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유월이 월담을 한다 어제보다 커진 이파리의 박수 소리가 바람이 부는 쪽으로 터진다 울타리를 깁고 있는 덩굴장미 솔기마다 화장이 들뜬 얼굴들이 담장을 기웃거린다 당신은 내 심장이다 가슴보다 조금 높은 담장 유월이 몸을 털 때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마음들 마음을 준다는 것은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복기한다는 거 오르다가 떨어지고 꽉 잡은 손아귀가 맥없이 또 흘러내리고 붉은 질투가 수북이 떨어져 내리던 담장 아래 긴꼬리딱새가 알을 낳는 동안 당신 잠의 꼬리를 잘라 내 침목 위에 두고 밤새 가위눌린 심장 위에 담장을 세운다 한 뼘 더 자란 밤의 정원은 무성히 얼굴만 붉히고 숲들이 일제히 두 팔을 흔들어 초록의 가지를 켠다 먼 산에 얹힌 당신의 붉은 얼굴이 쑥스러워 눈을 감을 때까지 저녁은 초원을 부슬부슬 밟고 올라와 당신에게 닿지 못한 시간은 가시에 걸려 솔기마다 울음이 비어져 나오고 사유의 저쪽 붉은 울음은 담장을 타고 오른다 장미는 어떻게 흘러내리는지 몰라 월담을 꿈꾸는 나는 당신의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오를 굽이 높은 빨간 구두를 신고
—시집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 2023.9 ...................................................................................................................
담장 너머에 사랑의 뿌리가 있다. 까치발을 해도 들여다볼 수 없는 담장 안엔 숨겨진 사랑의 뿌리가 있다. 나는 월담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어떤 비밀의 화원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시적으로 잘 표현돼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어떤 소식이 들려올 때, 우리는 늘 미지에 대한 꿈을 꾼다. 그 꿈이 나를 슬프게 하고 또 나를 살게 한다. 장미는 무관심할 뿐이지만….
첫댓글 장미는 어떻게 흘러내리는지 몰라
윤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유월이 월담을 한다
어제보다 커진 이파리의 박수 소리가
바람이 부는 쪽으로 터진다
울타리를 깁고 있는 덩굴장미
솔기마다 화장이 들뜬 얼굴들이
담장을 기웃거린다
*정밀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탁월하네요
온새미로 회원님들 여러번 음미하고 표현의 기교를 배우세요.
추천합니다
구구절철 ㅈㅓㄹ ㅊㅏㅇ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