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침대 위에서 시체처럼 꼼짝 않고 누워있는 혜원.
천장을 쳐다보다 얼굴이 시뻘개진다.
짧았지만 방 안에서의 굿바이키스를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쥐구멍에서라도 숨고 싶었다.
혈은 혜원을 아기처럼 다루었다.
매사에 조심했고 신중했다.
자신이 아이취급받는단 생각에 왠지 화가 나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지금 혜원은 달콤한 재회를 상상하며 얼른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헤어진지 하루밖에 안됬는데...........'
어제 저녁 혈과 헤어지고 지금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서 보고싶다니.....
학교에 안간지 3일이 되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이렇게 심장 떨리면서 가슴 졸이는 것보다 지겨운 건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이들의 괴롭힘도 하나의 재미로 생각하며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 가는거야-!!"
교복을 챙겨입고 다른 날보다 여유롭게-두근거려서 일찍 깨어났으므로- 등교했다.
교실에 들어서자,군데군데 흩어져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혜원에게로 쏠렸다.
또 시작되는구나-
하며 아이들의 야유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다시 제 할일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왠일이지..?'
아이들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텅빈 비비의 자리가 신경쓰였다.
수업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뭐,항상 그랬지만 오늘따라 더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혜원은 투명인간처럼 지냈다.쉬는시간엔 할일없이 낙서나,음악을 듣고 또 머리를 내린 뒤에 휴식했다.
유리가 깨질 일은 없었고,아이들이 욕할 일도 없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다-
토요일이라 학교가 일찍 끝났다.
'휴..집에가면 또 뭘하지..'
혜원은 혼자 지내는걸 좋아해 친구가 별로 없었다.
중학교 땐 활발해서 친구가 많았지만,고등학교로 접어서부턴 친구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은 친구는 아진이 뿐이었지만,얼마전 자신을 외면하며 뒤돌아섰던 아진을 생각하니
가슴이 욱씬거렸다.
괜찮아,나에겐 비비와 혈.그리고 노헬과 노아,베베안.....새로운 인맥이 생겼잖아.
가방을 메고선 터덜터덜 교문 밖으로 향했다.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아이들이 자꾸 거슬린다.
---------------------
"혜원아,무슨 일 있니?"
우울해하며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혜원.
때때로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왜그래,혜원아.누구랑 싸웠어?"
"..아니요.."
"휴..."
방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걱정스레 혜원을 걱정하던 혜원의 친엄마 보금.
하지만 혜원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한다.
혜원이 학교에 간 시간.보금은 방청소를 하러 잠시 혜원의 방으로 들어간다.
허리를 숙이고 걸레질을 하던 보금의 눈에 무언가 포착된다.
책상 밑 불쌍하게 떨어져있는 일기장.
일기장을 읽는 보금의 눈에는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들어찬다.
"다녀왔습니다"
학교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혜원.
"..휴..혜원이 남자친구를 사귀었었나봐요..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은 모양이에요..
일기장을 읽었는데...많이 힘든가보네요."
보금이 남편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는다.
"엄마"
"혜,혜원아..여보 이따가 전화할께요."
"..내 일기장 읽었어요?"
"청소하러 들어갔다가..떨어져있길래 조금 읽어본거야."
"왜 읽어!!!!! 내 물건 왜 함부로 만지나구요!!!"
"엄마는 그냥..혜원이 마음을 좀 알고 싶어서..많이 힘들어 보여"
"상관하지 마-누가 힘들대?!!! 난 그런거 필요없어...."
"왜 상관을 안해,이수가 어떻게 한건데 엄마한테 다 말해봐."
"이름 말하지마....나한테 동정도 연민도 갖지마세요!!!"
"혜원아..!"
"엄마,나빠....아무리 그래도 허락은 맡고 읽어야되는거 아니야?!!"
"미,미안하다.."
쾅-
"혜원아,문 열어봐.엄마가 미안해!!"
***
"혜원아,엄마랑 아빠가 티켓 사왔어!! 우리 하와이나 갈까?? 응? 엄마랑 아빠랑 오빠랑 혜원이랑 가자!!"
"안가요"
"왜그래~티켓도 딱 세개란 말이야,재밌을 거야.가자"
"가기 싫다구요!! 제발,제발요.전 집에 있을래요."
"....너 때문에 산건데.."
"누가 사달래요? 그냥 놔두세요..전 안가요."
"한혜원,말이 심하다"
자연갈색 머리카락을 스포츠로 자른 훤칠한 혜원의 오빠가 혜원에게 말한다.
