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__광화문시동인회 조명__신경숙
문 밖을
서성이는 외 1편
──의송화
신경숙
한낮의
뜨겁고 비린 정사
아랫도리를
위로 세우고 정분난 꽃들의
엉킨
시간을 씨주머니에 묶어
바알간
햇살의 가시를 발라 팔딱거리는 씨방을 찌른다
의송화를
버렸던 부전나비는
세울
수 없는 앞다리의 기억을 일으키며
여자의
간지러운 날개 뼈 주름 속에 웅크리고
닥지닥지
달린 진딧물의 유년을 나무의 수액처럼 빨고 있다
척추뼈를
누인 꽃들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새끼줄로 묶어
어지럼증의
아랫도리를 싸리 울타리에 세운다
사내의
허기가 부풀려지고 솟구친 분芬들이
유월의
뜨거운
구멍 속을 열어 실핏줄의 엷은 꽃잎을 달군다
데워진
햇살에 층층이 젖은 붉은 꽃잎을 말린다
안으로
데려 갈 수 없어 담장을 서성이는 여자처럼
보리강냉이
같이 부푼 엉덩이를 드러내며
넘을
수 없는 문설주에 도돌이표를 그리며
거짓말처럼
밥풀꽃 같은 눈물길을 내고 있다
아랫도리를
위로 세우고 설익은 씨방을 익히는
꽃들의
길은 단내를 풍긴다
문밖을
서성이는 의송화, 여자의
별 같이
초롱한 태아의 길은 그뭄밤처럼 음습하다
여자에게
꽃길을 내고 다녀간
나비의
흔적이 화석처럼 남아있다
몸을
열은 오래된 기억이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
값하고
싶다
언제쯤
동인이 될까싶던 시·무크지에, 원시림의 사내를 만나고 싶은 벗은 여자와 타는 가슴이 몽산포 노을 같아
흐린 날 모랫길을 걷는 사내, 아리실 외딴 집 문풍지에 핀 연한 쑥부쟁이 그 여자,
장구실 뒷마당에 목줄만 휑하니 남긴 소이의 풍장 시 5편이 지면을 차지했다 중심이 살아있는
사내와 석류 알갱이처럼 가슴이 붉은 여자에게 풀잎처럼 싱싱한 얼굴의 무크지를 건넸다 부동산시장이 바닥이야 임대아파트 월세도 내기 힘들어 공인중개사사무소
사장님 노랗게 웃으시며 택시를 몰고 왔다 벚꽃잎에 시편을 적어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말하는 옥탑 붉은 십자가에 띄어 보내도 답장이 없어 부르면
언제나 산수유처럼 노랗게 웃는 택시기사가 되었다 시인 친필은 처음이라 고맙다는 깨알 같은 마음을 딸기에 박아 보냈다 시는 어렵지 않고 낮설지 않고
비틀지 말았으면 해 그냥 배시시 끄덕였으면 해 단물을 삼키며 내 시가 딸기 값을 한 것인가 물어본다
아리실
선희는 술을 마시면 술값을 해야 한단다 소주는 알싸하게 맥주는 거품 일으키며 막걸리는 빈대떡만한 슬픔을 부쳐 먹으며 한 잔 술에 입술을 축이고
두 잔은 목줄을 세우고 세 잔 술에 내장의 길을 내야한단다 모태母胎신앙인 그녀의 주酒님 예찬론 아니, 사찰
나들이 좋아하던 신랑의 유언같은 주酒기도문
술도
값을 하는데 내 시가 노랗게 웃는 선배의 딸기 값이라도 되었으면 한 잔을 먹어도 붉게 익어 주량을 가늠할 수 없는 내 술값처럼 지지하지 않았으면
시인이라
말 못하는 난 아직 값을 못하고 산다
신경숙 / 2002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비처럼 내리고 싶다』가 있다. 17회 서울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