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어린시절의 겨울, 나는 어머니의 보내심을 따라 지금은 세상에 없는 형과 함께
산마을 언덕 위에 있는 교회당을 찾았다. 그 날이 무슨 날인지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교회 문으로 들어갔다.
블록으로 세운 벽에 오르내림 창틀을 만들고 마루 바닥 위에 장의자를 배설한 아담한 공간.
하얀 입김을 불면서 언덕에 올라 교회당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그때까지의 내 생애에는 겪어보지 못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충돌을 겪었다.
마루 바닥 중간 쯤 뜨거운 난로가 뿜어내는 열기로 훈훈한 내부 공간
저 앞에 찬송가 괘도가 서 있었고, 그 옆에 선생님 한 분이 해맑은 얼굴로 지도하고 계셨으며,
여러 선생님과 아이들이 어울려 어떤 행복한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나는 홀린듯 그 공간 속에 앉아있었다.
그때가 내 생애 두번째 예배당 출입이요, 그 날은 성탄절이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캐롤이었다.
소의 엉덩이에 화인을 찍듯 그때의 사건은 영원히 내 의식에 화인을 찍었다.
분명 나는 그 무엇과 강렬하게 충돌했는데, 무한히 심오하고 무한히 거룩하고 무한히 따뜻한 그게 뭘까?
살아오는 동안 나는 그 정체에 대한 상념을 수도 없이 했다.
주님이었다. 나를 맞아주시는 주님의 마음이었다. 그분의 미소였다.
그렇게 나의 주일학교 시절은 시작됐고, 나는 일곱 살의 그날을 내 구원의 날로 받아들인다.
주일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된 6월의 여름,
나와 함께 그 겨울 교회문을 열고 들어갔던 형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고,
가난과 고통으로 몸부림을 하던 우리 가정은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타지로 이사했다.
내 마음 속에선 무엇인가 사무치며, 무엇인가 몸부림을 치며, 무엇인가 소리치며,
무엇인가를 갈구하면서 나는 지상과 영원 사이를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예배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전류처럼 내 속으로 흐르며 성령의 임재가 의식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열여섯 살의 어느 날, 내부의 강력한 촉구에 따라 나는 성경을 집어 들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
그때가 내 독경 여정의 시작점인 것이다. 그런데...
아직 아니다. 나는 저 갈보리로 이끌려가 이 세상에 오셔서 나 대신 심판과 수모와 죽음을 당하시는
주님의 피가 흘러내리는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그 십자가를 부둥켜안아야 했다.
십자가와 충돌하기 전, 십자가가 내 심장을 관통하기 전, 십자가가 내 영광이 되기 전,
내 어린 시절의 신비롭고 따뜻했던 그 체험과 청소년 시절의 말씀과 성령의 체험도 완성된 게 아니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2:20)"라고 말하기까지는.
나는 아직도 멀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창 없이 가고 싶지 않다.
창을 들고 편안하게? 아니다. 내 심장에 박혀서 부르르 떨리는 그 창을 부여잡고서.
나는 죄인이니까. 그것이 주님의 은혜가 이 죄인 안에 존재한다는 표시니까.
그분 안에서, 그분의 은혜에 의해서, 그분을 믿음으로써만 나는 의인으로 인정되는 것이니까.
십자가의 창이 내 심장에 박혀 부르르 떨리는 한에서만 나는 사물의 진실을 알고 감사를 알고
내 주제 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2023. 1. 21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