보 신문을 흑백으로 변환시켜 뽑아봤습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박근혜 VS 안철수 결과와 비교하면 박근혜 VS 문재인 후보의 양자대결 조사 결과는 뚜렷하게 보입니다. 만약 안철수,박근혜 후보 양자 대결만을 실수했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흑백으로 인쇄해도 뚜렷하게 보이는 결과까지도 조작한 모습은 단순한 실수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예 두 사람의 결과를 처음부터 정반대로 했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10월 5일 46.5%였던 그래프가 46.6%로 올라갔는데도 아예 그래프를 44.6% 지지율로 둔갑시켰던 점입니다.
▲ 여론조사 조작 동영상을 삭제한 상태. 출처:채널A 홈페이지
이처럼 단순한 실수로 보기에는 어려운 조작을 해놓고 채널A는 10월 11일 새벽까지도 홈페이지에 사과문은커녕 아예 동영상을 삭제하고 자신들의 조작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언경이라는 앵커와 배재대 정연정 교수는 과연 방송 준비를 제대로 하고 뉴스 보도를 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방송 내내 "박 후보가 중도 외연확대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반면 굴곡있는 인생을 살아 위기 대응에, 강하다.","평온할 때보다 위기에 잘 대응한다"는 말로 박근혜 후보 편들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지난주부터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양자간 대결은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 뒤지고 있는데도 앵무새처럼 박근혜 후보를 찬양하며 그가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는 그녀들의 말을 보면, 뉴스인지 박근혜 홍보팀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
여론조사는 선거판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선거의 양상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터진 후에 일어나는 여론 조사는 유권자의 표를 이동시키는 캐스팅보트 역할도 가질 수 있습니다.
▲1997년 11월17일 동아일보 기사.
1997년 11워17일 모든 신문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회창 후보의 2위 진입을 보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앙일보는 "이회창 2위권 진입"이라는 제목을 뽑아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양자 간 대결로 여론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누가 김대중 후보와 2파전을 이룰 것인가는 선거 한 달이 남지 않은 기간에 중요한 요소인데, 아예 여론 조사를 통해 이회창 후보로 굳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는 1면에 "TV토론 직후 지지율이 빠지는 경향을 보인 이회창 후보가 이번에는 가장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진행된 신문협회와 방송협회 주최 TV토론 이후 '이미지가 좋아진 후보'에는 이회창 후보 29.8%, 김대중 후보 23.1%, 이인제 후보 22.4% 순이었고, '이미지가 나빠진 후보'에는 김후보 18.4%, 이인제 후보 17.7%, 이회창 후보 16.6% 순이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이 여론조사 덕분에 이회창 후보는 단숨에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김대중 후보와 양자 간 대결 구도를 펼치게 됩니다.
▲2010년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와 실제 결과.
2010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는 한명숙 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모든 언론사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한명숙 후보가 아예 오세훈 후보와 게임이 안 되는 것처럼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오세훈 51.9% - 한명숙 32.8%…격차 다시 벌어져
[조선일보·한국갤럽 여론조사] 서울시장 가상 대결 오세훈 23.3%·한명숙 9.5%
오세훈·한명숙 서울시장 가상 여론조사… 韓 지지율 '들쭉날쭉' 왜?
그러나 실제 투표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세훈 47.4%, 한명숙 46.8%로 겨우 0.6% 차이로 오세훈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만약 여론조사가 실제 투표처럼 박빙의 승부로 예상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강남지역 여론조사와 다른 지역의 여론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아마 선거의 양상은 바뀔 수도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론조사는 갑자기 순위가 바뀌기도 하고, 선거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기이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 여론조사,과연 얼마큼 믿어야 할까?'
선거의 양상을 바꾸기도 하고, 선거 결과를 움직일 수 있는 여론조사. 그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한가를 묻는다면, 대부분의 통계학자조차 현행 조사 방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 2006년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 결과. 출처:선거여론조상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조성겸)
2006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피습 직후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회사별로 최대 8.9%의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후보를 향해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렇게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조사기관이 어떤 방식에 따라 여론조사를 하느냐에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지역과 대상을 조사한 결과도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가 날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사기관별로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응답자(피조사자)선정방식에도 있을 수 있는데, 무작위 표집방법 방식이나 인구비례할당을 적용한 비확률 할당 표집 등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여성의 경우 평일에는 사무직 응답자의 비율이 13.%라고 하면 휴일에는 21%, 20대 전업주부의 경우 평일 조사가 22% 나왔다면, 휴일에는 3%의 응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간대,요일별로 재택률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실제로 유선전화 방식 등의 여론조사는 진짜 여론조사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조사응답률입니다. 조사응답률이 낮으면 실제 여론조사의 신뢰성이 떨어지는데, 미국의 경우 응답률 30% 이하의 선거 여론조사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지만 한국은 20% 내외이거나 30-40%까지인데도 응답률을 잘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율의 차이도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투표하겠다고 물으면 대부분 투표를 하겠다고 밝히지만 실제로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수치를 어떻게 배제하고 계산하느냐에 따라 여론조사의 투표율과 실제 투표율의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이는 선거 예측에 많은 변수가 되기도 합니다.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설문지. 출처:위키프레스
여론조사가 수행하는 기관이나 의뢰자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조사 질문지의 내용과 순서가 어떻게 구성되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추측성 질문이나 예측성 질문이 포함된 경우, 어떻게 단어를 배치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응답도 달라집니다.
중앙일보가 했던 추석 이후 여론조사를 보면, 문항 9번에 예시 2번을 보면 '다소 불안하더라도'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불안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는데, 이렇게 '불안'이라는 단어를 넣는 순간 응답자는 2번보다는 1번 '안정적'이라는 문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대선 일주일 전까지는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여론조사만을 무턱대고 믿다가는 여론조사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자들의 전략에 빠져들 수가 있습니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자기들 편의대로 해석하고 조작하는 여론조사를 믿는 대신에 어떤 여론조사를 가지고 어떤 여론을 만들려고 하는지를 우리 모두 눈여겨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