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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도미노
주님 뜻하는 ‘도미누스’서 유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잇따르는 현상을 흔히 ‘도미노’라고 표현한다. 첫 번째 블록을 쓰러뜨리면 모든 블록이 이어 쓰러지도록 만드는 놀이에서 따온 말이다. 교회와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이 놀이의 이름은 사실 ‘주님’(도미누스·Dominus)이라는 교회용어에서 유래했다.
도미노라고 하면 흔히 직사각형 형태의 블록을 쓰러뜨리는 놀이가 연상된다. 하지만 사실 도미노는 패를 맞춰 점수를 내면 승리하는 일종의 보드게임이었다. 도미노와 비슷한 놀이가 이미 10세기경 중국에 있었지만, 지금의 도미노게임은 18세기 이탈리아에서 고안됐다. 주사위 놀이에서 착안한 도미노의 패들에는 주사위의 6개 면 중 2개 면이 나란히 새겨졌다. 패에 있는 주사위 눈 수를 맞춰 나열하고 가진 패를 모두 내놓은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이때 승자를 도미노라고 부른다.
도미노의 패는 보통 주사위가 새겨진 상아로 된 앞면과 검은 나무로 된 뒷면으로 만들어 졌다. 이 패는 당시 성직자들이 입던 복장을 떠올리게 한다. 두건과 긴 망토가 달린 이 복장이 겉은 까맣고 안은 하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복의 이름 또한 고대 프랑스어로 ‘도미노’(Domino)였다. 성직자의 의복 도미노는 ‘주님을 찬미합니다’(Benedicamus Domino)라는 기도 문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원 때문인지 프랑스의 수사들이 도미노게임을 만들었다는 전설도 있다. 수사들은 게임에서 “딕시트 도미누스 도미노 메오”(Dixit Dominus Domino Meo)라고 외쳐 승리를 선언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는 주일 저녁기도의 첫째 시편의 첫 구절로 ‘주님께서 내 주께 이르셨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미노의 패를 쌓거나 나란히 세워 쓰러뜨리는 놀이가 생겨나 유행했다. 그래서 도미노는 원래 보드게임과 함께 쓰러뜨리는 놀이도 포함하는 말이 됐다.
여기서 도미노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줄이어 쓰러지는 도미노 놀이처럼, 한 나라의 정치체제 붕괴가 이웃나라에 파급된다는 이론에 ‘도미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편자
악마 쫓은 수도자 일화에서 대문에 편자 거는 풍습 생겨
자동차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말의 발굽에 대는 편자는 일상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편자가 있다. 바로 ‘행운의 편자’다.
사람들은 이 편자가 나쁜 일을 막아주거나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 여기고, 문 앞이나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둔다. 교회와 거리가 먼 미신적 풍속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행운의 편자’는 교회에서 이어오는 전설에서 시작됐다.
편자에 얽힌 전설의 주인공은 10세기경 영국 캔터베리지역에서 베네딕도회 수도자이자 대주교로 활동한 성 둔스타노(Dunstan·910~988)다.
성직자가 되기 전 대장간에서 일했던 성인은 어느 날 다짜고짜 자신의 발에 편자를 박아달라는 손님을 맞았다. 그가 악마임을 눈치 챈 성인은 꾀를 낸다. 편자를 박기 위해서는 먼저 기둥에 묶여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성인은 기둥에 묶인 악마의 발에 편자를 박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고통스럽게 박았는지 악마가 살려달라고 애원할 정도였다. 고통에 못이긴 악마는 대문에 편자가 걸린 집에는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성인은 그 확답을 받고 나서야 악마를 풀어줬고, 이후 악마는 편자가 있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중세 때 신자들은 5월 19일 성 둔스타노 축일이 되면 악마를 쫓는 의미에서 편자를 던지며 놀았다고 한다. 대문 문고리를 편자로 만들거나 편자를 장식해 걸어두는 풍습도 생겨나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인은 악마와 대결하거나 권력자들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색슨족의 부도덕성을 들춰내기도 했고,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에드가의 잘못을 꾸짖고 진언을 하기도 했다. 숙련된 철 공예가이기도 했던 성인은 갑옷 제조자, 금세공인, 자물쇠 제조자, 보성공예가들의 수호성인이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지진
지진연구 선구자 예수회 사제, 대규모 관측 네트워크 구축도
- 지진계를 시험하고 있는 매클웨인 신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교 제공.
