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1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나이 서른이 되던 해에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면서 십 년을 보냈지만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마음에 변화가 왔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아침 동이 트자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너 위대한 천체여! 네가 비추어줄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의 행복이란 무엇이겠느냐!
너는 지난 십 년 동안 여기 내 동굴을 찾아 올라와 비추어주었다. 만약에 나와 나의 독수리와 뱀이 없었던들 너는 필경 너의 빛과 그 빛의 여정에 지쳐 있으리라.
우리는 아침마다 너를 기다렸고, 그 넘치는 풍요를 받아들이고는 그에 감사하여 너를 축복했다.
보라! 나는 너무 많은 꿀을 모은 꿀벌이 그러하듯 나의 지혜에 싫증나 있다. 이제는 그 지혜를 갈구하여 내민 손들이 있어야겠다.
나는 베풀어주고 싶고 나누어주고 싶다. 사람들 가운데서 지혜로운 자들이 다시 한번 그들의 어리석음을 기뻐하고, 가난한 자들이 다시 한번 그들의 넉넉함을 기뻐할 때까지.
그러기 위해 나는 저 아래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네가 저녁마다 바다 저편으로 떨어져 하계에 빛을 가져다줄 때 그렇게 하듯, 너 차고 넘치는 천체여!
나 이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저 아래로 내려가려 하거니와, 나 또한 그들이 하는 말대로 너처럼 몰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나도 큰 행복도 시샘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너, 조용한 눈동자여, 나를 축복하라!
바야흐로 넘쳐흐르려는 이 잔을 축복하라. 이 잔으로부터 물이 황금빛으로 흘러 넘치도록, 그리하여 온 누리에 너의 환희를 되 비추어주도록!
보라! 잔은 다시 비워지기를,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노라."
이렇게 하여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2
차라투스트라는 혼자서 산을 내려왔다. 오는 길에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숲에 당도하자 한 노인이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 숲 속에서 풀뿌리를 캐기 위해 자신의 신성한 오두막집을 떠난 자였다. 노인이 차라투스트라에게 말했다.
낯설지 않다. 이 나그네는. 여러 해 전에 이곳을 지나간 일이 있지. 차라투스트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도 변했구나.
그때 그대는 그대의 타고남은 재를 산으로 날랐었다. 이제는 활활 타고 있는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 아래로 나르려는가? 불을 지르고 다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벌이 무섭지도 않은가?
그렇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다. 그의 눈은 맑고 입에는 역겨움이 서려 있지 않다. 그리하여 춤추는 자처럼 걷고 있지 않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변하여 어린아이가 되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깨어난 사람이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무슨 짓을 하려는가?
바다 속에서처럼 그대는 그렇게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런 그대를 바다가 떠받쳐주었다. 아아, 이제 뭍에 오르려는가? 아아, 또다시 그대 자신의 신체를 질질 끌고 다니려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대답했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노라."
그러자 성자가 되물었다. 그러신가. 그러면 나는 왜 숲 속으로 그리고 광야로 갔더란 말이냐? 사람들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제 신을 사랑하노라. 사람은 사랑하지 않노라. 사람, 그것은 너무나도 불완전한 존재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키고 말리라.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사랑에 대해 내 무슨 말을 했던가.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성자가 또 말했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라. 차라리 그들에게서 얼마를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나누어 짊어져라. 그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없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대에게도 즐거운 일이 된다면야!
그리고 그들에게 주려면 적선말고는 따로 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위해 구걸하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적선은 하지 않는다. 그럴 만큼 내가 가난한 것도 아니다."
성자는 차라투스트라를 비웃으며 말했다. 눈 여겨 살펴 보라. 그들이 그대의 보물을 받아들이는지를! 그들은 은자들를 미심쩍어한다.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주기 위해 온다고도 믿지 않는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쓸쓸하게 울린다. 그리하여 동이 트려면 아직도 먼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소리를 들을 때 묻듯이 그들은 '도둑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가지말고 숲 속에 머물러라! 차라리 짐승들에게나 갈 노릇이다! 그대는 왜 나처럼 많은 곰 가운데 한 마리의 곰이 되려고 하지 않으며 많은 새 가운데 한 마리의 새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
"이 성자가 숲 속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차라투스트라가 물었다.
