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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01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흉패를 만들라.- 자수정’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출 39 : 08-13입니다.
“그가 또 에봇을 만든 것 같이 흉패를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 금실, 청색, 자주색, 주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만들었으니 그것은 네모반듯하더라. 그들이 흉패를 두 겹으로 만들었는데 그 길이가 한 뼘이요, 너비가 한 뼘이며 두 겹이더라. 그들이 흉패에 보석 네 줄을 달았으니 곧 홍보석과 황옥과 석류석이 첫째 줄이요, 둘째 줄은 에메랄드와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요, 셋째 줄은 호박과 마노와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과 얼룩마노와 벽옥이더라. 그들이 그것들을 그것들의 틀에 넣고 금장식에 물렸더라.
(And he made the breastplate, artistically woven like the workmanship of the ephod, of gold, blue, purple, and scarlet thread, and of fine woven linen. They made the breastplate square by doubling it; a span was its length and a span its width when doubled. And they set in it four rows of stones: a row with a sardius, a topaz, and an emerald was the first row ; the second row, a turquoise, a sapphire, and a diamond ; the third row, a jacinth, an agate, and an amethyst ; the fourth row, a beryl, an onyx, and a jasper. They were enclosed in settings of gold in their mountings.)”
임마누엘!!
하나님은 모세에게 대제사장의 옷에 흉패를 만들어 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줄에 첫째 줄에는 홍보석, 황옥, 석류석을 붙이고, 둘째 줄에는 에메랄드,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를 붙이고, 셋째 줄에는 호박, 마노, 자수정을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넷째 줄에는 녹보석과 얼룩마노와 벽옥을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12지파는 야곱의 12아들이 12지파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위 지파를 성전을 맡은 지파로 구별하시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한 지파씩 세워 12지파로 세우셨고, 이 지파들을 상징하는 12보석을 지정하셨습니다.
오늘은 그 아홉 번째 보석인 ‘자수정(紫水晶,amethyst)’에 관한 말씀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히브리어 'achlama(아흘라마)'. '자수정(amethyst)', '벽옥(jasper)'.
이 단어는 오직 출 28:19과 출 39:12에서만 발견되는데 “Amethyst”는 70인 역본에 사용된 단어의 음역어입니다. 자수정(Amethyst)은 붉은 돌로서, 아마도 강옥(corundum)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KB는 '붉은 혹은 갈색의 벽옥(red or brown jasper)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자수정은 야곱의 막내아들 베냐민 지파를 상징합니다.
빼앗고 나누는 베냐민 지파(창49:27 신33:12)
오늘은 이 베냐민 지파에 대해 함께 살피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야곱의 열두아들중 막내 베냐민과 그 베냐민의 후손 베냐민 지파에게 주어진 축복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먼저 야곱이 베냐민에게 주어진 축복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에 대해 야곱은 물어뜯는 이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리는 한국 사람들의 이미지 속에서는 잔인하고 인정사정도 없는 약탈자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이리라고 하면 악한 짐승으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리를 매우 좋은 이미지로 받아들였습니다. 무엇이 좋으냐 이리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힘있고 강한 집념이 있는 동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목표지향적인 동물로 좋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베냐민을 이리로 비유하는데 그것도 물어 뜯는 이리로 비유하여 축복했습니다 물어뜯는 이리란 그의 거칠고 호전적인 성격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여기에 먹는 문제가 나옵니다 이 먹는 문제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생존문제는 경제 문제입니다.
베냐민은 생존을 위해서 무엇이 든지 할수 있고 경쟁과 싸움에서 이겨 빼앗은것을 먹고 탈취한것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먹고 먹히는 생존의 투쟁의 장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냐민은 이리처럼 체구가 작지만 강한 집념과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이리같이 생존의 싸움에 승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에게 주어진 예언이 축복이 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아침에 빼앗은 것으로 먹는일이 전부가 되었다면 그것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처절한 싸움으로 빼앗고 그 빼앗고 탈취한 것을 저녁에 가서는 형제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경제활동의 범위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먹고사는 경제의 변천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들에게 계시해주시는 경제의 허락범위를 보면 1. 사람이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은혜의 경제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든가 장사를 한다 던가 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먹기에 좋고 보기에 좋은 나무들이 나게하여 마음대로 실과를 먹으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덴에서는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노력이나 경제활동이 필요 없었습니다.
