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성령과 지혜로 충만의 달☜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잠언2:1-22절) 지혜의 가치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낭만적(浪漫的)이고, 쉬운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일단 배가 항구를 벗어나 바다로 나가게 되면, 바람이 불고, 풍랑이 치는데, 보통 사람들은 멀미가 나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합니다.
거기에다가 폭풍까지 불게 되면,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배가 파도에 뒤집어지거나, 혹은 암초에 부딪쳐서 침몰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항해(航海)의 노련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배를 능숙하게 운전해서 안전하게 항구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보통 지혜라고 하면,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정신적인 의미의 지혜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지혜라고 하는 것은 마치 항해술(航海術)과 같이 어떤 숙련된 기술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智慧)는 모호한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위기에서 살릴 수 있는 기술을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을 배우면서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얼마나 많은가 하면, 아예 길거리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을 초청할 정도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흔하고, 또 많습니다.
그런데 잠언에서 말씀하는 특징은 이스라엘에 아무리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흔해도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여전히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적이거나, 축복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지혜(智慧)의 길이 있는가 하면, 정욕(情慾)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두 다 똑같은 구원의 길을 가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 해도 그 안에는 지혜의 길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정욕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말씀의 지혜를 찾고,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필요로 하고, 인정을 해주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의 지혜(智慧)가 아닌, 세상의 지혜(知慧)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지혜를 가지면, 곧바로 이 세상에 써먹을 수 있고,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붙든다고 해서 지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출세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세상 방법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도 나오지 않아서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智慧)로 세상을 이겨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Ⅰ.지혜를 찾는 태도
지혜를 찾는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월등하게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서 먼 순례(巡禮)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던 공부나 일을 그만두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방황하다가 결국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가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영국의 젊은이들은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독일의 함부르크나 베들린 같은 데로 가서 철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혹은 프랑스 파리에 가서도 몇 년간 있으면서 공부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젊은이들이 자기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일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낭만을 찾기도 하고, 파리의 세느강을 걸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낭만이고, 철학이라 하더라도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결국 사람이라는 것은 주위의 사상이나 풍습에 물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주위에 퇴폐주의가 유행을 하면, 퇴폐주의에 물들 수밖에 없고, 허무주의가 만연되어 있으면, 허무주의를 배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런 분위기를 박차고 뛰쳐나와서 자기 자신을 찾게 해주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유리한 점은 곧 다른 나라에서는 도무지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자기들 안에 있고, 그것이 너무나도 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함정은 곧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너무나 흔하니까 오히려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뻔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오히려 잔소리처럼 생각할 때가 많았고, 오히려 다른 나라의 퇴폐적이고, 허무적인 사상을 더욱 매력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건(關鍵)은 이미 자기들에게 흔하게 주어져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단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보는 이것입니다.
2:1절)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여기서‘내 아들’이라는 것은 말씀을 배우는 자가 아직 완전히 인격이 형성되기 전의 어린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옛날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스승이 제자들을 모두‘아들’이라고 불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아들’은 아직 인격이 굳어지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지점토 공예를 하시는 분들은 지점토를 가지고 아름다운 많은 작품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점토가 굳어지기 전의 말랑말랑한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서 거기에 색칠을 해서 말리면,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직 인격이 굳어지기 전, 미숙한 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물론 이 아이는 나중에 청소년 시기를 거치면서 자기가 배운 것에 대하여 회의를 하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운다는 것은 시멘트가 굳기도 전, 어떤 발자국을 찍어 놓은 것처럼 한평생 동안 흔적이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모두 다 알아서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은 들으면서 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의 가치는 자기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 는데 따라서 달라집니다.