그러자 성자가 대답했다. 나는 노래를 짓고 노래를 부르지. 그리고 노래를 지을 때, 웃고 울며 중얼거리지. 나는 이렇게 신을 찬양하고 있다.
노래하며 울고 웃고 중얼거림으로써 나는 나의 신인 그 신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가져왔는가?
이 말을 듣자 차라투스트라는 성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그대에게 줄 무엇이 내게 있겠는가! 나로 하여금 서둘러 나의 길을 가도록 하라. 내가 그대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못하도록!" 이렇게 하여 두 사람, 성자와 차라투스트라는 웃으면서 헤어졌다. 마치 웃고 있는 두 사내아이처럼.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늙은 성자는 그의 숲 속에서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듣지 못했다는 말인가!"
3
숲 가장자리에 있는 첫 도시에 들어선 차라투스트라는 그곳 시장 터에 많은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들 군중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Ubermensch)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들 자신을 뛰어넘어, 그들 이상의 것을 창조해왔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이 거대한 밀물을 맞이하여 썰물이 되기를, 자신을 극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사람에게 원숭이는 무엇인가? 일종의 웃음거리 아니면 일종의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이 아닌가. 위버멘쉬에 대해서는 사람이 그렇다. 일종의 웃음거리 또는 일종의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일 뿐이다.
너희들은 벌레에서 사람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너희들에게 있어서는 아직도 많은 것이 벌레이다. 너희들은 한때 원숭이였다. 그리고 사람은 여전히 어떤 원숭이보다도 더 철저한 원숭이다.
너희들 가운데 더없이 지혜로운 자가 있다 할지라도 역시 식물과 유령의 불협화음이자 트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내 이제 너희들에게 다시 유령 또는 식물로 되돌아가도록 분부할 것인가?
보라, 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다. 너희들의 의지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라, 위버멘쉬가 이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나의 형제들이여, 맹세코 이 대지에 충실하라.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설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스스로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간에 독을 타 사람들에게 화를 입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생명을 경멸하는 자들이요, 소멸해가고 있는 자들이며 독에 중독된 자들로서 이 대지는 이런 자들에 지쳐 있다. 그러니 하늘나라로 떠나도록 그들을 내버려두어라!
지난날에는 신엔 대한 불경이 가장 큰 불경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그와 더불어 신에게 불경을 저지른 자들도 죽었다. 이 대지에 불경을 저지르고 저 알 길이 없는 것의 뱃속을 이 대지의 뜻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 이제는 그것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지난날에는 영혼이 신체를 경멸하여 깔보았다. 영혼은 신체가 메말라 있기를, 추하며 허기져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신체와 이 대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 그러나 메말라 있고, 추하며 허기져 있는 것은 바로 영혼 그 자체였다. 잔혹함, 바로 그것이 이러한 영혼이 누린 쾌락이었으니!
그러나 나의 형제들이여, 내게 말하라. 너희들의 신체는 너희들의 영혼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가? 너희들의 영혼 자체가 궁핍함이요, 더러움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안일함에 불과하지 않느냐?
참으로, 사람은 더러운 강물과도 같다. 더렵혀지지 않은 채 더러운 강물을 모두 받아들이려면 사람은 먼저 바다가 되어야 하리라.
보라, 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이 위버멘쉬가 바로 너희들의 크나큰 경멸이 그 속에 가라앉아 몰락할 수 있는 그런 바다다.
너희들이 체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더없이 위대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위대한 경멸의 시간이다. 너희들의 행복이, 그와 마찬가지로 너희들의 이성과 덕이 역겹게 느껴지는 바로 그런 때 말이다.
그것은 너희들이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다. "나의 행복이란 것이 무엇이더냐! 그것은 궁핍함이요 추함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안일함에 불과하지 않는가. 나의 행복은 생존자체를 정당화해야 하리라!"
