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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의 특산물(特産物), 반도(半島)일 수 없는 증거들! (2편)
◉ 조선인(朝鮮人)이 저술(著述)한 역사서(歷史書) 또는 그 밖의 기록(記錄)등에서, 반도(半島)에서 일어날 수 없는 지리적(地理的) 환경(環境)이나 토산물(土産物), 기후(氣候), 특이(特異)지형(地形)등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은, 누구도 이에 대한 적절(適切)한, 이유(理由)있는 설명(說明)이 없다. 무조건(無條件) ‘반도(半島)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외치기만 한다.
“반도(半島)라는 한정(限定)된 땅에서, 일어날 수 없는 많은 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누구도 이에 의문(疑問)을 제기(提起)하지 않으려하고, 그저 눈치만 보면서, 세월(歲月) 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현실(現實)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동물(動物)세계(世界)에서 진화(進化)를 하지 못하는 무리들은 도태(淘汰)되어, 멸종(滅種)되는 것은 자연(自然)의 법칙(法則)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진화(進化)하고 있는가? 강(强)한 무리에, 한없이 약(弱)한 모습만을 보이며, 그들에게 의부(蟻附)하여, 하루하루 시간(時間)만을 보내려하는 것일까?
짝사랑! 의탁(依託)! 솔직(率直)해지는 것도 때론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약(弱)한 무리가 살아남기 위해 사대(事大)하는 것도 방편(方便)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들을 배신(背信)하고, 배반(背叛)하는 자(者)들까지 포용(包容)하는 그런 무리들은, 머지않아 종족(種族)세계(世界)에서 멸종(滅種)되는 수순(手順)을 밟게 될 것임은 자명(自明)하다. 매국노(賣國奴), 매판(買辦)등 종족(種族)을 팔아 자신(自身)들의 이익(利益)만을 추구(追求)하는 자(者)들을, 지배층(支配層)으로 만드는 일은, 자멸(自滅)하기 위해, 불나방이 되는 일이다.
◉ 조선왕조(朝鮮王朝)!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대부분(大部分) 국민(國民)들은 스스로, 자신(自身)들의 조상(祖上)의 나라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그 때의 군주(君主)로부터 받은 관직(官職)등을 들먹이며,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명예(名譽)를 자랑스러워하며, 이들의 후예(後裔)임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說明)한다. 그렇다면 그 훌륭하신 선대(先代) 조상(祖上)님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면, 더 이상(以上)의 말은 아끼고 아낀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니 아는 것이 없어, 답변(答辯)할 수가 없는 것이다. 훌륭하신 조상(祖上)님들이 어디에서, 어떤 환경(環境)속에서, 어떤 지세(地勢)속에서, 어떤 땅에서 살았는가? 그곳을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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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청일통지 : “조선의 토산으로는 백저포(白紵布), 면주(綿紬), 목면포(木棉布), 오조룡석(五爪龍席), 잡채화석(雜彩花席), 백추지(白硾紙), 미(米), 녹비(鹿皮), 달피(獺皮), 칼[刀]이 있는데, 이상은 모두 조공(朝貢)으로 바친다. 또 금(金), 은(銀), 철(鐵), 석등잔(石燈盞), 수정(水晶), 소금[鹽], 낭미필(狼尾筆), 유매묵(油煤墨), 접선(摺扇), 황칠(黃漆), 과하마(果下馬), 장미계(長尾鷄), 봉밀(蜂蜜), 초피(貂皮), 예피(皮), 홍표피(紅豹皮), 팔초어(八梢魚), 반어(斑魚), 여방(蠣房), 귀각(龜脚), 죽합(竹蛤), 해조(海藻), 곤포(昆布), 메벼, 기장, 삼, 송(松), 인삼(人葠), 복령(茯苓), 유황(硫黃), 개암, 배, 밤이 있다.”》고 하였다.
(2)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목면포(木綿布) ○ 현도(玄菟)의 산에는 꽃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따다가 짜서 포(布)를 만든다. 《원중기(元中記)》 ○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목면(木綿)의 종류이다.》라고 하였다.
㉮ 위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에서 말하는 “목면포(木棉布)”는, 목화(木花)를 재배하여 얻는 목면(木棉)이 아니라, 산(山)에서 채취(採取)하는 것이다. 현토(玄菟)는 고구려(高句驪)의 군(郡)이름이며, 고구려(高句驪)의 중요(重要)한 땅이었는데, 이곳의 산(山)에서 나는 나무에서 얻은 것을 짜서 포(布)를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목면포(木棉布)라고 하는 것이다.
