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노멀이라면 그리고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것이라면 글쎄..
시대가 변한건지 내가 너무 비정상인건지?!
Normal People
노멀 피플
샐리 루니, 1991년생.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2017년에 데뷔했으며, 27세에 두번째 소설인 이 <노멀 피플>로 맨부커상 후보로 지명됐다. 상을 받은 건 아니고 후보였다. 대관절 맨부커상이 뭐길래 수상자도 아니고 후보자였던 걸 이렇게 강조하나 싶어 찾아봤더니 노벨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권위있는 문학상이라는데 그해 영국권에서 출판된 작품들 중에서 최고를 선정해 주는 상이란다. 놀랍게도 대한민국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부문(영국권외 지역에서 출판되었으나 영국권에서 영어번역본으로 출판된 작품들이 경쟁) 수상한 이력이 있다. 한강씨의 나이는 사십대. 샐리 루니씨의 나이는 이십대라 앞길이 창창하다는 차원에서 높은 의미부여를 한 것인가? 절대 그럴리 없겠지만, 아님 귀여워서?! 미국 여배우 맥 라이언과 비슷한 이미지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은 그러한 이미지와 정 반대였으니 일단 책표지에서부터 충격적이다. 깻잎통조림 같은 통안에 사랑하는 남녀가 구겨져 들어가 있는데 이게 인스턴트 사랑을 의미하는건지 뭘 의미하는건지 도통 잘 모르겠다.
부유한 결손가정 딸과 가난한 결손가정 아들의 약간은 기괴한, 사랑보단 먼 우정보단 가까운 이야기다. 두 가정 모두 아버지가 없는데 부유한 결손가정의 아버지는 가족을 때렸고 가난한 결손가정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다. 그래서 그들 가정의 딸과 아들은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 없었던걸까? 이 둘은 고딩(고등학생)때 어머니들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알게 돼 그렇고 그런 은밀한 사이까지 되었지만 왠수 집안들도 아닌데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채로 사랑과 우정 그 어디메쯤에 해당되는 기괴한 사이로 대딩(대학생)까지 지낸다. 뭐, 반전이 있을까? 했지만 결론은 '없다'였다. 그런 사이로 끝난다. 이러한 이야기 사이사이에 인종차별, 남녀차별, 부의 불평등, 잘 나가던 청춘의 자살, 문학의 부유화 등등의 이야기가 녹여져 있지만 아주 짤막짤막하게 거론된다.
여주(여자주인공) 매리앤은 학교를 "매일 아침 복장을 갖춰 입고 하루종일 거대한 건물 주변에서 몰이를 당해야만 하는 것이, 그리고 마음대로 눈길을 돌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고 심지어 눈동자의 움직임조차 교칙의 소관 사항이라는 것이, 너무나 제정신이 아닌 일처럼 보였다"고 표현한다. 남주(남자주인공) 코넬이 졸파(졸업파티)에 그렇고 그런 사이인 그녀가 아닌, 그를 짝사랑하는 다른 여학생을 파트너로 정해 데리고 가자 그 길로 제정신이 아닌 것같은 학교를 때려치운다. 그렇지만 워낙에 부유한데다 공부머리는 있어 명문대학은 간다.
남주 코넬은 가난한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 치고는 반듯하고 똑똑하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학비가 저렴한 국립명문대를 가려하고 거기에다 이왕이면 장학금까지 얹어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 그런데 "영문학은 취직하는데 도움이 되는 학위가 아니라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법학과에 지원하는게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남자여서 취업이 잘 되는 대학의 법학과를 가는 게 맞는데 적성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국립대 영문과를 가야한다는 것. 결국 좋아하는 영문과로 지원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어머니 때문도 아니고 여주가 그 대학을 가기 때문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따려는 고단수!
하지만 대학가면 지역도 바뀌고 환경도 바껴서 관계도 개선돼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왠걸 대학은 한술 더 떠 집안의 부유함과 가난함의 차이가 인간관계를 더 슬프게 망가뜨리고 만다. 부유한 여주는 여주대로, 가난한 남주는 남주대로 각각 연인을 두고 그러면서 또 그 둘만의 은밀한 관계를 가지고.. 그 와중에 여주는 폭력을 행사하는 부유한 남자와 연인관계를 맺질 않나, 친구의 권유로 마약에도 손을 댔다가 또 갑자기 북유럽으로 가선 행위예술을 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가진다. 남주는 완전 열심 모드로 공부해 최고봉 장학금 받고 특별대우를 받는 세계로 들어서지만 그런 세계가 자신과는 괴리감이 느껴져 괴로워하다 평범한 연인을 만나 회복하고 소소한 일상을 지낸다. 그러다 고딩시절의 친구 한명의 자살로 같은 고향 출신인 여주와 남주가 다시 만나게 되고 이 일로 남주는 연인과 헤어진다. 왜? 남주가 "이 안(남주 가슴팍)에 너(여주)있다!"를 연인앞에서 몸소 보여줬기 때문에.
작가는, 그래서 둘이 다시 연결됐대? 라는 독자들의 질문에 물음표의 여운을 남겨둔 채 이야기를 끝맺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돌아서도 결국 너 아니면 안돼! 라는 운명적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젊은 시선에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이슈를 버무려가며 하다가 허무하게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이것이 노멀한 사람들이라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조금은 안쓰럽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고 청년들에게 나직히 위로를 건넸던 어느 지성인에게 "아프면 환자다! 청춘이 아니다!" 라고 반박한 어느 유명인이 청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청년들! 아직 살아있네!를 몸소 보여준 셈이다.
노멀 피플에 등장한 청년들이 이 시대 청년들을 대변하는 거라 여기고 그들을 안쓰럽게 생각했을 때, 어쩌면 나는 어느 지성인과 같이 오늘날의 청년들을 환자로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많이 힘없고 아파보였다. 그것이 몸이 됐든 마음이 됐든. (아~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나요?)
에라 모르겠다, 그냥 모른 척 하기엔 마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부디 살아 온 연륜으로 서로를 아우르며 늙으나 젊으나 다같이 융화되는 멋진 세상이 오기를! 라며 다소 두리뭉실한 바램만을 가지는 거외엔 달리 할 것이 없는 내가 나약한 환자일런지도. 아는 척도 모르는 척도 하기 힘든 이 마음이 더더 무겁다. 그나저나 노멀은 진짜 노멀이었을까?
번외) 소설 끝무렵에 남주 코넬을 통해 낭독회에 관한 작가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것은 계급분리를 보여주는 공연문화였다. 문학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감정적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서 그들이 즐겨 읽은 소설속에서 그들을 대신해 그 여행을 경험하는 사람들, 즉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맹목적인 숭배를 받았다."
"설령 작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그의 책이 정말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책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마케팅이 되고 모든 작가가 어느 정도는 이 마케팅에 가담한다. 아마 이것이 문학계가 돈을 버는 방식인 터였다. 문학은, 이런 공개적인 낭독회에서 드러나듯 무언가에 저항하는 형식으로서는 발전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다."
♡ 늘 도서관 관계자분들과 한글도서목록을 수고로이 올려주시는 평상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
1년에 52권 스물여덟번째 읽은 책
Normal People 노멀 피플
2021년 7월 25일 해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