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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인문학강좌 (2)
끽다거喫茶去와 심외무차心外無茶
차 마시며 다도茶道에 이르는 일과 선정禪定에 드는 일은 둘이 아니다.
차 마시며 선을 닦는 일啜茗修禪, 차 마시며 선정에 드는 일啜茗入禪은 하나로 통한다. 일찍이 고려의 차인茶人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한 잔의 차一碗茶야말로 참선參禪의 시작”이라고 했다.
십여 년 전, ‘천하조주선차문화교류대회天下趙州禪茶文化交流大會’가 중국 하북성河北省 석가장시石家庄市 인민대회당과 백림선사栢林禪寺에서 열렸을 때 한국 대표로 참석한 적이 있다.
선다일미禪茶一味, 다선불이茶禪不二의 무대인 중국 하북성河北省 석가장시石家壯市에 위치한 백림선사栢林禪寺는 이 행사가 아니더라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 옛날 선禪의 황금시대를 펼쳤던 그 시절에 조주선사(趙州禪師778~897)가 오랫동안 주석하면서 한 잔의 차茶로써 법法을 전한 ‘끽다거喫茶去’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백림선사는 ‘천하고불天下古佛’이란 별칭을 듣는 조주 종심從諗스님이 기거하며 수많은 구도자들에게 주옥같은 화두話頭를 남겼던 바로 ‘관음원觀音院’의 오늘날 이름이다.
이 사찰은 남송시대엔 영안원永安院으로 불렀고 금나라 때엔 백림선원柏林禪院으로 고쳐 불렀다가 원나라 때에 백림선사라 칭하게 되었다. 또한 조주의 별칭인 고불도량古佛道場이라 부르기도 한다.
선불교禪佛敎를 꽃피운 중흥조라 할 수 있는 조주종심趙州從諗은 남자 수명의 한계라는 120세를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그의 스승인 남전선사(南泉禪師843~886)가 입적하자 사리를 수습하여 안치한 후 60세에 운수행각을 떠나면서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했다. 그는 주유천하를 마친 후 80살 되던 해에 관음원에서 40년을 살면서 수많은 후학들을 지도했던 것이다.
조주스님의 법문 중에는 ‘개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무無자 화두를 비롯해 앞에 언급한 ‘차나 마셔라喫茶去’,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등 선문에 널리 알려진 공안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목주어록睦州語錄』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선사가 말하기를,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하북에서 왔습니다.”
“조주화상이 계시는 곳인데 자네는 참문參問한 적이 있는가?”
“저는 막 조주화상의 처소에서 왔습니다. 조주선사는 ‘끽다거喫茶去’라고 합니다.”
목주화상은 웃으며 “좋구나, 좋아” 라고 말했다.
또 어느 학인이 목주화상에게 물었다.
“차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라니陀羅尼이니라.”
이처럼 차를 통해 깨달음의 자리를 극명하게 보여 준 선승禪僧들의 삶과 사상을 조사어록祖師語錄 등에서 심심찮게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차의 정신은 선의 정신이라 말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조주는 스승인 남전보원南泉普願선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당시 선풍禪風과 다풍茶風을 드높였던 인물이다.
봄에는 아름다운 온갖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밝은 달이 비추네.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날리도다.
한가로이 걸림 없는 마음이면 이때가 인간세상의 좋은 시절이로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조주선사의 오도송悟道頌이다.
그는 20세 무렵에 스승인 남전南泉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의 마음이 도이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형식이나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을 물로써 보는 법이다.
남전과 조주의 스승과 제자의 첫 만남도 극적이다.
조주스님의 스승인 남전선사가 회상會上을 여니 각처에서 구도자들이 모여들었다. 하루는 한 노승이 어린 동자승을 데리고 남전선사를 친견하러 왔다.
그 노승이 남전선사에게 말하기를,
“제가 데리고 온 아이가 영특한데 저로서는 인재로 키울 능력이 없습니다. 스님께서 큰 법력으로 잘 지도해 주십시오.”
동자승 조주가 남전선사께 인사를 올리니 누운 채로 인사를 받은 남전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으면 상서로운 상像을 보았느냐?”
“상서로운 상을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시는 부처는 뵈었습니다.”
