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죄 가운데서 죽어가는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3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된 성경을 주신 이유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있는 교회의 절대적인 존재 이유 역시 이 생명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욕망과 탐욕에 찌들어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행진하고 있는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 생명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 진리로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생명을 주셨으며, 교회와 가정과 일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이 생명의 증인, 이 생명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지만,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주님을 묘지 관리인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때 ‘마리아야’하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비로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주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시고 “형제들에게 가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길로 제자들을 찾아가 “내가 주를 보았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외쳤습니다.
창기였던 마리아는 주님을 만남으로써 주님으로부터 얻게 되었던 평안, 위로, 소망, 새 삶으로 인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따랐지만, 이는 자신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순간부터 타인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죽음을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생명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거침없는 생명의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이기에 주님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막달라 마리아는 18절을 끝으로 더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는 요한의 초점이 마리아에서 제자들로 옮겨 갔기 때문입니다.
이후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요한을 빼고는 다 순교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짐승에게 찢겨 죽거나 화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면 누가 목숨을 걸고 그런 거짓말, 그런 착각에 생명을 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진리입니다. 부활이 거짓이면 기독교도 거짓입니다. 부활이 사실이기에 우리의 믿음이 약속 있는 것이며 복된 것이지, 부활이 거짓이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림이 없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려면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빈 무덤을 보아야 합니다.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예수님의 부활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여인들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와서는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져 버린 빈 무덤을 본 것입니다.
둘째,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사라진 예수님의 시신을 울며 찾던 마리아는 그녀를 부르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마리아를 비롯한 다른 여인들도 주님을 보았고 후에는 주님을 비롯한 제자들과 오백여 명의 거룩한 성도들도 주님을 보았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던 친동생 야고보도, 부활의 증인을 향해 돌을 던지던 바울도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을 만지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았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제자가 40일 동안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기 원하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누구도 직접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본다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을 받은 자들이 지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증거를 받고 그의 음성을 들음으로 주님을 보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하심을 흔들리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날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셋째, 부활의 신앙을 믿는 자는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망연자실한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마자 그 눈물이 기쁨과 춤이 되어 버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두려움이 변하여 용기가 되었고, 도마는 의심이 변하여 믿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 믿음의 눈을 가지고 부활하신 주님을 날마다 보면서 사는 성도는 누구든지 그 마음에서 기쁨이 늘 솟구치고 생명의 환희가 넘칩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주가 되셨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 좌절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모든 악과 모순과 더러운 것을 다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모든 문제와 무거운 짐과 슬픔과 두려움에서 자유하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기뻐하는 자입니다. 그가 바로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하는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