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해병대를 사랑하는 사람들~[해.사.사] 원문보기 글쓴이: 김상규(하120)
해병대 정신으로 대한민국 태권도 세계에 전한다
[희망100세] 영국 해병전우회 조선주 회장 인터뷰
태권도 수업 모습
아시아투데이 이정필 기자 =
“이 세상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데 꼭 필요한 수련장이다.
각각의 사람마다 그 목표점에 다다르는 시간이 다를 뿐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도전한다면 못 이룰 일은 없다.”
해병대 병 735기 특수수색대 출신으로 전역 후 영국에 건너간 조선주씨(42).
그는 영국 런던 뉴몰든에 있는 자신의 도장에서 3살배기 꼬마부터
60이 넘은 장년층까지 제자로 받아 태권도를 가르치며 한국을 전하고 있다.
영국 해병전우회 회장직을 겸하고 있는 그는
“귀신 잡는 한국 해병대 정신이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라며 웃었다.
-영국에 건너가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넓은 세계를 동경했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다.
군 전역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외국에서 견문을 넓히고자 하는 의지가 더 확고해져 먼저 일본에 유학을 갔다.
언어 습득을 비롯해 일본과 관련한 기본적인 것부터 익혔다.
또 미국으로의 2차 유학 준비 겸 영어 학습 과정(Diploma)을 일본에서 밟고 졸업했다.
일본 체류 기간 중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을 하면서 일본과 일본인 관련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
그것이 토대가 돼 이후 해외 정착에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미국으로 가고자 하던 시점에 9·11 테러가 발생해 계획에 없던 영국으로 행선지를 돌렸다.”
-정착 초기에 겪은 문제나 어려움이 있다면….
“영국은 물가가 워낙 비싼 곳인 데다 유학생의 아르바이트는 한계가 있어 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영국에서는 태권도 사범이나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도 충분한 생활비를 충당하기가 어렵다.
노동허가를 신청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는데 다행히 태권도로 노동허가를 취득하는 첫 사례가 됐다.
당시 빠듯한 재정과 바쁜 하루하루의 삶이어서
변변찮은 광고나 지정된 도장도 없이 몇 군데 스포츠홀을 대관해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태권도가 상승세를 타고 인기 수업이 되면서 이를 시기한 소음 문제가 제기돼 장소를 대관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에 맞서 인근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내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의 언어나 문화에 생소한 현지인에게 태권도 용어를 한국어로 가르치고 위계질서를 잡는 일도 만만찮은 숙제였다.
개인적으로는 2006년 10월 한밤중에 도둑이 드는 사건을 당했는데 바로 제압했다.
도둑을 현장에서 잡은 한인 태권도 사범이라는 제목으로 영국과 한국 등에서 보도가 됐다.
이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오랫동안 한국인과 태권도가 회자됐다.”
-태권도장 관장이 된 배경은….
“아직까지도 가라테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국에도 태권도 클럽이 꽤 많이 있다.
한국처럼 자기 도장을 가지고 하는 곳은 거의 없고
스포츠센터나 구민회관 같은 곳에서 홀을 빌려 가르치는 클럽 형태가 대부분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 사범이 많이 정착하지 않았던 터라 태권도가 제대로 한국의 얼을 가르치고 있는 곳은 거의 없고
경기 위주의 겨루기를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욕심일지 몰라도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 배웠던 그 태권도,
스승을 존경하고 선후배 간 예의를 지키며 자부심을 가지고 배웠던 그것들을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와 더불어 ‘나도 할 수 있다,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자신감과 인내를 이들에게 새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태권도장을 열었다.
미국에서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그것을 마다하고 이곳에 남은 이유다.
현재 대부분의 학생이 현지인이고 폭넓은 연령층의 학생이 수련 중이며 성인 비율이 꽤 높다.
초등학생이 대부분인 한국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외국에서 한국의 기상을 드높이는 태권도,
지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영국인을 보면서 태권도의 위상이 높아짐에 자긍심을 느꼈고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영국은 2005년도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2012년 올림픽 최종 투표를 일주일 남겨놓고
영국 내 소수민족들의 자국을 대상으로 마지막 유치 로비가 있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며 올림픽 유치위원으로도 활동하던 테레사 조얼은
2005년 6월 18일 한인사회를 대표해서 우리 태권도 스쿨을 방문해 한국의 한 표를 영국에 찍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때 장관이 태권도 도복을 입고 함께 태권도를 배워보는 모습이 BBC와 SKY News 등을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됐다.
