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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전례 상식] 마음의 정결
어느 날 갓 세례를 받은 요셉이 자신을 신앙의 길로 이끌어준 베드로에게 물었다. “베드로 형님! 가끔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민소매와 미니스커트 또는 반바지에 헝클어진 머리, 슬리퍼나 운동복 또는 등산복)을 하고 성당에 오신 분들이 계시는데, 어떤 마음과 몸가짐으로 미사에 참여해야 합니까?”. 베드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제 신앙의 여정을 시작한 요셉에게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갖추어야 할 마음의 정결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고대로부터 모든 종교는 도덕적 행위와는 무관하게 종교의식을 수행할 때 신성하고 거룩한 것에 따른 깨끗함, 곧 예배적 정결을 요구했었네. 레위기 11-16장을 꼭 읽어보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예배에 거룩하게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자격을 보장하는 정결 개념이 잘 설명되어 있거든. 정결에는 신체를 더럽히는 행위, 질병이나 부패를 멀리하는 ‘신체적 정결’과 하느님 예배와 관련된 모든 것(거룩한 옷과 그릇 등)을 더할 수 없이 깨끗해야 하고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예식적 정결’(레위 22,4ㄴ-7)이 있지. 이스라엘 백성은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거나(레위 17,15-16) 속죄 제물을 바치는(레위 12,6-7) 정결 의식을 통해 대부분의 부정을 없애려고 했다네.
특히 속죄일에는 모든 백성의 부정과 죄를 상징적으로 짊어진 숫염소를 사막으로 내쫓음으로써 전형적으로 정결 축제를 성대하게 지냈다네(레위 16장). 마지막으로 정결에는 ‘윤리적 정결’이 있네. 시간의 흐름 속에 하느님 예배의 범위 안에서도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근본적으로 부정한 존재이며 인간에게 본질적인 부정이 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내적인 정화를 점점 중요하게 여겼다네. 하느님 마음에 들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흠 없는 도덕적인 행동(손, 마음, 이마, 기도의 깨끗함 등)을 요구하고, 지성소에는 결백한 손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으며(시편 24,4), 인간은 마음의 정화를 하느님께 간청하게 되었다네. 시편 51편은 하느님만이 인간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며 그 정화의 윤리적인 결과를 노래하고 있지.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2)는 오늘날 신앙인이 미사에 참여할 때 종종 바쳐도 좋은 영적 기도라고 보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이러한 외적 정결에 관한 율법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여 정결례를 일상의 삶으로까지 확장하였다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마태 15,2),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마르 7,3),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루카 11,38).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참된 정결이 어디까지나 내적이어야 함을 강조하셨지(‘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5)). 성찬 전례를 시작할 때 사제는 예물을 제대 위에 차리고 정해진 예식을 마친 다음 물로 손을 씻는 동작을 통해 내적인 정화에 대한 열망(「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76항)을 드러낸다네. 사제는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를 바친 다음 또는 분향한 다음, 제대 옆에 서서 봉사자가 부어 주는 물로 손을 씻으며 속으로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를 바치거든(145항). 이러한 정결 의식으로 내면의 정화를 바라는 열망을 드러내는 것이지.
요셉! 새해부터는 몸을 깨끗이 씻고 단정한 옷을 입고 마음의 정화를 한 다음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게나∼∼알았지?”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25) 안수의 의미에 대해서
서품 받은 신부님의 첫 미사를 봉헌하면, 꼭 안수식이 거행됩니다. 안수는 꼭 받아야 하나요? 안수는 무엇입니까?
안수 : “안수를 받는 사람에게 특별한 권리와 능력 및 자격을 수여하는 상징. 예부터 손은 축복을 이끄는 신체부위로 일반들에게서도 존중되었다. 구약에서는 장자권 상속(창세 48,14), 육체의 건강기원(1사무 17,21), 직권의 양도(민수 27,18-23), 죄의 이전(레위 8,9; 16,21)에 안수가 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가톨릭대사전)
가톨릭 교회 교리서 699항에서는 안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얹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다.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같은 행동을 한다. 더 나아가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주어진다. 히브리서에서 안수는 ‘기초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 교회는 성사 집전에서 성령 청원 기도 안에 성령이 강하게 주어짐을 의미하는 이 표징을 보존하였다.”
