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강화도 전등사, 석모도 보문사를 다녀온 후 5월에는 1,2일 1박2일로 전남 강진 일대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5월1일 서울을 출발하여 월출산 도갑사에서 해탈문(국보50호)과 대웅전을 감상하고 월출산 동쪽에 있는 무위사의 극락보전(국보13호) 후불탱화를 배견하고 우리 근대의 순수시문학을 이끌었던 김영랑(김윤식)생가와 그 시비를 보면서 김영랑의 시를 감상하며 우리의 가슴에 잠자고 있던 순수한 서정의 감정이 되살아나며 우리 친구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연휴에 길이 많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차가 많지 않아 강진의 명물인 황칠코리아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황칠갈비탕으로 식사 후 발길도 가볍게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다산 정약용은 숙종의 무한한 총애를 받았으며 실학의 거두로 기중기를 발명하여 수원성을 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당쟁에 휘말려 천주교에 연류 되였다는 죄로 18년의 유배 생활 중 600여권의 저술을 남기고 백성을 매우 사랑한 우리 조선중기의 천재 관료인 다산선생의 유배경위와 강진에서 생활, 다산초당의 설립 경위와 백련사 혜정선사와 교류와 해남윤씨 와의 관계 등을 이야기하며 다산초당에 다다른다.
해남윤씨는 해남지방의 부호로 도산 윤선도 때 명성을 얻은 해남 지방의 명문가였다. 정약용의 어머니가 해남 윤씨로 공재 윤두서의 손녀다. 해남 윤씨는 다산선생의 외가가 되는 셈이다. 처음에는 대역 죄인으로 강진에 유배 되여 멀리 하다가 차츰 차츰 교류를 하면서 다산선생의 학문을 흠모하여 주위의 유지들의 자제들과 처가인 해남 윤씨들의 자제를 제자로 삼게 되여 해남윤씨의 윤단이 전부터 있던 자신의 초당 좌우에 서암과 동암을 짖고 제자를 모아 다산으로 하여금 후학을 가르치는 다산초당을 건립하게 되는 것이다. 서암은 제자들의 거처이며 동암은 다산이 기거하면서 독서와 집필에 사용하였으며 초당 본체는 교실로 사용하였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입구에 제자인 윤종진의 묘가 있다.
다산초당 동암에는 보정산방이라는 추사의 현판이 있으며 다산동암이라는 현판은 다산선생의 필체를 집자한 현판이 있다.
다산초당 동암을 지나 천일각에서 강진만의 탁트인 풍광을 감상 하였다. 그 옛날 다산 선생이 백련사 혜정선사를 만나려고 다니신 오솔길을 따라가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뜻이 통하는 친구 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한다. 백련사는 아담한 절로 대웅보전과 만경루의 현판이 우리나라 동국진체를 확립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동국진체 글씨, 동국진체의 그림은 조선중기이후 중국의 문물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우리의 산천과 우리의 글씨를 말하는 것으로 글씨는 옥동이서와 백하 윤순을 거쳐 이광사, 추사김정희로 이어지고 있으며 동국진체그림은 공재윤두서, 겸재정선, 관아재조영석, 현재심사정이 그 대표적인 화가이며 조선조 후기에 그림은 흔히 삼원, 삼재를 알면 된다고 한다. 삼원은 단원김홍도, 혜원신윤복, 오원장승업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마침 운 좋게 강진에 있는 사의재 한옥 체험 장에 숙소를 정 할 수 있었다. 사의재 란 다산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처음 4년간 기거한곳으로 강진 주막집 안채 방 한 칸이다. 다산이 처음 강진에 내려와서 대역 죄인이라 상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거처가 없었을 때 주막의 주모가 쾌히 방을 내주었으며, 처음에는 다산이 술로 세월을 한탄하며 지내는 중 주모가 다산에게 서울에서 벼슬하던 사람이 술로 허송세월을 하면 안 된다 고 충고를 하였고 이에 정신을 차린 다산선생이 학문과 저술의 의욕을 찾았다는 주막집으로 사의재(四宜齋)의 뜻은 생각과 말과 용모와 행동을 마땅히 바르게 하자는 뜻이라 한다.
다음날 칠량 옹기 촌을 찾아갔다. 프라스틱에 밀려 겨우 한군데서만 무형문화재 전수자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서 살아 숨쉬는 우리전통 옹기의 명맥이 단절될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우리 전통 된장, 고추장, 간장은 칠량옹기에 담아 오랜 세월 숙성시켜야 제 맞을 내는데 매우 아쉬음이 남는다. 이여 대구면에 있는 민화 박물관과, 고려청자 박물관에서 고려청자의 발달과정을 살펴보고 의외로 시간이 남아 해남 녹우당으로 향 했다. 녹우당은 도산 윤선도가 효종에게서 하사받은 집의 사랑채를 헐어다 지은 집으로 공재윤두서와 그 친구인 옥동이서가 어느 날 녹우당에서 술을 들다가 별안간 비가 오면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 마치 녹색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녹우당이라 이름을 잦고 옥동이서가 현판을 써 주었다고 하며 옥동이서가 써준 현판이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행운은 공재윤두서의 초상화(국보240호)와 그의 손자인 청고윤용의 미인도를 감상 할 수 있어서 행운과 즐거움이 함께한 여행이었습니다.
전등사
추녀를 받치고있는 나부
선남선녀의기도
전등사 경내 나무
보문사 나한
보문사 마애불
마애불앞에서본 강화 바다
부처님과 동자승
도갑사 전경
국보인 도갑사 해탈문
설록차 차밭
다산동상앞에서
윤종진 묘앞의 문관석
천일각에서 본 강진만
백련사에서본 강진만
다산이 묵었던 사의재 복원모습
옛날에 그 물건
사의재 주모와 딸의 동상
옥동이서의 녹우당 현판
공재 윤두서의 초상화(국보240호)
윤두서 손자인 청고 윤용의 미인도
첫댓글 남도의 도갑사 사찰과 남도의 자밭 강화도의 생생한모습 멋지게 담으신 귀한작품들 감사히 봅니다
남도여행 같이 동행못해 미안했습니다
몸이 안좋아 이번출사를 참석못해 회원여러분에게 매우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자세히 안내하고 수고해주신 남중현회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그리고 또한 멋진 작품 즐겁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