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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7일
새로운 내 고향집
날짜 : 1992. 8. 1(토)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인간의 욕망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은 매일매일 하루를 중심삼고 거듭해 나가면서 이내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의 세월을 지나고 수많은 세월을 거쳐가지만, 그 모든 삶의 생애노정이 통일된 목적을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태어나기를 자기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 근원이 영계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영계의 모든 나라의 배경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그 배경이 되는 영계의 나라라는 것은 개인만을 위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세계 전체를 총합한 목적을 가진 나라인데, 그런 나라의 배경을 내가 짊어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세계, 국가, 종족, 그리고 가정 가운데 나라는 것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누구나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제일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 손 하나를 두고 물어 보더라도 인류 전체를 대표한 손이 되고 싶다 이겁니다. 우리의 오관을 포함한 모든 기관도 그 욕망이 뭐냐 하면 “세계에서 제일 되는 기관이 되면 좋겠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세계를 봐도 그렇잖아요? 우리 마음이 얼마나 욕심이 많아요! 큰 것을 갖고도 좀더 큰 것을 가지면 좋겠다고 합니다. 또, 그것을 갖고 난 후에도 더 큰 것이나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은 달성될 수 없다고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인류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욕구가 표적이나 목적도 없이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표적이나 목적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이루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자나깨나 그것을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자기 가정만을 중심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영계가 있으면 영계를 대표하고, 지상을 대표하고, 일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하고, 그 다음에 남자는 남자 전체를 대표하고 여자는 여자 전체를 대표할 수 있어야 됩니다. (233-127)
사람은 누구나 사랑에 매여서 살고 싶어해
그러면 여성이나 남성을 대표했다고 할 때, 그 내용이 뭐예요? 물론, 거기에는 천상세계도 있고 지상세계도 관계되어 있겠지만 그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가정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인간들이 바라는 소원의 목적지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일시적인 것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시공을 초월한 것으로서 오늘도 같고, 과거도 같았고, 미래도 같을 수 있는 내용이 되어야 하며 언제나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사방의 환경에 접하는 모든 것들이 전부 다 거부하지 않고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돈 가지고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지식을 가지고도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일방적인 것밖에 안됩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권력을 어떻게 확대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라는 개인적인 권력을 국가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다리가 되어야 하느냐? 또, 국가적인 권력을 세계적인 권력으로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다리가 되어야 하느냐? 거기서 다리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개인적인 지식이 가정을 넘고 국가를 넘어서 세계 앞에 연결되는 데 있어서 다리가 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또, 돈도 나에게 찾아오게 될 때는 전체의 가치를 대표한 돈으로 찾아옵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 찾아오게 될 때, 그것들로써 하나될 수 있는 배후의 내용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물건은 귀합니다. 사랑을 통한 지식도 귀한 것입니다. 사제지간에 선생이 사랑을 통해서 가르쳐 줄 때, 그 스승의 가르침은 생애를 넘어갑니다. 진정한 스승으로서 진정으로 제자를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진실되게 주겠다는 그런 스승의 마음을 체휼한 제자는 일생 동안 잊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욕구의 배후에 공통적인 내용을 갖출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랑이라는 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남자 여자들이 “전 세계를 대표한 나”라고 할 때, 그 말 가운데는 남자와 여자가 들어갑니다. 거기에는 나이가 많거나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권력이 있거나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말 가운데는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 있는데, 그 남자와 여자가 어떤 존재냐 하면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대표입니다. 그 마음 가운데는 세계를 넘어 천주(天宙)까지 품으려고 하는 보따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욕망을 무엇으로 채우겠느냐? 돈을 가지고는 채울 수 없습니다. 지식을 가지고도 채울 수 없습니다. 또, 권력을 가지고도 채울 수 없습니다.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나 그 사랑의 줄에 매여서 살고 싶어합니다. 가정에 들어가 보게 되면, 가정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가는가를 보면 돈이 있더라도 돈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또, 대학교 총장이 되어서 수많은 학자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가정에서는 그러한 권위를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는 돈의 힘도 없어지고, 지식의 힘도 없어지고, 권력의 힘도 없어집니다. 