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풍무(159)
[저들은 영수(靈獸)들이다]
한번 무너진 제방은 물이 다 빠질 때까지 복구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지금 칠파연합맹이 그 꼴이었다. 오십 년간 심혈을 기울여 길렀던 천붕멸인은 구천마검 석두와 대결했던 종남파 무인을 제외하고는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종남파 무인을 없앴던 구천마검도 공동파 천붕멸인과 싸우고 있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천붕십일천마 다섯 명이 칠파연합맹 진중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기어검술의 경지에 이른 초극 고수들의 싸움.
그 영향권에 들기만 해도 일반 무인들은 갈가리 찢기고 만다. 더구나 천붕십일천마는 반탄력에 의해 물러설 때도 그냥 물러나는 법이 없다. 본인들의 무기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칠파연합맹 무인들을 도륙한다. 칠파연합맹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제기랄! 방법을 찾아라! 가운회, 돌파구를 찾으란 말이다!”
전면을 쳐다보던 가운회의 얼굴이 일순 환해졌다. 인마불거 위에서 지휘하는 두 여인이 그의 시야에 잡혔던 것이다.
“귀광두의 유일한 약점!”
뒤편을 흘끔 쳐다보며 가운회는 중얼거렸다. 화산파에서 길러낸 천붕멸인과 백중지세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귀광두, 그를 가리켜 묵안혈마라 했다. 이곳에 있는 천붕십일천마의 수장이라는 의미다. 아니, 과거 천붕회 무인들을 지휘하는 자가 바로 그인 것이다.
“좋다. 너희들을 먼저 잡은 다음 전세를 뒤집겠다.”
내심 결정을 내린 가운회는 인마불거까지 거리를 쟀다. 지금 있는 곳에서 보면 대략 삼십 장. 세 번의 도약이면 도착할 수 있다. 단전의 내공을 바닥까지 끌어올린 가운회는 근처에 있는 공동파 문주인 운현도장과 아미파 문주 복호신니에게 전음을 보냈다.
갑자기 들려온 전음에 흠칫 놀란 얼굴을 하던 두 사람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한다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 방법이 유일했다. 이번 전쟁에서 지면 어차피 목숨을 연명할 수도 없다.
수많은 제자들의 제사를 지내며 남은 일생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갑시다!]
자하검을 치켜든 가운회는 전력을 다해 바닥을 찼다. 비스듬히 날아오른 가운회의 신형이 인마불거를 향해 비호처럼 날았고, 그와 동시에 두 곳에서 복호신니와 운현도장이 솟구쳐 올랐다.
각 파의 문주답게 그들의 경공은 대단했다. 일거에 십여 장을 날아간 세 사람은 아래쪽 무인들의 머리를 부수며 재차 몸을 도약했다.
“막아랏!”
아래쪽에 있던 개방 무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지면을 박차고 올라 가운회를 향해 뛰어들었다.
“자하섬광우(紫霞閃光雨)!”
“복호대라파(伏虎大羅破)!”
“개천풍운조(開天風雲爪)!”
“크아악!”
“아악!”
“으악!”
십여 명의 무인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추락했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가운회의 자하검에서 튀어나온 자색 광망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개방 무인 세 명의 목을 훑으며 지나갔고, 복호 신니의 장력은 소림 승려 두 명의 가슴을 으스러뜨렸다. 갈고리처럼 구부린 운현도장의 손에 스친 팽가 무인 네 명의 머리가 폭죽 터지듯 터졌다.
세 문주의 활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타핫!”
날카로운 기합을 지른 가운회는 떨어지는 시체를 차며 전면으로 튀어 나갔다. 뒤이어 두 문주도 가운회와 마찬가지로 아래로 떨어지는 시체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군주님이 위험하다!”
“주모님이 위험하다!”
모험의 효과는 금세 드러났다. 칠파연합맹을 정신없이 몰아치던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인마불거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칠파연합맹은 한순간에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숨통이 트였다고 하여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주들이 모험을 해서 얻은 기회가 아닌가. 지지부진하던 칠파연합맹 무인들은 물러나는 천붕회 소속 무인들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크악!”
