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만큼 팬덤이 깊고 흥미로운 중국역사도 적지만 현상태에선 너무 토론이 개판이 진행되어 있어서 교통정리 겸 글하나 쎄웁니다.
운영진의 재량을 동원해 강제로 토론의 주제를 고정하는 방식까지는 동원하고 싶지 않고, 또 델카이저님의 그간 행적을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도 없겠다 싶어서 일단 권고 수준으로만 하나씩 주제를 다루며 현 상태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제가 일단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또 근본적인 토론의 쟁점은 '헌제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위나 황위계승에 대한 일반론은 있습니다. 허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또 케이스바이 케이스긴 합니다.
일반적으로 전대 지배자가 결정하는 지분이 있고 지배자를 추종하던 기존의 권력층이나, 또는 특정한 목적이나 사정으로 키워진 신규 권력층들이 적당히 주판알 튕겨가면서 타협을 보는 지분이 있지요.
왕권이 강하면 앞쪽 지분이 늘어나고, 신권이 강하면 뒤쪽 지분이 늘어나고.
전대 지배자가 미처 후계를 지목하고 지지를 다져주기전에 급사해버리면 뒤쪽 지분중에서 또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거꾸로 모종의 이유로 지배자를 추종하던 권력층이 박살나버리면 그 자리를 새로운 권력층이 들어서서 지배자와 파워게임을 하고....뭐 대충 그런식입니다.
델카이저님이 지적 하셨듯이 후한이나 중국의 황위계승또한 일반론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적서를 가리지 않고 전임황제의 아들이 계승하고 역상속을 하지않고 등등.
물론 헌제는 이 조건만 보자면 일반론에 부합하는 상식적인 계승을 한 황제입니다.
소제의 후사는 없었고 소제의 이복동생으로 영제의 아들이었으니까요.
허나 여러사람들이 누차 지적하셨듯이 문제는 동탁의 존재입니다.
두씨나, 양씨같은 외척들 또는 환관들이 서로 왕좌의 꼐임을 하면서 어린 황제를 등에 업고 전횡을 부리고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던 시대였습니다만.
청류파 선비님들에게 개똥같은 세상으로 보였을지언정 당시 한나라 사람들에게는 '정상은 아니지만 정치라는 현실 앞에 익스큐즈블 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두씨일가가 숙청 당할때도, 양기가 질제를 죽이일때도, 양기가 환제에게 숙청 당할때도, 이응과 두무가를 필두로한 청류파 선비들이 당고의 화를 입을때도, 권력암투의 피바람은 수도안에서만 일어났지요.
그러나 질제를 독살한 양기 정도를 제외하면 누구도 동탁과 같은 레벨의 폭거를 감행한 적은 없습니다.
(양기도 환제가 질제보다 윗 항렬이라 역상속 문제에 걸리자 청류파 선비들에게도 인정받던 거물 조등과 손을 잡은 뒤에야 비로소 환제를 옹립할수 있었지요.)
1.일개 변방의 군벌이 무력을 앞세워 수도로 입성해서,
2.전임 황제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라는 꼭두각시를 옹립했으며
3.그것도 모잘라서 자신에게 판세가 불리해지자 폐황제와 폐황제의 친모를 살해합니다(!!)
그렇다고 소제가 딱히 정통성이 딸리느냐. 그런것도 아닙니다.
소제야말로 헌제에 비해 델카이저님이 말하던 장남에, 정실부인 태생에, 영제 생전에 정식으로 태자->황위계승의 코스를 밟은
'일반론'에 합당하게 즉위한 황제였습니다. 백치 정박아도 아니고 싸이코 패스도 아니었어요.
이건 앞서서도 얘기한 그나마 '개똥같아도 익스큐즈블하게 돌아가던 판세'를 부수는 폭거입니다.
3번까지 갈것도 없이 2번 단계에서 이미 전국에서 들고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실권이 있었느냐? 제가 리플로 달았었습니다만.
꼭두각시로 옹립된 황제한테 실권이 있으면 그게 이상한겁니다.
동탁이 살해당하고 그 밑의 군벌들이 무렵을 앞세워 이합집산을 벌이는 와중에
헌제는 심지어 가지면 매력이 올라가는 옥쇄같은 아이템쯤으로 인식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요.
물론 사람사는 세상에 늘 그럿듯이 이렇게 초라해진 헌제에 대한 입장은 다양했겠지요.
유비나 유우같이 어쨋건 황제로 인정하고 옹호하는 축도있었고.