이 교리에 의하면, 안수는 성령을 상징하는 주된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8장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중략)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사도 8,15-17)”
따라서, 안수는 성령을 받는 기도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안수는 사람이나 사물을 축복할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사람에게는 머리에 두 손을 정성껏 얹고 기도하고, 사물은 그 사물에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실제로 성사 안에서도 안수의 행위는 매우 중요한 예식으로 드러납니다. 특히, 고해성사 중 사죄경을 받을 때 사제는 손을 뻗어 기도하고, 성품성사 안에서도 직무를 수행할 권리를 주기 위해 안수가 동반됩니다. 또한 병자성사나 다른 준성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러한 안수의 의미와 새 사제들의 안수는 어떠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요? 새 사제들은 성품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이끌고, 말씀을 선포하며,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엄청난 신비이자 은총입니다. 곧, 새 사제들은 이러한 은총을 통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힘과 희망에 불타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힘과 희망으로 가득 찬 사제를 통해 구체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예식이 바로 “안수”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안수는 “준성사”로서, 안수를 받는다고 해서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는 이들의 정성과 지향에 따라 은총의 효과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안수를 받는다는 행위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안수를 받기 전 합당한 준비,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합니다. 새 사제들의 첫 미사에는 순수하고도 온전한 봉헌, 축성된 새 사제의 정성 어린 미사라는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미사에 따른 은총의 양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특별히 거룩한 봉사자의 첫 발걸음에 함께 참여한 신자들 역시 새 힘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성사적 은총이 베풀어질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 신경을 바칠 때 파스카 사건에는 절하지 않고 성탄 사건에만 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은 파스카 사건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며, 성탄은 파스카 사건의 시작입니다. 성탄은 하느님의 신비가 인간의 눈에 드러난 ‘성사’이며, 이 성사는 파스카와 구별되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파스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단일한 구원 사건을 이룹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수난하고 죽고 부활하실 수 있는 인성을 취하신 사건이며, 그래서 파스카 사건이 가능해지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대 레오 교황, 「강론」 28 ‘주님 탄생’ 1항 참조)
성탄과 파스카의 관계로부터, 전례 중에 신경을 낭송할 때 육화를 언급하는 부분에만 허리를 깊이 숙여 절하는 이유가 자연히 밝혀집니다. 우리는 성삼일 사건 보다 육화 사건이 더 중요하기에 그 부분에서 절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에서 ‘파스카 사건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는 부분’ 곧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파스카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절하는 것이며 결국 파스카 사건 전체에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구원 역사 안에서 우리는, 종말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동시에, 주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심을 기억하며 매년 주님 성탄 대축일을 거행합니다. 성탄 대축일은, 단순한 생일 축하를 넘어서, ‘주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온 세상을 위해 죽으시고 묻히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임을 기념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그 구원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체험하고, 다가오는 종말에 그 구원이 완성될 것임을 확신하는 날입니다.
[성탄 특집] 성탄 전례에서 눈여겨 볼 상징들
인간 향한 사랑 때문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강생의 신비’ 기념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을 기념한다. 전례 주년의 중심축이 되는 이 시기는 전례에서도 깊이 들여다봐야 할 전례적 의미들이 풍성하다. 성탄 전례에서 눈여겨 볼 상징들을 알아본다.
구유
다른 전례 시기와 비교할 때, 성탄 전례에서 크게 다른 점은 ‘구유’다. 교회에서 공경받고 있는 구유는 ‘베들레헴의 구유’이며, 그다음이 로마의 성모대성당(Santa Maria Maggiore) 구유다. 현재 이 대성당에는 예수가 탄생한 구유가 모셔져 있다. 5개의 무화과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구유는 예루살렘 출신 테오도로 1세 교황이 모셔 왔다.