㉯ 산해경(山海經) 해외서경(海外西經)이나 대황북경(大荒北經)편을 보면 : 「숙신국(肅愼國)은 백민(白民)의 북쪽에 있는데, 웅상(雄常)이란 이름의 나무(樹)가 있어, 먼저 임금이 들어가, 이것을 채취(採取)한다.」고 하였는데, 그 주석(註釋)에서 말하기를 :「그 나무를 취하여, 그 껍질로 옷을 만든다.」고 하였는데, 그 산(山)이란 바로 불함산(不咸山)을 말하며, 이 산(山)은 해(태양)가 이곳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이는 곧 서(西)쪽에 있는 산(山)이라는 이야기다.
【海外西經:肅慎之國在白民北,有樹名曰雄常,先入伐帝,于此取之. / 註釋:珂案:大荒北經云: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慎氏之國.淮南子墬形篇有肅慎民,周書王會篇云:稷慎大麈.孔晁注云:稷慎,肅慎也.郭璞云:或作雒. 珂案:經文雄常,淮南子墬形篇作雒棠,云雒棠,武 人在西北陬,高誘注云:皆日所入之山名也.疑非.雒棠當即此經之雄.郭云或作雒.常,木名也.郭璞云:其俗無衣服,中國有聖帝代立者,則此木生皮可衣也.珂案:經文先入伐帝,于此取之,王念孫云 :中略.珂案:據郭注,作聖人代立,於此取衣是也.孫星衍校亦作,聖人代立,於此取衣.如此始與郭注相應.】
춘추좌전(春秋左傳)의 주(註) ; 숙신은 북이(北夷)로, 현도(玄菟)에서 북쪽으로 3,000리 되는 곳에 있다.
㉰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산(山)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열리는 꽃을 따다가 짜서 목면포(木棉布)를 만든다는 것이고,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산(山)의 나무를 채취(採取)하여 그 껍질을 벗겨 짜서, 옷을 만든다고 하였다. 이것은 서로 다름이 있으나, 반도(半島)에서 생산(生産)되지 않는 것이며, 이곳의 지세(地勢)와 방향(方向)는 : 「대황(大荒)가운데에 있으며, 서(西)쪽에 있다」라는 것이며, 지세(地勢)와 방향(方向)은, 반도(半島)일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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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고려 홍주(洪州)의 동원산(東源山)에서는 금(金)이 생산된다. 고려도경》
㉮ 홍주(洪州)는 충청남도(忠淸南道) 홍성군(洪城郡)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곳 어디에서 “금(金)”이 산출(産出)되었다는 것일까? 동원산(東源山)?
㉯ 이곳지방의 금(金) 산출(産出)은, 청양(靑陽)군의 구봉산(九峯山)에서 일제(日帝)시대에 채굴(採掘)하기 시작(始作)하였는데, 당시 3대 금광(金鑛)에 속할 만큼 생산(生産)량이 많았다고 하는데, 근래(近來)에 폐광(廢鑛)되어, 산출(産出)되지 않는다. 이곳의 금광(金鑛)은 일제(日帝)시대에 처음 개발(開發)된 것이니, 위에서 말하는 것과는 관계(關係)가 없으며, 또한 이곳은 홍주(洪州)의 동원산(東源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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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당(唐)나라 무종황제(武宗皇帝) 회창(會昌) 원년(841)에 부여국(夫餘國)에서 화옥(火玉) 3말을 조공하였다. 화옥은 색이 붉고 길이가 반촌이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둥글다. 빛이 수십 보나 비치어, 이를 쌓아 두면 연등(燃燈)과 같으며, 안에다 두면 난방을 할 필요가 없다. 《두양잡편(杜陽雜編)》
(6)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석유리(石琉璃) : 석유리는 고려에서 생산되는데, 칼로 쪼개어도 변하지 않는다. 색은 백색이고, 두께는 반 촌가량 되며, 등불을 붙일 수가 있는데, 쇠뿔[牛角]보다도 더 밝다. 《본초강목(本草綱目)》
㉮ 화옥(火玉) : 알 수 없다.
