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행복한 곳일까?
불행한 곳일까?
즐거운 일이 더 많은 곳일까?
괴로운 일이 더 많은 곳일까?
우울한 침체기를 겪는 때가 더 많을까?
아니면 순탄한 기쁨을 겪는 때가 더 많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한게 아닐까?
내가 타인에게
많이 영향을 받고,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갈수록
삶은 불행하고 괴로운 곳이 되지만,
타인의 영향에서 자유로와지고,
비교하지 않는다면
그 즉시 삶은 행복하고
살아 볼 만한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생을
예를 들어 보자.
만약 당신의 어린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늦게 걷기 시작한다면,
말을 남보다 늦게 배우기 시작한다면,
옆 집 아이에 비해 영어도 수학도
심지어 운동도 못한다면,
당신은 불행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비교하지 않고,
타인에게 영향받지 않는다면
그건 단지 서로 다른 차이일 뿐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만약 당신의 아이들이
성적이 다른 아이보다 낮게 나온다면,
또래 어울리던 친구들은 다 원하는 특목고에 진학을 했는데
당신의 아이만 평범한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면,
친구들은 다 서울의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당신의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면,
옆집 친구 아이처럼 내 아이도 능력있는 사위를 데려오길 원했지만
능력 없는 사위를 데리고 왔다면,
당신은 삶의 침체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다른 남편들은 잘만 진급하는 것 같은데
우리 남편만 진급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 남편 연봉이 남들보자 작다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맞벌이를 시작해야 한다면,
당신은 괴로운 삶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모두 남들과의 비교에서 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것 자체만을 놓고 보면
사실 좋거나 나쁜 일이 아니다.
사실은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많고,
나보다 더 느린 사람도 많다.
아이들은 글자를 빨리 뗄 수도 있고,
늦게 뗄 수도 있다.
내 아이보다 더 늦는 사람도 많고,
더 빠른 사람도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너무 글자를 빨리 떼고
책을 많이 읽은 아이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는 신문기사도 있지 않았는가?
아무리 좋은 것도 너무 과하게 빠르면 문제가 되는 법이다.
저마다 자기 자신만의
삶의 속도가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남들과 비교함으로써 조바심내는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물론 이 세상이
더 잘하는 사람을 우대하고, 치켜주고, 박수쳐 주다보니
거기에 휘둘리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의 논리에
나도 따라감으로써
잘하는 수많은 이들 보다 내가 못한 것에 대해
끝까지 괴로워하며
끝없는 삶의 침체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삶을 보내겠노라고 결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세상 사람들의 논리나, 시선이나, 판단에서
조금 벗어나, 초연해져서
나와 내 가족이 걸어가는 우리만의 속도를 인정하고 허용하며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더 잘났거나 못나지 않았다.
저마다의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개성과
자기다운 삶의 독자성을 지닌 채
고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살아가고 있는
놀라운 신비다.
'비교'를 하게 되면
우리는 끝까지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을 만날 것이고,
이 세상 곳곳에는 나보다 더 잘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기에,
그들과의 비교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패배자이고, 침체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심지어 요즘에 부모님들 중에는
내 아이가
국어도, 수학도, 영어도, 피아노도, 태권도도, 축구도,
미술이며 한문도 모두 잘 하기를 바라고,
자격증이나 상장도 몇 개씩 있었으면 좋겠고,
심지어 학교에서도 반장을 하기를 바라고,
선생님에게도 사랑받기를 바라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이 있다.
아니,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만약에 그런 아이가 있다면
그 부모님은 그 아이를 아름답게 키운 것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내 욕심으로,
폭력적인 방식으로
괴롭혀 온 것은 아닐까?
실제로 초등학교 때 부모님의 욕심 때문에
아이를 슈퍼맨으로 키워 놓았지만,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성적이 최하위로 급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도 된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이것이 모든 '비교'와
비교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욕심에서 생겨난 일이다.
우리의 삶에서
자유를 찾으려거든,
참된 행복을 찾으려거든,
침체기 없는 즐거움을 찾으려거든,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비교'하는 마음이다.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침체기 없는 삶이 시작된다.
불행과 괴로움 없는 삶이 열린다.
학벌이 좋은 사람일수록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때
충격은 더욱 크게 마련이다.
나와 비슷했던 많은 사람들은
저 높은 자리에 모두 올라 가 있는데,
나는 못 올랐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 위치까지 올라갔으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음에도
그것은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비교'에서 오는 삶,
남들에게 영향받는 삶의 특징은
언제나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의 비교열등에서 오는 자괴감,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들로
언제나 초조하고 안정되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나은 사람,
혹은 어떤 특정 분야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처럼 잘 나가고, 능력을 인정받는 순간에 조차 불안할 뿐 아니라,
승승장구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남들을 업신여기고, 교만해지기 쉽다.
아니 잘 나가는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 교만심이 없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다 잘하고 싶어 하고,
다 남들보다 낫기를 바란다.
'비교'를 내려놓는 삶,
남들에게 영향받지 않는 삶은
비교우위도 비교열등도 없기에
언제나 자유롭고 순탄하며 즐겁고 행복하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다.
남들의 시선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의 길을 걸어 갈 뿐이다.
우리는 늘 정말 힘들다기 보다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다.
진급에서 떨어지거나,
대학을 조금 안 좋은 곳에 갈지라도
삶은 계속되고,
또 다른 길은 언제나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남들이 어떻게 볼까 싶은 염려 때문에,
남들이 나를 얕잡아 볼까봐 힘들다.
남들이
나를 평가하거나,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거나,
얕잡아 보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인 것이지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상대를 무시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삶 속에 낮아짐을 끌어당기는 중이고,
그렇기에 그것은 그 사람의 책임이지,
그것으로 인해 나까지 괴로울 일은 없지 않은가.
남들에게는
나를 평가할 자유를 주라.
남들이 나를 욕할 자유를 허용해 주라.
남들이 나를 무시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일 뿐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일 뿐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나 자신답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당당하게 독자적으로 살아갈 자유를 허용해 주라.
나 자신의 길을 갈 자유를 선물해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