“아악!”
무림인들의 싸움에서 한순간의 틈은 국면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란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외부에는 이기어검술을 구하는 초극고수들이 대결을 펼치는 상황.
문주가 안쪽으로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십여 장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그들을 뚫고 나갈 자신이 없었던 칠파연합맹 무인들은 본능적으로 인마불거를 향해 쇄도 해 들었다.
분노한 그들의 검은 천붕회 무인들을 향해 무차별하게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는 천붕회 무인들의 시체가 사방에 쌓이기 시작했다. 다시 몸을 돌려 칠파연합맹 무인들을 막아 보려 했으나 불처럼 타오르는 그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지금은 몰락했다고 하지만 과거 그들은 강호 지배자였고, 지난 오십 년간 칼을 갈았던 자들이 아닌가. 처음 시작부터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주하연과 천붕십일천마의 활약으로 인하여 천붕회 측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었던 거였다. 천붕회에 속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싸움에는 초보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들의 귓전에 뾰족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광풍성 무인들은 길을 터라!”
위기의 순간에 터져 나온 주하연의 외침. 광풍성이란 한마디가 중인들의 귓전으로 선명히 박혀 들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릴 믿어라! 광풍성은 천하제일이다!”
이어지는 설련의 외침은 구원의 빛이었다. 그녀의 고함이 들리자마자 세 문주를 막기 위해 몸을 날리던 무인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길을 터 주었단 말이더냐!”
인마불거 앞까지 텅 비어 버린 공간을 보며 가운회는 광포하게 고함을 내질렀다.
가장 치열해야 할 십 장 공간이 무인지경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달갑지 않았다. 이제 스무 살도 되지 않는 계집들의 외침에 자리를 피해 버린 천붕회 무인들 때문이었다.
묘한 감정이 불쑥 솟구쳤다. 절대적인 믿음이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방금 계집은 개방, 소림, 하북팽가나 천붕회가 아닌 광풍성이라 했다. 그런데 누구도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광풍성이란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무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할 수 없이 기분이 더러웠다. 그들이 광풍성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곳이 칠파연합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하지만 네년들이 살아야 광풍성을 만들 수 있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이다!”
재차 고함을 지르며 가운회는 지면을 사정없이 차댔다. 화산파 최고 신공인 자하신공(紫霞神功)을 끌어올린 가운회의 몸은 자색 광채를 사방으로 뿌렸다. 자하검을 번쩍 치켜든 가운회는 진득한 살기를 머금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의미 없는 짓!”
기이하게 변해 있는 두 여인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묘한 자세와 머리까지 백발로 반한 채 이편을 노려보고 있는 두 여인. 상당한 무공을 익히고 있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많이 먹어 봐야 수무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얼굴이다. 그동안 내공을 쌓아 봐야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생각에 그녀들을 무시했다. 더하여 화산파의 제일신공인 자히신공과 자신의 내공을 굳게 믿었다.
오 장여를 남겨 둔 시점에서 가운회는 다시 한 번 지면을 차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좌우에서 따라붙었던 운현도장과 복호신니도 전 내공을 뽑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일거에 오 장 높이까지 올라간 삼 인은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인마불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일순 인마불거 주변에서 일던 병기 소리가 뚝 그쳤다.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칠파의 문주 삼 인이 동시에 합공을 하는 상황이고 그들 전면에는 나약해 보이는 두 여인이 서 있다. 대결의 결과를 보기 위해 서로 싸우던 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멀어져 버린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무인들은 천둥 같은 고함 소리를 들어야 했다.
“천마파천수라무(天魔破天修羅武)!”
“빙백수라무(氷白修羅舞)!”
“고금오천무?”
두 여인의 고함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외마디 고함을 내질렀다. 새하얀 백색 강기와 검붉은 기운은 한때 고금오천무로 불렸고, 현재는 광혈지옥비에 이어 강호 무공 서열 이 위와 삼 위에 올라 있는 절대천무였던 것이다.
