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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시수르 메노르 – 푸엔테 라 레이나
4일 차 (19.0Km)
뿌엔떼 라 레이나는
까미노를 위해, 까미노로 인해 발달한
전형적인 까미노 도시입니다.
순례자들이 아르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여섯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다리를 세웠고
그 주변으로 도시가 발달하여,
도시 이름이 다리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리를 짓도록 한 사람은 산초 엘 마요르의 부인인
도냐 마요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뿌엔떼 라 레이나는 까미노 역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아르가 강 주변으로는 순례자용 숙소와 병원이 있었으며
론세스바예스 까미노길과 솜포르트 까미노길에서 오는
순례자들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여
많은 순례자들로 붐비는 도시였습니다.
현재는 주로 포도를 재배하는 조용한 마을로
나바라의 훌륭한 포도주를 생산합니다.
중세에 뿌엔떼 라 레이나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정부에 통행료를 내야 했다고 합니다.
▼ 십자가상 성당 (Iglesia de Crucifijo)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이 성당에는
원통형 궁륭으로 덮여 있는 로마네스크식 신랑이 있으며,
산따 마리아 데 로스 우에르또스 상이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은 풍성한 장식으로 빛나며,
중앙의 아치에는 순례자의 조개껍데기 장식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Y자 형태의 고딕 양식 그리스도상이 있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중세 독일의 순례자들이
그들의 도시에서 창궐했던 전염병이 사라진 것에 감사하며
십자가상을 들고 순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뿌엔떼 라 레이나에 이르자 십자가가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십자가를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상을 이곳에 두기로 결정하고
14세기부터 십자가 성당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전설은 어느 순례자가 까미노를 걷던 중 병이 나서
뿌엔떼 라 레이나에 머물게 되었고
같이 길을 떠난 순례자들은 산띠아고까지 순례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마을에 있던 수도원의 수사들이 극진하게 병든 순례자를 돌봐줬고
산띠아고에서 돌아오던 동료 순례자들이 이에 감사하여
이 십자가를 만들어 선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초리의 전설
“칼릭스티누스 사본”에서
까미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칭했던 뿌엔떼 라 레이나 다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성모상을 보관했던 작은 탑이었습니다.
바스크 지방의 텃새인 초리가 날아와 날개로 성모상에 쳐진 거미줄을 거둬내고
부리에 물을 축여와 성모상을 닦았다고 합니다.
1834년경 첫 번째 까를리스따 전쟁 때에 자유파 군대의 장군이 이 이야기 듣고는,
미신이라고 말하며 비웃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장군은 까를리스따 파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하자
사람들은 그것이 초리의 기적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성모상은 산 뻬드로 교구 성당으로 옮겨져
오늘날에도 성모상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심을 기리던 성모상을 기리는 신성한 축제가
현재는 폭죽을 터뜨리고 소몰이를 하는
빰쁠로나의 엔시에로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오늘 11시 도착.
알베르게 문 열기 1시간 전.
점심 먹고 맥주 한잔
마트에서 사과 오렌지 자두 1개씩, 빵4개 한 봉지
그리고 맥주 2캔 모두 5유로가 안됨.
여유롭게 마을구경
5월 23일 : 푸엔테 라 레이나 – 에스테야
5일 차(21.9Km)
6시 기상. 어제 장본 것으로 간단히 아침식사 해결
아침 일찍 출발하면 길이 한산해 사진 찍기 좋고,
생각하며 걷기 좋고,
한낮 뜨거운 햇살을 피해 까미노를 마쳐 1석 3조.
게다가 숙소 일찍 도착하면 체크인 하고 샤워 빨래하기도 좋음
숙소에 방이 없어 고생한 적은 없음. 생장 피에르 포드를 제외하고
오늘 길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폐허 된 산미겔 성당에 가니
소원을 적은 쪽지가 가득.
나는 기도만 하고 속으로 소원 말함.
이것 저것 구경하며 사진 찍다 까미노 표시를 잠시 잊어 당황.