일본과 에콰도르를 강타한 지진 참사에 전 세계가 위로를 전하고 지진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지진을 연구하는 지진학의 발전에는 지진 피해자를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성직자들의 노력이 큰 영향을 줬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 신자들은 지진을 ‘하느님이 내린 재앙’이라고 여겼다. 다른 자연재해들도 그랬지만, 땅이 뒤흔들리는 지진은 피할 곳조차 없었기에 더욱 무서운 재난이었다.교회가 지진에 큰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1755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대지진 때문이다.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에 발생한 지진과 해일로 10만여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왔다. 그중 많은 수가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던 신자들이었다. 이 사건은 신학자·철학자들 사이에서 맹렬한 논쟁거리가 됐다. 하느님은 왜 죄 없는 이들에게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과학적 지식이 없던 시대의 신학자들은 하느님이 지진을 통해 많은 사람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지진을 이해하려 하기 시작했다.
지진학의 선구자는 예수회 회원들이었다. 지진 연구에 기여한 바가 수없이 많았기에 지진학을 ‘예수회의 과학’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특히 1909년 예수회 프레데리크 루이스 오덴바흐(Frederick Louis Odenbach) 신부는 최초로 대규모 지진관측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는 아메리카대륙 전역에 걸쳐 세워진 예수회 설립 교육기관에 동일한 지진계를 설치해 대륙 차원에서 지진의 움직임을 조사·연구했고, 그 자료들을 국제 지진연구센터로 보냈다.
지진학자로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학자는 예수회 제임스 매클웨인(James Bernhard Macelwane) 신부다.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 있던 그는 서방세계에서는 처음으로 지구물리학과를 창설하고, 미국 첫 번째 지진학 교재인 「지진학 입문」을 썼다. 매클웨인 신부는 뛰어난 학자로 미국지진학회와 미국 지구물리학연맹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진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오늘날에도 그의 업적을 기려, 미국 지구물리학 연맹은 36세 미만의 뛰어난 지구물리학자에게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지진계 축복예식의 옛 예식서에는 예수회 회원들의 모토이기도 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잘 작동하기를 바라는 기도문이 들어 있다. 교회가 지진학을 이끌어온 것은 바로 양떼를 재난에서 보호하고 하느님의 구원으로 이끌려는 사목적 열정 때문이었던 것이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체스
주교 뜻 하는 체스말 ‘비숍’, 머리 부분은 주교관 본떠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 지능 알파고(AlphaGo)가 펼친 세기의 대결로 바둑뿐 아니라 장기, 체스 등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온 ‘보드게임’에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서양의 ‘체스’는 교회의 영향을 받은 게임이다.
체스는 체크무늬의 판과 말을 이용해 두 사람이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체스의 기원은 약 4000년 전 인도에서 시작된 차투랑가(Chaturanga)라는 놀이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변형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차투랑가는 11세기 경 유럽에 전파돼 체스로 변화했고, 체스 관련 국제규칙은 15세기에 들어 확립됐다. 이런 체스의 형성과정에서 당시 유럽의 사회상이 반영됐는데, 이 시기는 교회가 사회 · 문화에 큰 영향을 주던 때였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숍(bishop)이 그 영향으로 탄생한 말이다.
비숍은 그 의미대로 주교를 뜻한다. 체스의 기원인 차투랑가에서는 본래 ‘코끼리’라는 뜻으로 불리던 말이다. 이 말은 여러 변형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대각선이나 종횡으로 1~2칸 가량 움직이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럽에 넘어오면서 대각선으로 체스 판의 끝까지 갈 수 있는 비숍으로 변했다.
비숍이 주교를 의미하는 만큼 그 생김새도 주교의 복장에서 따왔다. 둥글고 뾰족한 비숍의 머리 부분은 바로 주교의 주교관(Mitra)을 모방한 형상이다.