중인들은 경악한 얼굴로 주하연과 설련을 쳐다보았다. 나약해 보이던 그녀들의 몸에서 천무(天武)가 쏟아져 나올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중인들이 아무리 놀랐다 한들, 고금오천무의 표적이 되어 버린 당사자들만 할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자하검을 들어 올렸던 가운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제야 길을 터라 했던 외침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두 계집은 자신들보다 강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물러설 수도, 물러설 곳도 없다.
이를 악문 가운회는 전 내공을 자하검에 집중하며 광포한 고함을 내질렀다.
“자하섬광천(紫霞閃光天)!”
자하신공의 마지막 초식인 자하섬광천을 믿을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의 겨에 있던 운현도장이나 복호신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펼칠 수 있는 최고 무공을 시전하여 인마불거를 향해 뛰어들었다.
찌이익!
처음 충돌에 의해 나는 소리는 미약했다.
그러나 뒤이어 터지는 굉음에 지켜보던 중인들은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허공을 쳐다보는 그들의 시야에 엄청난 광경이 잡혀 들었다.
자색과 청색 광채를 무력화시키며 돌진하는 두 기운은 빙천수라마공의 얼음 창과 천마심공의 검붉은 기운이었다. 그리고 복호신니는 검을 뿌리지도 못한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서 주르르 피가 흘러내리는 순간, 처절한 비명 소리가 양약평에 메아리쳤다.
“으아악!”
“크악!”
가운회와 운현도장의 신형은 인마불거를 향해 다가설 때보다 더 빠르게 다시 튕겨 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숨통이 끊어진 상태. 오 장여를 날아가던 두 사람의 신형의 주춤 멈췄다. 바로 그 순간 두 줄기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그들을 향해 날았다.
인마불거에 있던 주하연과 설련이었다. 가공할 속도로 가운회와 운현도장 곁으로 다가간 둘은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어 시체가 되어 버린 가운회와 운현도장의 목을 향해 사정없이 그었다. 가운회와 운현도장의 목이 지면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두 여인은 중이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광풍성 무인들은 적을 섬멸하라!”
“와아! 죽여라!”
또 한 번의 반전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제는 광풍성 무인이라 불리게 된 세 곳의 무인들은 몸을 도려 칠파연합맹 무인들을 향해 봇물처럼 밀려갔다. 여전히 그들은 복호신니의 목에 꽂힌 검의 주인이 유몽이란 사실을 확인하제 못한 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복호신니의 시체를 팽개친 유몽은 인마불거로 돌아온 주하연과 설련을 감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 순간에 광풍성의 존재를 세 곳 무인들에게 심어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녀들은 전쟁을 이용해 개방, 하북팽가, 소림을 완전히 하나로 묶어 버렸다. 광풍성이란 이름 아래. 소림에서 시작된 인마불거의 목적이 비로소 달성된 순간이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 숲에 있는 녹림수로채까지 완전하게 하나가 되어야만 광풍성은 천하제일이 됩니다.”
주하연은 오른편 숲을 가리켰다. 잠영오살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두 개의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그곳에 두 세력이 은신해 있다. 뒤쪽의 높은 봉우리에는 북황련과 남천벌 무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고, 앞쪽의 낮은 봉우리에는 그들을 막기 위해 녹림수로채 무인 천여 명이 은신해 있다.
그 녹림수로채의 말단까지 광풍성의 일원이 되어야만 군림을 위한 밑그림이 완성된다.
“지금부터는 시간을 끌라고 하세요. 어두워질 때까지.”
차가운 미소를 문 주하연은 잠영오살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존명!”
짧게 소리친 다섯 명의 잠영오살은 사방으로 몸을 날려 사라져갔다.
“밤이 되어야만 오늘 전쟁이 마무리됩니다.”
어둠이 밀려오는 주변을 보며 주하연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기다린다는 건 초조한 일이다.
더구나 일상적인 기다림이 아닌 전쟁을 치르기 위한 기다림은 피를 말린다. 허공으로 치솟는 목, 팔, 다리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붉은 피.