거기에서 사는 데는 사랑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도를 쓸 수 있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 존경받고, 만사를 통치하는 배경을 갖추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가정에 들어와 살게 되면 그러한 행세를 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사랑의 줄에 매여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아들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손자나 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집이 그러한 배경을 갖고 있다면 다른 집들은 다르냐? 아닙니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배후에 공통분모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자기 부부, 자기 아들딸 전부가 사랑을 중심삼고 모여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윤리가 파괴되어 세계적인 문제로 제시되는 것은 그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33-128)
사랑의 작용
그 사랑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꽃의 빛깔로 보면 얼룩덜룩한 오색가지 빛깔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뿌리는 하나지만 그것이 나타나는 데 있어서 상대하는 작용이 천태만상의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슬픈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슬퍼집니다. 기쁜 사람을 대하는 사랑은 기뻐집니다. 그렇게 상대에 맞추어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표정은 남편의 배후에 있는 모든 어두운 배경을 전부 다 소화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모든 전부가 능력을 중심삼고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실적을 가지고 정진하는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거기서 부대끼게 됩니다. 한 계(係)가 있으면 계원이 한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우수하지 않으면 계장이 못 됩니다. 그래 가지고 과장, 차장, 부장, 국장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남자들은 그러한 복잡한 환경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에서 사는 주부들은 다섯 식구가 살면 다섯 식구를 중심삼고 관계되는 사연의 곡절에 영향을 받지만 남편들은 사회에 나가게 되면 국가와 통하고, 도와 통하고, 군과 통하고, 어떠한 단체와 통하고, 모든 개개인과 통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복잡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 대하는 환경이 열 가지면 열 가지의 심리적인 변화를 받는데, 그 변화를 받는 과정이 전부 다 기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부대끼고 저기에 부대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비교하면 기쁜 일보다도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그러한 남편이 회사에 나갔다가 돌아오게 될 때, 아낙네의 표정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종긋해 가지고 기분 나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남편이 아침에 이밥에 고기를 잘먹고 기분이 좋았으니까 퇴근해서 돌아오는 저녁에도 기분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여편네가 종긋해 가지고 독수리 눈같이 하고 앉아 있으면 남편의 기분이 어떻겠느냐구요.
꽃도 활짝 핀 꽃이 좋습니다. 활짝 핀 꽃은 활짝 향기를 풍길 수 있습니다. 왜 활짝 향기를 풍기느냐 하면 자기가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지어야 되는데 나비와 벌을 먼 곳으로부터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꽃이 활짝 핀 환경에서 활짝 향기를 뻗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자연도 자기의 생명의 근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활짝 피어서 향기를 풍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낙네들이 활짝 피어 가지고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얼굴을 가진다면, 남편의 모든 것이 녹아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사회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자체,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는데 그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이 천하가 통일되는 것보다 귀합니다. 천하의 통일 같은 것은 무기라든가 힘을 가지고도 가능합니다. 또, 돈을 가지고 “와라” 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학자가 있다 할 때, 그 세계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학자가 문만 열면 다 몰려옵니다. 그렇게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길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일방향적인 것들입니다. 그렇게 일방향적인 것들은 아무도 원치 않습니다.
사람은 눈이면 눈, 귀면 귀 등 오관을 중심삼고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맡는 모든 감정이 다릅니다. 그 모든 오관의 감정을 종합해 가지고 기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보는 것만을 가지고 안됩니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는 안돼요. 듣는 것만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눈도 좋고, 코도 좋고, 입도 좋고, 귀도 좋고, 손발도 좋을 수 있는 놀음을 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눈도 아니요, 코도 아니요, 입도 아니요, 귀도 아니요, 손도 아닙니다. 바로, 그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33-131)
사랑세계의 인연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적당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것같이, 어머니 아버지가 살던 것같이, 지금까지 자기들끼리 살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남자 여자가 결혼해서 싸우고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서로 갈라져서 한이 맺혀 가지고 “아이구, 내가 그때에 한 번만 참았으면 되었을 걸…” 합니다.
