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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부활
요한복음 5:19-29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아버지의 뜻에 완전하게 일치되는 일만 하십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나 행위 가운데 하늘 아버지의 뜻에서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영원토록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모든 것을 다 아들에게 알리시고 그분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택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역사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을 보며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은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일하신 증거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보다 더 큰 일”은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될 미래의 사건을 말합니다.
따라서 21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뜻을 가지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생명의 부활로 일으키실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즉, 예수님의 논리에 의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부인하며 반박합니다.
“사람의 몸이 죽으면 먼지가 될 것이고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 다른 죽은 사람들의 먼지가 된 몸들과 섞일 텐데 어떻게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22장 28절을 보면 사두개인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일곱 남편과 연속적으로 결혼한 어떤 여인을 가상하여 부활을 부인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현대의 사두개인들 역시 여러 상황을 가상하며 부활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간단합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초기 인디언들이 순식간에 천둥소리와 번갯불을 내면서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아무 때나 죽이는 총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총이 완전한 기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물며 인간들의 좁고 얄팍한 잣대로 어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곤충이 어찌 사람의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있으며 동물이 어찌 인간의 문화를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이해를 초월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시골 사람이 약국에 오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약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제대로 된 약사는 약이 어디에 있는지, 그 약이 언제 들어왔는지, 또한 그 약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전문 원예사는 여러 다른 많은 씨앗들이 섞여 있어도 그 씨앗들을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먼지와 먼지를 구별하실 수 없겠습니까? 그분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아시기 때문에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에 대해 어떤 실수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많은 먼지가 서로 섞여 있더라도 하나님은 가장 작은 성분까지 구별하여 다시 짝을 맞추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인정하는 자들은 사람의 부활에 대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28절에서 부활의 실체를 말씀하십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이다”(28절).
예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라는 말씀은 ‘전부’라는 뜻입니다. 즉, 부활하는 자는 “무덤 속에 있는 자들 전부”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 죽은 자들 전부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죽든, 어떤 종류의 무덤에 들어가 있든,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모든 죽은 자들의 몸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불에 타서 재가 되어 죽었고, 어떤 자는 익사해서 죽어 물고기의 밥이 되었을 것이며, 심지어 어떤 자는 식인종에게 먹힌 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몸의 성분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그들은 전부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의인이든 악인이든 경건하든 사악하든 늙은이든 젊은이든 상관없이 전부 부활할 것입니다. 심지어 어머니의 모태에서 죽어 한 번도 태양을 보지 못했던 태아들도 부활할 것입니다. 즉, 뱃속에서 잉태했던 모든 인류는 전부 부활할 것입니다.
바다와 땅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은 자들을 토해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였던 사람들 중에 부활하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더라.”(계 20:12).
인자가 심판을 하는 그 날에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주의 음성을 듣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티끌로 변했던 죽은 자들의 몸이 인자의 음성을 듣고 다시 생명을 얻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에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을 지나지 않고 곧바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대신에 갑자기 변화할 것입니다. 그후 그들의 몸은 무덤에서 일어난 자들의 몸과 같은 형체가 될 것입니다. 이에 바울 역시 같은 고백을 합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 24:15).
그러면 무엇이 부활합니까?
인간의 죽었던 몸이 부활합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때 몸은 죽은 시체가 될 것입니다. 그후 먼 훗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언급하면 부활은 몸에만 적용됩니다. 더욱이 부활할 때 일어나는 몸은 죽었던 그 몸이 일어납니다. 즉, 부활의 몸은 물질적인 면에서 지금 우리가 지닌 이 몸과 같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의 특성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은 자가 부활합니까?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마지막 날 모든 사람 앞에서 주와 그리스도로 등장하실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그의 강력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세상의 심판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살후 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살아있는 자들은 “변화될 것이라”(고전 15:52).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엄청난 소리일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위엄과 공포 가운데 이 세상의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그 광경은 대단히 웅장하며 위엄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시는 장면을 부분적으로라도 이해하길 원한다면 출애굽기 19장 16-18절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위해 시내산에 내려오십니다. 이때 큰 천둥소리와 번개와 함께 짙은 구름이 산 위에 임하십니다. 그후 주님은 불 가운데 내려오시는데 시내 산 전체가 크게 요동치고 나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립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 19:16-18).