그것은 마약 같았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눈에는 핏발이 선다. 불끈 틀어쥔 주먹에서 땀이 흐르고, 소름 돋은 몸은 끊임없이 떨린다. 진정시키기 위해 길게 심호흡을 해보지만 잠깐 동안의 평안을 제공할 뿐, 또다시 심장은 폭발적으로 뛴다.
지금 양약평을 쳐다보는 북황련과 남천벌 무인들의 모습이 그랬다. 그들은 두 가지 감정의 혼재로 인하여 더욱 힘들어 했다. 싸움 현장에 뛰어들고 싶다는 욕망과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심할 터였다.
천붕십일천마.
그들의 수장이라 불리는 묵안혈마에 대한 공포였다. 소문으로 들었고, 소림에서 도망쳤던 자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의 한결같은 말은 절대 마주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를 보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그들을 비웃었다. 인간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느냐며 비난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그의 모습은 들었던 말에 비해 전혀 과장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부족했다.
귀광두는 천하제일인이었다. 거대한 철벽이었다.
그러한 심정은 북황련 무인들을 이끌고 온 악봉이라 하여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부하들과는 조금 달랐다.
“제기랄!”
양약평을 쳐다보며 악봉은 낮게 욕설을 뱉어냈다. 서로 난전을 치르는 듯 보였지만 칠파 무인들은 유린당하는 상황이다. 단 한 번의 우세를 점했을 뿐, 그 뒤로는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개개인의 무공뿐만 아니라 싸움 방법에 있어서도 천붕십일천마는 천하제일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주?”
그때 옆에서 악봉의 상념 속으로 나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는 남천벌 독각 각주인 잔결독마 단염이었다.
“글쎄요, 저놈 때문에 투입 시기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밤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소이다.”
어색한 얼굴로 악봉은 말했다. 그가 가리킨 사람은 다름 아닌 백산이었다. 백여 장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세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버티고 있는 이상 부하들은 그를 지나쳐 갈 생각을 못할 것이다. 아니, 귀광두를 지나쳐 갔다 하더라도 뒤쪽에 가공할 고수를 두고 누가 공격을 감행할 수 있겠는가.
“그때까지 부하들이 버텨 줄는지 모르겠군요.”
단염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의 혼재로 힘들어 하고 있지만 부하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두려움이 되었건, 싸우고 싶다는 욕망이거 간에 지금 상황에서 공격을 해야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그 흥분이 가라앉으면 두려움만 남는다. 공격의 효과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는 터이다. 단염이 우려하는 것은 그 저이었다.
“그래도 기다려야겠지요.”
악봉의 중얼거림이 여운처럼 흘렀다.
밤을 기다리는 사람은 악봉과 단염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오십여 장 떨어진 낮은 봉우리에서도 연신 하늘을 쳐다보는 자들이 있었다. 북황련과 남천벌 무인들을 기다리는 녹림수로채 무인들이었다.
“사부, 기다리지 말고 그냥 밟아 버립시다.”
멀리 봉우리를 쳐다보며 거령은 말했다. 벌써 이곳에 한나절 이상을 머물고 있다. 이제는 좀이 쑤시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다.
“가서 밟아 주고 와라!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자근자근.”
거령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사진악은 제법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
“진작 그랬어야 했습니다, 사부. 대녹림수로채 아닙니까. 어디 북황련이나 남천벌 놈들이 무서워도 쥐새끼처럼 숨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한 천 명 되니까 한꺼번에 몰려가서 대갈통을.......”
신이 나서 떠들던 거령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사부를 비롯한 동생들 전부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 혼자 가라고?”
“밟고 싶다며?”
사진악은 재차 말했다.
“몇 명이라고 했지?”
고개를 돌린 거령은 독인마검 풍신웅을 보며 물었다.
“천 명!”
“좀 쉬었다가 하지, 뭐!”
한쪽으로 풀썩 주저앉으며 거령은 투덜거렸다. 거령이 입을 다물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참! 사부.”
이번에도 침묵을 깨트린 사람은 거령이었다.