인생길도 자기 좋아하는 것 쫒다 생명의 길 잃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
길을 잃었을 땐 다시 까미노 사인을 찾듯
생명으로 가는 길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야...
오리털 침낭
출발 전
먼저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신 신부님께서
당신이 쓰던 윈드 쟈켓, 스틱, 침낭을 주심.
그런데 그 침낭을 펼치면 사방에 털이 날리고 땅에 떨어져 창피.
며칠 지나자 얼굴이 두꺼워졌지만
그래도 미안하고 부끄러워 궁리 끝에 묘안 생각.
침낭을 자기 전 어두워 질 때까지 펴지 않고, 아침 새벽에 걷어 나오기로.
누가 털을 뿌려 놨는지 모르게 ㅎㅎ
처음에는 순례자끼리 만났을 때 인사를 받고도
2초 지나간 다음 뒤늦게 인사말이 나왔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하는 것이 편하고 자동적으로 나옴.
올라(hello), 부에노스 디아스(good morning), 부엔 까미노(좋은 순례길),
부엔 비아헤(좋은 여행길)등
어김없이 상대방도 엄지 척하며 미소로 답한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된다.
아직까지는
시라우끼와 마녜루의 두 노파 이야기
마녜루와 시라우끼의 사이 교차로에는
두 마을의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옛날 시라우끼와 마녜루는 두 마을의 경계를 정하는 문제 때문에
다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두 노파가
두 마을의 경계선을 결정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표로 선출 되었습니다.
둘 중에 상대편 마을 사람들이 채운 포도주 한 단지를
먼저 다 마시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마녜루 사람들은
시라우끼의 노파가 마실 포도주에 죽은 쥐를 넣었습니다.
두 노파는 단지에 든 것을 모두 마셨는데,
마녜루 노파가 단지를 깨끗이 비우는 동안
시라우끼의 노파 역시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단지를 비웠습니다.
몇 번의 내기를 하다가 결국 시라우끼의 노파가 승리했는데,
마녜루 주민들은 시라우끼의 노파가
쥐까지 먹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뭔가 이상한 것을 못 느꼈냐고 묻자 시라우끼의 노파는
목에 무슨 파리 같은 것이 걸린 것 같았으나
다 마셔버렸다고 했다고 합니다.
시라우끼라는 이름은 바스크어로 ‘살모사의 둥지’라는 뜻입니다.
로마 시대와 중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 마을의 전략적인 위치 때문에
지나가기가 어려운 곳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 공중에 떠있는 환상의 마을처럼 보입니다.
▼ 에스떼야
쌍둥이 도시 에스떼야는 바스크어로 별이라는 뜻으로
도시의 문장에도 별이 하나 그려져 있습니다.
프랑스 도시와 닮은꼴 도시 에스떼야는
나바라에 있는 작은 프랑스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도시는 특히 산띠아고까지 가는 프랑스 길의 또다른 시작점인
르 퓌(Le Puy)와 닮은 점이 매우 많습니다.
두 도시에 모두 뿌이의 성모에게 봉헌된 성당이 언덕 위에 있고
성당에 모셔진 성모상의 피부도 모두 검으며,
두 도시의 수호성인도 모두 성 안드레아 입니다.
비슷하게 생긴 강의 구부러진 곳에 도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 도시의 평면도를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반대로 뒤집어서 겹쳐놓으면
도시의 배치가 똑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11, 12세기에 프랑스의 인구가 늘어나자
베즐레이 사람들이 이곳 에스떼야에 정착했으며
고향을 그리워하여 르 퓌와 비슷하게
에스떼야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뿌이 성당에는 이웃 마을 아바르수사의 목동들이
‘찔레나무, 가시나무, 엉겅퀴 사이에서’ 1085년에 발견한 성모상이 있습니다.
이는 기록에도 남아 있으며 에스떼야 지방의 축제에서 부르는
민요에서도 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640년경 한 도둑이 뿌이 성당에 침입하여
성모의 보석, 옷, 값나가는 물건 등을 훔쳤습니다.