구유 경배 예절을 처음 행한 것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다. 성인은 이스라엘을 순례한 후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재현하고 싶은 사목적 열망을 품었다. 호노리오 3세 교황에게 청해 이를 허락받은 성인은 1223년 성탄 때, 로마 인근 그레치오(Greccio)에서 동료들과 은둔 생활을 하던 중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본뜬 마구간을 만들고 구유 경배 예절을 거행했다. 이로써 구유에 대한 신심이 증가했고, 작은 모형 마구간을 만들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풍속이 전 세계로 퍼졌다.
구유 예절은 요즘 성탄 전야 미사 전에 예수의 오심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예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절 중 말씀 전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며 함께 기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아울러 성탄을 준비하며 각자가 결심하고 회개 반성한 것을 성탄 성야 미사 말씀의 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다시 한번 결심하는 시간이다.
세 대의 미사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성탄 전야, 새벽, 그리고 낮미사 등 세 대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성 레오 1세 교황 시대까지 로마 교회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오전 9시경 한 번의 낮미사만을 거행했다. 로마 성모대성당은 베들레헴의 구유를 모신 후 예수님 탄생 동굴을 재현한 구유 오라토리움(기도소)을 마련하고 베들레헴에서 거행되는 것과 비슷한 밤 전례를 지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교황이 참석하면서 성탄 밤 미사의 뿌리가 됐다.
「에테리아 여행기」에 따르면 5세기 초 베들레헴에서는 한밤중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운 대성당 내 성탄 동굴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신자들은 새벽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잠깐 쉰 다음 두 번째 미사에 참례했다고 한다. 전례학자들은 “이 거행을 로마교회가 본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새벽 미사는 마지막으로 생겼다. 로마에 거주한 비잔틴 권력가들은 12월 25일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있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성녀 기념일을 지냈다. 교황은 이들을 존중하는 의미로 성탄 미사 주례를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가기 전 이곳에 들러 성녀 아나스타시아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이 관습이 성탄 새벽 미사의 유래다.
세 대의 미사에 대해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주님의 너그러우심에 힘입어 우리는 오늘날 미사를 세 번 지낼 수 있다”고 확인했다. 성탄에 세 번 미사를 거행하는 관행은 여러 「성무 집전서」 안에 수용되고, 또 로마교회 전례가 서유럽 전역에 퍼짐으로써 정착됐다.
성탄 밤 미사의 특징적 요소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함을 전하는 루카복음 2장 1-14절의 내용이다. 새벽미사는 목자들이 예수에게 경배한 내용을 복음으로 읽기에 ‘목자들의 미사’라고도 불린다. 이 미사 안에서 빛에 대한 상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낮미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는 요한복음 서언이 낭독되며 성탄 축일의 정점을 이룬다.
성 레오 1세 교황의 성탄과 공현 강론
성탄 시기의 ‘예수 성탄 대축일’, ‘주님 공현 대축일’ 그리고 12월31일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제2독서로 읽히는 것이 성 레오 1세 교황(재위 440-461)의 강론이다. “성탄을 통해 하느님 구원 신비가 시작되었고 따라서 성탄은 구원의 성사”라고 밝힌 그는 성탄 축일에 대한 신학을 정립한 인물로 지목된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자 인간이라는 신앙에 맞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나타나자, ‘예수님야말로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이라는 육화 신비가 성탄 안에 나타나고 있음’을 드러냈다.
성 레오 1세 교황은 성탄 강론 10개와 주님 공현 강론 8개를 전했다. 가톨릭대 전례학 교수 윤종식(티모테오) 신부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이 4세기 중엽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성 레오 1세 교황의 성탄과 공현 강론은 파스카 신비와 연결된 강생의 신비를 밝혀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교환의 신비’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미사 예물 기도에서는 특이한 상업 용어인 ‘교환의 신비’가 등장한다. 바로 “~ 저희가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라는 이 기도문은 6세기경 전례 기도를 모아놓은 베로나 성사집에서 유래한다. ‘교환’이라는 용어가 ‘로마 미사 경본’에서 21회 등장하는데, 주로 성탄과 사순과 부활 시기의 ‘예물 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에 사용된다.신학 용어가 아닌 상업 용어인 ‘교환’(라틴어 commercium)이 사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연설집」,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설교집」 등에서 ‘교환’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독서기도의 제2독서에서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는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람이 되시고 영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간 영혼에 결합하십니다. …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죽으셔야 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은 죽음을, 사람은 생명을 얻는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또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순교자들의 천상 탄일에 관한 설교’에서 “십자가에서 큰 교환이 이루어졌으니, 거기서 우리의 몸값이 치러졌습니다”라고 했고, 성주간 월요일 독서의 기도 제2독서는 “그분은 우리와 놀라운 상호 교환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그분의 것이 되었고, 그분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라고 분명히 밝힌다.