남전선사는 이 말에 일어나 앉으며 다시 물었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沙彌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너의 주인이 누구인고?”
“스님, 정월이라 날씨기 대단히 추우니 법체法體 유의 하십시오.”
조주는 이미 남전선사가 자신의 스승임을 깨달았던 것이고 남전선사는 조주의 기특함을 알아채고 기뻤을 것이다. 이렇듯 고금을 통해 스승과 제자의 만남, 친구와 친구의 만남 등은 남녀노소를 떠나 정신과 정신과의 청교淸交가 되리라.
기록에 의하면, 조주선사는 스승인 남전선사 곁에서 마음공부를 철저히 했음을 알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조주고불’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어느 날, 진리를 묻기 위해 찾아온 구도자에게 조주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차 한 잔 들게喫茶去”라고 말했다.
조주선사는 또 다른 납자衲子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 스님은
“와 본 적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조주선사가 말했다.
“그대도 차 한 잔 들게喫茶去”
그 선문답을 들은 원주院主가 이를 의아해하며 선사께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와 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차를 권하고, 와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차를 권하신 겁니까?”
그러자 선사는 원주를 불렀고, 그가 답을 하니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원주, 그대도 차 한 잔 들게喫茶去”
師問新到 曾到此間陵 曰 曾到 師曰 喫茶去 又問僧 僧曰 不曾到 師曰 喫茶去 後院主問曰 爲甚陵曾到也云喫茶去 不曾到也云喫茶去師召院主 主應諾 師曰 喫茶去.
『조주록趙州錄』에 나오는 ‘끽다거喫茶去’ 이야기다.
조주의 진면목眞面目을 보고 싶은가.
스승이 손수 만들어 주는 향기로운 차 한 잔에 있지 않는가.
우리가 알고 싶은 답은 우리 속에 있고, 그 답을 찾는 일은 스스로 깨달음에 있다. 해답의 열쇠는 언제나 자신이 갖고 있는 법.
그는 ‘끽다거’ 화두뿐만 아니라, 이런 일화도 남겼다.
초심자가 총림叢林을 찾아와 묻기를 “스승님, 잘 지도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조주는 “죽은 먹었느냐?” 라고 되물었다.
그 학인이 아침 죽을 먹었다고 하자, “그럼 그릇이나 씻어라洗鉢盂去”라고 하자 그 순간 그 학인이 깨달았다는 조주세발趙州洗鉢이야기다.
깨달은 도인의 감로차와 같은 이 지혜의 가르침에 자신의 본래 심성을 깨닫고 넙죽 큰 절 올리고 차 한 잔 마시고 방을 빠져나와 빙그레 웃을 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차茶와 선禪의 세계는 불꽃같고, 때론 넉넉히 흐르는 물결 같은 그런 것이다.
조주 탑 아래엔 많은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중 한국과 인연이 깊은 '조주고불선차기념비'가 2001년 10월 이곳 백림선사에 세워졌는데 "한중韓中의 불교는 한 뿌리이니 예로부터 한 집안이며 선풍을 함께하니…"란 글귀가 새겨졌다.
중국 스스로 원류라 생각했던 불교, 유교 등 그리고 다도까지도 그 전통과 원형을 제대로 지켜오지 못했다가, 오히려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온 한국에서 다시 그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중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오늘날 이곳 백림선사에서의 느낌은 남달랐다. 그동안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에 의해 말살되고 쇠퇴하였던 중국 정신문화의 복원이랄까 하는 그런 기운을 강하게 읽을 수 있었다.
백림선사에서의 중식공양은 또 다른 체험이었다. 일반인들에겐 좀처럼 개방하지 않는다는 중국 전통 절집의 발우공양이었는데, 중앙 한쪽에 주지스님이 마치 법좌에 앉듯 전체를 향해 높이 앉았고 그 양쪽으로 첫 줄엔 승려들이 앉고 다음으로 일반 남자, 여자를 구분해서 앉았는데 그 인원이 상당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절집의 행자쯤 되는 승려들이 연방 공양물을 들고 다니며 각자의 공양그릇에 담아 주었다. 물론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원칙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동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의 두리차회에 참여하여 그들의 행다行茶 모습을 살펴 보았다. 결국 우리도 오십 보 백 보이겠지만, 오늘날 중국식 다법茶法들을 살펴보면 전통이 그대로 계승 발전되지 않고 급조되거나 대체로 미숙한 점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어쨌든 동양 삼국의 문화가 차 문화를 통해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내가 늘 생각하는 ‘동양정신문화의 뿌리요, 우리 민족 전통문화의 꽃인 다도茶道’가 결국 세계 평화에 큰 기여를 하겠구나 싶었다. 그 옛날 조주스님의 법문과 차향이 그윽한 뜰에서 마시는 차의 맛은 묘한 향기가 있었다.
