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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독립국가로 세계최대의 소수민족
출처 :다음블로그 쿠르드의 친구들 쿠르드족은 터키 동북부부터 이란의 남서부와 이라크까지 이어지는 자그로스 산맥을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하거나 정착해서 살아왔다. 쿠르드 민족의 기원에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해보이며 아랍인, 투르크인, 페르시아인과는 구별 된다. 페르시아 제국의 기원인 메데-페르시아 제국(Mede-Persian Empire)은 키루스(Cyrus) 대왕이 기원전 550년 그의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메데 제국을 칭하며, 바로 이 키루스 대왕은 오늘날의 쿠르드족 선조로 알려진 메데스(Medes)족의 마지막 왕이었던 아스티아게스의 딸 만다네와 그의 페르시아인 장군인 캄비세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장병옥, 『쿠르드족 배반과 좌절의 역사 500년』 p.13). 결국 메데스족의 후손으로 알려진 쿠르드족은 왕손의 단절로 왕국은 페르시아인 사위에서 아들 키루스 왕으로 이어지며 페르시아 제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자그로스 산맥(출처: 위키피디아)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영토 지도(출처:전국역사교사모임, 『처음 읽는 터키사』) 이 이야기는 쿠르드족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학설이지만 후에 쿠르드 친구들과 이란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유적 앞에서 쿠르드 친구들은 늘 특정한 문양이나 인물을 가리키며 쿠르드족이라고 외치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란의 유적지에서 쿠르드족을 주장하는 그 친구들의 주장이 지나친 민족주의적 혈기에 따른 것은 아닌지 갸우뚱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유목 생활과 부족 단위의 생활을 했던 3000년 전, 자그로스 산맥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평원과 이란 고원, 터키 동남부로 이어지는 산맥 줄기를 무대로 여러 민족 간의 이동이 이뤄지면서 왕국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과정이 있었고, 이를 현재의 국경과 국가의 개념으로 소급하여 생각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결국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국경과 국가는 지난한 역사의 과정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지 역사를 현재의 국경선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그로스 산맥에는 분명 쿠르드족이라는 하나의 민족이 존재했으며 그들 역시 주변 강대국에 영향을 주었던 역사의 주인공이다. 비록 오늘날 국가 없는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으로 불리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여 산악 터키인(Mountain Turks)이라고 폄훼한다거나 역사의 그림자로 없애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변변한 국가 한 번 세우지 못하고 여러 강대국 사이를 오가면서 이합집산 했던 서글픈 쿠르드족의 역사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하면서도 끊임없이 분열과 반목을 반복하여 보는 이에게 씁쓸함을 안겨준다. 역사와 문화에 순위를 매길 수 없겠지만 쿠르드족의 역사를 알아갈수록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시선으로 보는 역사는 그 무엇보다도 가슴에 서러운 쓴맛을 남긴다는 생각이 든다. “쿠르드족의 현대사는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 사이의 충돌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란 지역에서 페르시아의 후예 사파비 제국의 세력이 강성해지는 가운데 16세기 초에 시작된 사파비-오스만 제국 양 강국의 패권다툼 속에서 쿠르드족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쿠르드족이 같은 순니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유대감을 이용하여 시아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파비 제국에 대항하도록 그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려고 하였다. (…) 1514년 8월 우르미예 지역의 찰디란 전투에서 쿠르드족의 활약과 도움을 받는 술탄 셀림 군대에게 샤 이스마일 군대는 패하였다. 이것은 처음으로 쿠르드 지역의 일부분이 이란으로부터 분리되어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파비-오스만 양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쿠르드 지배계층은 때에 따라서 친 사파비파와 친 오스만파로 자주 분열되었다. 찰디란 전투 이후 양 제국의 중앙집권화 정책은 쿠르드 공국으로부터 더욱더 강력한 저항을 유발했다. 16세기를 통하여 양 제국의 통치자들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구축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쿠르드족을 상호 통제하기 위한 협정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 결과 1639년 오스만-사파비 협정이 술탄 무라드와 샤 압바스 사이에 조인되면서 쿠르드 지역은 양 제국의 영향권으로 적절히 분할되었다.” - 장병옥, 『쿠르드족 배반과 좌절의 역사 500년』 위의 글을 보면 쿠르드족은 때에 따라 강대국의 영향력을 넓히는 첨병 역할을 하다가도 강대국 간의 이권 합의에 따라 무참히 버려지는 운명 속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는 그들이 국제 무대에서 단일한 결속을 만드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였다. 근대로 오면 이라크의 석유 패권을 둘러싼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과 이를 견제하려는 터키, 이란, 아랍인들의 대립 속에서 결국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4개국의 국경으로 그들의 영토가 찢겨지는 비극을 맞으면서 쿠르드족의 결속은 더욱더 어려워지고 만다. 