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문수봉 산행기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나니 금세 오전이 지났다. 점심을 먹고 어제에 이어 북한산 산행에 나섰다. 전에도 명절 연휴 등을 오롯이 북한산에 있은 적이 있었고 주말 휴일 이틀을 연속해서 오른 적도 많지만 한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시기로서는 특별하다 할 수 있다.
어제는 늦게까지 칼바위 능선에 있으면서 산의 심원함을 새롭게 대할 수 있었다. 장엄한 산세의 품에서 평소 도시 생활에서 대할 수 없던 근원적인 자연의 감각이 전해왔다. 그러한 소중한 감각을 다시 대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2시 25분 북한산 국립공원 구기동 분소가 있는 현대빌라 버스정류장에 하차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이 쪽에서 오를 때도 많았지만 한동안 발길이 뜸했었다. 산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왜 이쪽으로 자주 오지 않았느냐며 인사를 건낼때가 있다. 북한산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같은 장소를 다시 찾을쯤이면 계절이 지나고 만다.
오르는 길 옆으로 개울이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개울 옆 길 주변에 오래전부터 보아온 큰 집들이 보였다. 고교 졸업후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곳을 지날 때는 그런 집에 사는 것이 부럽게 보였다. 도시 안에 있으면서 전원주택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편리함과 쾌적성을 동시에 갖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각자 형편대로 장만한 한 채의 집으로 보인다. 좋은 집에 사는 것이 행복의 척도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2시 33분 구기분소 앞을 지났다. 길옆에 백운봉 암봉에서 백운대까지 9월 10일까지 통제한다는 프랫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런 것을 모르고 무작정 코스를 잡았다가는 헛걸음을 할 수 있다. 개울 옆을 지나다 보니 맑은 개울물이 폭포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계곡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청청함을 유지하고 있다.
가다보니 썩은 데크길 목재를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 중인지 군데군데 자재가 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지나는 데크 바닥을 보니 썩은 곳들이 눈에 띠었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지나 오래된 이 계곡 주변 데크와 목재 다리를 모두 수리하려는 것 같았다. 이 쪽으로 오르는 길에는 특히 다리가 많다.
오늘은 팔월의 마지막 날이다. 처서가 지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해마다 늦더위가 심해지는 상황이라 아직도 더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산행을 시작하고부터 옷이 땀에 젖어들었다. 길을 가다 마주 오는 여성 한분이 지나치며 나가는 길이 멀었느냐고 물어보았다. 더위에 지친 느낌이었다. 내가 그리 멀지 않다고 하니 반가운 표정을 띠었다.
버들치교를 건너다보니 그 위쪽 폭이 너른 개울에 지난겨울 폭설로 넘어진 큰 소나무가 앙상한 몰골로 걸쳐 있었다. 암릉을 넘어 승가사 갈림길을 지나다보니 그 곳 쉼터에 등산객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거기서 대남문쪽으로 직진해 올라가 돌단풍교, 국수교를 지나 맨 위쪽 다리인 고광교를 지났다. 거기서부터 거친 바위가 깔린 너널길에 길이 가팔라진다.
그동안 이 길도 많이 오갔다. 10여 년 전쯤 이쪽으로 오르는 도중 등반 전문가 같은 분과 가까이서 걷게 되었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다보니 뒤쪽에서 계속 쫓아오듯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대남문이 가까워진 지점에서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빨리 걷느냐”고 했다. 백두대간 종주 때 홀로 하루에 50km 정도를 걸은 적이 있고 태백산에서 부산 앞바다 몰운대까지 하루에 40km 정도씩 단독종주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가워했다.
오늘은 더운 날씨에 땀이 많이 흐르고 화판을 들고 가느라 그때처럼 빨리 걷지 못했다. 체력도 그때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주말마다 북한산을 오르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함께 산행의 감각을 유지하려는 생각도 있다. 북한산은 장대할 뿐 아니라 대체로 험한 편이어서 한동안 다니지 않으면 부담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산을 오를 수 있는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마도 현재 내가 살아가면서 기쁨을 가질 수 있는 드문 일이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들을 한다. 돈, 재산, 권력, 명예 보다 ‘건강 부자’가 가장 값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엊그제 혈액검진에 이상이 없고 주말마다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고 있으니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늘 쪼들리며 근검하게 살아 오다보니 불만스런 점도 있지만 그 말 대로면 나도 건강부자로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깔딱 고개를 지나 대남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문득 엊그제 지갑을 분실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은 일어버린 지갑과 신분증보다 그 날의 나의 판단에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인사동의 한 건물 5층 데크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다. 점심으로 준비한 빵을 먹으려고 손을 씻고 나오니 저쪽 벤치 위에 검은색 지갑과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기서 그리다 다른부분을 그리려고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의 것이니 손대지 말아야지 하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 성격을 닮은 고지식한 점이다. 그런데 거리로 내려가 그림을 그리고 보니 지갑이 없었다. 부랴부랴 그 장소를 나가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때 호주머니에 지갑이 있는지 확인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층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가 물을 한컵 갖다 주어 인사를 하면서 깜빡하고 그림에 집중하다보니 생각을 놓친 것이다.
3시 31분 대남문에 도착했다. 쉬지 않고 300m 정도 남은 길을 올라가 3시 39분 문수봉에 당도해 늘 그리던 바위에 자리를 잡고 정상쪽을 바라보았다. 그 우측 소나무가 점차 자라서 예전과 달리 시야를 조금 가리는 상황이 되어 바위 끝자락으로 바짝 다가가 말안장에 걸터앉듯 자세를 잡았다.