㉯ 석유리(石琉璃) :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용도(用途)로 사용(使用)되는 것인지, 자세(仔細)한 것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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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유황(硫黃) : 고려(高麗)는 산(山)이 깊어서 유황(硫黃)이 산출된다. 고려도경》
㉮ 『서력(西曆) 1,661년 이전(以前)의 반도(半島) 땅에서는, “유황(硫黃)”이 산출(産出)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위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말하는 고려(高麗) 땅은, 반도(半島)가 아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고려도경(高麗圖經)은 서긍(徐兢, 1091~1153)이 선화 5년(1123, 고려 인종1)에 고려(高麗)에 왔었으니, 그가 죽기 전(前), 서력(西曆) 1,153년 이전에 찬술(撰述)되었을 것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유황점(硫黃店)편을 보면 : 《조선 후기 각 군문이 유황(硫黃)을 채굴(採掘)하기 위해 설치한 광업소(鑛業所)을 말하는데, 임진왜란 직후에는 화약 제조에 필요한 유황이 국내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득이 중국과 일본에서 비싸게 밀수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유황의 국내 생산을 서두르게 되어 유황광 개발에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수어청이, 1661년(현종 2)에 진산(珍山)에서 유황광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 서력(西曆) 1,661년 처음으로 ‘진산(珍山)=곧 금산(錦山)’에서 유황(硫黃)광(鑛)을 발견(發見)했다고 하였으니, 서력(西曆) 1,661년 그 이전(以前)의 반도(半島) 땅에는 유황(硫黃)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서긍(徐兢)은 고려(高麗) 땅에는 산이 깊어 유황(硫黃)이 나온다고 하였다.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이야긴가?
고려도경(高麗圖經) / 1,153년 이전(以前)에 : 고려(高麗)에서 유황(硫黃)이 나온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661년 : 진산(珍山)에서 유황(硫黃)광(鑛) 처음 발견(發見)
㉱ 이러한 이야기는 고려(高麗) 땅이 반도(半島)가 아닌, 대륙(大陸)고려(高麗)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대목이랄 수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 : 서긍【徐兢, 1091~1153】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40권은, 송(宋) 휘종(宋徽宗)이 파견한 고려에의 국신사(國信使) 일행에 제할인선예물관(提轄人船禮物官)으로 개경에 다녀간 경과와 견문을 그림을 곁들여서 엮어 낸 사행보고서다. 서긍이 개경을 다녀간 것은 선화 5년【1123, 고려 인종1】으로, 북송이 금(金)에 멸망되기 4년 전이고 고려 예종(睿宗)이 훙거하고 인종(仁宗)이 즉위한 이듬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진산(珍山)군(郡) : 【토산】 석자황(石雌黃) 군의 동쪽 사음동(舍音洞)에서 난다. 인삼(人蔘), 철(鐵) 군의 서쪽 월외리(月外里)에서 난다. 동(銅) 군의 동쪽 달왕산(達往山)에서 난다. 자석(磁石) 암정리(巖井里)에서 나는데, 군의 남쪽 10리 되는 곳이다. 꿀ㆍ송이》라고 하였다.
㉳ 따라서 「송(宋)나라 사신(使臣) “서긍(徐兢)”이 다녀간 고려(高麗)는, 반도(半島) 땅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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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석유(石油) : 맹화유(猛火油)는 고려(高麗)의 동(東)쪽 수천(數千) 리 밖에서 나는데, 해가 돌을 뜨겁게 달구면 나오는 액체이다. 이것은 오직 진짜 유리로 만든 그릇으로만 저장할 수가 있다. 물에 들어가면 물방울이 일어나면서 몹시 맹렬하게 불꽃이 일어나며, 타고 남은 힘이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가 모두 죽는다. 변방 사람들이 적을 막는 데 쓴다. 이는 석뇌유(石腦油)이다. 《작몽록(昨夢錄)》 ○ 황충(黃衷)의 《해어(海語)》에, “맹화유(猛火油)는 고려(高麗)에서 나온다. 한 여름에 해가 처음 뜰 때 돌을 달구어서, 돌이 아주 뜨겁게 달구어지면 액체가 나오는데, 다른 물체가 여기에 닿으면 즉시 불에 탄다. 그런데 이 맹화유(猛火油)는 그렇지가 않으니, 아마도 나무에서 나오는 진액(津液)인 듯하다.” 하였다.》
(9)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석유(石油)는 고려에 있다. 석암(石巖)으로부터 흘러나오는데, 샘물과 서로 뒤섞여 솟아나오며, 미끄럽기가 고기 기름과 같다. 그 지방 사람들이 풀에 적셔서 항아리 속에 보관한다. 색이 검어서 자못 옻칠[漆]과 같으며 웅류기(雄硫氣)를 만든다. 그곳 사람들이 대부분 이것으로 등불을 밝히는데, 아주 밝다. 물과 만나면 더욱 맹렬하게 타며, 먹을 수 없다. 그 연기가 아주 짙어서 그을음을 긁어모아 먹[墨]을 만드는데, 광택이 나면서도 옻처럼 검어 송연묵(松烟墨)보다 좋다. 《본초강목(本草綱目)》
㉮ 한 때, 대륙(大陸)조선사(朝鮮史)를 주장(主張)하는 분들이, 대륙조선(大陸朝鮮)을 설명(說明)하면서, 많이 써먹은 특산품(特産品)이다. 더 이상(以上)의 설명(說明)은, 잔소리가 될 뿐이므로, 이것으로 끝내자. 반도(半島)조선(朝鮮) 땅에서는 거의 불가능(不可能)한 이야기이니 말이다.