윤종식 신부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 사람이 되는 강생을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여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상한 교환을 하셨다”며 “교회는 이를 ‘교환의 신비’라고 기도하며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기도하는 교회]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왜 세 대의 미사를 봉헌하나요?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밤미사와 새벽미사, 낮미사를 봉헌합니다. 원래 교황 레오 1세(440~461) 시대까지는 12월 25일 오전 9시쯤 베드로 대성당에서 한 번의 미사를 드렸습니다.
세 대의 미사를 드리는 관습에 대한 첫 증언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의 강론입니다. 5~6세기부터 로마 교회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전례를 모방하여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에서 밤미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제대 밑에는 아기 예수님을 모셨다고 전해지는 베들레헴 구유가 놓여 있으며, 우리가 흔히 밤미사에서 거행하는 구유 경배 예식은 이 성모 마리아 대성당 밤미사 예식에서 유래합니다.
새벽미사는 6세기 중반, 교황이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식민지의 순교자들을 위한 기념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교황은 12월 25일 새벽에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 근처에 있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을 방문하였는데, 이곳은 한때 비잔티움 관리들의 궁정 성당이었으며 이날은 성당의 명의(titulus)인 성녀 아나스타시아를 기리는 날이었습니다. 이 미사가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성탄 새벽미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성탄 밤미사의 독서는 메시아를 고대하는 이사야 예언서(9,1-6)와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복음(루카 2,1-14)을 통해 기다림이 성탄으로 완성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새벽미사의 복음은 목자들이 예수님께 경배한 내용(루카 2,15-20)이기에 ‘목동들의 미사’라고도 불립니다. 성탄 낮미사는 말씀의 육화를 전하는 복음(요한 1,1-18)을 들으며 성탄 대축일의 정점을 이룹니다.
이날 모든 사제는 세 대의 미사를 거행하거나 공동집전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때 그 미사를 드려야 합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48)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은 주교복이다?
니콜라오 성인의 붉은 주교복 상징
주님 성탄 대축일이 다가오면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산타 할아버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산타 할아버지, 바로 산타클로스는 성탄 전야에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인물입니다. 산타클로스라고 하면 붉은 모자와 붉은 옷, 그리고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한 음료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특히 이 음료의 로고 색깔을 떠올릴 수 있도록 산타클로스의 옷을 빨간색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물론 산타클로스는 나라에 따라 묘사되는 이미지가 다릅니다. 러시아 등의 나라에서는 파란 계통의 옷을 입고 있기도 하고, 산타클로스가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19세기 무렵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의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원래 어떤 색의 옷을 입었는지를 알려면 ‘원조’ 산타클로스를 찾아야겠습니다. 산타클로스의 원조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니콜라오 성인입니다. 니콜라오 성인은 4세기경 지금의 튀르키예 남해안에 해당하는 ‘미라’(Myra)라는 도시의 주교였습니다. 성인은 생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자선을 많이 베풀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성인의 전설 중에는 3명의 어린이를 살려낸 일화도 있지요.
이런 이유로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의 나라에서는 성인의 축일인 12월 6일 즈음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이 풍습은 17세기경 네덜란드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이 풍습을 소개하면서 미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네덜란드어로 성 니콜라오를 신터 클레스(Sinter Claes)라고 부르는데요. 이 말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산타클로스(Santa Claus)가 됐습니다.