이혼해 가지고 기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혼하기 전에는 “아, 너하고 헤어지면 좋겠다” 하다가도 이혼장을 받고 나면 지옥입니다. 깜깜해지는 거예요. “내가 살던 집은 어떻게 되고, 아들딸은 어떻게 되고, 그래도 내가 시집에서 시어머니를 좋아했고 시아버지를 모셨는데 그들은 어떻게 되느냐” 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이 자꾸 머리 속에 돌면서 안 잊혀집니다. 그것이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3년이 가고, 10년이나 20년이 가도 안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혼하고 사는 여자의 얼굴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이혼해서 살고 있는 여자에게 기쁨이 있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또, 이혼하고 사는 남자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비참해요! 그런 사람들이 “내가 세계의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어요? 혼자 사는 과부가 “내가 세계에서 제일 되면 좋겠다” 할 수 있겠느냐구요? 그리고 혼자 사는 홀아비가 “내가 세계에서 제일 되면 좋겠다” 할 수 있겠어요?
그들이 생각하는 게 있다면, 옛날보다도 더 좋아할 수 있는 아내가 필요하고 남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원 가운데는 세계고 뭐고 없습니다. 한 남자나 여자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살던 기준보다 조금 못해도 좋다고 합니다. 그렇게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러한 상처를 받지 않은 자리에 있을 때는 남자나 여자에게 세계를 넘어 하늘땅까지 우주의 대표자가 되려는 꿈이 있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꿈이 왕래하던 그런 길이 다 막혀 버립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랑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오색가지의 금은보화로 장식을 해 가지고 어디 나서면 여왕님이라고 천하가 찬양할 수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엇을 위해서 단장한 거예요? 바로,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경대 앞에 앉아서 화장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여자들이 화장하는 시간이 일생 동안에 몇 만 시간일까를 생각해 보라구요! 어느 정도 가꾸어서 나서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야 됩니다. 그게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하는 거예요? 사랑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노래 가운데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게 좋아요, 돈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게 좋아요? 돈 얘기를 한번 들어 보라구요! 세 번을 듣게 되면 아예 질색입니다. 권력도 그렇고, 지식도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사랑노래를 하면 낮에 해도 맛이 다르고, 저녁에 해도 맛이 다릅니다. 햇빛이 내리쬐는 자리에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관심을 갖는 것이 사랑의 노래입니다.
우리가 “원만한 가정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할 때,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완전히 화해 가지고 꽉 차는 것입니다. 원만한 사랑을 중심삼고 꽉 찬 집에는 만사성(萬事成)입니다. 모든 것이 상충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굴러가게 되면 그 굴러가는 것을 전부 다 따라가서 잡으려 하고, 그것과 더불어 같이 있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세계의 인연입니다. (233-133)
마음의 문이 얼마나 크냐
가정이라는 것은 세계의 무대에 나서기 위한 훈련장입니다. 가정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나, 자기 부부, 아들딸이 있는데 그것을 확대시킨 것이 국가입니다. 사회에 나가게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지요? 또,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있지요? 그리고 자기 연배가 되거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연령층이 있고 아들딸과 같은 연령층이 있습니다. 사회에는 그러한 네 계층의 사람들이 확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 남편이나 아내, 아들딸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 내세우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환영합니다. 아무리 처음으로 만나는 인연이라도 그러한 사랑의 내용이 있다고 할 때는 마음을 활짝 열고 백 퍼센트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문을 열고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그 마음의 문이 얼마나 크냐? 마음은 어떠한 크나큰 사랑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을 갖고 있습니다. 마음의 문은 원수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구, 용서 못 하겠다” 해 가지고 치가 떨리고 가슴이 막히는 원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원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문이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문을 몇 번이나 열어 봤느냐 이거예요.