㉯ 위 글에서,「맹화유(猛火油)는 고려(高麗)의 동(東)쪽 수천(數千) 리 밖에서 나는데, 해가 돌을 뜨겁게 달구면 나오는 액체이다.」라고 하였는바, 고려(高麗)의 황도(皇都)로부터 수백(數百)리 동(東)쪽은 바다(海)에 다하기 때문에, 「고려(高麗) 동(東)쪽 수천(數千)리 밖(外)이라는 말은, 반도(半島)일 수 없으며, 고려(高麗)는, 동쪽 땅이 수천(數千)리나 되는 곳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 ‘고려(高麗) 동(東)쪽 수천(數千)리’ 라는 말은, 최소한 2∼3천리(千里) 이상(以上)을 말하는 것이니, 반도조선(半島朝鮮) 입장(立場)에서 생각해 보면 : <현 반도(半島) 땅과 동해(東海)와 현 열도(列島) 땅이 한데 붙어있는 그런 땅이어야 가능(可能)한 말이다.>
이는 곧 《반도(半島) 땅 + 동해(東海) + 열도(列島) 땅【북해도(北海島) 남(南)쪽】= 고려(高麗) 동(東)쪽 땅》이라는 방정식(方程式)이 성립(成立)된다. 이럴 때 고려(高麗) 동(東)쪽 수천(數千)리라는 말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아쉽게도 “동해(東海)”는 수억(數億)전, 아니 그 이전(以前)에 이미 그 형상(形狀)이 만들어진 것일 게다. 따라서 이러한 지세(地勢)는 대륙(大陸) 땅을 말하는 것이고, 「고려(高麗)왕조(王朝)는 대륙(大陸) 땅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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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조선(朝鮮)의 인삼(人蔘)은, 조선(朝鮮)의 북(北)쪽 달단(韃靼)의 남쪽 경계(境界) 지점에 큰 산(山)이 있어서 이름을 백두산(白頭山)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나는 인삼(人蔘)이 최상품(最上品)이다.》
㉮ 여러 차례에 걸쳐 달단(韃靼)의 거점지(據點地)에 대하여 설명(說明)하였는데, 이들은 최소한(最小限) 서방(西方)의 종족(種族)이요, 부족(部族)이다. 이들이 한 때 강성(强盛)해져, 동방(東方)으로 진출(進出)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패(敗)하여 도주(逃走),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 북방(北方) 고향(故鄕)으로 돌아갔다.
㉯「달단(韃靼)의 남쪽 경계지점의 큰 산이 곧 백두산이다.」라는 말에서, 백두산(白頭山)은 오늘날의 반도(半島) 북방(北方)에 있는 산이 아니다. 최초(最初)로 등장(登場)하는 산해경(山海經)에서, 숙신(肅愼)은 불함산(不咸山)부근에 있었다고 하였고, 그 숙신(肅愼)은 「서(西)쪽과 북쪽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최소(最小)한 3∼4천년(千年)전 부터의 이야기이다.
㉰ 대황북경(大荒北經)에서는 : 《대황(大荒)가운데에 불함산(不咸山)이 있는데, 숙신씨(肅愼氏)나라가 있다. 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慎氏之國》고 하였고, 해외서경(海外西經) 주석(註釋)에서도 : 필원(畢沅)이 이르기를 : 회남자(淮南子)지형훈(墬形訓)에서 이르기를 : 해외서경(海外西經)은 서북(西北)으로부터 서남방(西南方)까지다. 수고민[修股民], 숙신민[肅慎民]이 일어났다.(注) : 畢沅云:淮南子墬形訓云:自西北至西南方,起修股民肅慎民.中略》고 하였다.
