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의 「일요일」 감상 / 박성현
일요일
이도영
하느님과 나는 체급이 다르다
우리는 한 링 위에 섰다
주최 측의 농간
그의 집안이 정말 대단한가 보다
대단한 집안의 남자가 날 사랑한다네
소문 하나 거대하다
난 이제 시집은 다 갔다
그는 처녀를 임신시키는 잔인한
주거 부정의 발바리
그가 가진 컴은 항상 최신식
나의 모든 티끌을 고스란히 죄악으로 기록하는
나타나지 않는, 아닌 것 같은 스텔스기
외출을 허락받아야 하고
히잡을 써야 하고
나의 모든 것은 그의 것
산에 가도 안 되고
들에 가도 안 되고
돼지와 놀면 안 되고
일을 해도 안 되고 안 해도 안 되고
오로지 자기랑 오래전의 편지나 읽으며
자기가 맘대로 쓴 매뉴얼이나 숙지하며
안 돼! 기다려! 멈춰!
한 끼니에 길들여진 온순하고 통통한 훈련 양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지쳐서 돌아가게 하는 횡포가,
반복하는 모순의 히브리어로 쓴 계약서의 약관이,
정의롭기는커녕
그런데 사랑한대
허둥대며 뛰어갔더니
식스팩이나 자랑하며 아직도 팬티 차림
원목침대에서 내려오지도 않았어
그런데 나만 부른 게 아니었더라구
여자들이 바글바글 소집됐는데
나를 포함한 그녀들은 죄다 피라미드였어
무형의 상품, 보험
사단법인 갑의 무자비함은
자비와 헷갈려
나는 육지로 돌아오기 위하여
불빛 환한 오징어 배 선원으로 그를 팔았네
나의 위선과 교만과 욕망을 지불했지
허긴 그는 어업의 경력이 있긴 하지
그물 찢어지게 잡은 전력이 있는
쥐들이 들락거리는 그물로 밥 빌어먹는 어부
요즘은 장비가 좋아
잘했어, 설사 잘못했다 해도
그는 잘살 거야.
나도 잘살 거야.
—시집 『나는 나만의 사건이에요』 2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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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가 통찰했던 것처럼, 예술도 진리 추구의 한 영역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물’이라는 단어를 통해 시인이 갈망한 변화의 이미지(혹은 사건)를 구축할 수 있다. 그는 우선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종교’를 뒤집어 버린다.
신과 인간은 체급을 비교할 수조차 없는데, 시인이 보기에 그 두 존재는 “한 링 위에” 서 있다. 이 무슨 참담한 설정일까. 주최 측의 농간이라고 불만을 터트려도 신은 모른 척한다. 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겁하다. 나의 모든 것이 ‘신의 것’이 되어 버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종교다. 나의 모든 티끌을 고스란히 죄악으로 기록하며, 외출을 허락받아야 하고, 히잡을 써야 하는 계율은 법을 넘어서 있다. 그러나 ‘새로운 생물’이 된 시인은 신의 분별없는 일방통행을 정확히 짚어 낸다. 감각의 기계—제국을 벗어난 ‘네오’ (Neo, 영화 〈메트릭스〉 주인공의 별칭.그리스어로 ‘새로운 부활’이라는 뜻의 말)나 과감하게 선악과를 먹은 ‘하와’처럼.
박성현 (시인)
첫댓글 신과 인간은 체급을 비교할 수조차 없는데, 시인이 보기에 그 두 존재는 “한 링 위에” 서 있다. 이 무슨 참담한 설정일까. 주최 측의 농간이라고 불만을 터트려도 신은 모른 척한다. 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겁하다. 나의 모든 것이 ‘신의 것’이 되어 버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종교다.
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