앞서 니콜라오 성인이 주교였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은 주교복을 상징합니다. 음료회사가 산타클로스에게 빨간 옷을 입히기 전에도 이미 산타클로스는 빨간 옷을 입었던 것이지요.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네덜란드의 신터 클레스도 빨간 옷을 입고, 심지어 주교관 형태의 빨간 모자를 쓰고, 지팡이도 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니콜라오 성인이 ‘주교’였음을 묘사한 것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이콘이나 성화에서도 니콜라오 성인은 붉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날 이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는 성탄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됐고, 성탄에 떠오르는 색깔이라고 하면 역시 빨간색을 빠뜨릴 수 없게 됐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진홍색 옷은 추기경이 입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추기경을 ‘홍의주교’(紅衣主敎)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붉은 색은 교회에 봉사하기 위한 피(血), 바로 순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거리를 수놓은 빨간색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떠올리나요? 순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다시금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전례-기도하는 교회 (11) 전례 거행의 공통 표징 3 : 전례 안에서 ‘절’의 종류
절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개신교 신자들은 절하는 행위를 우상 숭배로 여기고 사람을 대상으로 절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천주교에서는 절을 우리 문화의 전통적인 예의 곧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보기 때문에, 여러 차원에서 허락됩니다.
우선 절의 의미를 인간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어떤 문인의 표현대로 ‘저를 당신께 드립니다’라는 겸손과 존중의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좀 더 복음적인 가치로 이해한다면, 상대방 인격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향한 존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나를 화나게 하는 이를 향해,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도 현존하고 계심을 믿고 몸을 숙여 인사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상대방과의 관계에 변화가 온다고 말하는 이도 존재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행위인 절을 교회의 전례는 무릎 절(깊은 절), 머리를 숙이는 절, 몸을 숙이는 절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미사 경본 총지침은 무릎 절 곧 오른쪽 무릎이 땅에 닿도록 꿇는 것을 전례의 가장 근본적인 흠숭의 자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274항 참조). 무릎 절은 고대 로마인들이 황제를 신적(神的)인 존재로 공경하던 관습에서 기인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교도적 의미가 사라지고 단순히 높은 사람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주교나 교황에게 하는 인사에서 제대, 십자가, 성인 유해, 그리스도와 성인상 앞에서 경의를 표하는 인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1세기에 성체 신심이 발전하면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공경으로 성체 앞에서 이 자세를 취하였고 16세기에 미사 안에 들어와서 1570년 비오 5세 로마 미사 경본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유럽 교회에는 무릎 절의 전통이 남아있지만, 한국 교회는 무릎 절을 깊은 절 곧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동작으로 대신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전례적으로 흠숭을 표현하는 깊이 허리를 굽히는 절(무릎 절)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께, 그리고 주님 수난 성금요일 예식 때 하는 장엄한 십자가 경배부터 파스카 성야 시작까지 거룩한 십자가에 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미사 안에서 주례 사제는 세 번, 곧 축성된 빵을 거양한 다음, 축성된 포도주가 담긴 성작을 거양한 다음, 그리고 영성체하기 전에 깊은 절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찬례를 거행하는 중이 아니라면 성체가 모셔진 감실에 깊은 절을 해야 합니다(274항 참조).
로마 미사 경본에는 공경과 영예를 드리기 위한 절로 머리를 숙이는 절과 몸을 굽히는 절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숙이는 절 곧 묵례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을 한꺼번에 부를 때, 예수님과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축일이나 기념 미사에서 해당 성인의 이름을 부를 때에 하게 됩니다. 몸을 굽히는 절은 사제가 복음을 선포하기 전 제대 앞에서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을 깨끗이 하시어...’라고 기도할 때, 예물 준비 후에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하고 기도할 때, 신경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라는 구절을 외울 때와 부제가 복음을 선포하기에 앞서 강복을 청할 때 등에 몸을 숙이는 절을 합니다. 그 외에 사제는 축성 부분에서 주님의 말씀을 할 때 몸을 조금 굽힙니다(275항 참조).
이렇게 전례에서 이루어지는 절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를 드러내는 행위이며 성당 안에서는 성체와 성인들을 공경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우리의 바람을 겸손하게 드러내며, 회개의 표시로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자세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머리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있는지 살펴보고,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절을 통해 주님 은총 안에 머무르는 미사 시간이 되시면 참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