심판주가 오실 때 나팔 소리는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 나팔 소리는 바다와 땅의 깊은 곳까지 닿을 것이며, 그 엄청난 소리에 사람들의 뼈들이 깜짝 놀라 일어나 각각 연결될 것이고, 모든 죽은 자들의 흩어진 티끌들이 다시 모여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욜 2:8) 죽기 이전의 원래 몸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나팔 소리에 모든 영혼은 자기의 원래 몸으로 돌아가 다시는 몸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더 이상 죽은 시체로 있을 수 없기에 무덤과 영원한 작별을 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일어난 모든 인류는 심판주의 음성을 듣고 주 앞에 나아와 그들을 향한 마지막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경건한 자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가 서로 구별되지만 엉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때는 신자와 불신자가 서로 영원히 완벽하게 따로 구별될 것입니다.
경건한 자는 무덤에서 일어날 때 그리스도의 성령의 인침으로 인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복된 상태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주께서 강림하실 때에 영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참조, 고전 15:23).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나아올 것이며 완전한 해방과 함께 완전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사 26:19).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후 그녀의 침소에서 나와 결혼식에 임하는 것처럼, 성도들은 그들의 무덤에서 나와 영광스럽게 변화하여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임할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나올 때의 그 기쁨,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나올 때의 그 기쁨, 또한 요나가 고래의 뱃속에서 살아나올 때의 그 기쁨은 부활 때에 성도들이 무덤에서 나오는 그 기쁨을 희미하게나마 미리 맛보여주는 기쁨입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최고의 감동 가운데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죽음이 삼킨 바 된 승리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오 죽음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오 무덤에 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
성도들은 과거에 믿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지만 이제 친히 부활한 후에는 부활의 승리를 직접 눈으로 보며 몸소 체험하며 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이 땅에 있었을 때 가졌던 잠깐의 의심들과 두려움과 고통은 자취도 없이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한편, 불신자들 역시 공의를 나타내실 의로운 심판주이신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해 부활할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을 지옥에 가두고 그들 몸을 무덤에 가두었던 하나님의 능력은 이제 그들을 일으켜 세워 그들의 영혼과 몸이 하나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 후 그들은 끔찍한 저주의 판결을 받고 그들의 몸과 영혼은 불못의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그러므로 불신자들이 무덤에서 나올 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두려움과 경악 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악랄한 악당들이 깊은 감옥에서 끌려나와 죽음의 처형을 당할 때처럼 불신자들은 무덤에서 끌려나와 영원한 처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어린양의 얼굴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산들과 바위들을 향해 자기들 위에 무너지라고 외칠 것입니다. 애굽에서 멸망의 천사가 지나다니며 애굽인들의 장자를 치던 밤에 터져 나온 그 끔찍하고 공포에 찬 비명이 또 다시 터져 나올 것입니다. 땅이 입을 열어 다단과 아비람 및 그들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삼킬 때 터져 나온 처절한 절규와 비명이 마지막 나팔이 불 때도 모든 불신자들의 입에서 터져나올 것입니다. 한때 서로 키득거리던 친구들이 서로 저주하면서 슬피 울며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마치 도살장을 향하는 돼지들이 비명을 지르듯 불신자들은 무덤에서 끌려 나오면서 끝없는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 때 불경한 말들을 내뱉었고 향락에 빠졌으며 탐욕에 젖어 살던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을 의롭게 보이려는 형식적인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고통 가운데 몸을 비틀며 가슴을 칩니다. 자신들의 처지 때문에 괴로워하며 탄식합니다. 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왜 그러한 미친 짓들을 했는지 자신들을 향해 미친놈, 바보, 더러운 짐승이라 부르며 저주합니다.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악 가운데 죽었으며 이제 그들은 죄악과 함께 다시 살아납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의 영혼과 몸이 서로 오랫동안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순간, 그들은 불에 타는 뱀들처럼 괴로움 가운데 온 몸과 영혼을 비틀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부활체의 특성은 어떠합니까?
