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 03. 13일 마산을 출발하여 첫 휴식지 중앙고속도로의 군의 휴게소

충북 단양의 도락산 광덕사(廣德寺)
100만 부처님이 모셔질 백만불전은 세계제일의 큰법당이 있어 법당안에 들어서자 그 웅장함이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단양 IC에서 내려 단양8경중 하나인 사인암을 지나 방곡도예촌 가는 길목에 자리한 광덕사
백만불전을 2017년까지 조성 한다는 거대한 불사!
대웅전을 들어가면 그 규모에 경탄을 하게 된다. 불사가 끝나면 단양 구인사와 견줄 수 있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 본다.



거대한 지장단의 벽화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의 영정사진이 올려져 있다.

현재 이 나라 이 땅에는 영축총림, 해인총림, 조계총림 등 총림들이 있다. 그러나 동남아의 여러 나라 스님들, 그리고 유럽과 남미, 북미 등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와서 불교를 배우고 연구하고, 참선을 하고 싶어도 저들을 모두 온전히 수용할 만한 교육시설과 외국인들을 위한 수행도량이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우리 불교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도락산 광덕사선원에서는 확고한 불사계획을 수립하여 국제총림 설립의 대원력 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장차 국제총림에는 동서양의 외국인 스님 등 전 세계의 비구승들이 와서 참선하고 수도할 수 있는 선도량을 건립하게 될 것이다. 각자의 승납과 수도내용에 따라 여러 곳으로 나뉘어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하고 방대한 참선도량이 갖춰지게 된다.
참선할 수 있는 선방과 잠자고 생활할 수 있는 숙소, 그리고 식사하고 휴식할 수 있는 별도의 도량을 골고루 갖춘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선도량이 자리잡게 된다.
또한 남방(南方) 장경(藏經)을 중심으로 영어와 한국어로 불교경전을 공부할 수 있는 적정 규모의 승가대학(강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율(律)에는 본래 북방율과 남방율이 있는 바, 북방율을 연구하고 익히는 율원은 전통적으로 있어왔다. 그러나 남방율을 연구하고 익히는 율원은 남방율의 특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남방율을 중심으로 하는 율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또한 세계에 망라되어 있는 불교의 장서들을 가능한 대로 입수하여 불교의 세계적인 책자와 자료들을 비치하는 도서관 또는 장경각을 설립할 예정으로 있다.
본 광덕사선원에서는 역사적인 불사에 동참할 뜻이 있는 제현들의 동참을 널리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광덕사에서 방곡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도예촌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방곡사
단양 방곡사(傍谷寺)는 묘허 혜원(妙虛 慧圓)스님이 1998년에 창건한 신생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말사이며 지장기도도량입니다.


방곡사 본당 "방곡아련야(傍谷阿鍊若)"
-수도승이 조용하게 수행 하는 한적한 곳- 아란야(阿蘭若)라고도 한다고도 합니다.

방곡아련야 내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하려면 적멸보궁인 방곡사의 본당 방곡아련야 내부 법당에서 2층으로 올라 가야만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방곡사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진신사리는 고구려 스님으로 신라에 최초로 불법을 전한 아도화상께서 모시고 온 사리이다.
화상은 경북 선산군 도개면 일대에서 불법을 전하면서 도리사와 백련사를 창건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백련사는 크게 사세를 떨치며 구한말 고종황제 시절까지 존속하였으나, 애통하게도 당시 비안(경북 의성) 현감에 의하여 백련사가 파괴,소실되었다.
백련사가 파괴, 소실되면서 백련사의 부동산은 비안현으로 동산은 선산 도리사와 청화산 법주사 (현 경북 군위군 법주사)로 귀속되었다.
폐사당시 부처님 복장속에 모셔져있던 진신사리는 당시 주지였던 두점 화상께서 백련사의 복원을 발원하면서 모시고 계시다가 제자인 도암 화상에게, 또다시 제자인 성암당 성찬 화상에게 전해주었고, 화상께서는 묘허 혜원화상에게 전해주었다.
이러한 방곡사의 부처님 진신사리는 선대 큰스님들께서 불법을 지키기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크나큰 은혜를 통하여 1,300여년간 이땅의 중생들과 함께 해오셨다.
또한 현재 방곡사에 주석하고 계시는 묘허큰스님께서 평생을 모시고 수행정진하였으며 묘허큰스님과 수많은 불자들이 기도정진중 수차례의 방광출현등 불가사의하고도 신비로운 위신력을 나투시어 부처님의 본래면목인 불생불멸의 불신(佛身)과 법신(法身)이 우주법계에 충만하심을 친히 보이신 진신사리이다.
영원한 생명의 빛이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하는 인연공덕과 가피는 한량이 없을 것이다.