“다녀와.”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저 괴물들 사람 맞습니까?”
멀리 양약평을 가리키며 거령은 물었다. 괴물이란 말 외에는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기어검을 성취한 고수를 다섯 명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다. 아침에 시작한 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거의 여섯 시진 이상을 싸우고 있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영수(靈獸)들이다!”
사진악이 짧게 말했다.
“영수? 그러니까 영험을 가진 짐승이란 말이지요?”
“맞다. 내단을 가진 것들을 우리는 영수라 부르지 않느냐.”
“내단(內丹)이라고요?”
경악한 얼굴로 거령은 소리쳤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일행 또한 부지불식간에 양약평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단이라니. 태양과 땅, 그리고 대기의 정기를 받으며 수천 년을 살아온 짐승의 몸속에 생겨나는 게 내단이라 했고, 무인들은 그것을 무가지보로 여긴다. 그런데 백여 년을 사는 인간이 내단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기절할 지경이었다.
“광혈지옥비를 지닌 묵안혈마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은 단을 형성하는 경지에 올랐더구나.”
사진악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팔십이 넘은 나이지만 그들의 강함이 부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고대 신가나 천가의 무공처럼 절대적인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다. 변형되었다고 하지만 하북팽가와 남궁세가의 무공을 익혔던 저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들은 그 무공을 강호 서열 삼 위로 올려놓는 것도 부족하여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 냈고, 그 무공을 바탕으로 단(丹)을 형성해 버린 것이다. 저들이 반노환동하게 된 이유가 바로 내단 때문이었다.
“금성아, 우리 사부를 바꿀까?”
셋째인 광혈마도 마금성을 향해 거령이 물었다.
“혹시 나중에 내단이라도 물려줄까 봐 그러쇼?”
“그러지 않겠냐? 어차피 죽으면 흙으로 들어갈 테고, 내단은 가져갈 수도 없잖아. 나이도 팔십이 넘었다는데 한 이십 년만 꾹 참고 기다리면........”
퍽!
“사부!”
“이 녀석아, 저들이 너보다 훨씬 오래 살아. 그러니까 내단 얻을 생각하지 말고 나나 잘 모셔, 임마.”
“노인네가 힘은....... 그나저나 강하긴 징하게 강하다. 내단도 없다면서.”
광혈지옥비를 휘두르는 백산을 쳐다보며 거령은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은 내단을 만들어 낼 정도니 그 강함을 인정하지만, 광혈지옥비를 지닌 백산에 대해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강할 수밖에 없다. 강해야만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니까.”
사진악은 백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결코 상대에게 밀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광혈지옥비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슬프게 보인다. 마치 한을 덩어리로 토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뇌성이 울 때도 그렇고, 빙천비가 하얀 입김을 토해낼 때도 그렇다. 그가 펼치는 초식 하나하나는 수천 철가인들의 한이다.
“준비해라.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전해 오는 기척에 사진악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백산을 향해 천리전음을 보냈다.
“거령아, 너는 저기 숨어 있는 담무광이란 놈을 잡아 와라! 단전과 이 없애는 것 잊지 말고.”
[백산, 그만 끝내라!]
전음을 받은 백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수고했다. 이제 저승으로 갈 때가 되었다.”
가슴팍이 온통 피로 범벅인 천붕멸인 다섯 명을 쳐다보며 백산은 나지막이 말했다.
“과연 천붕십일천마 수장인 묵안혈마요. 우리 다섯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무인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소.”
가운데에서 벌컥벌컥 피를 토해내는 자가 말했다. 천붕십일천마를 지치게 할 요량으로 시간을 끌었던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오히려 내공전이를 통해 이기어검을 얻었던 자신들의 몸에 먼저 이상이 오고 말았다.
처음엔 조화를 이루고 있던 각각의 내공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고, 급격하게 온몸을 잠식해 들어갔다. 균형을 이루었을 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마지막 한 수는 남아 있소이다.”
순간 다섯 명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흘러나왔다. 붉게 변한 눈과 울퉁불퉁 튀어나온 혈관들. 전 내공을 동원하여 몸을 폭발시켜 공격하는 폭렬공이란 수법이었다.