우리가 동서남북을 보게 되면 네 방향이지만, 크게 보면 360방향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사랑이 찾아올 수 있도록 360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었느냐? 그 다음에는 세상 끝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의 문을 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거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여자들은 그저 마음이 고질(痼疾)이 되고 고창(鼓脹)이 되어 가지고 “아이구, 나 죽는다” 하는데, 본래 마음은 그렇게 안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욕심을 중심삼고 찾고자 하는 것은 최고의 것이지요? 다들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마음이 다들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렇게 고귀합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의 속도 마음의 본 바탕을 찾아 들어가게 되면 “대통령만 모여 사는 나라에서 내가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이 큽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수십 억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안 만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누군가가 보고 싶다고 해서 누구를 불러내게 될 때 그를 사랑하는 척도가 있어 가지고 불러야 나타나지 내가 욕심을 가지고, 그 사람이 훌륭한 박사이기 때문에 “지식을 찾기 위해서 내가 만나겠다” 하고 생각하면 안 나타납니다.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되기까지 과거에 고생했던 그 수고의 대가를 알아 줘 가지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르면 동서사방에 어느 누구라도 다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문 총재가 지금까지 반대를 받으면서도 이 길을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건 다 지나가는 바람결과 같습니다. 하나도 내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자극을 못 줍니다. 그런데 마음의 문을 열더라도 왈카닥 360도로 열 수 있기 때문에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마음을 잘 맞춰 줍니다. 그래 가지고 할머니가 오게 되면 그 할머니와 친구하고, 아주머니와 친구하고, 애들하고 놀고 다 그러는 것입니다. 예전에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면서도 아이들하고 놀 때는 유치원 선생과 같이 되어 가지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전부 다 잊지를 못 합니다. 그때 아이들을 가르치던 것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살던 생활은 영원히 남아집니다.
학교 생활을 보게 되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이 있지만, 제일 재미있는 시절이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유치원 시절, 초등학교 시절, 그 다음에 중고등 학교 시절로 갈수록 점점점 기억이 희미해집니다. 왜 그러하냐? 사랑의 감정이 갈수록 자기를 중심삼고 놀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대학에 가게 되면 전부 다 갈래갈래 갈라져 가지고 모래알 같이 됩니다. (233-139)
우리 욕심은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올라가고도 남아
우리 사랑의 마음에는 무한한 것을 품고도 남을 수 있는 보자기가 있습니다. 무엇을 봐서 알 수 있느냐? 여러분의 욕심을 보면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면 말이에요,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면 그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앉고 싶겠어요, 앉고 싶지 않겠어요? 어때요?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절대 중심자이시니까 누구든지 절대 복종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겠지만 그렇게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유명한 사람들의 부인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요. 남편이 될 사람이 훌륭한 학자라고 해서 떠억 시집가 보니까 공부밖에 몰라요. 그러면 재미있겠어요? “밥 가지고 와” 해서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까지 책상에서 먹습니다. 밥을 가지고 들어가면, “거기 놔! 나가”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루 이틀이면 괜찮지요. 일년장철, 사시장철, 생애장철 그렇게 될 때 그 여자가 행복한 여자예요, 불행한 여자예요?
교수들의 부인들 가운데 행복하다는 여자를 내가 별로 못 봤습니다. 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의 부인들을 잘 알고 있잖아요. 물어 보면, “재미가 무슨 재미예요” 하면서 문 총재가 한학자 총재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여편네들이 많더라 이거예요. 그거 불행한 거예요, 행복한 거예요? 불행합니다. 왜 불행해요? 밥을 못 먹어서 불행해요, 옷을 못 입어서 불행해요, 화장을 못 해서 불행해요, 무슨 보물을 못 구해서 불행해요? 그런 것들이 다 있지만 불행합니다. 왜 그래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나가도 그렇습니다. “나는 과장인데, 너희들은 내 말에 절대 복종해야 돼” 하면서 자세를 취하려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지옥에 가서 사는 것과 딱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래요? 언제나 과장이라고 높은 데만 있을 수 있어요? 과장도 누울 때가 있고 뒹굴 때도 있어야지요. 그 과원들하고 주고받으면서 저녁도 같이 하고, 술을 먹어서는 안되지만 술 먹는 건 사실이니까 술도 먹고, 뭐 이래 가지고 과장 다리도 차 보고 그러는 때도 있어야지요.
