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이사 40,10;35,5)
오늘 교회는 선교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를 기억합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태어난 성인은 예수회를 창설한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 예수회의 첫 번째 회원이 되고 당시 이방의 세계로 여겨지던 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위해 전 생애를 떠돌아다니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교한 성인입니다. 특별히 인도와 일본에서 열정적인 선교로 많은 이들을 교회로 이끈 성인은 선교의 바다라 할 수 있는 중국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향해 가던 중 중국 대륙이 바라보이는 상촨섬에서 선종하십니다. 소화 데레사로 더 많이 알려진 아기 예수의 데레사와 함께 ‘선교의 수호자’로 공경 받는 성인이신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기억하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제껏 근래 계속되는 복음의 말씀 안에서 보기 힘든, 드물게 나타나는 예수님의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접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이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전하는 루카 복음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루카 10,21ㄱ)
오늘 복음의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즐거워하셨다는 표현은 복음을 통틀어 오늘 복음의 말씀이 유일합니다. 대림시기가 시작되기 전 연중 마지막 주간 계속되는 최후의 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뒤흔들리고 세상 멸망이 들이 닥칠 그 날을 예고하며 항상 깨어 준비하라는 복음의 말씀을 대하던 우리들에게 대림시기를 시작하며 듣게 되는 오늘의 이 복음의 분위기는 약간은 낯설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이 같은 분위기는 복음의 배경이 되는 상황을 살펴보면 비로소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되는 상황은 이렇습니다. 당신에 앞서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파견된 일흔 두 명의 제자들이 하느님의 나라와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님께 기뻐하며 돌아오자 예수님 역시 그들과 함께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기쁨은 제자들의 기쁨과는 약간 그 본질을 달리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고을과 고장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할 때에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마귀들마저도 예수님의 이름에 복종하는 것을 체험한 후, 자신들이 주님이라 믿어 고백하는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하신지를 체험하고 기뻐했던 반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어찌 보면 세속적이고 피상적인 기쁨과는 달리 오늘 복음이 전하듯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 기뻐하십니다. 바로 이 점, 곧 제자들과는 다른 예수님의 기쁨의 이유를 루카 복음사가는 분명하게 이렇게 언급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예수님의 이 즐거움과 기쁨은 복음이 전하듯, 바로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기쁨은 제자들이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성령이 작용하심을 느낀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그 성령의 작용이란 바로 하느님의 진리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지고 철부지에게 드러난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결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던 보잘 것 없는 제자들을 통해, 곧 제자들의 행동과 말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진리가 온 세상에 퍼지는 것을 지켜보며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의 진리가 이 세상에 퍼지는 방식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방식이란 다름 아닌 하느님 당신이 직접 뽑으신 이들, 곧 세상의 잘난 이들이 아닌 보잘것없고 내세울 것 없는 세상의 약자들의 입과 행동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의 진리가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이사야 예언서가 전하듯, 주님이 영이 머무르는 평화의 왕국은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는 곳,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 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는 곳입니다. 이 같이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진리가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에게 가려지고 오히려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 하느님만을 믿는 오직 그 분만을 희망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져 그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통해 온 세상에 알려지고 퍼져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루카 10,23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일들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곁에서 들려지는 그 분의 말씀을 듣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일에 함께 하는 그 분의 협력자요 동반자들입니다. 바로 이 순간의 진리를 함께 나누는 기쁨이 대림의 시기를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이사야 예언자의 그 말씀처럼 권능을 지니신 우리 주님을 합당하게 맞아들일 준비를 갖춘다면 그 분께서 당신의 빛으로 우리의 어두워진 눈을 환히 밝혀 주실 것입니다. 그 빛으로 눈을 바로 뜨고 지금 이 순간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느님의 일을 바로 바라보려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눈으로 바로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그 분의 빛으로 밝혀진 두 눈으로 지금 현재 우리의 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일들에 함께 동참하게 되시기를 그로써 이제 곧 오실 주님과 함께 기쁨의 나날을 보내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이사 40,10;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