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좋은 권사님
음력 11월 9일, 귀빠진 날이다. 기억하고 축하 사연, 선물, 전화, 축하 금을 보낸 분들이 고맙다. 교회 앞 골목에서 두암동으로 이사 간 권사님(86세)도 챙기는데 막내는 여친 생일만 기억한다. 권사님 문자였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늘 생각하고 보내주신 서당골 생명샘 잘 읽고 있네요. 바쁜 사역이 즐겁고 행복하게 보여요. 생신 때 먼저 약속 잡아 놓으세요. 제일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것 대접하고 싶어요. 연락 주세요.’ ‘예 권사님, 고맙습니다. 잘 계시지요. 어김없이 기다리고 계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아내와 상의해서 전화드릴게요. 권사님 만남이 기대됩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10년이 흘러도 명절과 생일에 목회자 섬기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정한 날, 교회 달력과 작은 선물 준비하여 대문 앞으로 모시러 갔다. 거동이 불편하여 아내가 팔짱을 끼고 차에 태웠다. ‘목사님, 다리가 부었어요. 남 귀찮게 해서 어딜 다니지 못하겠어요. 오늘 특별한 날, 최고 맛있는 것 먹으러 가시지요. 돈 아까워 마세요.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를 굶는다더니 점심도 안 먹고 기다렸네요. 옛날 할머니가 옥수수 씨앗과 상추씨를 들이면서 내년에 이것을 심고 죽을 것인가 모르겠다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건강 상태가 안 좋아 목사님 생신 함께 할 날이 올해가 마지막 될지 모르겠어요. 늘 초조한 생각이 들어 하루 종일 경로당에서 삼봉 치고 왔어요. 목사님, 비밀인데 10년간 67만 원 땄어요. 놀아 삼아 치는데 많이 잃은 날은 3백 원, 표 잡으면 상대방이 뭘 들고 있는지 알기에 따먹어요. 화투판에서 싸운 노인 있어도 난 절대 안 싸웁니다. 싸우면 손해거든요. 딴 돈을 기록해 놓은 일도 재밌어요.’ 계속 횟집을 선호했지만 나이 드신 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굴비 정식 집으로 갔다. 분위기 좋은 한옥 식당 만찬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보리 굴비 냄새 싫다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치아가 부실하여 청국장에 밥 말아 드시며 대접이 시원치 않다는 거였다. 결혼할 막내 시동생 딸이 찾아와 손아래 시아재 식당 간 이야기를 꺼냈다. ‘육사 2학년 때 광주여고 출신 퀸과 연애하다 중퇴했어요. 아들 둘 낳고 살다 부인이 마흔다섯에 위암으로 죽었어요. 그 후 18살 아래 식당 아주머니와 눈이 맞아 살았지요. 둘째 아들이 그때 충격받고 나가 생사를 모르네요. 수입산 염소 고기 양을 많이 준다는 소문에 유명해져 돈을 쓸어 담는데요. 그 집 자식들은 아파트 하나씩 사 주었데요. 계산대 맡은 시동생이 시장도 보러 다니지만 자기 아들 손자는 용돈 한 닢도 못 준대요. 5만 원도 유도리 있게 못 쓰나 봐요.
완전히 식당 머슴으로 여자에게 쥐어 살아요. 나중에는 꿩 떨어진 매 같을 것인데 그걸 몰라요. 이번에 시집갈 조카랑 그 식당 갔는데 인사도 안 하더라고요. 나 죽으면 올지 모르겠네요. 우리 3층 집 매매한 일로 틀어져 말도 안 하고 사네요. 뚝보 시아재로 그렇게 생겼어요. 막내 동서도 인사성이 없어요. 대구에서 제일 부잣집 아들에게 딸 여운다 해도 전화 한 통 없어요. 30년 선생질했지만 그 모양이어요. 집이 다섯 채고 공주처럼 생겨도 우울증을 앓은 것 같아요. 그래도 서운하데요.’ 권사님 둘째 딸 시집보낸 이야기를 이었다. ‘상고 졸업하고 삼성 비서실에 근무했어요. 사위 될 집안이 가진 사람들이라 싫었어요. 그때는 믿음이 없어 궁합을 두 번 봤어요. 둘 다 아니라는데 그 집 어른이 우리는 예수 믿어 그런 것 필요 없다고 데려갔어요. 결혼식 비용도 그 집에서 댔어요. 작은 엄마가 그러데요. 3개월 살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진다고.. 딸이 신랑 따라 미국 가서 3년간 오도 가도 못하고 말이 안 통해 외톨이로 고생 많았어요. 지금은 대접받고 살지만 그때는 목회자 집안이라도 힘들었어요. 손녀가 미인대회에서 진으로 뽑혀 여러 한복 입고 찍은 사진 보면 누가 딸인지 손녀인지 모르겠어요. 돈이 있어 꾸미고 살데요. 얼마 전 사위가 다녀갔어요. 힘들게 저녁상을 차려 줬더니 최고의 밥상 받았다고 딸에게 자랑하데요. 모처럼 옛날이야기하며 새벽 3시에 잠들었네요. 언제 볼지 모른다며 용돈 2백만 원을 놓고 갔어요. 딸도 연말에 다녀갈 것 같아요. 인천 동생 아파트 문제 해결하려고요.’ 딸은 어머니 섬기는 손이 더 크다. 공직 생활한 아들이 별걸 다 택배로 시켜준 이야기, 장남과 같이 산 말씀을 거미줄처럼 이어 내셨다. 일어서며 쓰잘데기 없는 소리 했어도 속은 시원하고 마음 편하다고 하셨다. 집에 들어가서 보낸 문자다. ‘목사님, 오늘 즐거웠습니다. 너무 반갑고 행복했어요. 진심으로 생신 축하합니다. 받은 선물 맛있게 먹을게요. 해동하면 따스한 봄날 다시 만나게요. 그때 회 맛있게 사 드릴게요.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 섬김 너무 아름답습니다. 매년 생일을 기회로 여겨 베푸신 밥상, 고마울 뿐입니다. 빚진 자로 사는 것 부끄럽지만 기도로 보답할게요. 제 손길 필요하면 함께 해 드릴게요. 연락 주세요. 불편한 중에 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 파이팅!’ ‘목사님! 파이팅입니다. 기도 감사합니다. 다정한 목사님 또 만나고 싶어요.’ ‘권사님이 더 다정다감하고 인정 넘치세요. 문학소녀! 아무쪼록 건강 유념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긴 밤 기독 방송으로 믿음 생활한 입담 좋은 권사님, 예배당 출입할 힘 얻게 기도한다.
2022. 12. 10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