에덴에서의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의 동산 에덴의 동산을 지키고 다스리고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에덴에서의 일은 힘든 노동이 아니라 보람있는 기쁨의 놀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먹고사는 것이 문제가 되었느냐
아담이 범죄했을 때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어겅퀴가 돋나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해 땀흘리는 수고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일은 행복을 가꾸는 즐거운 놀이가 아니라 생존의 노동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노동은 힘든것이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경제활동은 잡아먹는 경제 이리가 아침에 탈취하고 빼앗은 것으로 먹듯이 남의 것을 탈취하고 빼앗는 경제활동까지 허락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죽이고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도짓입니다. 빼앗고 탈취하되 정해주신 규칙이 있습니다.
생명이 되는 피 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잡아 먹지만 잡아 먹을 수 있는 범위를 합법적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빼앗고 탈취하되 합법적으로 빼앗고 탈취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합법적으로 빼앗고 탈취하는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서로의 약속으로 계약맺고 빼앗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세상의 경제는 이러한 탈취 경제의 시대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생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무지한 가운데 순하고 착해서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착해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보다 더울 지혜로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기업 세상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을 수 있어야 합니다. 웨 빼앗고 탈취해야 하느냐 세상 사람들은 나누는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몸집만 불리고 자기 배만 채우려고하지 빼앗은 것을 나누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빼앗는 이유는 빼앗은 것을 나누기 위해서 빼앗는 것입니다.
사람이 빼앗고 탈취하는 것은 경영권을 빼앗고 그렇게해서 형제들이 함께 살수 있게 하는 일이 뭐냐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는 일이 되는것입니다.
이러한 베냐민의 후손되는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는 이렇게 축복합니다.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모세는 아침에는 빼앗고 저녁에는 나누는 베냐민의 후손에 대해
1.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 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곁에서 안전히 거하리라고 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3.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리리고 축복하시고 4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냐민은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형제들을 살리는 경영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베냐민의 출생 배경을 말씀하시는 곳이 창 35:16-20절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벧엘에서 이동하였는데 에브랏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라헬이 진통을 겪으며 산고가 매우 심하더라. 그녀가 심한 산고를 겪고 있을 때에 산파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그대가 이 아들도 갖게 되리라." 하매 그녀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이는 그녀가 죽었음이라.) 그녀가 그의 이름을 베노니라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베냐민이라 하였더라. 라헬이 이같이 죽으니 에브랏 곧 베들레헴에 이르는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그녀의 무덤에 기둥을 세웠더니 그것이 지금까지 라헬의 무덤 기둥이 되니라.”
베냐민은 요셉을 낳은 라헬의 둘째아들로 야곱의 마지막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친어머니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으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베노니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후에 아버지 야곱은 이름을 오른 팔의 아들이라는 뜻인 베냐민으로 바꾸었습니다.
난산과 죽음 슬픔의 베노니에서 물어뜯는 이리로 아침에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죽고사는 슬픔의 사건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도 생존의 싸움에서 죽는 일도 있고 살아 남는일도 있는데 죽는자도 슬픔이지만 남는 자도 어미 잃은 아이같은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아버지는 그런 베노니를 베냐민 오른 팔의 아들로 불러주었습니다 능력의 아들로 불러주었습니다.
여기서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는 일로 형제들을 살리는 능력있는 자로 서게 되는 축복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자들 가운데 이 베냐민과 같은 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전쟁터입니다. 진자도 슬픔이요 이긴자도 슬픔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우리 믿는자들은 물어뜯는 이리와 같이 이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를 살리는 하나님의 오른팔의 능력을 힘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베냐민의 이름은 제사장 가슴의 열두보석중에 자수정에 그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자수정은
1. 구하기 힘든 희귀한 보석입니다.
그래서 ‘자수정’을 구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그만한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베냐민을 이 땅에 내놓기 위하여는 라헬이 죽는 댓가를 치루었습니다.
2. 자수정은 만드는 과정이 매우 어려운 보석입니다. 자수정은 구하기도 힘들지만 제련과정이 매우 힘든 보석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자수정이 손에 들려지기까지는 피 눈물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3 그러나 일단 만들어진 자수정은 귀한 보석이 됩니다. 베냐민은 침략적이고 야성적이고 목표를․향하여 갈 때는 물불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저돌적인 이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안에 붙잡혀 일단 쓰임받기 시작하면 잘 제련된 보석처럼 아름답게 일하였습니다. 너무나 귀하게 쓰임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좀더 영적인 시각으로볼 때 마귀는 간교한 자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왕같은 제사장의권리를 속여 빼앗고 세상의 임금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경영은 죄와 사망의 경영으로 세상을 멸망으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며 이 성찬에 참여하는 자를 살리는 경영을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베냐민에게 부어진 아침에는 빼앗고 저녁에는 나누는 축복이 주어지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고] 열두지파 열두보석 강해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