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게시판에서 생활과 윤리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는데, 그 문제점이라는 게 '동양사상'이 들어갔다는 것과 서양사상의 경우에도 '단편적인 내용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인 듯합니다.
동양사상이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서 말하면, 동양사상은 '응용윤리'가 아니다, 라는 논거를 제시하던데, 교과명은 '생활과 윤리'이지 '응용윤리'가 아닙니다. 동양사상이 '현재의 우리 생활'과 절대 무관할 수 없죠(그리고 동양사상의 '응용'도 당연히 가능하고요.). 2009 교육과정에서 동양윤리가 빠진 건, 당시에 서양윤리 쪽 전공한 교수들이 밀어부쳐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동양윤리 쪽 입장을 대변해야 할 교수도 들어갔는데, 이 인간은 그냥 교육과정에 아무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뭐 어차피 자기가 속한 대학에 박사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자신의 입장을 강력하게 개진할 의욕을 갖고 있지 않았죠.
물론 동양사상이 상대적으로 아이들한테 인기가 없어서 빠지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생활과 윤리'가 아니죠. 우리의 생활에는 서양보다는 동양 사상이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뿐이죠. 교과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절대로 동양사상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동양사상이 빠질 때 또 하나의 문제점은, 평가원 입장에서 출제가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내용이 너무 없고, 거기에 이미 낼 만한 것은 다 냈다고 보는데(평가원 입장에서), 그런 상황에서 동양사상이 빠져버리면 20문항 출제가 너무 어려워지는 거죠. 물론 나는 20문항 출제가 어렵다거나 '교육과정 내에서' 고난도 문항 내기 어렵다고 그들이 느끼는 것은, 그들의 내공 부족 탓이라고 봅니다. 만일 내가 출제한다면, 저는 앞으로 100년 동안 '교육과정 내에서' 고난도 문항을 포함하여 끝도 없이 낼 수 있습니다.
요는 공부가 안 되어 있다는 것에 모든 문제(오류, 교육과정 이탈, 티미한 선지 등)의 원인이 있지만, 지금 우리 윤리교육과의 현실이 그러하니, 왜 실력이 그렇게 천박한 수준이냐는 욕만 해대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평가원이 출제 편의를 위해 동양사상을 다시 집어 넣은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서양 사상의 경우 그냥 단편적인 내용(예컨대, '아퀴나스는 자살을 반대했다'는 내용만 서술하고 있더군요.)만 나열해대고 있는 것은 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걸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그냥 '아퀴나스는 자살을 반대했다' 이 내용만 가르칠까요?), 그것을 평가원은 어떤 식으로 활용하려 할까요? 단순히 '아퀴나스는 자살을 반대했다'는 것만 가지고는 문항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컨대 아퀴나스 제시문을 제시하고 국어식으로 선지를 고르는 문제를 낼까요? 이 과정에서 분명히 오류, 교육과정 이탈 문제가 불거질 거라고 장담합니다.
결론적으로, 동양사상이 들어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서양 사상을 단편적으로 나열해댄 것은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양이 많아졌다'는 지적도 하던데(익명게시판에서), 글쎄요, 딱히 많아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동안 평가원 수준(수능, 모의평가)에서 교육과정을 이탈한 내용들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는 있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양이 는 것 같지만, 실은 평가원이 그동안 교육과정을 이탈해서 문제를 출제해 왔고, 그런 것들을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들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이죠.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첫댓글 생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왜 윤사와 달리 생윤 교과서에서는 '도가'와 '도교'를 혼용해서 쓰는 걸까요? 교육과정 짤 때 무슨 사정이라도 있었던 건지, 평소에 궁금하던 사안입니다. 더구나 이번 개정 교육과정 생윤은 출판사에 따라 도가라고 쓰기도 하고 도교라고 쓰기도 하는 등 일관되지도 않더군요. 이 '도교'로 퉁치는 명칭 오남용 때문에 개정 교육과정 내에서 벌써 오류가 하나 발견되던데.. 일단 내년에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려고 합니다.