“지옥에서 봅시다! 크아아악!”
다섯 명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들의 몸 주변 십여 장은 진공 상태로 변했다. 순간 양팔과 양발을 동시에 뻗어내며 백사은 광포한 고함을 내질렀다.
“광풍무한!”
광! 과과광!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뒤집힌 땅거죽이 십여 장 높이까지 치솟아 올랐다. 하늘로 치솟았던 바위가 가루로 흩어져 내렸고, 뜨거운 열기가 확 끼쳤다. 후드득거리며 무수한 덩어리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동귀어진을 위해 자폭을 감행했던 천붕멸인 다섯 명의 육편이었다. 오 장에 달하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아이고!”
구덩이 속에서 풀썩 흙이 일어나더니 그 속에서 투덜거리는 백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섯 명이 펼치는 폭렬공은 백산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힘이었다. 광풍무한을 펼친 마지막 순간에 그는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백산을 끝으로 양약평 싸움은 끝이 났다. 천붕멸인 전원을 비롯한 팔백에 달하는 칠파 무인을 격살했고, 곤륜파 문주 태상노도를 비롯한 이백여 명의 무인들을 포로로 잡았다.
하지만 광풍성 무인들의 피해 또한 만만치 않았다. 칠파연합맹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망 이백 명에 부상자가 오백 명이나 되었다. 부상자들을 일일이 돌아보던 주하연은 인마불거 위로 올라가 차갑게 소리를 질렀다.
“태상노도를 비롯한 수뢰들은 목을 자르고 나머지는 단전을 파괴하여 풀어 주세요.”
일순 중인들은 놀란 얼굴로 인마불거를 쳐다보았다. 포로로 잡힌 그들을 다시 처형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처사처럼 느껴졌던 탓이었다.
“잔인한 게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광풍성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광풍성은 도전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풍성은 모욕도 참지 않을 것입니다! 광풍성에 도전하고 광풍성을 모욕한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대가는 목숨입니다. 우리 광풍성이 천하를 접수하는 그날까지 지금 이 율법은 변하지 않습니다! 십팔호위(十八護衛)는 집행하라!”
“존명!”
주하연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마불거의 십팔나한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수백 명의 무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칠파 수뇌 스무 명의 처형이 행해졌다. 태상노도를 비롯한 칠파 수뇌들의 처형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지켜보던 주하연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칠파 무인들을 향해 싸늘하게 소리쳤다.
“잘 들어라! 복수를 하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오십 년 전 너희들이 혈광마인이라 칭했던 그들은 황실을 구했던 충신들이었다. 그들을 무림공적으로 지목하여 떼거리로 공격했던 너희들이 과연 복수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조그마한 체구, 양약평에 있는 무인들 중 가장 나이 어린 사람, 그리고 여인. 그녀의 외침에 무인들은 숨을 죽였다. 중인들을 찬찬히 둘러보던 주하연은 재차 고함을 내질렀다.
“가서 강호 무림에 전하라. 광풍성이 강호 접수를 시작했노라고. 저기 죽어 가는 남천벌 잡것들에게 알리고, 저기서 죽어가는 북황련 잡것들에게 알려라. 그게 너희들을 살려 주는 이유다.”
칠파연합맹 무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 둘 양약평을 떠났다.
“석두야, 나 갑자기 하연이가 무서워진다.”
멀리서 주하연의 연설을 듣던 백산은 석두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지금껏 알고 있던 주하연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군주 교육을 받아 독립심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일 줄은 정말이지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원래 저 말은 형님이 해야 할 말이었소.”
감탄한 얼굴로 석두는 주하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광풍성이란 말 때문이었다. 한 달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녀는 네 문파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다. 강호 제일이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문파들을.
“그래도 갑자기 저러니까 무섭다.”
백산은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했다.
“참! 사진악을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형님. 그들은 그냥 둬야 합니다.”
“왜?”