이 곳에서 바라보이는 풍광은 내가 북한산에서 손꼽는 빼어난 경관중 하나이다. 북한산 정상부 우측으로 멀리 도봉산 전경이 어우러져 보인다. 그 사이 이곳에서도 여러 차례 그려왔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시야가 좁고 하늘에 짙은 구름이 많이 끼어있었다.
지난 20년 가까이 북한산을 그려오면서 북한산의 전모를 다 그림으로 남기려는 생각으로 북한산 전경, 원경, 주능선, 주요 봉우리와 계곡, 성곽, 사찰 등 목차를 정하고 그려왔다. 그리는 도구도 펜 붓펜 연필 등 다양하게 써 보았다. 그리고 그 목차대로 그려서 책을 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렸던 곳들을 좀 더 잘 그리고 싶은 생각을 갖다 보니 끝없이 그리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도 해질녘까지 오래 머무르게 될 것 같았다. 주변 공터에서 너댓분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여자분이 어릴적 자기 동생이 아버지 신발 한짝을 엿바꿔 먹은 예기를 했다. 예기를 들으며 고향의 어린시절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이 자리를 뜨려고 해서 다가가 남은 물이 있으면 한컵 부탁한다고 하니 내려가는 길이니 물이 더 필요치 않을 것 같다며 남은 물을 주고 갔다.
오후가 깊어지는 시간이어서인지 산길이 한산했다. 띄엄띄엄 오가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고 지나갔다.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점차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북한산 정상 봉우리들과 뭉게구름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이 될 때도 있었다.
그림을 거의 완성하고 앉은 바위를 내려가 나무에 기대 놓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몇 번을 오가며 보완을 하는 사이 해가 기울며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문득 바람의 차가움을 느끼며 흠칫 놀라게 되었다. 여름내 더위와 싸우다 시피하며 빨리 여름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해 왔는데 가을 겨울을 지나며 느꼈던 추위를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다.
북한산 정상 그림 그림을 갈무리하고 문수봉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보현봉을 그리려고 자리를 옮기다 보니 세찬 바람이 불어 자리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냥 내려갈까 망설이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 보현봉을 빠른 필치로 그리기 시작했다. 문수봉 너머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해가 그 구름 속으로 들어가며 어둠을 드리우기 시작해서 점차 마음이 급해졌다. 암봉의 특징을 빠르게 그린 후 큰 붓으로 바탕 숲을 그린 다음 바람이 약한 곳으로 배낭과 화구를 옮기고 짐을 정리한 후 7시 28분 하산을 시작했다.
흐린 날씨에 내려서는 길이 평소보다 더 어둑해져서 디딜 지점이 잘 분간되지 않았다. 평소처럼 랜턴은 사용하지 않고 육안으로 살피며 내려섰다. 그래도 많이 다닌 길이라 더듬거리며 지날 수 있었다. 잠시 후 대남문을 지나 산행을 시작했던 구기분소로 향했다. 대남문 근처에 설치된 데크길은 나무판의 결이 일정해 한단 한단 분간하며 디디기가 더 어려웠다.
그동안 밤길도 많이 걸은 편이고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난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이 이런 상황을 담대하게 임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평소보다 어두운 상황에서 험한 산길을 내려서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지나는 사람은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깔닥고개를 넘으려고 디딜곳을 유심히 살피며 내려갔다. 밝은 한낮보다 길이 더 험하고 멀게 느껴졌다.
잠시 후 목표하던 깔딱 고개를 지나며 부담이 조금 덜어진 느낌이었다. 다시 이번에는 계곡 맨 위쪽 다리인 고광교를 목표로 내려갔다. 조심스레 가다보니 아까 보았던 이정표와 쉼터의 벤치가 희미하게 눈에 띠었다. 쉼터를 지나니 몇 사람의 일행이 내려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 랜턴 불빛이 짐승의 눈처럼 비춰보였다. 그 뒤로 다가서다 오른 발이 바위에 미끌리는 소리가 나자 그 일행이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한분이 나에게 불빛도 없이 다니느냐며 걱정을 했다. 내가 괜찮다고 인사를 하며 앞서 걸어갔다.
잠시 후 고광교를 지났다. 끝지점꺼지 나가는 길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지만 어둠 속에 너덜길을 걷기가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가다보니 산능성이 위로 구름에 쌓인 반달이 보였다. 맑은 날 같으면 그 달빛이 조금이라도 길을 밝게 해줄 것 같았다. 험지를 탈출하려는 의식 속에 계속해서 빠른 걸음으로 두 개의 다리를 지나 승가사 갈림길에 당도했다. 조금 더 안도감이 들었다. 거기서 다시 암릉을 넘어 다리를 지났다.
점차 종착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만큼 부담감도 적어지고 있었다. 맨 아래 다리를 지나니 동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산책로가 나타났다. 이제 그 좌측 산자락만 돌아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머리 입구 화장실을 들러 8시 19분 마침내 구기분소를 지나 마을 포장길로 나왔다. 그림을 그리던 장소에서 2.8km 밤길을 조바심 속에 지나온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어서 빨리 귀가해 평온함을 누리고 싶었다.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20250831)
첫댓글 항상 그자리에 계신것이 보이가 너무나도 좋습니다
시간이 될때마다 북한산을 감각을 잊지않기위해 꾸준하게 오르고 그림을 그리고....건강부자이고 생각부자인것 같습니다
올만에 좋은 산행기를 읽었습니다
건강하게 다음에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최건축사님도 늘 차분하고 덕망있는 한결같은 인상이 떠오릅니다.
덕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