우리가 세상 지식(知識)을 마음에 담으면, 똑똑하고 처세(處世)에 능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 지식이 우리 자신을 존귀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담으면, 우리의 속사람이 정금(正金)으로 변하게 되고, 보석(寶石)으로 변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무조건 우리 안에 집어넣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소화가 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苦難)을 받으면, 이 하나님의생명의 말씀들이 우리 내면에서 소화가 되면서 우리 자신이 잡석(雜石)같은 인생에서 보석(寶石)같은 인생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 더 전문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려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2:2-3절)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우리가 교육을 받으려고 할 때, 어렸을 때, 교육은 무상(無償)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초등학교나 중학교까지 국가에서 무료로 공부를 시켜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수준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좀 더 높은 수준의 공부를 하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심령의 부흥이 임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려면, 훨씬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하고,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라는 것은 지혜의 말씀을 듣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말씀, 특히 자신의 한평생을 바쳐서 붙들 수 있는 지혜를 찾아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한번은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에 무조건적으로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기기는 하지만, 아직 그 가치를 잘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다른 모든 길을 다 막으시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들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이 세상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붙들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들기 때문에 이 말씀이 나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이 됩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중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이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 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나에게 속삭이기도 하고, 때로는 소리치기도 하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지시를 합니다. 이것이 곧 명철(明哲)입니다. 명철(明哲)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어떤 구체적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도록 지혜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지혜를 얻으려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2:3절)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만약 부모가 아이를 잃어버렸다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아이가 있을 만한 데를 다 찾아다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지혜를 찾으려면,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리면서 지혜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지혜를 얻으려면, 찾아나서야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만나기 전까지 열두 겨리나 되는 소를 가지고 농사를 짓던 부농(富農)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겉옷을 던졌을 때, 엘리사는 아무 말 없이 농사를 정리하고, 엘리야를 따르며, 그의 몸종이 되어 모든 심부름을 다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엘리야를 데리고 가려고 하실 때, 엘리사는 엘리야를 잡고 늘어지면서‘내게 당신의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해서 엘리야의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에도 고급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하고, 그 지혜를 찾아서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4절)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우리가 금이나 은을 캐내려면, 일단 금맥이나 은맥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바위를 뚫고, 금맥이 있는 곳까지 내려가야 하고, 그것을 캐내어서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불에 녹였을 때, 금이 되고, 은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안에 들어 있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거대한 산맥(山脈)과 같아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파고 들어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보석(寶石)을 캐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성공이나 인기를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면, 그것 이상으로 수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Ⅱ.하나님과 지혜의 관계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진리를 파고 들어갈 때,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기만 하던, 하나님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직접 만나게 됩니다.
2:5절)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거의 대개 하나님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아는 것뿐입니다. 즉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니까 계신 줄 알고, 기도를 해 왔으니까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진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 온 몸에 마치 고압전류가 흐르듯이 전율(戰慄)을 느끼게 되면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영광 앞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과 감격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하나님에 대하여 실제로는 몰랐습니다. 그저 남들이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니까 계신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나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리실 수도 있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온 몸에 전율(戰慄)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거의 한번 죽었다가 살아나게 되며, 이 후부터는 하나님을 달리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다소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났을 그때입니다. 사울은 예수가 죽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살아 계셨고, 사울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앞에서 사울이 느낀 것은‘나는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때 옛날의 사울은 죽어버렸고, 새로운 주님의 사람 바울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냥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소경이었던 우리의 영안(靈眼)이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안(靈眼)이 열리게 되면, 그 전에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나면, 세상 사람들이 모든 것을 거꾸로 믿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순간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의 길이 달라집니다.
2:6절)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여기서 우리는 지혜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배우는 지식의 근본은 사람의 경험입니다. 세상의 지식은 사람이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축적(蓄積)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 자신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에서 지식과 명철이 나오기 때문에 언제나 새롭고 진부(眞否)하지 않습니다.
2:7-8절)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 하신다’는 것은 일단 하나님이 생명의 말씀을 찾는 자를 정직하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정직하지 못한 자들이고, 거짓을 진실보다 더욱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담을 때,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처세술(處世術)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正直)하게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 있는 허풍(虛風)이나 헛된 자랑이나 거짓을 모두 다 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먼저 썩은 것은 버리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참된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것이 곧 완전한 지혜(智慧)인 것입니다. 여기서 완전한 지혜라는 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도사(道士)급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고 무지(無智)하지만,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를 가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의 행실을 먼저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정욕적이고 죄악 스러운 행실은 버리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유혹은 찰거머리보다 더 질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순간 죄의 흥미는 없어져 버립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너무나도 재미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야기는 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 우리의 방패(防牌)가 되어주셔서 모든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막아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생명의 말씀을 사랑해도 허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적(원수)이 우리의 허점을 캐지 못하도록 모두 막아주셔서 안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많은 것들을 갖게 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지혜와 능력을 나의 것으로 가지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꺼번에 우리에게 다 주시면, 우리가 감당을 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언제든지 구하기만 하면 주십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의 길이‘정의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 정의(正義)의 길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매이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기들끼리 패거리들을 만들어서 서로 지켜주고, 보호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진리의 길은 그런 패거리들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 알고, 공격해서 뿌리를 뽑으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절대로 뿌리가 뽑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끝까지 이 믿음의 길로 몰아가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속 몰아가시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참으로 끝까지 딴 길로 가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 자신이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길로 몰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두 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자체가 마음에 참 기쁨을 준다는 것입니다.