주교관은 그리스어로 ‘미트라’, 즉 ‘머리띠’, ‘두건’이라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주교품 이상의 고위 성직자들이 쓰던 전례용 모자를 말한다. 전체적으로 둥근 오각형의 모습으로 뒤쪽에는 두 개의 띠가 아래로 길게 드리워있다.
교회법에 따르면 주교관을 쓸 수 있는 권한은 주교와 대수도원장만이 갖고 있다. 과거에는 다른 주교와 교황의 주교관도 구분돼 있었다. 다른 주교관과 달리 교황의 주교관은 3중관으로 교황의 신품권, 사목권, 교도권을 상징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3중관을 사용하지 않게 됐고, 교황문장에는 상징적으로 남게 됐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부터는 교황문장에도 일반적인 주교관의 형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신 교황 문장의 주교관에는 3개의 줄무늬를 넣어 교황의 3가지 직무를 상징하고 있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만우절
여러 곳 끌려가 심문 당한 예수님 수난 기억하는 날
해마다 4월 1일이면 상대방에게 황당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상대방을 헛수고 시키는 등 가벼운 장난을 치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만우절(萬愚節)이기 때문이다. 이 만우절 장난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풍습이다.
만우절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에는 교회와 연관된 이야기가 많다.
가장 유력한 설은 프랑스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16세기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봄을 새해의 첫날로 삼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새해 첫날부터 일주일 동안 축제를 벌이면서 새해를 축하하고 춘분제의 마지막 날 선물을 교환했다고 한다. 그런데 16세기 중반 프랑스의 왕 샤를 9세가 새로운 역법을 선택하면서 새해가 3개월 가량 앞당겨졌다. 그레고리오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레고리오력은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이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수정해 만든 태양력으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사용하는 달력이다. 기존 프랑스의 새해는 그레고리오력에 따르면 3월 25일, 선물을 교환하는 축제의 마지막 날은 4월 1일이었다. 달력은 바뀌었지만, 4월 1일을 새해 축제의 마지막 날로 여기는 풍습은 오랜 기간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4월 1일에 신년 잔치를 흉내내거나 장난스럽게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이날을 보냈고, 이것이 유럽 각국에 퍼져나갔다는 설이다.
만우절의 유래에는 성경 속 일화에서 나온 것도 있다. 주로 남을 헛걸음시키거나 헛수고 시킨 이야기들이다.
최후의 만찬 이후 잡혀간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 차례에 걸쳐 판결이 나지 않는 심문을 당한다. 처음에는 한나스에게 끌려갔다가 카야파에게로, 카야파에게서 빌라도에게 가서 심문을 받고 헤로데에게 보내진다. 그리고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졌다가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이렇게 예수가 연달아 헛걸음한 것을 기억하며 4월 1일에 남을 헛걸음 시켰다는 것이다.
구약의 노아 이야기에서 만우절 유래를 찾기도 한다. 홍수 때 방주를 타고 있던 노아는 물이 빠졌는지 보기 위해 비둘기를 내보냈다.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방주로 돌아왔다. 이렇게 비둘기를 헛수고 시킨 날이 4월 1일이라고 해서 만우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오르간
한국교회 첫 파이프오르간 명동성당에 1924년 설치돼
- 서울 명동성당 파이프오르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페달을 밟아 떨리듯 울려 내는 풍금소리에 마음 떨리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될까. 최근엔 피아노나 전자키보드 등으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학교 교실에서 만나던 풍금, ‘오르간’은 우리에게 친숙한 악기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오르간은 수백 년에 걸쳐 교회의 사랑을 받아온 유일한 교회 전례악기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도 “라틴교회에서 파이프오르간은 전통적인 악기로서 크게 존중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전례헌장은 오르간을 “교회 의전에 놀라운 광채를 더하고, 마음을 하느님께 드높이 힘차게 들어 올릴 수 있다”고 극찬한다. 또 오르간 외의 다른 악기들은 지역교회의 동의에 따라 전례에 사용할 수 있다고 제한을 두고 있다(120항).