그것은 너희들이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다."나의 이성이란 것이 무엇이더냐! 마치 사자가 먹이를 찾듯 그것은 지식을 갈구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것은 궁핍함이요 추함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안일함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것은 너희들이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다."나의 덕이란 것이 무엇이더냐! 덕은 아직까지 나를 열광시키지 못했다. 나는 나의 선과 악 사이에서 얼마나 지쳐 있는가! 이 모든 것은 궁핍함이요 추함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안일함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것은 너희들이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다. "나의 정의란 것이 무엇이더냐! 나는 작열하는 불꽃도 숯도 아니다. 그러나 정의로운 사람은 불꽃이요 숯이다!"
그것은 너희들이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다. "나의 연민이란 것이 무엇이더냐! 연민이란 사람을 사랑한 그가 못박혀 죽은 바로 그 십자가가 아닌가? 그러나 나의 연민은 결코 십자가형이 아니다."
너희들은 일찍이 그렇게 말해본 일이 있는가? 일찍이 그렇게 외쳐본 일이 있는가? 아, 너희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것을 내 귀로 들었더라면!
하늘을 향해 외쳐대고 있는 것은 너희들의 죄가 아니라 검약이며, 너희들이 지지로는 죄 속에 있는 너희들의 비열함이다!
너희들을 혀로 핥을 저 번갯불은 어디에 있는가? 그가 바로 번갯불이요 광기다!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하자 군중 속에서 어떤 자가 소리쳤다. "줄타는 광대에 관해서는 이미 들을 만큼 들었다. 그러니 이제 그 모습을 보여달라!" 그러자 군중 모두가 차라투스트라를 비웃어댔다. 그러나 자기를 두고 군중이 이 말을 한 것이라고 믿은 그 줄타는 광대는 곡예를 시작했다.
4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점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왜 몰락해야 하며 제물이 되어야 하는지, 그 까닭을 먼저 저 멀리 별들 뒤편에서 찾는 대신 언젠가 이 대지가 위버멘쉬의 것이 되도록 이 대지에 헌신하는 자를.
나는 사랑하노라.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언젠가 위버멘쉬를 출현시키기 위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려는 자를. 그런 자는 이와 같이 그 자신의 몰락을 소망하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위버멘쉬가 머무를 집을 짓고, 그를 위해 대지와 짐승과 초목을 마련하는, 그렇게 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뭔가를 만들어내는 자를. 그런 자는 이와 같이 그 자신의 몰락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자신의 덕을 사랑하는 자를. 덕이야말로 몰락하려는 의지요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한 방울의 정신조차도 자신을 위해 남겨두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덕의 정신이 되고자 하는 자를. 그런 자는 이와 같이 정신으로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그 자신의 덕에서 자신의 취향과 숙명을 만들어내는 자를. 그런 자는 이와 같이 자신의 덕을 위해 죽고 살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너무 많은 덕을 소망하지 않는 자를. 하나의 덕은 두 개의 덕 이상이다. 그것은 숙명을 결합하는 더욱 큰 매듭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스스로를 낭비하는 그런 영혼을 갖고 있는 자를. 누군가가 그에게 고마워하기를 바라지 않고, 그 고마움을 되갚지도 않는 자를. 그런 자는 선사할 뿐, 자신을 보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주사위놀이에서 행운을 잡았을 때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면서 "나는 사기 도박사가 아닌가?" 하고 반문하는 자를. 그런 자를 파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행동하기에 앞서 황금과 같은 말을 던지고 언제나 자신이 약속한 것 이상을 해내는 자를. 그런 자는 자신의 몰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앞으로 다가올 세대를 옹호하여 환영하고 지난날의 세대를 그 과거로부터 구제해내려는 자를. 그런 자는 현재를 살고 있는 세대에게서 파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자신의 신을 사랑하여 그 신을 벌하는 자를. 그런 자는 그 신의 노여움을 사 파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상처를 입고도 그 영혼이 심오하며, 하찮은 사건으로도 파멸할 수 있는 자를. 그런 자는 이렇게 하여 즐겨 교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자신을 잊고 자신 속에 만물을 간직할 만큼 넘쳐흐르는 영혼을 지닌 자를. 이렇게 하여 만물은 그의 멸망이 된다.
나는 사랑하노라.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심장을 갖고 있는 자를. 그런 자에게 머리는 심장에 있는 내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심장은 그를 몰락으로 내몬다.