한국의 한 표를 얻기 위해 가장 한국적인 것인 태권도를 이용해 호소한 것이다. 그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 도장에서 승급이나 승단 시험일에 언제나 울려 퍼지는 애국가가 이제는 수련생들에게 어느 정도 친숙해졌다.
도장을 드나들 때마다 90도로 인사하는 영국인 수련생들, 깍듯이 사범에게 경례를 하며 한국의 정신을 익히는 학생들,
태권도를 사랑하고 배우려는 폭넓은 연령층의 학생들을 보면 사범으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우리 태권도학교는 1년에 여러 번 지역사회의 행사에 참석해 태권도 시범 및 시가행진 등을 한다.
한인 밀집 지역인 뉴몰든에서 매년 여름 2주간 열리는 뉴몰든 축제 때 항상 우리 태권도 학교가 초대를 받아 시가행진을 한다.
많은 지역주민에게 태권도는 이제 생소하지 않으며 길에서 나를 알아보고
“Hello Master Cho” 라고 인사를 건네올 때에는 태권도의 인지도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아울러 일찍이 해외에 진출한 태권도 사범 선배들을 생각하면 아마도 현재와 같이 태권도의 인지도가 높아지기 훨씬 이전에
해외에 진출해 태권도를 알리고 양성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 자명하다.
그분들의 열정과 숨은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있다고 본다.
또 현재도 개발도상국이나 오지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한국을 알리는 데 공헌하고 있는 태권도 사범도 많을 것이다.
태권도 사범의 한 사람으로서 이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영국은 지난 올림픽 이후 태권도 인지도가 확연히 더 높아졌으며 관심도 많아진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매년 여름 열리는 뉴몰든 축제에 드림태권도가 초대받아 시가행진을 한다.
-영국 해병전우회를 대표하고 있는데….
“해병대를 나온 아버지(조용갑·병 111기)가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해병대 전우회의 봉사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보면서 자랐다.
그 영향인지 형(조선구·하사 200기)도 해병대에 지원했고 뒤를 이어 나도 735기 해병대원이 됐다.
해병대가 가진 전반적인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전우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조하고 섬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도 아마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영국은 2003년도에 서병일씨(병 176기)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전우회 모임은 아니지만
몇몇 분이 친목을 목적으로 때때로 만나 교제를 나누는 사적 모임이 형성됐다.
그러나 영국은 이민법규가 까다로워 정착하기가 어려운 나라이고
정착까지 시간이나 물질적인 여유가 없는 생활이 오랫동안 이어진다.
정착하더라도 사생활 중심의 문화 탓에 정기적인 전우회 정기 모임이나 행사는 훨씬 이후까지 원활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던 차에 2006년 김명환 당시 해병대 총재의 독일 방문 시 재독일 해병대 행사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재영국 해병대 전우회’란 이름의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교민사회에 계셨던 분들과 더불어 새롭게 정착을 해야 하거나
유학 등으로 잠시 체류하는 선후배들을 대상으로 미흡하나마 막막한 타국 생활 중에 약간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개인적으로라도 좀 더 챙기고 돕는 채널 역할을 하고 싶어 식사에 초대하고 나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또 매년 최소 2회 정도는 혼자서라도 재독일 해병대 전우회 행사 및 모임에 참석해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방문 때마다 아들처럼 재워주고 먹여주며 여비까지 챙겨주시는 재독일 전우회 원종원 회장님(병 236기)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번 이상로 해병전우회 총재의 영국 방문 기간 중에도
독일의 해병대전우회 회장을 비롯한 다섯 분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몸소 차를 몰고 왔다.
총재의 공항 영접부터 숙소 보이콧, 전우회 연합 만찬 등을 함께하게 된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지난 몇 년간의 좋은 유대관계의 결실이라고 생각된다.
지난해 8월 이재강 회장(해간 72기)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귀국해 공석이 된 전우회 회장 직무를 사무국장인 내가 대행으로 섬기고 있다.
향후 총회에서 바람직한 회장이 선출돼 한인 사회 및 이곳 현지 지역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단체로 해병전우회가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최근 영국전우회 모임에 당사자뿐만 아니라 온가족이 모여 바비큐를 나누며 교제하고 회의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전우회가 단결하고 서로 위로가 되며 뜻 깊은 행사를 힘을 합쳐 유치할 때 보람을 느낀다.
이번 이상로 총재의 영국 방문은 그런 면에서 우리 영국 전우회가 단합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영국 해병전우회 활동 모습
-한국과 영국의 가장 큰 문화적 차이는….
“영국인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가고, 내 소신대로 움직이고, 내 능력이 되는 만큼 한다.