이미 알고 계신다고 보는데, '도가', '도교' 명칭에 대해서는 학문적 논란이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혼용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만, 학문적 입장에 따라 혼용해도 무방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죠.
다만, 어떤 학문적 논란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요. 자꾸 반복해서 얘기하게 되는데, 정말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천박한 '얼라들'이 교과서를 쓰는 일이 참 많습니다. 이걸 외부에서는 절대로 이해를 못해요.
제가 연계교재의 오류, 교육과정 이탈보다 더 괴로웠던 게 '티미한(히쭈구리한) 선지, 해설'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작년에 애들한테 설명해줄 때 너무나 힘들었다는 얘기를 몇 차례 했는데, 이게 다 천박한
학문 실력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연계교재를 쓴다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실력이 보증된다고 생각지 않겠어요? 학생들도 당연히 그렇게들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내 실력을 보여주면 그다음부터는 수월하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아이들이 '이상하다'면서 들고 오는 수능 기출(제가 미처 설명하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연계교재(올해에는 내가 연계교재는 수업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서 질문을 안 합니다.), 교육청 선지(이것도 설명은 안 하겠다고 했는데, 기출문제를 다루는 문제집의 경우 교육청 모의고사도 실으니까, 이것을 들고 오는 일이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정말 곤혹스럽습니다.
예컨대, 이런 거예요. 어제 한 학생이 들고 온 건데, "교육청 문제이긴 한데요" 하면서 기출문제집에서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것을 물었던 사례입니다. 그 선지는 불교 내용을 묻는 것인데, "지혜를 얻으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선지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지혜'가 뭘까요? 이 선지 만든 놈은 그냥 교과서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입니다. 학교 내신 문제도 제대로 못 만드는 놈임이 분명한데, 그런 놈이 교육청 모의고사 출제하고 그러는 거예요. 또 이런 놈이 어찌 저찌 해서 평가원 검토 들어가다, 출제 인원이 모자라면 출제로도 들어가고, 그러다가 연계교재도 쓰고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그런 사정을 알겠어요?
제가 그 학생한테 그랬어요. "바로 이게 내가 말한 티미한 선지다"라고요. 그럼 애들은 바로 알아듣습니다. 그랬을 때 깨끗하게 해소되긴 하지만, 그래도 저 자신은 찜찜한 거예요. 그런 병신 같은 애들 때문에 왜 내가 찜찜해야 하는지, 보통 짜증나는 게 아닙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도가, 도교' 혼용도, 뭘 알고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뭘 전혀 몰라서 '베끼다가' 그랬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면, 저한테 제대로 배운 상위권 학생들이 연계교재나 교육청 모의고사 내는 교사들보다도 실력이 더 우수할 거라고 저는 봅니다.
'지혜를 얻으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없다)'는 선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가져온 그 학생의 경우, 거기서 정답을 고를 수 없었다거나(합답형이었고 소거법을 적용해서 위 선지를 고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 출제자가 어떤 의도로 냈을 거다('지혜'를 아마도 해탈의 의미로 냈을 거다) 정도를 몰라서 저에게 그 문제를 들고 온 게 아니거든요. 자기도 '지혜'가 뭘 뜻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들고온 겁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이 그 문제를 낸 교사보다
실력이 우수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 실정이 이렇습니다.
저도 둘을 섞어 쓰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서 말을 조금 부정확하게 쓴 거 같은데, 그러니까 도가 도교를 윤사에서는 구분해서 썼으면서 왜 생윤에서는 느닷없이 섞어서 쓰는지가 의문인 거였습니다. 윤사에서 구분해주고 있다면 둘의 차이를 내부적으로도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생윤 과목 구성할때 특별히 무슨 합의가 따로 있었나 하는 추측도 해봤는데, 정확히는 짚이는 게 없네요.