나는 사랑하노라. 사람들 위에 걸쳐 있는 먹구름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과 같은 모든 자를. 그런 자들은 번갯불이 곧 닥칠 것임을 알리며 그것을 예고하는 자로서 파멸해가고 있는 것이다.
보라, 나는 이 번갯불이 내려칠 것임을 예고하는 자요, 이 구름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물방울이다. 번갯불, 그것이 곧 위버멘쉬다.
5
이 말을 마치고 나서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한번 군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저기 그들이 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웃고들 있구나.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와 같은 자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닌가보다.
그렇다면 그들이 눈으로라도 들을 수 있도록 먼저 그들의귀를 때려부숴야 하는가? 아니면 울리는 북과 참회 설교자들처럼 요란을 떨어야만 하는가? 혹 그들이 말더듬이만을 믿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어떤 것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그들은 그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들은 '경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이제 나는 그들의 자부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그들에게 더없이 경멸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겠다. 최후의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어서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세울 때다. 지금이야말로 사람이 자신의 최고 희망의 싹을 틔울 때다.
토양은 아직도 충분하리 만큼 비옥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도 지력을 잃어 메마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큰 나무도 이 땅에서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슬픈 일이다! 사람이 더 이상 그 자신 위로 동경의 화살을 쏘지 못하고, 자신의 활시위를 울릴 줄도 모르는 그런 시기가 머지않아 오고 말 것이다!
너희들에게 말하거니와,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아직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너희들에게 말하거니와. 너희들은 아직 그러한 혼돈을 지니고 있다.
슬픈 일이다! 머지않아 사람이 더 이상 별을 탄생시킬 수 없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슬픈 일이다. 머지않아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그리하여 경멸스럽기 짝이 없는 자의 시대가 올 것이다.
보라! 나는 너희들에게 최후의인간을 보여주겠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창조란 무엇인가? 동경이란 무엇인가? 별이란 무엇인가?" 최후의 인간은 이렇게 묻고는 눈을 깜박인다.
이 대지는 작아졌으며 그 위로 모든 것을 작게 만드는 최후의 인간이 뛰어다니고 있다. 이 종족은 벼룩과도 같아서 근절되지 않는다. 최후의 인간이 가장 오래 산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 최후의 인간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깜박인다.
그들은 살기 힘든 지역을 버리고 떠나간다. 따듯한 기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며 그들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댄다. 따듯한 기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에 걸리는 것과 의심을 품는 것이 그들에게는 죄스러운 것이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주 조심조심 걷는다. 아직도 돌에 걸리거나 사람에 부딪혀 비틀거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거리가 아닌가!
때때로 마시는 얼마간의 독. 그것은 단 꿈을 꾸도록 한다. 그러고는 끝내 많은 독을 마심으로써 편안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들은 아직도 일을 한다. 일 자체가 일종의 소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소일 거리 때문에 몸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한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가난해지지 않으며 부유해지지도 않는다. 이런 것은 너무나도 귀찮고 힘든 일이다. 아직도 다스리려는 사람이 있는가? 아직도 순종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이런 것들은 너무나도 귀찮고 힘든 일이다.
돌볼 목자는 없고 가축의 무리가 있을 뿐! 모두가 평등하기를 원하며 모두가 평등하다. 어느 누구든 자기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제 발로 정신병원으로 가게 마련이다.
"옛날에는 세상이 온통 미쳐 있었다." 더없이 기품 있는 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눈을 깜박인다.
사람들은 총명하여 일어난 일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조소에는 끝이 없다. 그들도 다투기는 하지만 이내 화해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장이 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조촐한 쾌락을 즐긴다. 그러면서도 건강은 끔직이도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 최후의 인간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깜박인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훗날 "머리말"이라고도 부르게 될 차라투스트라의 첫 번째 이야기는 끝났다. 군중의 고함과 환호가 그이 말을 막았던 것이다. 그들은 외쳐댔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에게 그 최후의 인간을 달라. 우리들로 하여금 그 최후의 인간이 되도록 하라! 그러면 우리가 그대에게 위버멘쉬를 선사하겠다!" 그들은 이렇게 환호하고 혀를 차댔다. 차라투스트라는 서글퍼졌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저와 같은 자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닌가 보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산 속에서 살았나보다. 너무 많은 물소리와 나무들의 속삭임을 들어왔나보다. 마치 염소치기에게 말하듯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내 영혼은 흔들릴지 않으며 마치 오전의 산처럼 환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를 끔찍한 농담이나 하는 냉혹한 조소자쯤으로 여기고 있구나. 저들은 나를 바라보고는 웃는다. 저들은 웃으면서 나를 미워하기까지 한다. 저들의 웃음은 얼음처럼 차디차구나.