지장보살 입상

방곡 아련야에서 바라본 지장왕옥보살상





묘허스님은
1943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스님은 1957년 상주 남장사에서 한산당 화엄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1963년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5년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이후, 성암강백 화상 밑에서 대교이력 및 〈전등록〉을 이수했다. 이후 통도사 보광선원 수선안거이래 11하안거를 성만했다.
1975년 은해사 말사 법주사 주지를 거쳐,
1979년 신탄진 신흥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대전 신흥사 김해 원명사 단양 방곡사 회주를 맡고 있다.
생시적적불수생 生時的的不隨生
사거당당불수사 死去當當不隨死
생사거래무간섭 生死去來無干涉
정체당당재목전 正體當當在目前 이요
나무아미타불 南無阿彌陀佛
우리가 불교를 믿고 또 절에 다니고 수행하면서 이렇게 백중을 맞이해서 49일동안에 상서선망부모(上逝先亡父母)조상님을 모시고 이렇게 천도재를 봉행하면서 이 이치만 알면은 여러분이 불교도 바로 믿고 또 바로 수행을 하고 영가들도 다 제도가 될 겁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인고하면은
생시生時에 적적的的하야 불수생不隨生하였고
우리는 날적에도 지.수.화.풍 4대 물질로서 이루어진 이 몸뚱아리가 부모로 인연하여 태어났지 우리의 본래 모습 참 나, 나의 주인공은 육체와 함께 태어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사거死去에 당당當當하여 불수사不隨死하더라
죽을 때도 당당하여 이 육체가 죽는 것이지, 육체와 함께 태어나지 아니한 우리의 본래 모습은 육체와 함께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더라
생사거래生死去來 무간섭無干涉하고
나고 죽고 가고 오는데 아무런 구애를 받거나 간섭받지 아니하고
정체당당 正體當當 재목전在目前이라
분명 당당하게 목전에 성성적적하게 존재하는 우리의 본래 모습 자성이 마음자리가 바로 보면은 인생일대사는 해결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평생에 법문 듣고 또 이제 한국불교대학에 나와 가지고 교리적으로 체계적으로 불교를 믿고 공부하면서도 절대적이지 못하기때문에 말로는 생사가 불이하다, 생사가 본공하다 그러지만은 여러분들이 병원같은데 가서 종합검진을 하다가 어떤 장기 한 부분에 종양이 생겼다하면은 양성인지 악성인지 알아보지도 아니하고 그만 가슴이 뚝 떨어져요
왜 그러냐하면은 [생사가 불이하니 절대적으로 믿지를 못하고 또 스스로 증득하여 깨달아가지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평생 절에 다니고 불교를 믿어도 생사없는 이치를 알지를 못해요
그저 생사있는 육체 이 몸뚱아리만 나로 믿고 알고 생활하느라고 이 놈 앞잡이 노릇 종 노릇하느라고 한 평생 업만 짓다가 마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이야
그러다보니 육체로 인해서 지은 업, 이 업 때문에 가사백천만겁이라고
백겁이 가고 천겁 만겁이 가더라도 한 번 지은 업은 절대로 없어지지 아니하고 인연해우시에는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은 과보를 환자수還自受하게 되어있어요
내가 짖고 저질고 행해 놓은 그 업에 대한 결과과보를 내가 다 돌려받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이 업 때문에 우리는 윤회고를 벗어나지 못해요



의성 고운사로 가면서 먹는 늦은 점심
단양 IC부근의 장림산방(식당)의 곤드레 밥상

조계종16교구본사 고운사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운사 입구의 해인도


조계문(일주문)
僧과 俗의 경계를 넘는지라 一心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일주문이 맞아준다. 기둥이 하나가 아니고 한 줄로 섰다는 뜻인지 원목 그대로의 질감을 살린 두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서있다. 소박하게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주문이라는 세간의 評인가.
이 가람에는 없지만 不二門으로 들어서면 僧과 俗, 세간과 출세간, 중생계와 열반계의 경계와 구분도 없어져 하나가 된다던가. . .


가운루 문화제151호 지형지물을 원상데로 기둥을 세워 건축방법이 특이함

가운루에서 보는 시레기







나한전
대웅전 맞은 편 언덕의 작은 전각 나한전은 원래 이 절의 대웅전이었고 현재의 대웅전 자리에 있었다는데 90년대에 대웅전이 신축되어 이곳으로 옮겨왔다 한다. 나한전 앞뜰에 고려말 도선 국사가 조성했다는 삼층 석탑이 천년 이상의 풍상을 안고 서있다. 당시에는 一塔一金堂式의 가람 배치였나, 요즈음 어느 절을 가더라도 성행하는 多塔多金堂 방식은 그리 탐탁치않은 느낌이다. 중창불사라는 명분으로 절의 모든 공간을 탑과 전각으로 꽉 채울 필요가 있는가. 餘白의 美도 소중하지 않은가.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신 冥府殿에 들려 돌아가신 어느 분을 떠올린다. 죽어서 어디론가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 지장전에 다녀왔느냐고 묻는 곳이라는데 그 분은 어디 계시는가. 틀림 없이 천상 어느 좋은 곳에 머무르시며 가까운 훗날 審判 받을 나를 조용히 지켜보고 계시리라.

명부전의 시왕은 그 웅장함에 압도 당함이 충분하다.

왠지 구름과 얽힌 사연이 많을 것 같은 경북 의성 騰雲山 자락의 孤雲寺를 찾아 나선다. 騰雲은 뭉게구름이고 駕雲은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구름가마일 터인데 孤雲은 마음에 걸린 구름인가, 등운산 넘어가는 한 조각 구름인가.

극락전 옆 만덕당 마루에 앉아서 바라본 등운산, 둥근 보름달이 . . .

호랑이 진품 벽화
우화루에서 호랑이 눈동자 벽화를 바라본다. 진품은 공양간으로 흙벽 채 옮겨져 전시중인데 매서운 눈빛의 호랑이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정면으로 응시를 하든 측면에서 응시를 하든 호랑이 눈빛이 똑같이 따라온다.

사찰 순례의 끝 현풍휴게소에서 잠시 커피한잔을 마시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