술이 하나 좋은 점이 있습니다. 술을 마실 때는 계급과 계열을 전부 다 극복해 가지고 졸장부가 위에 있는 사람의 무릎을 차더라도 무사통과입니다. 그런 면에서 술이라는 게 어떤 때는 필요하다는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 이상 되면 어때요? “아이고, 과장님! 나 궁둥이 대고 과장님의 무릎 위에 앉아 보고 싶어요” 할 수 있는 친구가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게 큰 궁둥이를 갖다 대더라도 천 년만에 갈라졌다가 만나는 동생을 사랑하듯이 안아 줄 수 있는 과장이 훌륭한 과장이에요, 위계질서를 망치는 과장이에요? 그런 환경에도 얼마든지 질서가 있을 수 있습니다. (233-142)
사람들이 사랑할 때 낮에 해요, 밤에 해요? 왜 웃어요? 이상하게 생각할 게 뭐 있어요? 장가가게 되면 첫날밤이 밤이에요, 낮이에요? 아침 먹고 나서 신방을 차려 가지고 몰아내요, 밤 12시 가까이 가서 몰아내요? 밤 12시 가까이 가서 몰아냅니다. 다 알면서도 부끄러워하고 있다구요. 주로, 사랑은 밤에 찾아가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하냐? 밤까지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부부가 밤에 사랑하는 것을 천하에 왕의 자리와 바꿀 수 있어요? 어느 누가 진짜 사랑하는 부부가 사랑하는 자리를 찾아가서 “야, 이 시간에 왕 자리를 줄게…” 할 때, 어떻게 해요? 사랑하는 자리에서는 그러한 제의가 있다고 해도 “조금만 기다리소” 하지, “예” 하고 뛰쳐나가요? 어때요? “기다리소” 할 수 있는 자리예요, 뛰쳐나가는 자리예요? “기다리소” 하는 자리입니다. 그걸 체험해 봤어요? 그 자리는 천하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왕좌의 아래서 하나돼요, 위에서 하나돼요? 왕좌의 위에서 하나됩니다. 사랑이라는 것에는 그러한 내적인 사연이 있습니다. 그게 왜 그래요? 그래야 세상나라 왕자들의 꼭대기에 서 가지고 하늘나라 왕자의 자리까지 올라가지요. 우리 욕심은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올라가고도 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올라가면 그 마음이 슬프겠어요, 기쁘겠어요? 그렇게 되면 그 마음의 문들을 열어 놓겠어요, 닫겠어요? 다 열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모든 소원의 성취다! 이제 나는 죽어도 좋다” 그러지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이구, 그 아무개 한번 봤으면 죽어도 좋겠네” 하는데,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을 표시하는 내용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만사형통했다” 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올라가 가지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게 되면 그 다음에는 “죽어도 좋다. 모든 것 다 잃어버려도 좋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구덩이에 떨어져도 좋다는 말 아니에요? 그렇게 올라갔다면 천년만년 상투 끝에서 살겠어요? 내려와야지요. 내려와야 둘이서 부둥켜안고 살든지, 살림살이를 하든지 하지요.
그래 가지고 일반 평민들과 더불어 화동하며 움직일 수 있는 가치의 내용으로써 주체권을 찾고 있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뭐예요? 돈 가지고 안 됩니다. 지식을 가지고도 안 됩니다. 권력을 가지고도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233-148)
자기를 주관하는 것이 문제
여러분이 참사랑의 이론을 알아요? 위하고 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파이프를 통해서 자꾸 투입하다 보니까 상대편이 자꾸자꾸 커 가지고 나중에는 나를 밀어 줍니다. 순환운동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운동법칙에 있어서 순환운동이 어떻게 벌어지느냐?
