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360호 명심하라, 시간의 부자(富者)는 없다 (고전2:9~12)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세상에 돈의 부자는 있어도 시간의 부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왕도, 재벌도, 어린아이도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은 그날 다 써야 합니다. 저축했다가 다음에 쓸 수 없는 것이 시간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같은 24시간으로 놀라운 큰일을 이루고, 어떤 사람은 긴 세월을 살고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차이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실 때 며칠이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물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차라리 애굽이 낫다.’ 등등, 늘 부정적이었습니다. 더욱이 가나안을 정탐했던 열두 정탐꾼 중 열 명이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말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말에 동조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부정적인 생각이 이스라엘 전체를 묶어버려 며칠이면 갈 길을 40년이나 돌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잃게 만든 것은 광야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는데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순종했으면 빨리 끝날 일을, 그는 풍랑을 만나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고집스러운 생각이 인생을 돌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면 자유롭고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모든 것을 잃고 돼지우리에까지 내려갔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는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옵니다. 잘못된 생각, 세상적인 생각이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이 사람의 시간을 결정합니다. 원망과 두려움은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늘 뒤를 돌아보게 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자는 시간을 죽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창조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친구를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것입니다. “다음에 오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병자를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길이 막히자 새로운 길을 만든 것입니다. 그들의 긍정적인 생각, 창조적인 생각이 중풍병자가 고침 받는 시간을 단축한 것입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 키가 작아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틈에서 불평만 하지 않았습니다. 앞질러 달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창조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나무 아래서 삭개오를 부르셨고, 그의 집에 구원이 임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인생의 시간이 바뀐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았고, 바울은 감옥에서도 세계 복음화를 꿈꾸었습니다. 몸은 갇혀도 생각은 갇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계 복음화를 목표로 두고 ‘내가 영어를 못하는데 어쩌지?’, ‘스페인어도, 러시아어도 못하는데 어떻게 나가?’ 했더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간접자본을 활용하면 되지. 통역관을 쓰면 되겠다.’ 해서 일을 추진하니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자를 도우사 이렇게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고, 명성(名聲)이라고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창조적인 생각은 단순한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창조성이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DNA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없는 길에서도 길을 보고, 문제 속에서도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원의 고갈을 문제 삼지만, 아이디어의 고갈이 세상을 침식시키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는 창조적인 생각이요, 이는 상상력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단순한 계산 능력만 주신 것이 아니라 꿈꾸는 능력, 바라보는 능력, 믿음으로 그려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상상력입니다.
사과 속의 사과 씨는 헤아릴 수 있지만 사과 씨 안에 있는 사과는 헤아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상상력을 품은 자들로 인해 우리가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것 아닙니까?
저는 저의 상상력의 전원이 꺼질까 늘 노심초사합니다. 제가 지금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세계교구’라는 상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광명 철산리 지하 교회에서 한 명을 놓고 목회를 시작할 때, ‘세계교구’라는 말에 모든 자들, 저를 사랑하는 스승마저도 비웃었지만, 저는 늘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때가 되니 정말 이뤄집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이 말씀은 믿음이 곧 보이지 않는 우리의 상상력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상상하고 기도로 현실화시키는 것이 믿음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앉아서 괜히 이상한 잡생각일랑 하지 말고, ‘나도 좋은 집에서 살아봐야지’, ‘나도 남들처럼 좋은 차 타야지.’, ‘나도 사장이 되야지.’ 이렇게 상상을 하며 기도하세요.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십니다. ‘믿음=상상’입니다.
하나님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후원자가 도와주신다고 하는데 매일 그 자리고, 매일 그 밥에 그 반찬입니까? 믿음의 선친들을 보세요. 그들은 상상의 나래를 한없이 원 없이 펴서 위인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뭇별을 보며 자손을 상상하더니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야곱은 무늬 없는 양들 앞에 버드나무와 신풍나무와 살구나무를 놓고 얼룩지고 점 있는 양의 새끼가 나올 것을 상상하더니 상상한 대로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하였습니다. 남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상상하고 기도하면 그대로 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생각을 무너뜨리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란 놈은 늘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건 안 돼.’, ‘넌 그거 못해.’, ‘포기해.’, ‘그거해봐야 소용없어.’라며 우리 생각을 무너지게 하여 포기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생각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잠4:23). 세상 모든 것은 지켜주는 자가 있지만, 생각만은 내가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 나쁜 생각, 악한 생각, 두렵다는 생각이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세요. 부정적인 생각을 오래 품으면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행동을 묶고, 결국 시간을 허비하게 만듭니다. 예수 이름으로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들면 창조적인 생각이 살아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똑같은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평과 두려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어떤 사람은 믿음과 창조적인 생각으로 시간을 늘려갑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인생을 광야로 만들고, 하나님의 생각은 광야에서도 가나안을 보게 합니다.
시간을 늘리는 비결은 시계를 붙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품고, 믿음으로 상상하고, 창조적으로 행동하는 데 있습니다.
멋지게 살고 싶으시죠? 잘 살고 싶으시죠? 건강하게 살고 싶으시죠? 생각의 전환이 이뤄지면 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할렐루야!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다
생각의 전환이 없으면 미래는 없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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