울루미예는 근대 국가가 등장하는 1900년대 전후로 다시 한번 혼돈의 시간을 보낸다. 현재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와 터키, 이란의 국경지대는 당시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이란과 유럽 제국의 열강이 부딪치는 각축장으로 자국의 국경선을 넓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각 나라들과 이를 견제하려는 힘이 부딪치면서 혼란스러운 시대를 지난다. 그 와중에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5~1916년, 오스만 신민으로 지내던 약 6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들을 이용한 러시아의 침략을 우려하던 오스만 제국에 의해 울루미예를 포함한 동부 터키에서 시리아의 사막으로 강제 이주되는 과정에서 학살당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사망자가 150만 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학살의 영향으로 당시 인구의 40%가 아시리아와 아르메니아계 기독교인이었던 울루미예의 인구 분포 역시 뒤바뀌고 만다. 1945년으로 오면 소련군의 지원을 받은 아제르바이잔 자치정부가 울루미예 호수 동쪽에 위치한 도시 타브리즈를 수도로 하여 세워지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쿠르드족 역시 러시아의 지원 하에 울루미예 남쪽의 마하바드에 쿠르드 공화국을 세우기도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녀온 곳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지금, 나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이루어졌던 내 머릿속 근대사가 세계사의 한 가지로 뻗어 나와 새롭게 정립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터키를 중심으로 한 근동과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극동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아시아의 여러 곳들이 열강의 세력 다툼에 희생되며, 봉건 정치에서 공화정으로 변모되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었다. 민중들의 삶 역시 고단한 역사를 가로 질러 왔으며 이러한 들여 보기는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이며,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오전 11시,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울루미예 호수로 향했다. 울루미예 호수는 지도에서도 또렷하게 보일 만큼 큰 호수로 중동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또한 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소금 호수이기도 하다. 택시는 허허벌판에 우리를 내려주고 떠났다. 나는 황량한 사막 사이로 푸르게 일렁이는 물보라를 기대했지만 그곳엔 물이 없었다. 한때 이곳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유원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호숫가 근처의 식당만이 손님도 없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빌랄, 엘칸 그리고 이브라힘은 각자 흩어져 한때 호수였던 그곳을 걸으며 각자의 감상에 빠져들었다. 낡고 부서진 배가 그곳이 호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뒤집어진채 진흙 속에 고꾸라져 있었다.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갔지만 비어버린 호수의 한복판, 엄청난 바람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황량한 진흙 벌판이 되어버린 호숫가를 벗어나 중심으로 걸어갈수록 그곳은 마치 지구 상에 없는 새로운 세계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남미의 우유니 소금 사막처럼 바닥은 아직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소금 결정들이 푸른 하늘을 반사하며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파란 하늘과 호수가 만났을 수평선은 저 멀리 하얀 소금의 지평선이 되어있었다. 히잡이 자꾸만 바람에 벗겨졌다.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한동안 호수를 서성였다. 엘칸과 이브라힘 울루미예 호수는 면적이 5,200~6,000㎢에 이르는 드넓은 호수로 철새들의 도래지이자 유명한 관광지였다고 한다. 지난해 보도된 뉴스를 보면 호수는 이미 60%가 말랐으며 앞으로 3~5년 내에 완전히 물이 없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의 땅 중동에서 보석같이 빛나던 아름다운 호수가 이렇게 된 까닭은 10년 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호수로 유입되는 물을 농업용수로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댐 건설에 혈안이 된 사람들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호수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설하면서 제대로 된 환경영향 평가를 하지 않아 물의 흐름까지 완전히 막혔다고 한다. 호수를 돌아다니다 우리는 작은 새를 발견했다. 소금 덩어리에 머리를 박고 딱딱한 돌처럼 굳어버린 작은 새를 보며 이브라힘은 진심으로 슬퍼했다. 빙판처럼 하얗게 빛나는 소금바닥을 보며 황홀하게 도취돼 있던 나는 신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들떠 있었지만 호수의 슬픈 역사를 아는 쿠르드 친구들은 새를 보면서 어리석은 인간들이 저지른 끔찍한 비극을 가슴 깊이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년 전 물막이가 시작되기 전 갔었던 새만금이 떠올랐다. 방조제가 거의 완공된 새만금의 개펄은 이미 조개들의 무덤이 되어있었다. 환경운동가들이 세운 나무 장승만이 서럽게 개펄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 울루미예 호수의 비극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하지 못했던 나는 다른 도시의 숙소에서 푸른 물이 일렁이는 옛 울루미예 호수의 사진을 보고서야 내가 다녀온 곳이 재앙의 현장이었음을 깨달았다. photo by Bilal Save Lake Urmia from Reza Assar on Vimeo.