저자가 다르지 않나요? 같은 저자가 그러던가요? 같은 저자가 그러고 있다면 뭘 몰라서 그러고 있을 가능성이 큰 거고, 저자가 다르다면 뭘 알아서 그랬을 가능성과 뭘 몰라서 그랬을 가능성이 병존하는 거죠.
만일 "그렇다면 평가원에서 검토하니까, 검토하는 인간들이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취지라면, 검토하는 애들도 그냥 대충 하는 겁니다. 뭘 몰라서 대충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 뭘 알더라도 어차피 자기가 쓴 게 아니니 대충 할 수도 있는 거죠.
@힉스 지금 생윤을 두고 와서 저자는 확인 못했는데 아마 다르긴 할 거예요. 물론 저자가 달라서 각자 자기 마음대로 썼을 가능성도 있겠는데, 유독 09교육과정 생윤 교과서들이 다같이들 도교 도교 거리고 있길래 무슨 지침이 위에서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윤사의 경우도 뭔 지침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가령 "상선약수"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처한다'에 대해 15교육과정에서는 대부분이 '겸허'라는 표현으로 통일해 쓰고 있더군요. 09교육과정에서는 미래엔 한곳 외로는 어느 출판사도 쓰지 않았던 표현인데.. 이것도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여러 교과서들이 다같이들 보이는 모습이어서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삶 "유독 09교육과정 생윤 교과서들이 다같이들 도교 도교 거리고 있길래" --- 09 교육과정인가요? 저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실 09교육과정에서 바로 동양사상이 대부분 빠진 것이라서....15교육과정이라면 아직 제가 교과서를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교과서 얘기가 많아서 지난주 구매는 했습니다만.
윤사 상선약수에서 '겸허'는, 국정교과서 시절부터 그렇게 서술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오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국정교과서 시절부터 사용되던 용어이니 그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클 겁니다.
@힉스 네 09 교육과정 얘기였고.. 혹시나 해서 다시 확인해보니 반반이었네요. 09 생윤은 교학사랑 비상교육 둘이 '도교'라고 썼네요. 전 나머지 교과서들도 그렇게 되어 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기억을 잘못 하고 있었나봅니다.
15 윤사의 '겸허'는 그게 오류라기보다는, 09 교과서에서는 거의 안 쓰던 표현(1곳만 사용)이었는데 갑자기 15 교과서에선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들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길래 이거 그냥 우연일까 하는 생각이었죠. (5곳이 모두 '겸허'를 쓰는데, 1곳이 '겸허'와 '겸하'를 혼용함.)
@힉스 덧붙여서, 15 교과서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에 발견한 문제 하나를 미리 언급하고 싶네요. 윤사인데, 팔정도를 삼학에 배당시키는 방식에 있어서 교과서끼리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정진'이 천재교육에서는 '定'에 해당하는 걸로 나오는데 미래엔에서는 '戒'에 해당한다고 나오더군요. 내년부터 15 교과서로 수능을 낼 텐데 좀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뭐 올해 신경쓸 문제는 아니겠지만요.
@한삶 겸하라는 표현도 학계에서 사용하는 표현인가요?
@이충 네 사용합니다. 정확히는 '겸허'와 '겸하' 모두 『노자하상공주』라는 주석서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사실 하상공도 상선약수 장에서 그 표현들을 쓴 건 아니지만, 그래도 큰 물은 잘 낮춘다고 하는 다른 장들의 주석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내용상 상선약수와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교과서 집필진이 하상공주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과서 서술을 보면 아예 하상공주에 위배되는 부분도 있고.. 집필진은 그냥 '겸하'라는 말을 누군가의 논문이나 책(예전 교과서일 수도 있고요) 등에서 접하고서 가져다 썼을 거라고 봅니다.
한삶님께선 정정진이 어디에 해당된다고 보세요?
글쎄요 그 쪽은 제가 충분하게 공부하지 않아서.. 저는 이 부분은 사람마다 조금씩 분류가 다르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유명소경』이라는 불경엔 '정정진'이 '定'에 해당한다고는 하는데, 다른 불경에 또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아직 조사를 안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