"난 안갈거야.오빠나 가."
"한혜원!!"
"난 죽어도 안가"
혜원이 반항하는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혜원의 오빠는 기가 죽는다.
"엄마 아빠,안그래도 쟤 데리고 가긴 무리에요.잠깐만 혼자 내비둬요.우리끼리 가요"
"...알았다.."
"하와이로 가던 A항공사 비행기가, 갑자기 변동된 기후에 추락하였습니다.
비행기와 시신들은 모두 확인되었고,생존자는 단 한명.행운의 인으로 한OO 군입니다.
한은권 군의 어머니 아버지는 같은 비행기에서 모두 돌아가시고 한국에 여동생인 한OO양이
있다고 합니다.참으로 안타깝네요...네 다음소식.."
"어머...어쩌면 좋니!!!!!!! "
"이...이럴수가....어..어떡하니..."
"혜,혜원아...괘,괜찮아...?"
"안돼.......................안돼 안돼 안돼!!!!!!!!!!!!! 내 잘못이야,다 내 잘못이야......흐ㄱ....미안해....엄마 미안해.....!!..
흑....아,,안돼...."
-----------------------------------
쿵-
누군가로 인해 혜원의 비참한 회상이 끝이 났다.
짜증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올리니 갈색머리의 이수가 있었다.
혜원이 생각하는 모든 일의 근원.
"뭐야!!"
"하하-미안해,뭘 그렇게 화를 내?"
이수가 악의는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올렸다.
혜원은 이수를 한번 노려보고선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어디가~!! "
"뭔 상관이야?! 너 갈길이나 가-짜증나게 굴지 마"
"왜 그렇게 앙칼져? 고양이같이"
"웃기지마"
"오늘따라 날카롭네? 왜그러는건데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이수가 한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혜원의 앞을 막아섰다.
"피해!!"
"참나.오랜만인데 제대로 인사도 안하냐?"
"너랑 내가 왜 인사를 해야 되는거야!!!"
"정 싫다면.인사 받아 낼 때까지 따라다닐거야."
죽어도 인사하고 싶지 않다.
아니 단 말한마디라도 하고싶지 않았다.
혜원은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존재를 무시한 채,집으로 곧장 향했다.
"못가!!!"
주택 대문에서 문을 따려고 하는 찰나 이수가 열쇠를 뺏어들었다.
"너 그거 내놔"
"못줘!! 안줘!"
"장난해?너 왜그래!"
"그냥 안녕-이라고 해줘!그럼 다시 줄께"
"....하아.......안...녕...."
이수가 승리감에 취한 표정으로 열쇠를 보았다.
"이제 열쇠 줘."
"..그렇겐 못한다! 나와 밥먹으러 가면 줄게.."
'미친놈!!!!!!'
"장난해!!!! 지금 뭐하는 거냐고!! 스토커야? 빨리 주고 꺼져!"
"하나도 안무서워,작은고양이."
이수가 자연스럽게 열쇠를 주머니속으로 넣고 혜원에게 팔을 둘렀다.
"죽을래!! 뭐하는거야!! "
"가자-"
"심심하면,아진이랑 놀던지! "
"깨졌어~"
"뭐?"
혜원이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깨졌다구~"
이수는 상관없는 듯 한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다른 곳을 응시했다.
혜원은 정말 화가난 듯 이수를 죽어라 노려보았다.
"일단 가자!"
이수가 혜원을 강제적으로 데려가자 혜원이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치며 이수를 밀어냈다.
하지만 꼼짝도 않는다.
'유리나 깨져라!!!!! 빌어먹을!'
얼른 날카로운 것이 파편으로 깨져버리기를 바랬지만,사방엔 유리나 플라스틱 등 깨질 것 하나 없었다.
'우.....왜 아무일도 안일어나는거야!!!!! '
"그손 놓거라-!!!"
혜원과 이수의 뒤에서 큰 호령이 떨어졌다.
혜원의 입가는 웃음으로 번지며 뒤로 향했다.
"오빠!!!!"
빨간스포츠카에 까만 정장을 입고 기대있는 혜원의 오빠 은원.
"니가 누군데 내 사랑스런 동생한테 그런 더러운 손을 대는것이냐!!!"
혜원은 이수가 한눈파는 틈을 타 은원의 뒤로 달려갔다.
"메롱!!!"
혜원이 이수에게 얄밉게 혀를 보였다.
"혜원의 친오빠시군요."
"진이수.오랜만이군"
"아는사이야?"