원술이나 원소처럼 안팎으로 음흉한 생각하는 축도 있었고.
조조처럼 이용해서 뽑아먹으면 족하다 정도로 접근한 축도있고.
유언이나 유표처럼 '그게 뭔 상관?'하면서 자신의 임지나 지키며 유유자적한 사람도있었습니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문제의 포인트는 이겁니다.
소제가 만약 후사 없이 유고했다면 그 때 계승권은 종법에 따르면 헌제에게 가까운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동탁의 폭거가 헌제의 '일반론적인 정통성'에 엄청난 데미지를 줬습니다.
이 주장을 반박하시려면 황건란때까지만해도 표면상으로나마 중앙정부의 아래에 있던 통제권이 동탁의 헌제 옹립이후 완전히 거덜나다 못해 중앙정부에 칼을 들이미는 수준이 된 걸 설명하셔야 합니다.
청류파의 가면을 쓴 정치꾼 원소가 장홍처럼 청류파의 선비로 신망있던 사람을 앞세워서 반역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려고 하는데 원소나 장홍이 두고두고 까이지 않고, 장홍은 오히려 '기개있는 선비' 같이 죽은후에도 칭송받는 상황도요.
헌제는 종법상 하자가 없지만 동탁이 나쁜 새끼고, 황건란 데미지가 크니까....정도로는 설명이 미흡합니다.
첫댓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우의 정통성은 헌제보다 대단히 약하며.....해서 그걸 시도한 원소의 행태는 정치력이 다소 부족한 실수였던 건 맞으나.....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있어서 원소가 적어도 유우 옹립 건으론 그렇게 심각한 비난을 받을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 이 정도로 정리하면 되는데, 어쨌든 헌제의 정통성에는 전혀 금간 게 없으니 원소는 그 실수 방면에서 봐도 슈퍼 또라이다.....이걸 왜 그렇게까지 고수하셔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여러 부분에서의 논점도 때문에 묻히고 있죠. 이렇게 하시면 결론 나기 어렵습니다.
원소가 슈퍼 또라이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라, "유우의 옹립이 나름 합리적 이유를 가진 선택 중 하나였을 뿐이다."가 아니라는 겁니다.....-_-;;;; 엔하식 서술은 원소는 단지 헌제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기에 유우의 옹립이라는 옳은 선택을 했다는 식이고 전 전 유우 옹립이 정당하다는 전제인 헌제의 정통성은 딱히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델카이저 정통성이 문제가 있다, 내지는 파고들 여지가 충분하다. 정도로 각기 다른 두 연합군이 동시에 판단해서 유우 추대하러 갔는데 뭔 수로 사서 기록까지 부정해가며 '정통성엔 문제가 없었다'라고 반복만 합니까. 말을 하면 좀 들으세요. -.-
예 그렇습니다.
애당초 당시에 헌제에 대한 정치적 스탠스는 다양했고 원소를 절대선이라고 지지하는 사람은 카페엔 한사람도 없거든요-.-; 이러니 허수아비 때리기 소리가 나오는 판국입니다.
@델카이저 중앙정치판과는 전혀 인연이 없던 일개 군벌이 무력을 앞세워서 종법상, 그리고 현실적인 면에서-말씀하신대로 바보라던지 싸이코라던지- 결격 사유가 전혀 없던 황제를 쳐죽이고 옹립한 황제가 정통성에 딱히 문제가 없다고요? 양기의 깽판도 양태후가 있었고 청류파로부터 조차 인정받던 거물 환관인 조등이랑 손을 잡았으니까 가능했던 겁니다. 그래도 끝내는 환관의 힘을 빌을 황제의 친위쿠데타로 숙청되었지요. 동탁에게 이런게 있나요? 이건 민주주의 사회에 비유하면 쿠테타급으로 임팩트가 있는 사건입니다.
이걸 증명하시려면 설명이 더 필요할겁니다.
원소가 유유를 설득하기 위해 보낸 것은 장기이고, 장홍은 다른 연합군의 맹주로 추대되어 별개로 유우를 추대하려 시도합니다. 그러니까 아예 유우 추대를 시도한 정치집단이 하나 더 있다는 말이죠. 더군다나 장홍은 원소에 뒤지지 않는 명사인 장막 쪽 라인입니다. 하튼 장홍이 죽어서 의인으로 적혔다는건 유우 추대가 과연 흠집으로나 여겨질 이벤트였는지 회의감을 느끼기에 더없이 충분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