결코 남의 눈치 때문에, 혹은 남이 하기 때문에, 남에게 등을 떠밀려서, 내 능력에 부치도록 무엇을 하지 않는다.
철저히 본인의 자유의지와 필요에 따라 결정하고 판단하고 실행한다.
그래서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오래 지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주의가 발달해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어려서부터 내 의견을 갖고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는 교육을 받는다.
처음 한국에서 온 분들에게는 여기 아이들이 당돌해 보일 수 있으나 전반적인 문화의 차이로 이해해야 한다.
자기 의견은 없이 대다수 의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국의 아이들이 처음 영국 학교에 오면 교사에게
‘아주 조용한 학생’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는 언어가 미숙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런 문화적 차이가 큰 원인이다.
한국 학생들은 교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대면하고 침착하고 정중하게 자신의 불편함을 드러내는 일이나 불만족스러움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대부분 뒤에서 불평하거나 언성을 높이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등 미숙한 반응을 나타낸다.
영국인은 드러내놓고 그 자리에서 남의 감정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으나
어떤 문제를 제기할 때 아주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끈질기게 추적해 반드시 결말을 내고야 마는 주도면밀함이 있다.”
한국 방문 당시 사진. 윗줄 가운데가 조선주 사범
BBC 뉴스에 소개된 조선주 사범
-중장년층을 위한 한·영 양국의 복지제도를 비교한다면….
“영국은 전반적인 사회복지 제도가 잘 정립돼 있어 4060세대뿐만 아니라
전 연령층에 이르는 복지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평균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영국도 연금지급 연령이 이전보다 남녀 모두 늦춰졌다.
국민연금 지급수당도 개인의 평생 근로소득이나 세율에 비례해 차등을 두고 지급이 된다.
평생 근로소득이 없었더라도
연금지급에 필요한 기본 국민보험부담금(National Insurance Contribution)만 갖추면 누구나 지급받는다.
이것도 소득이 낮아 낼 형편이 안 되는 경우라도 특수 상황을 고려해
상황이 참작되므로 영국 국민은 누구나 생활의 기초 수당에 해당하는 연금을 지급받는다.
국민 연금 외에도 주택수당, 주민세 수당, 자녀교육 수당 등 여러 가지 수당이 보조금으로 지급되기도 한다.
의료비는 기본적으로 무상이다.
한국 정서는 부부 중심보다는 가족 중심, 자녀교육 중심이기 때문에 노후를 준비해두기가 수월치 않다.
자녀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따로 노후를 위해 충당금을 예비해 두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기본적인 의료비와 생활비가 정부에서 보조되는 영국의 시스템처럼 한국 정부도 노후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노후 생활이나 자녀 양육의 조건을 본다면….
“복지시설 및 의료시설이 잘 구비된 영국이 전반적으로 노인들이 지내기에는 좋아 보인다.
그러나 한국에는 실버세대를 대상으로 각종 노인학교나 복지센터 프로그램 등이 다양하다.
노인정이나 마을 노인회관 등에서 서로 여가 시간을 보내며 운동이나 학습을 같이 할 수도 있다.
영국의 노인들은 집에서 정원을 가꾸는 일 외에는 이렇다 할 노인 대상의 여가 거리가 없다.
물론 영국인들은 단체로 무엇을 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혼자 또는 소그룹으로 하는 것을 선호하는 환경이 미 정착화 돼 있어 별 불편함이 없을지 모르나 한국인은 다르다.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인이라면 한국식 체제가 더 맞을 것이나 소극적이고 비활동적이라면 영국식 체제가 무난할 것이다.
만약 몸이 편치 않은 분이라면 영국식 체제가 재정적인 압박은 없을 것이나
중환으로 급히 치료가 필요한 분이라면 당연히 한국이 낫다.
영국은 의료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경우라면 당연히 영국식 체제가 생활의 부담을 훨씬 줄여주는 시스템이겠다.
자녀 양육은 영국식 체제가 단연 낫다고 생각한다.
영국도 대학 진학이 예전보다는 상당히 까다로워지고 좋은 학교일수록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지기는 했으나
대학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영국은 인격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사교육의 부담도 훨씬 적으며 각자의 개성에 따라 또 적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폭이 훨씬 넓다.
대학의 전공과목도 전문분야들로 세분화돼 있고, 비슷한 전공이라도 개인의 점수 수준에 따라 진학할 학교의 선택 폭도 넓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며,
부모와 학교가 협력해 가능하면 아이들의 적성과 선택대로 스스로 학업능력을 키우고 노력하도록 이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법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18세가 되면 이곳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는 것이다.”
첫댓글 대단한 사나이 축하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