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4) - 큰 용기와 격려를 주신 외종조부님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가끔 꿈속을 더듬는지 어떤 때는 아들인 나를 동생으로 착각하시는데 엊그제는 모두들 기다리는 집에 가야한다고 하시며 나에게 경어를 쓰시기에 내가 누구냐고 물으니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 나이 들어도 잊히지 않는 부모를 떠올리는 어머니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외할아버지보다 큰아버지이신 외종조부 강무 선생이다.
유교적 가풍이 몸에 밴 외가에서는 장자인 강무 할아버지가 동생의 자녀들에게도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가졌을까,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외종조부는 조카딸인 어머니의 혼사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19세의 처녀를 자녀가 넷이나 둔 31세의 홀아비에게 시집보내도록 하였다. 관상에 일가견이 있는 외종조부는 단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조카딸을 오래 살뿐 아니라 자녀들이 번성할 재목으로 평소에 눈여겨 본 아버지가 상처한 것을 알고 그 자리에 어머니를 천거한 것이다. 그런 연유일까, 어머니는 친정과 시집가문을 통틀어 가장 장수하는 기록을 세웠고 100명이 넘는 후손들을 두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가끔 들르시던 외종조부는 나를 볼 때마다 면학에 힘써서 훌륭한 인품과 자질을 갖추도록 격려해 주셨는데 그 중에는 관상에 관한 말씀도 들어 있다. “얼굴 좋은 상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觀相 不如 體相), 몸 좋은 상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體相 不如 心相)"며 마음을 잘 가꾸고 다스리는 것이 중요함을 깨우치셨다. 내 이마의 흉터가 마음에 걸리셨을까?
외종조부는 심상이 좋은 이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공명(그 분은 그를 수경선생이라 부르셨다)을 들고 율곡과 퇴계도 이에 버금가는 이들이라고 하시며 나에게도 그런 이들을 닮아가라고 당부하셨다. 안동의 도산서원과 강릉의 오죽헌 등 율곡과 퇴계의 고장을 여러 차례 돌아보았는데 학덕과 인품은 훨씬 모자란 터에 삶의 연륜만 그들을 넘어서는 갓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외종조부는 강직한 성품과 틈틈이 봐주는 관상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신 분이다. 출타하셨다가 돌아오면 온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나라와 사회에 대한 우국충정이 대단하셨다. 5.16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세우고 큰 발전을 위한 치국방안을 논의하자며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과의 면담을 꾸준히 요청하여 그 뜻을 이루기도 하였고(이를 주선한 이후락 씨의 회고에서 그 일이 언급된다.) 학승으로 널리 알려진 탄허스님이 외종조부에게서 관상을 배우려다가 서로 그 길이 다르다며 포기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1976년 2월, 돌아가시기 10여일 전인 설 무렵에 친구들과 함께 외종조부를 찾아 뵌 적이 있다. 이야기를 하시면서 친구들의 관상도 봐주셨는데 가까운 우리들도 모르는 집안 사정과 내밀한 심리적 문제들을 집어내어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그때 내가 궁금하던 질문을 드렸다. 박정희 대통령과 꽤 길게 회동하였는데 그 분의 관상으로는 언제까지 대통령직에 머물겠는가라고.
그때 들은 이야기. 박정희 대통령과 마주 앉으니 체구가 작은 데도 큰 바위를 대하는 것같이 묵직한 인상이라는 것, 관상으로는 독수리상인데 독수리가 먹이를 채면 목숨이 끊어져도 이를 놓지 않으니 박대통령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로부터 2년 8개월 후인 1979년 10월 26일에 시해로 생을 마감하였으니 그 말이 맞았다고 할까?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푸들, 고마워 독수리'기사(조선일보 2011. 5. 21)를 보니 죽어도 먹이를 놓지 않는 독수리에게서 풀려난 개의 사연과 함께 독수리에 얽힌 외종조부의 말씀이 생각나서 적어본 글이다.
'하늘서 떨어진 푸들 "고마워 독수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세첼트의 한 양로원에 지난 2일 개 한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독수리가 이 개를 잡아서 날아가다가 어찌 된 영문인지 양로원에 떨어뜨려 놓고 갔다고 캐나다 밴쿠버 선 등 외신이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외신들은 18파운드(약 8㎏)짜리 개가 무거워 떨어뜨렸는지 아니면 개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독수리 덕분에 길 잃은 개가 살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 6살짜리 암컷 푸들이 이곳에 떨어졌을 때는 목 주변에 깊게 팬 상처가 있었고 등에는 날카로운 독수리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고 양로원 간호사들이 전했다. 또 땅에 부딪히며 받은 충격으로 갈비뼈 여러 개가 부러져 있었다. 양로원의 연락을 받은 인근 동물보호소 직원들은 곧바로 이 개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했다. 지금은 등과 목, 갈비뼈의 상처가 모두 나아 직원들 앞에서 재롱을 떨게 됐다.
동물보호소장 섀넌 브로데릭은 "목걸이나 인식표가 없었고 찾으러 오는 주인도 없었다"며 "발톱도 너무 길고 이도 많이 썩어 있어 오랫동안 사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썩은 이 때문에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했고, 유방에도 종양이 있어 계속 방치됐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이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자 미국과 캐나다 곳곳에서 성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 19일에는 모인 성금 2000달러로 치과 치료를 받았다. 브로데릭은 "지금도 계속 성금이 들어오고 있는데 정말 감사하다"며 "앞으로 치과 치료를 한 번 더 받고 유방 종양 제거 수술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푸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면 새로운 가정에 보낼 계획이다. 동물보호소 직원들은 "길에서 죽을 수도 있었던 개가 독수리 덕분에 살게 됐다"며 이 개의 이름을 '기적의 5월'이라고 지었다.'
추신,
이번 주는 한 주내내 여러 기념일들이 이어졌다. 일요일(5월 15일)은 스승의 날, 월요일(5월 16일)은 성년의 날이면서 5.16쿠데타 30주년, 화요일(5월 17일)은 5.18의 단초를 제공한 비상조치가 내려졌고 수요일(5월 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 목요일(5월 19일)은 발명의 날, 금요일(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 토요일(5월 21일)은 부부의 날 등.
스승의 날을 맞으며 25년 넘게 대학에 몸담은 자신을 돌아보며 참스승의 본을 보였을까 부끄러운 마음인데 교직의 초년에 인연을 맺은 제자가 옛정을 잊지 않고 식사를 대접하며 꽃바구니를 안겨주니 고맙다. 50년 전 고등학교 때의 은사부부를 초대한 친지와의 식사자리도 아름다웠다.
고등학생 때 맞은 5.16쿠데타는 '이게 아닌데,,'라는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변하지 않는데 세상은 꼭 그렇게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혼란스럽고 5. 16의 연장선처럼 당혹스러움을 안겨줬던 전두환 신군부의 5.17 비상조치를 일반인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지난 월요일에는 광주노인복지타운에서 5.18을 배경으로 제작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 그때의 처절했던 상황을 되새기기도 하였다.
주말에는 아들이 출장 중인 틈을 이용하여 며느리가 손녀와 함께 기차타고 내려왔다. 어린 아이를 대리고 먼 길 나서기가 쉽지 않을 텐데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온 가족들이 반갑다. 기차에서 내린 아이들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선대학교에서 열리는 장미축제를 잠깐 돌아보았다. 화사한 장미처럼 아름다운 계절에 여러분께서도 좋은 5월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