2:10절)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운다 해서 당장 세상적으로 유명해지거나, 출세하는 것은 아닌데, 자기 자신이 존귀해지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거울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화장을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자신이 아름다워지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지저분한 기쁨과 비교가 되지 않는 고상하고, 존귀한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 내면을 보석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면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만족이 없고, 언제나 마음에 분노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입만 벌리면, 욕을 하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가치는 배설물(똥)보다 더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긴장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2:11절)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근신(勤愼)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훈련시켜서 항상 긴장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술이 들어가거나, 방심하게 되면, 태도가 느슨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기 때문에 마귀의 함정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노루가 발이 빠르고, 호랑이가 용감하다 해도 일단 덫에 걸리면,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덫을 보게 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명철(明哲)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시로 깨닫게 하시는 지혜(智慧)입니다.
Ⅲ.악한 자에게서 지키는 지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굳이 써먹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智慧)가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즉 우리가 세상 지혜(知慧)를 가지면, 세상에서 알아주고, 출세할 수 있는데, 왜 그 아까운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워야 할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고, 또 멸망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짧은 시간을 두고 보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가지는 것이 성공인 것 같고, 유리한 것 같지만, 조금만 더 길게 보면,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는 것이 성공의 길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이 세상이 평탄한 것 같지만, 실제로 이 세상에는 많은 죄의 함정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마치 지뢰밭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질 때, 악(惡)한자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12절)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여기서‘악한 자’라는 것은 반드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악(惡)한 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정욕을 따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이 사람들이 악(惡)한 자들일까?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담지 않으면, 결국 자기 욕심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담지 않으면, 누구든지 세상 정욕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정욕을 따라가면,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 자신의 가치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옷을 입었다 해서 우리 자신이 정금(正金)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돈을 버는 과정에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더 정욕으로 더럽혀서 완전히 정욕 덩어리가 되게 하고, 죄 덩어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인생길을 다 산 후에 보면, 시간만 낭비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얼마든지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 때문에 한 평생을 더럽게 살아온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 사람들은‘패역 하는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패역(悖逆) 하는 말이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반항적인 것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결국 구부러진 마음을 치료받지 못한 것입니다. 한평생을 구부러진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고, 판단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들은 한 번도 바른 것을 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2:13-15절)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 하니라”
우리 인생에게는 진리의 길이 있는가 하면, 패역(悖逆)한 길이 있습니다. 진리(眞理)의 길이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실패한 인생 같지만, 결국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능력이 나타나고, 기도 응답이 있고,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는 삶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진리(眞理)를 모르고, 오직 눈에 보이는 이익(利益)이나 명성(名聲)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패역(悖逆)한 삶입니다. 결국 강을 헤엄쳐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하류(下流)로 떠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갈 때, 안전하고 부(富)가 있고, 명성(名聲)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祝福)은 없습니다. 즉 빛이 없는 어둠의 길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죄를 짓고, 감추기 바쁩니다. 결국 한평생 죄만 짓다가 마는 인생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을 미워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이 길은 야생동물과 같은 인생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물어뜯고, 짓밟고, 이겨서 성공하는 길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식이나 사랑하는 본능적인 사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탐욕만큼 무서운 것이 육체적인 정욕(情慾)을 위한 삶입니다.