6
바로 그때 모든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고 모든 사람의 눈을 얼어붙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그 사이에 광대가 줄타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작은 문에서 나와 두 개의 탑을 잇고 있는. 시장과 군중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줄 위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가까스로 반쯤 왔을 때였다. 다시 한번 그 작은 문이 열리더니 어릿광대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자가 뛰어나와 아주 빠른 발걸음으로 그 광대를 뒤쫓았다. "어서 앞으로. 이 절름발이야." 그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서 앞으로. 이 느림보, 밀매업자, 핏기 없는 화상아! 그렇지 않으면 내 발꿈치로 너를 간질여주겠다! 이들 두 탑 사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네가 있을 곳은 저 탑 속이 아니더냐. 누군가가 너를 그 속에 가두었어야 했는데. 너는 지금 너보다 뛰어난 자의 길을 가로막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소리치면서 그자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고작 한 걸음 정도를 남겨두었을 때 모든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고 눈을 얼어붙게 한 바로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자가 마치 악마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길을 막고 있는 광대를 훌쩍 뛰어 넘었던 것이다. 앞서 가던 광대는 그이 적수가 그를 뛰어넘는 것을 보자 그만 정신을 잃고 밧줄을 헛디디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만 장대를 놓쳤는데, 그는 장대보다 더 빨리 손과 발을 허우적거리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장터와 그곳에 모여 있던 군중은 마치 폭풍에 휘말린 바다와도 같았다. 그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그리고 뒤범벅이 되어 달아났는데, 어느 곳보다도 그 광대의 몸이 떨어지도록 되어 있던 그 지점이 더욱 혼란스러웠다.
차라투스투라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바로 그 옆에 떨어진 광대는 크게 다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숨은 붙어 있었다. 얼마 지나자 상처투성이인 그 광대는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이 옆에서 무릎을 끓고 있는 차라투스트라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마침내 그가 말했다. "나는 일찍부터 그 악마가 나타나 발을 걸어 나를 넘어뜨릴 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대가 막아주지 않으시겠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벗이여,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거니와 네가 말하고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도 없고 지옥도 없다, 너의 영혼은 너의 신체보다 더 빨리 죽어갈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할 것이 못 된다!"
그러자 그 광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올려다보았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나로서는 비록 생명을 잃는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셈이 될 것이오. 나는 사람들이 매질을 하고. 변변치 못한 먹이를 미끼로 줘가며 춤을 추도록 훈련시킨 짐승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그만하라. 너는 위험을 너의 천직으로 여겨왔다. 그것은 조금도 경멸할 일이 아니다. 이제 너는 너의 천직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손수 묻어주려 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이 말을 했을 때 죽어가던 그 광대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마치 감사하는 마음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손을 잡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움직였다.
7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시장터에도 어둠이 깔렸다. 호기심과 전율에도 피곤이라는 것이 있는지 군중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죽은 자 옆, 땅바닥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내 밤이 되고, 한 가닥 찬바람이 이 고독한 사람위로 불어왔다. 차라투스트라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참으로 나, 차라투스트라는 오늘 멋진 고기잡이를 했구나. 사람은 낚지 못했지만 그래도 송장은 낚았으니.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란 존재로, 그것에는 아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리하여 어릿광대조차도 그에게는 재난이 되는구나.
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터득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위버멘쉬요, 사람이라는 먹구름을 뚫고 내리치는 번갯불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나의 마음은 그들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아직도 바보와 송장사이에 있는 얼치기일 뿐이다.
밤은 어둡고 차라투스트라가 갈 길 또한 어둡다. 오라, 너 차디차게 굳어버린 길동무여! 내너를 등에 지고 가겠다. 내 손수 너를 묻으려 하는 그곳으로 말이다.
