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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설거지를 하는 씽크대 앞의 작은 창문으로 난 골목을 주욱 따라가다 보면 '고산 식당' 이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그곳이 바로 온양의 '쓰리 박' 중 한 분이셨던 돌아가신 '박아무개' 선생님의 집입니다. 사모님의 음식 솜씨가 좋기로 소문났던, 남편을 하늘같이 모신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그 분을 한 시대를 함께 하셨던 분들은 모두 아실 겁니다. 오늘, 유난히 그 분이 그립기에 그 분 좋아하시던 '각 1병' 대신 커피잔을 앞에 놓고 추억의 향기를 맡아 봅니다.
그분과의 인연은 겨울날의 연수를 함께 했던 '얻어탄' 차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연결로 함께 공주연수원까지 가는 길마다 때없이 하시는 '술타령' 에 운전자이신 지금의 모 교감샘께선 느긋하게 막걸리집에 들러 주시는 바람에 저는 깐깐한 연수 담당이신 시인 교장샘께 술냄새나는 지각을 들키지 않느라 어찌나 애를 썼던지요. 하지만, 그 스릴있는 연수 출퇴근길은 항상 웃음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그 분과의 추억 대부분은 그렇게 '술' 로 연결되어 있고, 노래방의 마이크와 연결되어 있고 몇 가지의 술에 관계된 일화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해들은 설화에 의하면 동문회 등반 중 음주로 바위에서 낙하하시며 얻은 머리의 영광의 상처는 두고두고 우리의 즐거운 웃음거리가 되어주셨고, 직원 여행 때마다 사모님이 마련해 주신 음식들로 우린 또 즐거운 이야기 소재로 삼기도 했었지요. 그 분을 마지막 뵌 것이 어느 눈 오는 날 아침 '버스 정류장' 이었음도 저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손을 들어 서로의 안녕을 빌던 마지막 모습까지도...
그 분에 대한 추억이 모두 좋은 것들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알콜중독이라는 마음 아픈 추억조차도 제게는 아름다움으로 담겨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 분이 누구에게 상처를 입혔다든가, 누구를 때려눕혔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한바탕 주먹 다짐이 벌어지던 직원여행의 버스 안에서조차 그 분의 폭력적인 행동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 분에겐 당신 내면의 '아름다운 추억' 들만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고인이 된 누군가를 추억하며 이렇듯 '흠' 이 없는 분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 분처럼 그렇게 살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은 망가지고 형편없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죽은 후에 내게 대한 이야기들은 그렇게 남들에게 잔잔한 웃음짓는 추억거리로 남겨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 상처를 입혔다든가, 누구를 때려눕혔다든가, 누구의 약점을 성공의 발판삼았다는 그런 쓰디쓴 추억거리가 되어지지 않는 인생이길 기도합니다.
선거일을 코 앞에 둔 오늘, 정치판은 '정치적 소신' 은 간데없이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흠집내기로 어지럽고, 교육이 상실된 학교판은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느라 서로를 끌어내리느라 어지럽고, 그 흐름은 어느새 교실에 퍼진 암덩이가 되어 구석구석 동심을 파먹어감을, 나는 오히려 먼 곳에서 바라봅니다.
오늘, 창문으로 내다 보이는 고산식당의 노란 간판이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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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나두 아는분이네요. 아산에서 안면만 있었지만 초등동기이고 숱한 일화를 많이 전해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