도둑은 밤새도록 지칠 때까지 도망을 갔는데,
동이 터 정신을 차려보자 성당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도둑은 밤새도록 성당 주변을 뱅뱅 돈 것이었습니다.
도둑은 즉시 체포되어 손이 잘리는 벌을 받았고,
잘린 손은 성당 입구의 나무 기둥에 매달았습니다.
훗날 나무기둥은 돌기둥으로 대체되었고
잘라진 손 대신 라틴어 문구가 새겨졌습니다.
마을 구경을 한 후 너무 더워 시원한 맥주 2000cc
7유로, 얼린 잔 너무 시원.
오늘 저녁은 이걸로
아침은 과일과 빵 그리고 육포
오늘까지 까미노 느낌
순례는 단순함으로 이끈다
배낭무게 교훈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
판쵸우의, 랜턴, 베개, 각종약품, 깔개 등
출발은 혼자지만 곧 형제자매로 만들어 주고 길동무가 되고
필요한 것을 살피는 배려를 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된다.
날씨, 잠자리, 건강, 까미노 사인, 식사 등
인간은 어디에 살든 고단하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농부, 식당 종업원 등 모두 열심히 일한다
까미노는 소란함에서 침묵으로 이끈다
대자연에 경탄하고 나 자신에 대한 성찰
그리고 하느님을 찬미하고 찾게 되며
나를 관상에로 이끄는 길이다
생 2000cc마시니 알딸딸한 기분에서 횡설수설.
순례 하루도 빠짐없이 마신 맥주
정말 스페인 맥주 맛있고, 특히 순례 후 마시는 맥주는 일품
이제 빨래 걷고 일찍 자야겠다
5월 24일: 에스테야 – 로스아르코스
6일 차(21.2Km)
포도주의 샘 (Fuente del Vino)
수도원을 나오다 보면 까미노에서 가장 특이한 수도꼭지가 나옵니다.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 한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보통 수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수도꼭지에서는 포도주가 나옵니다.
까미노를 대표하는 이 수도꼭지는
보데가스 이라체라는 포도주 제조업체가 만들었습니다.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다녀온 순례자라면 누구나
여기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한 잔의 포도주를 마셨을 것입니다.
네모난 돌 위에 새겨져 있는 문구처럼
산띠아고에 힘과 활기를 가지고 도달하고 싶은 이에게
여기 있는 포도주 한 모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순례자여!
산띠아고에 힘과 활기를 가지고 도달하고 싶은 이에게
여기 있는 포도주 한 모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라체의 샘 / 포도주의 샘
스페인은 시에스타라고 1시부터 4시정도
가장 뜨거운 시간 낮잠 자는 시간이 있어
상점이나 거리엔 사람이 없다. 상점도 문을 닫음.
숙소에도 그 시간엔 침대에 누워 있다.
나만 텅 빈 거리를 활보하지.
그들은 4시부터 활동하여 저녁 늦게까지 즐긴다.
시에스타는 게으름의 상징이 아니라 정말 햇볕이 뜨거워서 활동을 못 하는 것임.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
습도가 낮아서 그런 것.
한낮 그늘에서 잠자는 모습은 흔하다
하루 중 유일한 식사 맛있게 먹고 샤워하고 좀 쉬었다 마을구경 예정
과일 3개와 빵 그리고 맥주 2캔 구입.
저녁은 맥주 육포 정도하고 내일아침은 나머지로 할 예정
라라소냐 숙소가 가장 열악
1층과 2층 침대 공간이 너무 좁아 기어들어야 함
여러 번 모서리에 부딪침
더구나 2층 침대 밑이 철사로 되어 무서움
위에서 뒤척일 때마다 중간이 꺼져 바로 눈앞이 철망이 보임
첫댓글
일단 축복은 건강 하심입니다
참 대단하신 인생여정길
오늘도 축복이십니다
해바라기 꽃이 눈에 더 들어옵니다
세잎 클로버 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