공기가 저기압이 될 때는 고기압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고기압이 찾아올 때 양반같이 어슬렁어슬렁 찾아와요, 어떻게 찾아와요? 최고의 속도로 찾아옵니다. 고기압이 생각할 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주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찾아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 간다” 하면서 그 가운데 산이 있든 뭐가 있든 전부 다 태풍으로 날려 버립니다. 그렇게 저기압을 찾아올 때는 무한한 힘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사랑을 중심삼고 저기압의 자리에 들어가면 고기압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논리가 있어요? 없습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릅니다. 그렇게 사랑도 흐르는 것입니다. 역사를 넘어서 흘러갑니다. 그래서 큰 강을 이룹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역사이래 제일 깊은 구덩이에 있더라도 사랑의 고기압이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의 세계에서는 투입해 가지고 마이너스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성인들이 당대에서는 전부 다 희생되었지만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올라왔느냐? 그것은 참사랑의 논리가 없으면 풀리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잊어버리는 것은 반드시 커 갑니다. 문 총재는 사랑 때문에 살아온 사람입니다. 참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몸을 투신해 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지만 그분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게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랑의 상대를 찾지 못하셨습니다. 그 상대를 찾아 이 땅 위에 정착지를 마련해 보자는 것이 문 총재의 소원입니다. 여러분도 그 목적을 위해서 전진해야 됩니다. 거기에 방해되는 무엇이 있다면 쓸어버리고 넘어가야 될 운명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233-150)
이제는 참된 시대가 왔기 때문에 여러분은 일대 정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생활 가운데서 참사랑을 중심삼고 내 몸 마음을 통일했느냐, 못 했느냐 하는 것을 스스로 자문자답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몸뚱이를 잘 알고, 몸뚱이가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참사랑에 하나가 되어 있는지 마음한테 물어 봐라 이거예요. 또, 참사랑에 순응할 수 있는 몸뚱이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못살게 했던 터전이 내 일신에 연결되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내 몸 마음이 절대로 하나 안 되면 안됩니다. 그 판도를 자손만대까지 연결하겠다는 답을 내려야 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답을 내리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답을 내려야 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사랑해야 됩니다. 참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영원히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마음을 보고 “마음아, 너 얼마나 수고했느냐”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역사시대에 타락한 인간을 따라다니면서 얼마나 상처를 받았느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역사적인 사람들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 “마음세계에 상처가 남아 있거든, 하나님이여, 용서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몸뚱이가 얼마나 유린했어요! 그 입을 비롯한 오관이 얼마나 제멋대로의 길을 갔어요? 자기 멋대로 말하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길을 중심삼고 별의별 놀음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몸뚱이의 파괴성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 년의 한을 풀기 위한 속죄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몸을 붙안고 하늘 앞에 기도해 줄 수 있는 나를 발견하지 않고는 몸 마음의 통일권을 찾지 못합니다.
몸뚱이가 모든 죄를 대해서 석고대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용서를 빌고 다시는 그런 길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정비의 시간이 없어 가지고는 몸 마음의 통일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것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주관하는 건 간단합니다. 그것은 시스템만 되어 있으면 간단하지만, 자기가 자기를 주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이 선생님이 도의 길을 닦아 나을 때의 표어였습니다. 자기를 주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33-167)
본향 집을 찾아가려면
여러분은 죄를 묻어 두면 안됩니다. 그것을 청산지어야 됩니다. 수속을 밟아 청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생애의 모든 것을 백지화시켜서 새로이 부활되어 에덴 동산에서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던 몸 마음이 완전히 참사랑과 하나될 수 있었던 본연적인 나라고 자각할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향에 못 갑니다.
여러분은 고향집을 찾아가야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본연적인 부모가 계시고, 본연의 우리 집이 있고, 황족권(皇族圈)의 생활을 중심삼고 만국을 치리할 수 있는 장자권 국가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곳이니까 그곳이 새로운 내 고향집입니다. 자기가 난 그 고향이 아니라 새로운 내 고향집이 그곳입니다. 그 본연의 집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고향에 돌아 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내 자신이 심신일체가 돼 가지고 통일권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얼마나 불쌍해요! 나를 만나 가지고 수십 년을 지나면서 얼마나 마음이 나한테 부대꼈느냐 이거예요. 불쌍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여러분이 키워 줘야 됩니다. 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거쳐 가지고 천대받고 가책 받은 마음입니다. 자유권을 박탈당한 한을 품고 나온 마음을 내 자신이 해방시켜 주는 결의를 해야 됩니다.