교회가 사용하는 오르간은 파이프오르간을 말한다. 오늘날 오르간이란 말은 리드오르간(풍금)이나 전자오르간 등을 총칭하지만, 본래 오르간은 파이프오르간을 지칭했다.
오르간이 처음부터 교회의 전례악기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기교회에서는 오르간을 포함한 모든 악기를 전례에 들이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9세기경 교육을 목적으로 수도원에 설치되기 시작한 오르간은 점차 여러 성당에 퍼져나갔다. 교황의 칙서나 공의회의 결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14세기 경에는 오르간이 교회의 거룩한 악기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후 트리엔트공의회에서 오르간을 교회의 전통악기로 지정하면서 공식적인 교회의 전례악기가 됐다.
우리나라의 오르간 도입도 교회 역사와 함께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오르간이라는 악기를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이다. 그는 중국 베이징의 성당에서 오르간을 처음 보고, 한국에 소개했다.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도 르그레조아(Legregeois) 신부에게 서간을 보내 전례를 음악적으로 꾸미는 데 필요한 악기, 즉 오르간을 요청하기도 했다. 박해시대에도 오르간을 필요로 할 정도로 전례음악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르간도 교회와 함께했다. 1890년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는 뮈텔 신부로부터 오르간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확인된 국내 오르간의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국교회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은 1924년 명동성당에 설치된 오르간이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밸런타인데이
발렌티노 성인 순교 축일에 연인들 편지 선물 주고받아
밸런타인데이(St. Valentine’s Day)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날은 발렌티노 성인의 축일이다.
사실 이날을 축일로 하는 발렌티노 성인은 두 명이다. 한 명은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박해 때인 269년 로마에서 처형된 사제다.
다른 한 명은 비슷한 시기, 로마에서 순교한 주교다. 하지만 각 성인에 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이 많지 않아,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둘이 본래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발렌티노가 연인들의 수호성인이 된 배경은 그가 순교한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결혼한 남자는 전쟁을 두려워한다는 이유로 군인의 결혼을 금지했었다. 평소 고통 받는 이들을 돕던 발렌티노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황제의 명령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연인들을 위해 비밀리에 결혼식을 주례했다. 이에 분노한 황제는 발렌티노를 잡아들였고, 어떤 위협에도 믿음을 굽히지 않았던 발렌티노는 2월 14일 결국 순교했다.
성인의 순교 축일이 연인들의 축제가 된 것은 5세기 경 로마에서부터다.
당시 로마에는 루페르칼리아 축제가 성행하고 있었다. 축제는 해마다 2월 13~15일에 열렸는데, 젊은 남자들은 이 축제 기간 중 루페르쿠스 신 앞에서 제비뽑기로 소녀들의 이름을 뽑아 그 소녀와 1년 동안 사귀는 것이 풍습이었다.
교황 젤라시우스는 이 풍습을 비그리스도적이라고 여겨, 496년 루페르칼리아 축제를 금지하고 이른바 연인들의 성인인 발렌티노의 축일을 지내도록 했다. 중세시기에는 이 축일 때면 연인들끼리 편지나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성인의 성상 앞에 두고 전구의 기도를 바쳤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나 선물을 주는 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날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은 발렌티노 성인과는 관계가 없다. 이런 풍습은 20세기에 들어 일본의 한 제과회사가 밸런타인데이 때 편지 대신 초콜릿을 전하도록 광고한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비록 초콜릿을 주는 풍습이 상술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마음을 전하면서 성인의 삶과 신앙을 기억한다면 더욱 의미 있는 밸런타인데이가 되지 않을까.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아카펠라
오르간 연주 힘든 경당에서 무반주로 부르던 교회음악
아카펠라는 악기 없이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합창하는 노래를 말한다. 특히 목소리만으로도 악기반주 이상의 아름다운 화음을 자아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늘날 대중음악 안에서도 사랑받는 아카펠라는 원래 경당에서 부르던 무반주 교회음악을 일컫는 말이었다.