8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나서 차라투스트라는 송장을 등에 메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그가 백 발짝도 채 가지 못했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그이 귀에 다고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보라! 그는 탄에서 나왔던 바로 그 어릿광대였다. 그가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여, 이 도시를 떠나시오. 여기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대를 미워하고 있으니. 선한 자와 의로운 자들도 그대를 미워하여 그대를 자기들의 적이자 자기들을 경멸하는 자로 여기고 있소. 참신앙을 갖고 있는 신앙인들도 그대를 미워하여 민중의 위험이라 부르고 있소. 사람들이 그대를 두고 그 정도로 비웃고 만 것을 천만다행으로 아시라. 그대는 진정 어릿광대처럼 이야기했소. 그대가 죽은 개를 벗삼았다는 것, 그것이 그대에게는 행운인 줄 아시라. 그토록 자신을 낮추었기에 그나마 그대는 오늘 그대 자신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오. 하지만 이제는 이 도시를 떠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일 내가 그대를, 산 자가 죽은 자를 뛰어넘게 되리라." 이 말을 마치고 그 어릿광대는 사라졌다. 차라투스트라는 어두운 골목길을 더 갔다.
도시의 성문에 이르러 그는 무덤을 파 시체를 매장하는 자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횃불로 차라투스트라의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그가 누구인가를 알아채고는 몹시 조롱했다. "차라투스트라가 죽은 개를 짊어지고 가는구나. 그가 시체를 묻는 인부가 되다니, 잘된 일이야! 이 구운 고깃덩어리를 만지기에 우리들의 손은 너무나도 깨끗하지 않은가, 차라투스트라는 악마에게서 그이 먹이를 훔쳐내려는 것일까? 자! 맛있게 먹으렴! 그 악마가 차라투스트라와 그 개를 훔쳐내어 먹어치울걸!"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들은 웃더니 머리를 맞대고 수군댔다.
차라투스트라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의 길을 갔다. 숲과 늪을 지나 두 시간쯤 걸어가자 굶주린 늑대들이 울부짓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그에게도 허기가 엄습했다. 그리하여 그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한 외딴 집 앞에 멈춰 섰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마치 도둑이 덮치듯이 허기가 나를 덮치고 있구나. 숲과 늪에서 허기가 나를 덮치고 있구나. 그것도 이 깊은 밤중에.
나의 허기는 꽤 별스럽구나. 때때로 식후에나 비로소 찾아오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 동안 어디에 머물러 있었는가?"
말을 마치고 나서 차라투스트라는 문을 두드렸다. 어떤 노인이 손에 등을 들고 나타나 물었다. "내게 찾아와 그러잖아도 편치 않은 나의 잠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인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산 사람 하나와 죽은 사람 하나. 먹고 마실 것을 좀 주시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는 일을 잊고 있었으니.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게 된다고 셩현들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노인은 안으로 들어갔다 곧 되돌아 와서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빵과 포도주를 내놓았다."이곳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몹쓸 곳이야. 그래서 나는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지. 짐승과 사람들이 은자인 내게 온다네. 그대의 길동무도 뭘 좀 먹고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보다 더 지쳐 있는 듯하니." 노인의 말이었다. 이에 차라투스투라가 대답했다. "내 길동무는 죽었고 그를 설득하여 먹고 마시도록 할 길이 없소." 그러자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지. 내 집을 두드리는 자라면 그 누구든 내가 주는 것을 받아야 해. 그러니 같이 먹고, 편히들 가시기를!"
차라투스트라는 길과 별빛에 의지하여 두 시간쯤 더 걸어갔다. 그는 밤길에 익숙해 있었고 잠든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던 터였다. 그러나 동이 틀 무렵 그는 깊은 숲 속에 와 있었고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송장을 속이 텅 빈 나무 속, 그의 머리맡에 눕혔다. 늑대들로부터 그 송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은 땅과 이끼 위에 누웠다. 그리고 곧 잠에 빠졌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영혼은 평온했다.