2:16절)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인간에게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쉽게 황홀한 행복에 빠지게 하는 것은 성적인 쾌락(快樂)일 것입니다. 여기서 음녀(淫女)라고 했고, 또한 이방 계집이라고 한 것은 창녀(娼女)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원칙적으로 이스라엘 여자는 창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음녀라는 것은 반드시 돈을 주고, 음탕한 곳을 찾아서 더러운 짓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 가장 쉽게 빠지기 쉬운 욕망이 이성에 대한 욕망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이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성을 사랑하는 데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젊었을 때는 이성으로부터 만족을 찾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되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절대로 만족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찾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올바른 만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오직 성적 만족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 것은 스스로 마약(痲藥)에 중독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제로 이런 사람의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는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2:17-18절)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책임 있는 사랑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기 정욕에 빠져서 아내를 버리거나 남편을 버리고, 정욕을 따라가는 것은 스스로 인간성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하기를 다른 사람을 따라가면, 참 행복할 것같이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자기에게 잘 해주고, 또 사랑의 감정도 느끼며, 또 무엇인가 새롭게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다른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그도 부패(腐敗)한 인간이고, 그들의 사랑 자체가 죄악된 사랑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못하고,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저주하고, 죽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악된 사랑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이미 거기에는 썩은 냄새가 나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즉 정신도 썩고, 육체도 썩은 사랑인 것입니다.
2:19절)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죄는 마치 낚시 바늘에 맛있는 미끼가 달려있는 것과 같습니다. 죄가 주는 맛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행복할 것 같은데, 일단 한번 걸려들고 나면, 그때는 그 죄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없습니다. 즉 물고기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낚시 바늘을 물면, 결국 끌려가서 나중에 작살에 찔려서 죽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죄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영원히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지만, 한번 걸려들고 나면,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이런 낚시 바늘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2:20절)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은 죄의 낚시 바늘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더 감사한 것은 그 미끼를 물었을 때, 나중에 어떻게 되는 것까지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었을 때, 죄가 이끄는 힘이 약(弱)해지게 되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죄보다 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지혜를 붙드는 자가 끝까지 안전하게 선(善)한 길로, 또 의인(義人)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2:21-22절)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므로 우리가 감출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죄인인 줄 아시고, 말씀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굳이 우리 자신을 감추거나, 거짓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땅에 거하게 됩니다. 물론 이 땅은 축복의 땅,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우리가 한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하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이 어떤 땅입니까? 가만히 있기만 하면, 열매가 맺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우리는 굳이 이 땅에서 누가 더 잘 사느냐, 못사느냐, 하는 것으로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여기에 있기만 하면, 다 복(福)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면, 모든 성도들이 결국 다 복(福)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고, 거짓된 자는 땅에서 뽑힐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왜 악인이며, 거짓된 자일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담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결국 하나님의 복(福)이 없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축복(祝福)에서 뽑히고 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안방 컴퓨터에 모두 저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찾아서 다른 곳이나 다른 나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이 말씀이 나의 지혜(智慧)가 되고, 명철(明哲)이 되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즉 내 속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채우고, 담대하게 고난(苦難)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때 죄를 이기고, 거짓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보석(寶石)과 같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아-멘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오늘의 묵상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니라(행17:25)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오늘의 기도제목
▣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주님! 셀(cell)공동체, 예배공동체, 선교공동체로 부흥.성장케 하옵소서.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주님! 내게 맡겨주신 재물과 나의 생명 주님께 드려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경기 동탄에 성경연구원을 설립할 후원, 동역자를 때가 악한 이때. 속히보내주소서. 주님! 신실하고 충성된 추수의 일꾼들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교갱원의 엄격한 규칙을 지켜 낙오자 없이 모두 성숙한 복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癸卯年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을 세워 성장하는 해*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셀(cell)로 자립 새출발 할 수 있습니다.(정착완료. 양식보존. 새벽기도. 교갱원설립후원. 춘추심방. 실명과 소통)
교갱원은 1단계 묵상, 생명의 양식과 필수과목(26과). 2단계 생명의 양식과 전도학교(13과).3단계 생명의 양식과 청지기 대학(17과)으로 정예부대가 됩니다. 누구든지 전화신청받습니다(유료 : 각 교재 1과당=1만원, 방법 : 교갱원 설립 때까지 임시 카톡영상으로)
교갱원카페.카톡.천국백성이 은혜받고 감사하며, 기도로 화답하는 것은 기쁨의 열매. 후원계좌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내용)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