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6] 김상철 (金相哲) - 다윗의 사명 받고 해외선교 일선에 2. 6.25동란과 피난생활에서의 영적 체험 - 3
1 소식을 받은 다음 날 아침, 마침 이리에서 청룡사로 피신해온 어머니와 함께 3명이서 전주시를 향해 북상하기로 했다.
2 지방 유지인 김 법사의 도움으로 남원에서 전북도위원회의 국고재정 사무인계차라는 명목으로 임시여행증을 발급받았다. 이후 15일간은 길 위에서 지냈다. 밤낮없이 미군기의 폭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샛길과 국도를 가릴 것 없이 걸었다.
3 전주에 도착해서는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이리로 가서 당분간 피신하기로 했다. 그때 아버지와 아내 및 가족들은 군산과 이리 중간지점인 지경(地境) 근처에서 피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4 그러나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다. 이리에 도착하니 이미 이리 인민위원회에서 나를 잡으려고 지명수배가 내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만 집에 계시게 하고 나는 다시 남원과 이리를 오고 가면서, 또 가끔 청룡사도 들리면서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5 이때 나는 산속에 자칭 도사란 자가 있어서, 그가 나를 인민위원회에 밀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원에서 인민군이 빠져나갈 때 사사로운 일로 인민군에게 피살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6 이러한 와중에서도 신앙의 길을 가야 하고 도(道)를 찾아야 한다는 나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7 하루는 산으로 다니며 수양을 한다는 한 사람이 청룡사에 나타나서는 “도사로 가장해 가지고, 그날그날 어려운 중에도 수양과 도를 닦고 있는 것을 알았소. 앞으로 큰일을 할 분이 되어 하늘이 돕고 있소이다. 염려할 것 없소이다”라고 말하면서 시(詩)를 한수 적어주며, 아울러 나의 호를 소우당(四字堂)으로 지어 주었다.
8 시의 내용은 ‘限限 靈靈, 滿滿 字舌’였다. 아마도 ‘나의 영이 밝고 밝아서, 우주에 가득 찬다’라는 뜻일 것이다. 이 휘호는 지금 내가 갖고 있지 못하다. 수복 후 재무부 장관에게 보낸 시말서에 원본을 그대로 첨부해 보냈기 때문이다. 수차 원본을 구해 사본이라도 만들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해 유감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