점심 무렵 시내로 돌아온 우리는 호수 바람에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차이 가게로 들어갔다. 차이 가게라고 생각한 그곳은 남자들이 물 담배를 피우는 곳이었다. 아주 긴 촛대 같이 생긴 기구 끝에 숯으로 담뱃불을 붙이고 호스로 연결된 입구를 입으로 빨아들이면 기구 안에 물이 부글거리면서 연기를 걸러낸다. 10~20명의 남자들이 일렬로 앉아서 부글거리며 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왠지 나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게의 낡은 텔레비전에선 히잡을 쓴 여성 앵커가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겨우 점심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나는 아주 긴 여행을 한 것처럼 온몸이 나른해졌다. 가게를 나와서 울루미예 시내를 걸었다. 낯선 동양 여자의 출현에 놀란 사람들 중엔 호들갑을 떨면서 내 손을 잡아끄는 이도 있었다. 어떤 청년은 능숙한 모습으로 다가와서 자신의 영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지나가는 가게마다 차이를 권하는 통에 나른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리 한쪽에는 닭, 메추리 등 가축으로 키울 새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새끼 메추리 몇 마리를 사서 작은 비닐봉지에 들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사기도 했던 병아리가 떠올랐다. 가게 주인아저씨는 나더러 사진을 찍으라며 제일 잘 생긴 닭을 들어보였다. 순간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껄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울루미예의 소박한 거리 곳곳에서 손때 묻은 기구들과 오랜 삶의 방식들이 살아있는 가게들과 사람들을 지나오며, 씁쓸했던 마음이 다시 따뜻하게 차오름을 느꼈다. 우리는 감자 케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숙소에서 짐을 찾아 다시 새로운 도시로 향했다. 이번에도 어디선가 나타난 정체불명의 택시가 다음 행선지인 마하바드로 우릴 데려가려 기다리고 있었다. 마하바드는 한때 독립된 쿠르드 공화국이 명멸했던 도시였다. 우리는 또 다시 어둠을 달려 새로운 곳으로 향했다. 차도르를 두른 이란의 여자들 쿠르드 전통 의상을 입고 길을 건너는 할아버지와 손자 양에서 직접 벗긴 양털가죽을 파는 가게 아직도 거리 곳곳에 있는 오래된 포목점들 구두닦이의 작업실 * 참고자료 장병옥, 『쿠르드족 배반과 좌절의 역사 50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5 도널드 쿼터트, 『오스만 제국사』, 사계절, 2008 전국역사교사모임, 『처음 읽는 터키사』, 휴머니스트, 2010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쿠르드의 친구들 http://www.facebook.com/groups/friendsofkurds/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터키와 이란 여행에서 저와 만난 친구들 그리고 쿠르드 친구 이브라힘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환대해준 저의 친구들을 '쿠르드의 친구들'로 초대했습니다. 물론 쿠르드에 관심있는 분들 누구나 쿠르드의 친구가 되어주기를 희망합니다. 이곳은 쿠르드에 대한 소식을 나누고 전달하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인류로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활동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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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