㉱ 이러한 기록(記錄)을 뒤집을 수 있는 기록(記錄)이 있는가? 어떠한 경우(境遇)를 가정(假定)한다고 하더라도,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 땅에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 증명(證明)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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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봉(鳳) : 봉은 신조(神鳥)이다.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에서 나는데, 사해(四海)의 밖에서 날아올라, 곤륜산(崑崙山)을 지나서 지주(砥柱)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을 씻고,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잔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天下)가 크게 태평(太平)해진다. 설문(說文)》라고 하였으며,
(11)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맹조(孟鳥) : 맹조는 맥국(貊國)의 동북(東北)쪽에서 나는 새의 이름으로, 그 새의 무늬는 적(赤)색, 황(黃)색, 청(靑)색이다. 산해경(山海經)》라고 하였다.
㉮ 위의 이야기들은, “산해경(山海經)”이 아니면, 설명(說明)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맹조(孟鳥)는 해외서경(海外西經)편에 있다. 곧 주석(註釋)을 보면 : 《원가 : 해내서경(海內西經)에서 이르기를 : 맹조(孟鳥)는 맥국(貊國)의 동북(東北)에 있는데, 그 새의 무늬는 적(赤), 황(黃), 청(靑)색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고,
또한 해외서경(海外西經) 주석(註釋)에서는 : 《원가 : 대황서경(大荒西經)에서 이르기를 : 5 가지 색깔을 가진 새가 셋이 있는데, 하나는 황조(黃鳥)요, 하나는 난조(鸞鳥)요, 하나는 봉조(鳳鳥)이다. 珂 案 :大荒西經云:有五采鳥三名:一曰皇鳥,一曰鸞鳥,一曰鳳鳥.》라 하였다.
㉯ 곽박(郭璞)은 여기서, 《다섯 가지 색채의 무늬를 가진 것은, 이름이 봉황(鳳凰)인데, “머리의 무늬는 덕(德)을 나타내고, 날개의 무늬는 의(義)를, 등 무늬는 예(禮)를, 가슴(鷹)의 무늬는 인(仁)을, 배의 무늬는 신(信)”을 나타내는 새이다. 먹고 마시는 것은 스스로 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이것이 나타나면 천하(天下)가 안녕(安寧)해진다. 五采而文,名曰鳳皇.首文曰德,翼文曰義,背文曰禮,膺文曰仁,腹文曰信,是鳥也,飲食自然,自歌自舞,見則天下安寧.》고 하였으며,
《맹조(孟鳥)는 몽조(蒙鳥)이며, 곧 봉황(鳳凰)》이라고 하였다. <봉황(鳳凰)>은 본시(本是) 수컷은 봉(鳳)이요, 암컷은 황(凰)인데, 오동나무위에서 살면서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살며, 오색(五色) 깃털을 펄럭이며, 울음소리 역시 다섯 가지의 음률처럼 낸다고 전해지며, 소위 예천(醴泉)이라는 감미로운 물만을 마시며, 모든 새들의 왕(王)으로 군림(君臨)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는 전설(傳說)상의 새일 뿐인데, 조선(朝鮮)을 상징(象徵)하는 새이며, 그 다른 어떤 나라, 종족(種族)에도 없다. 오직 조선(朝鮮)만을 상징(象徵)하는 새다. 봉황(鳳凰)을 상징(象徵)으로 하는 옛 천자(天子)는 <소호금천>씨이다.
㉰《설문(說文) 4에서 이르기를 : 봉황(鳳凰)이 동방(東方) 군자국(君子國)에 나타났는데, 사해(四海)의 밖에서, 곤륜(崑崙)을 지나, 지주(砥柱)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 깃털을 씻고, 풍혈(風穴)에서 잠을 자는데, 이것을 보면 천하(天下)가 안녕(安寧)해진다. 說文四云:鳳出於東方君子之國,翱翔四海之外,過崑崙,飲砥柱,濯羽弱水,莫宿風穴,見則天下安寧.》고 하였으니,
「봉황(鳳凰)은 조선(朝鮮)천자(天子)를 가리키는 말이며, 조선(朝鮮)조정(朝廷)이 평안(平安)하면, 천하(天下)가 안녕(安寧)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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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해동역사(海東繹史) 본문(本文)> : 《공작(孔雀) : 당나라 덕종(德宗) 정원(貞元) 연간에 신라에서 공작을 바쳤는데, 춤을 출 줄 알았다. 변난(邊鸞)에게 조서를 내려서 현무문(玄武門)에서 그 모습을 그리게 하였다. 《유서찬요(類書纂要)》 ○ 《화한삼재도회》에, “추고(推古) 6년(598, 진평왕20)에 신라에서 공작 1후(候)를 진상하였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우리나라에는 공작이 없으니, 바닷배를 따라서 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 ‘살펴보건대’는 : 해동역사(海東繹史) 저자(著者)의 말이다.
