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포의 기억 [문정희]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막내딸과 퓰리처상 사진전시회와 뭉크전을 보고 왔다.
슬프고 경건한 그림 한 점과
슬프고 경건한 사진 한 점이
우리에게 어떤 인생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인지 보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사진은 전쟁과 테러, 홍수, 화재 등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이지만
그 순간의 진실과 인간의 마음, 표정, 인간애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대개는 슬픔과 좌절과 절망과 공포와 고통이 느껴지는 사진들이다.
사진을 찍는 기자들의 사명감은 돋보이지만 그 순간의 슬픔과 고통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아, 차라리 찍지 말 것을......
뭉크는 노르웨이의 화가로 '절규'로 잘 알려진 편이다.
그림속에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과 이별, 고통, 외로움,번뇌 등이 묘사되었고
한마디로 이것이 인생이다,였다.
많은 그림중에 눈에 띄는 그림이 '바닷가의 젊은 여인'이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서 이 한 장의 그림엽서를 샀다.
바다를 바라보며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을 바라보는 여인,
아마도 이것이 인생일까,를 사색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젊은 여인도 곧 슬프고도 경건한 손으로 먹이를 위해 겸손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