백산은 의아한 얼굴로 물어다. 비록 하루 종일 싸워 힘이 빠지긴 했지만 녹림수로채 무인들을 돕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상당히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음에 분명한데 가지 말라니, 수긍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녹림수로채입니다. 앞으로 저기 있는 저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생활해야 하고요.”
“쿡! 저 여우!”
그제야 백산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진악에게 실력을 증명하면 광풍성에 넣어 준다고 했던 의미를 비로소 알 듯했다. 녹림수로채가 아무리 강한 전력을 지녔다고 해도 그들은 산적이나 수적일 수밖에 없고, 이곳에 있는 무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게 표현하는 이들은 없겠지만, 내심으로는 그들을 무시할 게 분명하다. 그들을 무시하는 생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주하연은 남천벌과 북황련 무인들을 녹림수로채에 맡긴 것이리라.
이곳에 있는 무인들 스스로 녹림수로채의 강함을 피부로 느끼게 하여 그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광풍성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잘것없이 보이던 불화가 나중엔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여간 앞으로 형수님께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그런데 살우는 어디 갔지?”
그제야 생각난 듯 백산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하루 밤낮에 걸친 싸움으로 몸이 정상이 아닐 텐데 소살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어디 갔겠소? 복수하러 갔지.”
“복수? 지가 무슨 원수 진 일이 있다고 복수를 하러 가?”
백산은 뜨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 게 있소. 형님도 아버지가 되면 알 거요.”
씁쓸한 얼굴로 석두는 소살우가 올라간 봉우리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 소살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붕멸인 다섯을 없앤 그는 피를 토할 정도로 힘들어 했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앉아 쉬지 않았다. 한 움큼 피를 토하더니 혈월을 안고 녹림수로채가 은신해 있는 숲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어딜 가냐고 묻는 자신을 향해 복수라는 짤막한 말을 남겼다. 백산과 주하연을 괴롭혔던 남천벌과 북황련을 치러 간 것이리라. 아니, 정확하게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복수라고 볼 수 있다. 여전히 소살우에게 백산은 형님이자 아들이다. 그런 녀석이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살수야, 활 가져와라!”
“형님도 가려고?”
“가 봐야지, 임마. 그래도 아버진데.”
석두를 향해 싱긋 미소를 던진 백산은 유몽이 가져온 맥궁의 시위를 먹이며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백산이 숲을 향해 몸을 날리는 그 순간, 소살우는 진득한 살기를 머금고 북황련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이 개잡것들이 떼거리로 귀광두를 공격했단 말이지? 그들이 누구인 줄이나 알고 공격했던 거냐! 그와 형수는 말이다!”
소살우 주변은 온통 붉은 혈기로 가득했다. 혈월의 붉은 달이 허공을 쓸 때마다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아악!”
“아악!”
“광마도다!”
“맞다. 내가 바로 광마도다. 백산 형님의........”
자신의 몸으로 쏟아지는 피를 그대로 맞으며 소살우는 정신없이 혈월을 휘둘렀다. 다섯 명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광풍도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빠른 경공을 펼쳐 사방으로 몸을 날리며 북황련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을 뿐이다.
휘두르는 게 아니라 그는 장작 패듯 북황련 무인들을 패고 있었다. 혈월의 도면은 상대의 머리를 파고들어 으스러뜨린다. 더 많은 피를 보기 원했던 탓이다. 깔끔하게 잘리는 모양새가 싫었던 탓이다. 왼팔이 없다는 게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왼손이 있으면 적의 목을 틀어쥔 다음 혈월로 썰어 버릴 수 있을 텐데. 그 점이 너무 아쉬웠다.
내상이 심해진 듯 단전 어림에서 미약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들인 소령을, 며느리인 주하연을 공격한 놈들을 없애는 일인데 그까짓 통증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퍽! 퍽퍽! 퍽!
“커억!”
“아악!”