그 옛날 관음원 절 뜰엔 고목의 잣나무(측백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조주선사의 사자후가 들릴 듯했다.
“어떤 것이 조사(達摩)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유명한 ‘끽다거’와 ‘뜰 앞의 잣나무’란 공안公案이 천 이백여 년 전 이곳 이 자리에서 조주에 의해 전해진 역사의 현장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잣나무 또는 측백나무라 불리는 오래된 나무들 아래에서 세계의 차인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찻자리를 펴고 앉아 손님들께 차를 대접하고 있었다. 누구나 차별 없고 평등한 자격으로 차를 마시는 이 자리가 차의 정신이다. 이 순간이 다도의 즐거움이다. 행복한 때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백림선사 보현각普賢閣에서는 '천하조주선차문화교류대회'의 학술행사가 열렸다.
보현각 법당은 중국 전역에서 온 차문화인들과 젊은 학생들로 가득 찼고 그 열기가 대단했다. 원래 학술행사가 그렇듯 오랜 시간 진행되었지만 중간에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조주趙州의 끽다거喫茶去와 금당錦堂의 끽다래喫茶來」가 내가 발표할 주제였다. 그 요지는 이렇다.
선禪은 부처가 들어 보인 꽃 한 송이에서 비롯되었고 선차禪茶는 조주선사의 화두인 ‘끽다거喫茶去’에서 시작되었다. 중국 당나라 관음원觀音院에서 조주종심趙州從諗선사가 주석하며 구도자가 찾아와 법法을 물어오면 “차나 한잔 하게나喫茶去”란 화두로 선문답禪問答을 했던 조주청차趙州淸茶의 고사에서 유래된 이야기이다.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를 밝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찾아온 구도자에게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는 것이다. 천하의 조주선사는 ‘끽다거喫茶去’란 공안을 우리에게 던져준 것이다.
차茶로써 진리를 전한 것이다. 임제(臨濟:?~867)의 고함喝도 아니요, 덕산(德山:780~865)의 방망이棒도 아닌 조주趙州의 ‘차茶 한 잔’이었다.
선불교의 공안집公案集인「벽암록碧巖錄」에서 “덕산스님이 사정없이 내려치는 주장자의 모습은 마치 소나기 빗방울 쏟아지듯 하고, 임제스님의 고함소리는 천둥이나 벼락 치듯 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조주스님의 ‘차 한 잔’은 얼마나 따뜻한 배려인가.
조주는 '끽다거'란 숙제로 우리에게 마음공부를 시켰고, 금당은 '끽다래'란 인사로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
세상은 하나의 꽃밭이다. 동아시아 다도인茶道人들의 이런 한마음 잔치는 그 꽃을 아름답게 가꿔 멋진 정원을 만들어가는 일이리라. 조화로운 그 꽃밭의 향기가 ‘세계일화世界一花, 이화세계理化世界’를 펼치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은 성당盛唐의 시인 왕유(王維 699~759)가 쓴 ‘육조혜능선사비명’의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이 세상은 하나의 꽃이며 조사의 종풍은 여섯 잎이라는 의미로 초조 달마에서 육조혜능까지 내려온 중국 선종禪宗의 전등傳燈을 표현한 말이다.
이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의 글씨는 하동 쌍계사 금당金堂에 편액으로 걸려있다.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명필인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친필이라 한다.
세상은 결국 하나로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백림선사의 산문 앞에 걸린 주련의 글귀가 가슴에 와 닫는다. ‘문 밖의 조주선풍은 만리세상을 잇는구나.
차의 정신은 선禪의 정신이다.