9
차라투스트라는 오랫동안 잤다. 아침놀뿐만 아니라 오전 한나절의 햇살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놀란 듯이 숲과 그 적막을 들여다보았다. 놀란 듯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뭍을 발겨한 뱃사람이라도 되는 양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환호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 가닥 빛이 떠올랐다. 이제는 길동무가, 내가 어디로 가든 업고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죽어 있는 길동무나 송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길동무가 있어야겠다.
한 가닥 빛이 떠올랐디.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이 아니라 그의 길동무들에게 말하려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고작 가축 떼나 돌보는 목자나 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가축 떼로부터 많은 가축을 유인하기 위해 왔다. 군중과 가축떼는 내게 화를 내리라. 차라투스트라는 목자들로부터 도둑이라 불리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그들을 목자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을 참신앙의 신도라고 부른다.
이들, 선한 자와 의로운 자를 보라! 그들은 누구를 가장 미워하는가? 그들은 그들이 떠받들어온 가치를 파괴하는 사람, 바로 파괴자, 범죄자를 가장 미워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람이야말로 창조하는 자인 것을.
이들 온갖 신앙의 신도들을 보라! 그들은 누구를 가장 미워하는가? 그들이 떠받들어온 가치를 파괴하는 사람, 바로 파괴자, 범죄자를 가장 미워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람이야말로 창조하는 자인 것을.
창조하는 자가 찾고 있는 것은 송장이 아니라 길동무다. 무리나 추종자도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더불어 창조할 자,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판에 써넣을 길동무를 찾는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그리고 더불어 추수할 자를 찾는다.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무르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백 개의 낫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삭을 손으로 뽑아내며 화내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자신의 낫을 갈 줄 아는 자들을 찾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파괴자, 선과 악을 경멸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리라.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추수하는 자요 축제를 벌이는 자인 것을.
차라투스트라는 그와 더불어 창조할 자를, 더불어 추수하고 더불어 즐겁게 축제를 벌일 자를 찾고 있다. 가축의 무리와 목자 그리고 송장과 더불어 그가 무엇을 도모하랴!
그리고 너, 나의 첫 길동무여, 잘 가라! 나는 너를 텅 빈 나무 속에 잘 묻어두었다. 늑대들이 덤벼들지 못하도록 너를 고이 숨겨놓았다.
때가 되었으니 이제 헤어지자. 아침놀과 또다른 아침놀 사이에 내게 새로운 진리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고작 가축 떼나 돌보는 목자가 되어서도 안 되며 송장이나 묻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나는 군중과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죽은 자에게 말하는 것도 이것으로써 끝이다.
나는 창조하는 자, 추수하는 자, 축제를 벌이는 자들과 벗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무지개를, 그리고 위버멘쉬에 이르는 층계 하나하나를 모두 보여주리라.
홀로 이씨는 은자들에게 그리고 단둘이서 세상을 피해 숨어 지내고 있는 자들에게 나는 나의 노래를 부르리라. 그리고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그런 자의 가슴을 나는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리라.
나는 나의 목표를 향해 나의 길을 가련다. 나는 머뭇거리는 자와 게으른 자들을 뛰어넘어 가리라. 나의 길이 그들에게는 몰락의 길이 되기를!
10
이것은 해가 그이 머리 위에 떠 있을 때 차라투스트라가 마음속으로 한말이었다. 그때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그 독수리에게 뱀 한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뱀은 독수리의 먹이가 아니라 친구인 듯 했다. 목을 감은 채,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
"내 짐승들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저 태양 아래서 가장 긍지 높은 짐승이자 저 태양 아래서 가장 영리한 짐승이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나타난 것이다. 진정 나는 아직 살아 있는가?
사람과 더불어 있는 것이 짐승들과 더불어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임을 나는 깨달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짐승들이여, 나를 인도하라!
말을 마친 차라투스트라는 숲속의 성자가 한말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나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영리해지고 싶다! 나의 뱀처럼 철저하게 영리해지고 싶다!
그러나 나는 가능하지 않은 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긍지가 나의 영리함을 결코 잃지 않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영리함이 나를 떠나버린다면. 아, 영리함은 달아나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되면 나의 긍지도 나의 어리석음과 함께 날아가버리기를!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첫댓글 날짜:2001/12/04 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