그가 지나가는 자리엔 도면에 맞아 뭉개진 시체들이 즐비하게 생겨났다. 몸을 향해 들어오는 창은 아예 무시했다. 얼굴이 환해질수록 소살우의 행동은 더욱 잔인해졌다. 혈월로 팬 다음 쓰러지는 시체를 발로 찬다. 머리가 부서지고 몸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그들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뇌수가, 배에서 쏟아진 내장의 냄새가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광기였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광기, 살아난 자식을 형님이라 불러야 하는 자의 광기, 며느리를 형수라 불러야 하는 시아버지의 광기였다.
“크아악!”
소살우의 입에서 비명 같은 포효가 흘러나왔다.
“미쳤다! 광마도가 미쳤다!”
급기야 겁에 질린 산동악가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피와 내장을 뒤집어쓴 채 눈을 번뜩이는 소살우는 미친 자라 불러야 마땅했다.
그는 창이며 도를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몸으로 받아 내며 무작정 전면으로 치고 들어온다. 그런 다음 개 패듯 패서 무인들을 죽이고 있다. 미친 자가 아니라면, 살인을 즐기는 자가 아니라면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르르 물러나는 부하들을 보며 악봉은 해쓱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막아라! 놈은 내상을 당했다. 거의 움직일 수도 없단 말이다!”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보지만 이미 겁에 질려 있는 부하들은 듣지 않았다. 오히려 등을 도려 도망치는 자들이 더 많았다. 녹림수로채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하들은 그곳을 택하고 있다.
“당신이 강자라는 건 인정하오. 하지만 나 또한 약자가 아니외다.”
소살우를 쳐다보며 고함을 지른 악봉은 전 내공을 창에 집중하며 몸을 날렸다. 산동악가의 가주인 악봉은 결코 약자가 아니었다. 사황이라 불리는 팽월이나 위지천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십정은 상대가 아니라고 스스로 자부해 왔다.
강기를 가득 머금은 창이 상대의 가슴을 파고들자 악봉은 재차 단전을 긁어 내공을 끌어올렸다.
챙!
악봉의 창이 충격을 주었던 탓일까.
소살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 자세를 바로 한 소살우는 방금 창에 가격당했던 가슴을 쳐다보았다. 구멍이 뻥 뚫린 옷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살갗에 붉은 반점이 생겨나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악봉의 창이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는 의미였다.
제 자신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입 안으로 가져가며 소살우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악봉을 쳐다보며 소살우는 씹어뱉듯 말했다.
“잡놈!”
“헉!”
가공할 속도로 날아오는 소살우를 발견한 악봉은 헛바람을 들이켜며 창을 죽 밀어냈다. 다급한 순간이었지만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창에 전 내공을 싣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광마도 소살우를 막아낼지 그게 걱정이었다.
그의 우려대로였다. 악봉의 창을 겨드랑이로 흘린 소살우는 혈월을 쑥 내밀었다.
“컥!”
입 안을 파고든 붉은 도를 발견한 악봉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잡놈!”
낮게 소리치며 혈월을 한 바퀴 빙그르르 돌려 버렸다. 입을 기준으로 잘려 버린 악봉의 머리가 바닥으로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도 역시 소살우는 악봉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를 피하지 않았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 피를 받으며 전면을 노려볼 뿐이다.
“다 죽이고 만다! 오늘 이곳에 온 남천벌과 북황련 개잡것들은 전부 내 몫이다! 방해하는 놈들은 죽을 줄 알아!”
고함을 지른 소살우의 신형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십여 장을 이동한 소살우는 전면을 쳐다보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녹림수로채 무인들과 싸우는 많은 적들이 있었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뛰어들었다. 또다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악, 도망치지 못하게 해. 한 놈이라도 도망치면 죽여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란 말이야!”
혈월을 사방으로 휘둘러 적을 도륙하며 고함을 질렀다.
쉭! 쉭! 쉭식!
“컥!
“커억!”
“어떤 개자식이?”
뒤편에서 날아온 십여 대의 화살을 발견한 소살우가 휙 몸을 돌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럼 너는 개겠네? 어머니는 개 부인이었고?”
“씨팔!”
백산을 발견한 소살우는 나직한 욕설을 뱉어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잘읽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입니다
즐독 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