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5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다리오 왕 이야기
슥 7:1~7
<성경으로 사는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한국인들은 뭐라고 답할까요?
① 교회 다니는 사람 ② 새벽예배 하는 사람 ③ 말을 잘 하는 사람 ④ 착하게 사는 사람
이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을 제대로 표현한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요?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냐란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①성경을 읽으며, ②성경을 생각하고, ③ 성경을 말하며, ④성경으로 사는 사람
이 넷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번째 성경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으로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성경을 생각하고, 성경을 말해야 합니다.
“세상 살기 바쁜데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삶에 보탬이 안되는 것을 읽고, 생각하고, 말하면서 삽니다.
남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뉴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좋아요!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정치 뉴스를 보고 또 보고 합니다. 한번 듣고 말아도 좋은 것을 반복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연예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좋아요! 관심가지는 것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시간과 정력을 많이 들입니다. 적당히 하면 좋을 것을 과하게 합니다.
여자들은 화장하고 치장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요! 적당히 해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생각’을 많이합니다. 좋아요! 생각을 많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쓸데 없는 생각이 많아요, 걱정 근심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는데, 온종일 합니다.
제가 이런 것 일체 하지 말라란 것 아닙니다. 균형을 갖추라고 말씀드리고싶습니다.
이런 일들에서 균형을 찾으면 시간이 반 이상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 시간에 성경을 읽고, 성경을 생각하고, 성경을 말하고, 성경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성경 컨텐츠를 발굴하자>
예수 믿는다 하면서 성경으로 안 살고 세상에 빠져 지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조건 세상에 빠져 사는 교인들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목사, 신학자와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이 훨씬 더 큽니다.
기독교는 너무나도 좋은 성경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컨텐츠’를 찾아내야 합니다.
성경 속의 주제들을 찾아내서, 정치나 경제나 문화 등등보다 더 흥미롭게 제시해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교인들이 그 이야기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건 참 맞는 말입니다.
☞ 저는 목회하면서 성경을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그 노력의 결실이 현재 8권의 책으로 출판이 되었습니다.
☞ 오늘은 세 명의 왕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다리오 왕”입니다.
“다리오 왕”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고레스 왕”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고레스Cyrus 왕_BC 559~530 재위, 539년 바벨론 정복, 538년에 고레스 칙령 선포>
예수 믿는 우리가 고레스 왕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레스 왕이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간 유다 백성들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한 왕입니다.
고레스 왕이 포로들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내린 조서를 “고레스 칙령”이라고 합니다.
고레스 칙령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 나라는 지구상에 영원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포로로 끌려갔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축했기에 이스라엘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고레스 왕에 대해서 성경은 다양하게 기록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사야 45장 기록이 괄목할만합니다.
사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사야서는 고레스 왕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대목이 참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유대인만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닙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을 선택하신 것은 유대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려는 섭리였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삼아서 하나님을 세상에 계시하고자 함입니다.
바벨론 제국을 정복하고 페르시아제국이 세워졌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 고레스는 바벨론이 포로로 잡아온 유대인을 돌려보내주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섭리하신 일이라고 이사야서가 선포하고 있습니다.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 유대인 포로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성전을 재건하려는데, 방해가 심합니다.
이때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왕이 오늘 설교 제목으로 삼은 “다리오 왕”입니다.
<다리오Darius 왕 BC 521~486년 재임, 490년에 페르시아 전쟁 일으킴>
(1절)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은 BC 521년에 즉위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에서 성전 건축이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 당시 이야기가 에스라서 5장 6장에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을 보고 이웃 지역의 관리가 물었습니다.
“누가 이 성전을 다시 지어도 좋다고 했느냐?”
“지금은 돌아가신 고레스 왕이 명령했습니다.”
“정말?” 확인해 보고자 이 사람들이 다리오 왕에게 문서를 보냈습니다.
“유다인들이 성전을 짓고 있는데, 고레스 왕께서 허락하셨다 합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이 문서를 받은 다리오 왕이 창고 속 문서를 찾아오라 하였습니다.
확인해 보니 분명히 있어요!
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BC 515년에 성전이 재건축되었습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다리오 왕을 들어쓰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허물어진 성전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할렐루야~
<고대 왕들은 전쟁광>
하나님이 이방의 왕들을 들어쓰셨습니다.