임제의 고함도 아니요 덕산의 방망이도 아닌 참으로 애정 어린 노스승의 배려가 담긴 '차 한 잔 하게喫茶去'는 조주차趙州茶 한 잔에 삼라만상뿐 아니라 도道가 들어 있음을 빨리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끽다거’ 화두 하나로 관음원을 찾아온 구도자들을 공부시킨 천하조주天下趙州의 일완청차一碗淸茶는 어떤 맛과 향기였을까.
차로써 진리를 전한 그 이치를 공부하는 것이 사람공부요, 다도공부인 것이다. 수많은 게송과 설법보다 손수 만든 따뜻한 차 한 잔이 오히려 낫다는 옛 도인들의 이야기가 실감난다.
그 당시 하북에서 북경으로 오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역시 넓은 땅이다. 길에서 낮이 가고 밤이 왔다. 이국땅의 나그네가 느끼는 감흥이다. 여행길에서 낙조를 바라보노라면 언제나 그렇듯 삶의 무상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것도 가을날의 해질녘이면 더욱 삶의 의지와 함께 동반되는 상념이리라. 문득 송나라 소동파(蘇東坡1037~1101)의 시를 읊어본다.
和子由澠池懷舊 민지澠池에 있는 아우子由에게 답하며, 옛일을 생각
人生到處知何似 사람의 한 평생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
應似飛鴻踏雪泥 기러기 날다가 눈밭에 남긴 발자국 같은 것
雪上偶然留指爪 눈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더라도
飛鴻那復計東西 기러기 날아간 곳 동인지 서인지 어찌 알리라
老僧已死成新塔 노승은 이미 죽어 사리탑으로 세워지고
壞壁無有見舊題 허물어진 벽에 우리가 쓴 옛글 찾을 수 없네
往日岐嶇還記否 우리가 걷던 험난한 길 기억나는지
路長人困蹇驢嘶 먼 길 사람도 지치고 나귀도 절뚝대며 우네
조도현로鳥道玄路. 새는 공중을 날아다녀도 자취를 남기지 않는 법. 일체에 걸림이 없이 자유인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공부를, 어디론가 날아가는 공중의 새에게서 배울 수 있을 터.
고금을 통해 차를 즐겨 마신 사람들은 차를 양생의 선약仙藥으로, 또는 수행의 수단으로, 그리고 예술의 영역이나 철학의 방편으로 차 문화를 꽃피어 왔다.
다도는 동양 정신문화의 뿌리이며 우리 민족 전통문화의 꽃이다. 다도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마음공부다. 차의 세계는 무궁하고, 차의 길은 모든 종교와 철학과 예술을 두루 관통한다. 다도는 생활이다.
‘심외무법心外無法’, 마음 밖에 있는 건 허상이다. 마음 밖에 따로 부처도 없고 신도 없다. 이는 원효(元曉: 617~686)의 ‘마음 밖에 진리가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心外無法 胡用別求’의 깨달음이다. 다도생활, 곧 마음공부를 통해 그 해답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리라. 차에 담긴 정신을 발견하여 선禪의 경지를 체득하는 희열이 다도의 요체다. 인정과 참됨이 퇴색되어 가는 오늘날, 비록 속세에 살지라도 속물이 되고 싶지 않는 현대인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다도생활이다.
사람의 뜻을 성실히 하고 심성이 올곧게 되도록 도와주는 영약이 차고, 이를 즐기는 삶이 차 생활이다. 세상의 모든 귀한 것들은 인간의 고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그 착한 심성이 참됨을 지켜는 차인의 향기이리라.
차 문화를 재조명하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차 생활이 어쩌면 오늘날의 현실에 너무나 동떨어지고 한가로운 일인지도 모른다. 디지털이니 하는 첨단의 시대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생활에서 모순과 몰인정을 타파하고 윤기 있고 살 맛 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차 생활이리라.
여린 쪽빛으로 다가오는 이른 아침에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무애차無碍茶’를 벗할 수 있다면 오늘은 더욱 더 행복한 날이 아니겠는가.
‘행복한 날은 바로 오늘이다.’ 란『벽암록碧巖錄』의 구절을 떠 올리며 향기로운 차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