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맨] 무서운 사람이 없는 캐나다?
만 39년 하고도 한 달 더, 이곳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살고 있는 김치맨이다. 만약 어느 동포가 "캐나다의 어떤 점이 좋다고 보십니까?"라는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대답할까? 혼자서 염려 아닌 기우를 해본 적 있다. 그래서 정답이나 모범답안을 생각해 두었느냐고요? "예! 생각해두었습니다"
쥐뿔이나 아는 게 별로 없으면서도, 김치맨은 누구와 논쟁 벌이기를 좋아한다. 원래 논리는 딱딱하고 또 듣기에 좀 거북한 것이지만! 김치맨은 평시엔 얌전한 넝감으로 조용히 있다가도, 뭐 하나 따지고 들 일이 생기면 벌떡 일어난다. "여보세요! 그게 그런 게 아니구.. 어쩌구 저쩌구..." 논리로써 그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대들기를 잘한다. 물론 말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글로다.
김치맨은 캐나다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캐나다에서는 김치맨이가 ‘무서워해야 할 사람/ 무서운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두려워해야 할 존재들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들은 혼자서는 살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는 나에게 어떤 형태로거나 혜택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반면에 내게 불이익이나 괴로움을 안겨 줄 능력/힘/파워를 가진 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두려워하며 무서워해야 할 사람이 있다 한다면, 어떤 부류들이 있을까? 상명하복의 조직체인 군대나 직장의 상급자들, 사업체의 피고용인이라면 내가 일한 대가로 급여를 주는 고용주 사장,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무슨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언제나 우리에게는 두려운 존재들이겠다.
다시 표현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나와 내 가정, 직장과 사업체에 그 어떤 형태로든지, 정신적 또는 물질적으로 피해/손해를 끼칠 수도 있는 존재들이 우리에게 무서움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온주 시골구석에서 작은 편의점 경영하고 있는 김치맨은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이 별로 있지 않다. 자기사업 하면서 누구 눈치 안 보며 맘 편하게 산다. 법과 규정들을 지키며 떳떳하게 살고 있다.
이곳에도 면사무소가 있고 경찰서, 소방서, 보건소, 법원 등 제반 행정기관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내게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공권력을 등 뒤에 짊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 잘못함이 없으면 결코 무서운 존재들이 못 된다.
다만 교통위반 적발하는 경찰관들은 조금 무섭기는 하다. 과속운전 눈치껏 하다가 재수 없어 걸리면 벌점 먹고 벌금 내야만 되니까. 그게 아니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무엇에 겁낼 일 거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작은 권력이라도 손에 쥐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그런 부류들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로 겁을 내고 두려워해야만 될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상식과 법이 통하지 않는 무법자(Outlaws)들이다.
우리 어릴 적에 키도 작고 힘도 없는 아이 하나가 동네의 큰 녀석들에게 사정없이 쥐어터지면서도 끝까지 달겨든 녀석이 있었다. 결국엔 덩치 크고 힘이 센 아이들이, ‘이 독종!’ 하며 항복했다.
앞 뒤 안 재보고 무작정 달겨드는 사람들을 어찌 당해낼 수가 있겠는가? 그렇듯 상식과 법을 초월하여 제 맘먹은 대로만 행동하는 자들에게는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은 재미있는 곳!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자기만의 무서운 사람(들)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즉 ‘갑’은 ‘을’ 그 ‘을’은 ‘병’을! 그런데 ‘병’은 ‘갑’을 두려워하고 겁먹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먹이 사슬(Food Chain)처럼 돌고 도는 게 아닌지?
그래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힘이 약해 ‘무서운 사람들 먹이사슬’에서 맨 밑에 서 있는 김치맨이를 은근히 두려워하며 무서워하는 동포들이 온주 한인동포사회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무서울 것도 무서운 사람도 별로 없는 캐나다가 아닐까?
(2004년 1월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