아카펠라(A cappella)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경당 풍으로’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아카펠라는 카펠라, 즉 경당에서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였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회음악에 파이프오르간을 이용했다. 하지만 작은 기도실의 개념인 경당에서는 파이프오르간을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경당에서도 교회음악으로 경건하게 하느님께 찬미할 수 있도록 무반주 합창곡들이 작곡된 것이 아카펠라의 시작이다. 16세기경에는 유럽 전역에서 악기 반주 없이 합창하는 교회음악을 아카펠라라고 부르게 됐다.
아카펠라는 최초의 무반주 합창곡이 아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민속음악이나 고대 종교음악 등의 형태로 무반주 합창곡이 존재해왔다. 19세기 합창음악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전문 성악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합창단을 ‘아카펠라’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의미에 오해가 생기면서 악기 반주가 없는 합창을 모두 아카펠라라고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아카펠라라는 말에 오해가 생긴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경당을 의미하는 ‘카펠라’는 로마 군인의 외투인 카파(cappa)에서 유래했다.
세례를 받기 전 군인이었던 성 마르티노(316~397)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비를 청하는 헐벗은 남자를 만났다. 마르티노는 아직 예비신자였지만 그 자리에서 입고 있던 카파를 반으로 잘라 그 남자에게 줬다. 그날 밤 마르티노의 꿈에 마르티노가 거지에게 준 카파를 입고 있는 그리스도가 나타나 “예비신자 마르티노가 이 옷을 내게 입혀줬다”고 말했다.
이후 세례를 받고 주교직까지 수행하며 성인의 삶을 산 마르티노는 그가 죽은 후에도 프랑스 최고의 성인으로 공경 받았다. 그리고 그의 반쪽짜리 카파를 보관하기 위한 경당이 지어졌다. 사람들은 이 경당을 카펠라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카펠라는 모든 경당을 이르는 말이 됐다.
비록 오해에서 뜻이 변화하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지금도 우리는 하느님이 만드신 악기, 목소리로 내는 음악을 교회의 이야기가 담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크리스마스트리
세계 트리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유래된 ‘구상나무’ 사용해
예수성탄대축일이 다가온다. 거리에 세워진 트리 앞에서는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한껏 즐긴다.
언제부터 대림·성탄시기에 나무를 장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16세기 경 독일 남서부지역의 기록에서 초기 크리스마스트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이 지방에서는 성탄을 맞아 성당 앞 정원 등에서 낙원극(樂園劇)을 공연했다. 연극 중에는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창세 1,9)를 상징하는 상록수에 과자를 달고 나무 주위에 촛불을 켰다고 한다.
1700년대에 들어서 개신교 신자들이 나무에 촛불을 장식하면서 성탄을 맞았고, 19세기에 들어서 크리스마스트리는 천주교, 개신교를 떠나 독일 성탄절의 가장 주요한 풍속 중 하나가 됐다. 전 유럽으로 퍼진 크리스마스트리 풍속은 미국에도 영향을 줘 1891년에 처음으로 워싱턴 백악관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전시됐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사철나무 중에서도 주로 전나무가 사용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세계 크리스마스트리의 95%가 우리나라에서 유래한 ‘구상나무’를 사용한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한라산과 지리산 등지에 서식하던 한국 고유의 나무로 서양에서는 ‘한국 전나무’(Korean Fir)라고 불린다. 구상나무가 성탄마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계기도 교회와 관련이 있다. 바로 이 나무를 세상에 알린 것이 우리나라에서 선교하던 에밀 타케(Emile Taquet) 신부이기 때문이다.
1898년 한국을 찾아 1952년 선종하기까지 경상도, 제주도 일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던 그는 현재 대구대교구 성직자묘지에 묻혀 있다. 식물학에 관심이 많던 타케 신부는 1907년 채집한 구상나무표본을 미국 하버드대 아놀드식물원에 보냈다. 이것이 뒤늦게 연구되면서 1920년 구상나무가 신종으로 발표된 것이다. 구상나무는 재질이 뛰어나 가구 제작과 건축에 사용됐고, 고급 조경수로, 특히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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