내 몸뚱이에 유입된 역사적인 모든 죄악의 근거지를 청산짓는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해방된 마음이 몸뚱이를 안고 용서의 기도를 드려야 된다구요. 석고대죄를 해 가지고 용서를 받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인류 전체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이냐? 새로운 본향 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본향 길을 돌아가기 위해서 선생님은 참부모의 자리에서 지금까지 악마가 저지른 모든 것을 수습하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다 해방시켰습니다. 그래 가지고 승리의 패권을 쥐고 환고향할 때, 모든 인류가 선생님을 따라서 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모든 사람을 자기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볼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낳고 사랑하던 그 사랑의 심정을 더듬어 여자면 오빠나 동생들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며 사랑하던 내용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처음에 만나는 여자라도 그 여자의 배후에는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게 나보다도 더 훌륭한 사랑과 역사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가치를 존중시해야 됩니다. 함부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들이 남자를 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 남자의 배후에는 태어날 때 일가가 기뻐하고 누나들이나 고모 혹은 아줌마들이 키우면서 들였던 정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가 갈 길은 뭐냐? 부부가 언제나 남편을 중심삼고 가서는 안됩니다. 남편의 욕망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데, 언제나 그러한 남편만을 중심삼고 가게 되면 아내가 섭섭해집니다. 아내가 시집오기 전에는 자기를 중심삼고 살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없을 때하고 다릅니다. 둘의 소유를 사랑의 배에 실어야 됩니다.
그렇게 부부가 하나되어 참사랑의 배를 타고 가는 데 있어서 소원이 뭐냐? 내 집이 억조창생들이 존경할 수 있는 집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집의 기운을 내 자신이 모아 가지고 대해를 거쳐 항구에 도달하기까지는 풍랑이 많습니다. 인생행로에는 여러 가지의 곡절들이 많습니다. 탓할 수 있고 저주할 수 있는 일들과 싸울 수 있는 일들이 많지만, 그 배가 파산하지 않는 한 가야 될 운명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되느냐? 하늘나라의 본향 땅에 도달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통일적인 사랑의 기반을 가정에서부터 닦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새로운 고향집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처리해야 할 문제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 아들딸을 낳아 10년 20년 지나 보면 그 아들딸을 천하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 아들딸은 하늘땅 앞에 모든 것을 계승한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233-168)
사랑의 태양과 같은 인간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그러한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며 지으셨습니다. 그 아담 해와가 완성되어서 하늘의 사랑에 일체가 되어 배에 사랑을 싣고 하늘의 상대목적세계(相對目的世界)를 향하여 역사시대를 거쳐왔다면, 우주가 그 배를 따라왔을 것입니다. 창조된 피조세계가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욕심부려 가지고 돈 모으겠다고 했댔자, 그건 일대의 욕심권 내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배를 타고 대해를 건너게 되면 따라오는 모든 만물들이 후퇴하지 않습니다. 지상에서 자기가 이룬 모든 만물의 인연 혹은 국가면 국가를 포함하여 인연되었던 모든 환경판도를 기반으로 해서 저나라에 가면 그것이 몇 백배 몇 천배 확대되어 보상을 받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영계에 가면 그런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사랑의 배를 타고 가면서 아들딸을 기르는 데 있어서 그 아들딸을 자기의 아들딸로 길러서는 안됩니다. 천지의 아들딸과 같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아들딸과 같이, 아담과 해와같이 길러야 됩니다.
이런 모든 인연을 갖추어 돌아가는데 몇 천년을 통해 가야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데는 한 집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만 하더라도 애급 땅을 찾아 들어갈 때 72명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6촌까지 되면 증조 할아버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됩니다. 그렇게 애급에 들어갔던 72명이 이스라엘 민족 60만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가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많이 번성하면 복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들딸을 중심삼고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자기가 칠팔십이 되면 4대 이상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야곱이 70문도를 중심삼았던 그런 수(數) 이상을 하늘나라를 향해서 편성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 각자의 가정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러면 그 종족은 어떻게 되느냐? 자기 종족만 위해서는 안됩니다. 세계의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전부 다 그렇습니다.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족을 더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가인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악마를 감동시켜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사탄이 다른 것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힘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에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위해주고 고생을 다하면서 1차 2차 탕감노정을 지나게 되면 자연히 상대편이 회심해 가지고 굴복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가정과 종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족이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희 가정만 사랑하지 말고, 인류의 가정을 너희 가정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전통의 역사를 남기고 가야 할 것이 앞으로 조상의 자리를 차지해야 할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니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조상을 섬기는 데 정성들여 왔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집니다. 