성도들의 몸은 부활 때에 사도들이 말한 것처럼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할 것이며, 특히 영적인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우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성도들의 몸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성도들의 몸은 불신자들의 몸처럼 썩어지는 몸이며 병과 죽음의 씨앗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죽을 때 그들의 몸 역시 가장 가까운 친지들이 보기에도 추합니다. 성도가 죽으면 그들의 몸 역시 무덤에 묻힌 후에 썩어서 먼지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지겨운 상처들과 질병으로 인해 매우 보기 흉한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 때에 그들은 모든 부패의 근원을 무덤 속에 남겨두고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들의 부활한 몸은 연약해지거나 병이 들거나 상처를 입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며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외부의 폭력이나 내면의 고통의 요인들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다시는 육체가 고통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가장 젊고 왕성한 몸으로 영원토록 유지될 것이며 지금 세상처럼 나이로 인한 부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로, 부활의 몸은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완벽한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찬란할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지난 자도 부활 때의 성도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몸을 지닌 자와 비교할 때 그 이름조차 꺼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눈부신 광채가 있었습니다. 공회 앞에 섰던 스데반의 얼굴은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패를 벗어던지고 해처럼 빛나는 부활한 성도들의 얼굴 및 풍채의 아름다움과 영광과 균형과 위엄은 어떠하겠습니까! 성도들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얼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통해 발산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몸 전체가 영광 가운데 부활할 것이며 그들의 주이신 구세주께서 변화산에서 보이신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마태복음 17장 2절은 우리 주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날 뿐만 아니라 그의 옷도 빛처럼 희었다고 증언합니다. 성도의 몸이 무덤에 누일 때 그들의 몸은 세상에 사는 동안 일어난 사고 때문에 상처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 불구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모태에서부터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선천적인 요인에 의해 기형의 몸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이 무덤에서 일어날 때는 이러한 상처나 불구와 기형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 이후 예수님의 몸에 못자국의 상처가 그대로 있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성도들이 주를 위해 받은 흉터와 상처는 부활 이후에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처들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기보다 도리어 그들의 영광을 무한하게 돋보이게 할 것입니다.
아무튼, 그때가 되면 이삭의 눈은 침침하지 않을 것이며, 야곱은 절뚝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레아의 눈은 사팔뜨기가 아닐 것이고, 므비보셋의 다리는 건장하여 맘껏 뛸 것입니다. 마치 금 세공인이 깨어진 그릇을 녹여 광채가 나는 새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무덤에서 썩은 우리의 더러운 몸은 부활과 함께 완전하고 아름다운 균형 있는 몸으로 다시 새롭게 나올 것입니다.
셋째로, 부활의 몸은 능력이 많은 강한 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몸이라도 점점 노쇠하여지다가 어느새 기력을 읽고 소모되더니 반드시 죽게 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강한 몸이라도 현재의 몸은 죽음을 향하는 연약하고 허약한 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연약한 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 12장 8절을 보면,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을 것”(슥 12:8)이라고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에 의하면 성도는 부활 때에 지금보다 수천수만배 강하여질 것입니다. 영광을 입은 부활체의 힘은 분명히 엄청날 것인데, 이는 차고 넘치는 영원한 영광을 감당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썩을 심장이 어떻게 차고 넘치는 감격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썩을 육체가 어떻게 무한한 아름다움과 영광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썩을 육체가 어떻게 하늘의 황홀함으로 가득찬 영혼과 연합하여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썩을 육체는 영원한 영광 앞에 무너질 것이며, 하늘의 충만한 기쁨은 먼지로 만들어진 육체 그릇을 가루로 만들어 하늘로 날려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한하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활의 몸 역시 무한하게 강한 몸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현재의 연약한 “혈과 육”으로는 영원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새 예루살렘의 해처럼 밝고 휘황찬란한 영광을 보아야 하는데 우리의 육신의 눈이 얼마나 강하여야 하겠습니까! 또한 인자이신 그리스도의 초월하는 영광과 밝음을 계속 보려면, 새 예루살렘 도성의 빛인 어린양을 보려면, 태양보다 더 밝게 비치는 천국 시민들을 계속 보려면 우리의 육체의 눈은 얼마나 강하여야 하겠습니까!