이방의 왕을 하나님이 들어쓰셨으면, “그 왕들은 얼마나 멋진 왕일까?”
자칫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쓰신 일은 참으로 아름다고 귀한 미션의 완성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왕들이 역사에 존경받을 왕이냐? 이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늘 제가 설교 제목을 “다리오 왕 이야기”로 정했습니다.
하나님이 고레스 왕, 다리오 왕을 쓰심으로 성전을 재건축 했습니다.
그러나 고대 시대 왕들은 눈만 뜨면 전쟁을 일삼는 왕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 고레스 왕은 바벨론 제국을 점령했습니다.
그냥 점령합니까? ~ 아닙니다. 피 비린 내 나는 살육전을 통해서 점령합니다.
☞ 오늘 본문의 다리오 왕은요?
다리오 왕은 그 유명한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킨 왕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페르시아 전쟁을 기억해 둘만합니다.
페르시아 전쟁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전쟁이고요, 전쟁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 페르시아 전쟁은 대표적은 동서간의 전쟁입니다.
페르시아는 동방의 제국이었습니다. 동방은 지금의 이라크, 이란, 인도지역입니다.
이라크 이란 지역에서 탄생한 나라가 페르시아입니다. 점차 제국으로 번집니다.
페르시아는 바벨론 제국을 정복하고 동방을 통일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동방의 페르시아 제국이 서방을 향해 전쟁을 시작합니다.
서방은 그리스 서쪽입니다. 지금의 유럽입니다. 페르시아 전쟁은 동서간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오늘 설교 제목 속의 ‘다리오’ 왕이 시작합니다.
BC 390년 다리오 왕이 2만 5천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그리스 마라톤에 진주했습니다.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그리스가 승리합니다.
한 병사가 승전보를 가지고 42.195Km 뛰고 또 뜁니다. 아테네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이 한 마디를 전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마라톤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마라톤 전투는 여러군데서 벌어지는 전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이후로도 페르시아 전쟁은 계속됩니다.
<아하수에로 왕 BC 485~465년 재위 (페) 크세르크세스 Xerxēs>
제가 설교를 시작하면 세 명의 왕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고레스 왕, 다리오 왕, 두 명의 왕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한 명이 남았습니다. 그 왕은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왕이지요?
에 1:1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에스더 서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입니다.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바로 그 왕입니다. 에스더를 왕비로 삼았다니 얼마나 멋진 왕일까요?
에스더가 예고없이 왕을 방문했을 때, 아하수에로 왕이 홀을 내밀었습니다.
이때 왕이 홀을 내밀지 않으면 에스더는 즉결 사형입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민족을 위해서 결단했고, 하나님이 섭리하셨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어여삐 여겨 홀을 내밀었습니다. 할렐루야~
☞ 아하수에로 왕은 다리오 왕의 아들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페르시아식 이름은 ‘크세르크세스’입니다.
영화 「300」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입니다.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 지역에 300명을 이끌고 나갑니다.
그리스 왕 ‘레오니다스’와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가 맞붙었습니다. 누가 이기지요?
아하수에로가 결국은 이깁니다.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은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이 전쟁도 페르시아 전쟁입니다.
페르시아 전쟁은 역사상 최초의 동서간 문화충돌 전쟁이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이기지 못합니다.
나중에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립니다.
결국은 그리스의 승리로 전쟁이 끝납니다.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로 그리스 문화와 그리 철학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300년 쯤 지나서 예수님이 탄생합니다.
<페르시아 전쟁의 성경적 의미>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후 그리스에는 철학이 번성합니다.
예수님 탄생 500년을 앞두고 그리스에서 철학이 꽃을 피웁니다.
이 철학이 나중에 성경을 해석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그리스 철학이 신약성경 해석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합니다.
☞ 오늘은 스가랴서 7장 1절을 근거로 “다리오 왕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고레스 왕, 다리오 왕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 세 왕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상 왕국의 왕들을 들어쓰십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신앙생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역사적인 맥락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도 만나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는 어떻게 섭리하시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역사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도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들어쓰시는가?
나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쓰임받고 있는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합니다.
오늘은 고난주간 중 수요일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체포당하십니다.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집니다.
그리고 모레, 금요일에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십니다.
오는 주일 새벽 주님은 부활하십니다.
우리는,
①성경을 읽으며, ②성경을 생각하고, ③ 성경을 말하며, ④성경으로 사는 사람 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