㉮ 백과사전(百科辭典) : 한자어(漢字語)로는 월조(越鳥)·남객(南客)·화리(火離)라고도 한다. 학명은 Pavo cristatus L.이다. 인도 아삼과 실론 등지에 분포, 서식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영어로 수컷을 피콕(peacock), 암컷을 피헨(peahen), 암수 모두를 피파울(peafowl)이라고 한다. 공작속(―屬 Pavo)에 속하는 공작(P. cristatus)은 인도와 스리랑카에, 참공작(P. muticus)은 미얀마에서 자바까지 분포한다. 콩고공작(Afropavo congensis)은 1913년 단 1개의 날개깃이 발견된 이래 계속된 탐색 끝에 1936년 발견되었다.
㉯ ‘공작(孔雀)’에 대해서는 산해경(山海經)에도 그 새와 산출지(産出地)를 설명(說明)하고 있다. 반도(半島) 땅에서는 자랄 수 없는 새이며, 「남해(南海)와 서남(西南)아세아(亞細亞)지방에 분포(分布)되어 있다.」 《해내경(海內經) : 주석(註釋) : 郭璞云:孔雀也.珂案:周書王會篇云:方人以孔鳥. 爾雅翼卷十三云:孔雀生南海,尾凡七年而後成,長六七尺,展開如車輪金翠斐然.始春而生,至三四月後彫,與花萼同榮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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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조선(朝鮮)이란 그 속에 많은 왕조(王朝)들이 있었으며, 건국(建國)과 망국(亡國)을 거치며, 일만(一萬)년 조선사(朝鮮史)를 이어왔다. 주변(周邊) 나라와 종족(種族)과 부족(部族)들을 정복(征服)하여, 내지(內地)로 만들었고, 쇠약(衰弱)해 졌을 때는, 주변(周邊)의 강성(强盛)함에 눌려, 정복(征服)당하는 예도 있었으나, 이러한 예(例)는 일만(一萬)년 조선사(朝鮮史)에서 극히 짧은 기간(期間)에 불과(不過)하였으며, 세세손손(世世孫孫) 조선(朝鮮)의 영광(榮光)은 그 빛을 잃지 않았다.
근세(近世)에 조선(朝鮮)의 운명(運命)이 다하여, 구라파(歐羅巴) 일족(一族)들의 강성(强盛)함에 미쳐 대비(對備)하지 못한 관계(關係)로, 조선(朝鮮)의 영광(榮光)은 빛을 잃고, 그 보금자리마저 빼앗기고, 반도(半島)라는 변두리 땅으로 강제(强制)이동(移動)되어, 일만(一萬)년 영광(榮光)의 역사(歷史)는 한 순간(瞬間)에 오욕(汚辱)의 역사(歷史)로 바뀌어, 작금(昨今)의 상황(狀況)에까지 이르렀다.
2015년 10월 02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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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서(漢書)에는 "고노(高奴)에는 불이 붙는 유수(洧水)가 있다"라는 내용이 나오며.....
후한서(後漢書)에도 "주천(酒泉)이란 곳에서는 비즙(肥汁)이 나는데, 이것은 아주 밝게 타며 먹을 수는 없다. 그곳 사람들은 이를 석칠(石漆)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이 주천(酒泉)이라는 지방은 유전이 있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한편, 코카서스 산맥이 이어지는 카스피 해 연안 쪽에서는 손과 간단한 도구를 이용한 원유의 채취가 가능하였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에서 가스를 제거한 석유인 역청은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고려의 동쪽 수천리 밖 지역만이 아니라, 고려의 서쪽 지방에서도 석유(맹화유)가 나왔다는 역사기록이 있나요??
<고려의 서쪽 수천리에서 맹화유 종류가 난다>는 기록은 아직까지 찾아내질 못했습니다. 이것을 찾으려면 식화지를 몽땅 뒤져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됩니다. 또 식화지속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고요. 문제는 대륙의 서쪽지방에서 맹화유 종류가 난다는 기록 역시 아주 없다시피하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출처가 없는 이야기들을 사실화할 수는 없습니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찾아 보아야되겠지요. 관심과 성원에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