현재는 하늘의 주께서 자비 가운데 사람들이 그분의 보좌를 보지 못하도록 감추시고 그의 구름을 보좌 위에 펴셨습니다(욥 26:9). 이는 죽을 육체들이 주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광채를 보고 기절하여 죽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 날이 오면 베일이 치워질 것이며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 가운데 주의 보좌를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쉼도 없이 영원히 하늘의 성전에 거하면서 조금도 피곤함이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의 몸은 과연 얼마나 강하여야겠습니까? 육체의 피곤이란 연약한 죽을 육체에나 해당하는 것이지 영광을 얻은 부활체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성도의 부활의 몸은 신령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신령한 몸이란 성도의 몸이 영으로 바뀐다는 뜻이 아니라 영이 지닌 특징과 장점을 몸도 지니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몸은 영혼의 지시를 완벽하게 순종하고 따르며 또한 영혼에 의해 힘을 얻을 것입니다. 몸의 활동을 막는 장애가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영혼을 거스르는 동물적인 욕구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몸을 쳐서 복종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의 삶은 몸의 연약함 때문에 영혼이 심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 용어로 표현한다면 현재 우리의 영혼은 육체의 정욕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몸은 영적인 몸으로서 영혼의 활동과 완전하게 연합될 것입니다. 그 때는 부활의 몸이 마치 영혼처럼 흙보다는 하늘에 더 많이 연관될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몸은 더 이상 삶을 유지하기 위한 생필품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음식이나 옷 등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계 7:16).
“부활 때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느니라”(마 22:30).
그때 성도들은 음식과 음료와 옷이 없을지라도 강할 것이며, 완전한 건강 가운데 있을 것이기에 약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늘 힘이 솟고 원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전혀 잠을 자지 않아도 늘 성전에서 밤낮으로 주를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참조, 계7:15).
부활의 몸은 늘 최상의 상태일 것이며 영혼처럼 날렵하고 활동적일 것입니다. 지금의 몸은 둔하고 무겁지만, 부활의 몸은 최상의 콘디션으로 늘 팔팔할 것입니다. 마음을 무겁게 하고 영혼을 낙심시키는 우울증과 같은 증상은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날이 되면 부활의 몸이 어떠할지 우리 모두가 자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불신자들의 부활체의 특성은 어떠합니까?
성경은 악인들의 부활체에 대해 거의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부활체는 뭔가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비참은 그들의 필요가 하나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4-25절을 보면, 부자는 자기의 혀를 서늘하게 할 물 한 모금 얻지 못합니다. 불신자들의 부활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부활체는 한없이 연약할 것이며, 늘 죽어가는 상태에 있을 것이지만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늘 ‘죽고 싶다, 죽고 싶다’고 절규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나고자 할지라도 조금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계 14:11).
지금 이 세상에서는 악인들이 어둠 가운데 행하면서도 종종 자신들의 정체를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재판관이 불꽃 가운데 오셔서 그들의 모든 불의를 빛 가운데로 끄집어내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가면은 다 벗겨질 것이며, 그 대신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가 모든 자들 앞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당황 가운데 손으로 얼굴을 가릴 것입니다. 그들의 수치는 너무 깊어서 얼굴이 붉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어둠처럼 검어질 것입니다.
그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때는 마치 악인들이 감옥에서 나와 처형장으로 가는 것처럼 영벌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이 기형임에도 불구하고 몸의 허망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때 부활 때에는 시체와 같은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에서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깊은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지옥의 불길처럼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괴물의 모양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혐오스러운 부활체로 일어날 것입니다. 마치 영화에서 ‘좀비’ 같은 것이나 그보다 더 징그럽고 섬뜩한 몸이 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징그럽고 더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과거에 그들이 이 땅에서 어떤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었든지 상관없이 부활 때에는 온 우주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마치 죽어 썩어진 수많은 시체들과 같이 그들의 흉측함과 더러움은 부활한 성도들에라도 혐오감을 느끼게 만들 것입니다.
이에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합니다.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사 66:24).
다니엘 선지자도 불신자의 부활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으리라”(단 12:2).
이사야는 불신자의 부활체는 ‘가증함’이라 하였고 다니엘은 ‘영원한 혐오’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사야와 다니엘은 각각 나름대로 불신자의 부활체가 얼마나 징그러운지를 묘사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부활은 서로의 눈에 보기에도 지독하게 징그러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교훈을 통해 여러 가지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부활의 교훈은 신자들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을 무한하게 줍니다. 혹시 인생 가운데 경건한 가족들과 친구를 잃고 슬픔의 자리에 있게 되면 부활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기를”(살전 4:13) 바랍니다.