혜원이 은원의 뒤에 매달려 슬쩍 물어보았다.
고개를 뒤로 젖혀 윙크하는 은원.
"더러운 손 아무대나 문지르지 마라.진이수.그 손이 부러지기 전에"
"형이나요.제가 손까딱하면 형님 자리가 사라지게 되는거 모르시나보죠?"
"닥쳐.그건 뒷일이고.지금은 내가 널 죽이는 수가 있다."
은원에게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이수는 기가 죽어 말을 잇지 못했다.
"뭘 쳐다봐 이 똥파리같은 새끼야-어서 꺼져!!"
은원이 소리지르자 이수는 은원을 한번 노려본 후 시선을 혜원에게로 향했다.
"담에 또봐,고양아."
이수가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열쇠를 던지고,은원이 가볍게 캐치했다.
"진이수,꺼져!"
이수가 사라지고 은원이 뒤를 돌아섰다.
"사랑스러운 동생아-그런 험한 욕 하면 안돼요"
"지는.똥파리같은 새끼라고 한게 누군데"
"어허-따라도 하면 안돼요"
"하하-!!"
둘은 서양식 주택으로 들어섰다.
"오빠-막 돌아온거야?"
"아니,며칠 전에 왔지.회사에 가서 일좀 처리하고 바로 달려왔지~~"
"그런데 진이수가 한 말 무슨뜻이야?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오빠 자리가..뭐 사라진다는 건?"
"..하필 저런 새끼 아빠가 우리 회사 사장이어야 가지고.빌어처먹을.."
"뭐? 그럼 오빠를 자르겠다는 거야? 나쁜놈!!!"
"욕하지 말랬지~"
"제기랄,빌어먹을....용서 못해!!!"
"....허허.....동,동생아..그런 험한 말은 어디서 배운거야.."
"오빠한테서~"
"이럴수가..."
"진이수 같은 불청객이 오빠한테 무슨 짓 하면 가만 안놔둘거야!! 두 다리를 부러뜨려놔야지"
"흑..난 너밖에 없다 동생아.. 우리 재회의 뽀뽀 한번 할까?"
은원이 혜원에게 입술을 들이밀자 혜원이 기겁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변태!!!!!!! 동생이랑 뽀뽀나 할려고 하고!!"
"이잉..왜그래!!"
"키는 전봇대같이 커가지고 무슨 뽀뽀야!!! 이제 스물일곱이나 처먹어가지고"
그렇다.은원은 이제 27살이다.좋은 학업과 성품(?)으로 유명한 회사에 취직했고,꽤나 높은 자리에 있다.
경제적 여유도 많고.
잘생기고 키크고 돈많고(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뭐 하나 단점이 없을 것 같은 은원의 장점이자 단점.
혜원을 사모할정도로 사랑한다는 것.
은원의 이런 모습을 보며 은원을 좋아하다가 떨어진 여자가 대다수이다.
"흐..흑....도,동생아..어찌 오라버니에게!!!.........혹시..누군가와 입을 맞춘건 아니겠지?!"
은원이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혜원을 바라보았다.
"무,무슨!!!!!!!! 저,절대 아니거든!!"
이렇게 발뺌해봤자.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개지고 말이나 더듬어가면서.
아직도 혈의 촉촉한 입술의 느낌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역시...그런거였어....절대 내 옆에서 자라게 하려 했는데..내가 잠시 다른 데 가있는 동안 너무 많은 걸 배웠군...흑.."
"무슨 개소리야!!! 왜,왜그래 오빠..."
은원이 혜원을 으스러질정도로 안았다.
"수,숨 못쉬겠어..!!!"
"흑........난 너밖에 없다.."
은원이 혜원의 볼에 뽀뽀를 퍼부어대자 혜원은 짜증난다는 식으로 은원의 얼굴을 밀어냈다.
어쩌다 은원의 어깨 너머로 시선이 갔을땐,
혜원은 은원이 뽀뽀를 퍼부어도 미동도 없이 시체처럼 가만히 경직되있기만 했다.
"잉?"
혜원의 안색은 급하게 안좋아졌고 두 눈만 깜빡깜빡거렸다.
그리고 두 볼을 탱탱하게 부풀리고서는 보노보노의 땀빵울만 흘리고 있다.
"그만하시죠...."
첫댓글 아나 혈이형아 오셨나요?!<이봐요!!!)다음편 얼렁보고싶네요-ㅠㅠ
움하하하하하하하하!!!
목소리 쫙~깔아주시고~~~훗!담편을 기대합니다~~~
쫙깔앗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