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언제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숙제로 써낸 일기 한쪽에 댓글을 달아주시곤 했다. ‘글솜씨가 좋아요. 꾸준히 글을 써보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었군요. 그런 생각을 했군요.’ 선생님의 댓글이 그렇게 좋았다. 흔한 칭찬과는 달리 느껴졌다. 관심받고 싶었던 아이에게 다가온 적절한 관심.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따스한 시선과 반응. 거기에 마음을 확 열어버렸다. 그래서 열심히 일기를 썼다. 더 잘 쓰고 싶었다. 선생님은 내가 쓴 글에 줄곧 관심을 가져주셨고, 나는 신이 나서 글짓기반 활동도 시작했다. 내 기억 속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글을 쓸 때는 정성을 쏟았고, 국어 시간이 좋았고, 좋은 글을 읽을 때면 행복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읽었을 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글.
사춘기를 지나며 나의 글쓰기는 철저히 나를 위한 것이 되었다. 나는 한참 생각하고 곱씹어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곤 했다. 찰나를 놓친 말은 두고두고 생각났고, 불쑥 튀어나와 버린 말들로 조마조마했다.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편했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글쓰기는 생각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을 넉넉하게 주는 방법이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내 마음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비로소 담을 수 있었다. 눈물을 쏟아내고 싶은 날 글을 썼다. 누가 내 마음을 알기는 할까 외로웠던 날, 아이의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힌 날, 가장 소중한 이에게 나의 밑바닥을 보인 날,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실망이 더해진 날…. 그런 날이면 뭉그러진 마음을 쏟아내기 위해 글을 썼다. 전혀 다듬어지지도 다듬으려 하지도 않은 글은 나를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나만의 글. 꽤 오랜 시간 나의 글은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쓰다 보면 “진짜 내 생각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71쪽)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을 다시 붙잡고, 흘려 보내야 할 것을 흘려보내며 나를 다독이게 된다. 그러면 조금 차분해지고, 갇혀 있던 내 안에서 나와 주변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2023년 2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기자단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읽게 되었다. ‘조금 더 공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도전해 보세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재구성해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우리 공동체의 문제까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실 거예요.’ 그래. 이걸 해 봐야겠다. 조금 더 공적인 글쓰기. 나를 넘어서 누군가에게 닿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나도, 나의 글도 조금 더 확장되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고 합평하는 첫 시간이 어찌나 긴장되고 떨리던지 지금도 생생하다. 단체 블로그에 처음 올라온 내 글을 봤을 때의 기분은 참 묘했다. 일기장을 벗어난 내 글을 만나는 느낌이란. 몇 명이나 이 글을 볼까. 글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긴장감은 이내 사라지고 궁금함과 설렘이 더했다.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글을 쓰는 날도 있고,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있나 싶어 못마땅해지는 날도 있었지만 글을 쓰는 게 좋았다. 나의 글을 함께 읽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오랜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져 왔던 글쓰기가 누군가와 이어진다는 느낌. 돌아보니 그것은 연대였고 확장이었다.
그런 경험이 올해도 기자단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올해 나는, 나의 글은 어디를 향해 얼마나 확장될까. 내가 쓰고 읽는 글이 나의 아주 작은 일부를 바꾸고, 변화된 내가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그거면 됐다. “모든 글은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탠다. 비록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 혹은 글을 읽는 사람의 기분이나 특정한 종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를 바꾸는 정도의 미미한 역할을 할지라도 말이다.”(38-39쪽)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첫댓글 글 쓰느걸 참 좋아하던 때가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