조상을 섬기던 시대가 변해 가지고 자기의 후손들을 섬기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위하셨지요? 마찬가지로, 이제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주고 또 위해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같이 사랑할 수 있는 직계 후손들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딸을 선조보다 더 위대하게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조상의 소원입니다. 조상들도 그것을 바랍니다. 지금까지 생각할 때는 자기 아내나 아들딸을 자랑하는 사람을 팔삭둥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아들딸을 자랑하면 안되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지나갔기 때문에 남편은 눈만 뜨면 아내를 보고, 아내는 입만 열면 자기 남편을 자랑해야 되고, 남편도 자기 집을 자랑해야 됩니다. 앞으로는 인사가 그렇습니다. 새 시대에 우리 집의 인사는 달라져야 됩니다. 부부끼리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다 있지만 자기의 상대가 어머니의 전통을 이어받고 아버지의 전통을 받듯이 전부 다 “우리 내자는 이러이러하고, 어머니가 갖추지 못한 이 일을 오늘 이 가정에서 하는 걸 볼 때 우리 일가가 전부 다 협조해야 될 여성의 대표입니다” 할 때, 할머니도 “아멘” 하고 고모들도 “아멘” 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했어요? 며느리를 칭찬하게 되면 시누이들이 물어뜯고 야단했지만, 이제는 달라지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며느리가 집에 와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칭찬하고, 자기 남편을 칭찬하고 시누이를 칭찬할 수 있는 환경의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한 본연의 가정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침에 태양 빛이 살아 있다면 “너 태양 빛아, 땅에 비칠 때 어느 집부터 찾아가고 싶어” 할 때, 그 태양 빛이 우리 집부터 찾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만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태양 빛이 모든 생물을 자라게 해 가지고 천양(天壤)에 햇빛이 뜨게 되면 모든 나무 순들이 그 태양 빛을 향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태양과 같은 인간인만큼 나를 향해서 자라고 있는 모든 만물까지도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그 동네의 나무는 벌레도 안 먹습니다. 요즘은 밭에 비료를 주고 하더라도 여러 종류의 벌레들이 생깁니다. 앞으로, 사랑에 사무치면 벌레도 안 들어요. 나랏님에게 진상 드릴 것은 벌레도 안 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름을 안 주어도 잘 살 수 있습니다. (233-175)
가야 할 본향 땅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 아버지가 아담 해와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다 완성해야 됩니다. 그래서 대등한 자리에서 하나님 어전(御殿)에 가서 인사드리고, 역사적인 한의 모든 것을 풀기 위해서 기도하고,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로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한테는 나라가 없습니다. 나라가 있기 전에 민족도 없습니다. 민족이 있기 전에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기 전에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나라에서 싸워 가지고 통일의 기반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죄를 지은 곳에 가서 탕감을 해야 됩니다. 거기서 통일기반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덴 동산이 어디에 있느냐. 이 지구성이 에덴 동산입니다. 모든 가정들이 지구성에게 붙어 있기 때문에 참부모를 에덴 동산의 중심으로 삼아 가지고 거짓부모로 인해 뿌려진 모든 쭉정이를 깨끗이 잘라서 청소해야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전부 다 청산지어야 됩니다. 몽땅 한꺼번에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좌익과 우익을 수습해서 승리해야 합니다.
좌익과 우익이 어디서 생겨났느냐?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오른편 강도가 생겼고, 왼편 강도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바라바가 전권을 쥐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중심삼고 볼 때, 세계적인 판도를 닦아 놓은 민주세계가 오른 편 강도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좌익은 하나님이 없다고 한 왼편 강도의 대신입니다. 반드시, 역사는 그렇게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게 씨를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으로 종말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라바권은 뭐냐?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두 강도는 다 죽었지만, 살아 남은 것이 바라바였습니다. 그 바라바를 대표하는 것이 회교권입니다. 회교권이 이스라엘 7백 년 이후에 생겨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영토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살아서 모든 것을 정리해 가지고 지상에서 기반을 닦아야 했는데 그렇게 못 했기 때문에 다시 와서 그 뜻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이 이 땅에 와야 됩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익과 좌익 그리고 바라바권의 싸움을 수습해야 됩니다. 이제 이상적인 본연의 땅,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지배해 오던 사탄은 모든 권한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사탄권을 굴복시켜서 본향 땅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야 할 곳이 우리의 본향 땅입니다. (233-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