약하고 아픈 몸 때문에 낙심하고 있습니까? 내면의 속사람을 더욱 가꾸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가 완전하게 건강하여질 날이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몸이 못생기거나 또는 불구입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 안에는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의 영광이 있습니까? 그러면 어느 날 여러분 안에 있는 영광은 영원한 외적인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즉, 여러분의 몸은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준수하고 멋지게 균형 잡힌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성도가 무덤에 묻힐 때는 흉한 몸도 있고 불구인 몸도 있겠지만, 그들이 부활할 때는 그러한 연약함이 완전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곧 죽음을 지날 것이며 이 몸은 땅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마침내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나올 것입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위로입니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소망입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고 권면합니다.
반면, 모든 불신자들은 오늘 말씀과 함께 경고를 받기 바랍니다.
혹시 아직 거듭나지 않은 분이 있다면 불신자의 운명이 어떠한지 확인하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나팔이 울리는 그 날에 지옥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모든 무덤이 하늘을 향해 입을 열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잡아 삼켰던 바다는 죽은 자들을 토해낼 것이며, 땅 역시 죽은 자들을 내칠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죽음의 세력은 그 동안 가두어 두었던 모든 영혼들을 풀어줄 것입니다. 이때 불신자의 사악한 영혼과 더러운 육체가 다시 결합하더니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호송됩니다. 그러면 불신자는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그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어서 산과 바위를 향해 내 위로 무너지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이성 없는 짐승들처럼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그 귀한 인생을 쓸데없는 썩어질 것들에 다 탕진해 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음 후에 어떻게 될지 알려주었지만 전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까? 세상을 떠나면 내 영혼이 어디로 갈지, 부활의 아침에 나의 시체는 어떻게 될지, 알고 있습니까? 불신자들은 이러한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기 바랍니다. 불신자인 당신의 몸은 죄와 함께 흙에 묻혔다가 다시 일어날 때에 가장 사악하고 흉측하고 비참한 몸으로 일어날 것이며 또한 영원한 불못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몸을 아끼지 않고 수고합니다. 하지만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는 조그마한 수고라도 꺼려합니다. 자신의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도가 지나치도록 몸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자기 영광을 얻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피곤에 지쳐도 책임감이라는 명분 아래 계속 일을 하지만 주의 날이 되어 교회에 가는 일은 무한한 괴로움으로 여깁니다. 세상에서 형통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여행하며 인내하지만, 영원한 영혼의 양식을 위해서는 코 앞에 성경이 있어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일주일 내내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하다가도 주일만 되면 몸이 힘들다고 하며 집에 누워 주 하나님을 뵙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죽은 자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의 몸은 해처럼 빛날 것이며 각자 행한대로 영원한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님을 멸시하고 무관심했던 자들은 흉측한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지금 잘생긴 불신자들의 얼굴들은 그때는 검어질 것이며 그들 몸 전체가 뿌리까지 썩어져서 그들의 아름다움은 흔적조차 없을 것이고, 오직 시체와 같은 흉측함과 기형만이 남을 것입니다.
아! 현재의 외모의 아름다움 뒤에 숨어 있는 괴물같이 기형이 된 불신의 마음들이여! 심판주께서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실”(살후 1:7-8) 때에 그들의 몸은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몸을 가릴 수 있는 천조각하나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썩은 몸은 그대로 드러나 온 우주에 혐오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며 의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그들의 혐오스러움과 대조되어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불신자들이여! 지금 당장이라도 의인의 부활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분과 연합하기 바랍니다. 죄로부터 일어나 당신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요 11:25). 만일 당신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성령의 전이 된다면, 당신은 반드시 영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 지금 구원의 방주에 올라타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기쁨 가운데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기 바랍니다. 무거운 죄짐을 벗어던지고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전부 내다버리기 바랍니다.
신자들이여! 부활과 심판의 날을 결코 잊지 말고 부끄러운 롯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기 바랍니다. 오늘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영접할 것을 모든 자들에게 청하시며 가장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오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확인하며 인생을 마치는 그날까지 부활의 소망으로 사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