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섬의 스마일 항구. 깊고 푸른 남태평양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고 스노클링도 하는 유람선 ‘디스커버리’호에 올랐다.
피부 색으로만 봐서는 원주민으로 보일 정도로 검게 그을린 한국 아주머니가 낚시 일정을 설명한다.
“고기는 먹고 남을 만큼 쑥쑥 올라옵니다. 평소 낚시 실력? 여기서는 필요 없습니다.”
원주민 선장은 어군 탐지기를 켜고 ‘물 반 고기 반’인 곳만 찾아 다닌다. 선장이 배를 세우고 ‘빠앙’하는 사이렌을 울리면 낚시를 시작하라는 뜻. 고기떼가 이동해버리면 선장이 사이렌을 두 번 울리는데 이는 낚싯대를 거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는 뜻이다.
원래 고기가 많은 이곳 바다에서도 물때가 맞는 곳만 옮겨다니니 낚시가 잘 될 수밖에. 배에 탄 신혼부부도, 중년의 주부도, 심지어는 꼬마 아이까지도 “걸렸다” “잡았다”를 연방 외친다.
이곳 고기들은 희한하게도 평소 ‘한 낚시’하는 한다는 사람의 바늘을 피해간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믿음이다. 평소 낚시 실력을 자랑하던 새 신랑이 한 마리도 못 잡아 체면을 구기고, 대신 낚싯대를 처음 잡아 본 신부가 통이 넘칠 정도로 고기를 잡았다는 식의 얘기는 여기선 흔하다.
약 두 시간의 낚시가 끝나면 산호초 근처 바다로 이동해 스노클링을 하는 시간이다. 산호초 주위를 노니는 열대어 떼를 구경하는 재미가 일품이다.
물놀이를 하면 보통 배가 고파지는 법인데, 이때 배에 올라가면 진수성찬이 준비돼 있다. 유람객들이 잡은 잡고기와 함께, 원주민 선원들이 트롤링으로 낚은 참치를 한국인 아주머니가 회 뜨고, 구워서 한 상 가득 차려 놓았다. 소주, 맥주가 준비된 것은 물론. 회와 구이는 배터지게 먹어도 남을 정도로 푸짐하다.
이렇게 바다를 옮겨 다니며 고기를 잡고 스노클링도 하는 놀이를 ‘호핑(hopping) 투어’라고 부른다. 사이판은 남태평양의 여러 섬 중에서도 호핑투어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다. 호핑 투어 이용 요금은 미화 60~90달러 선.
사이판은 14개의 작은 섬들로 이뤄진 미국령 북마리아나 제도(Commonwealth of the Northern Mairianas Island))의 주도(主島)다. 절벽과 면한 바다가 특히 아름답고 연평균 기온 섭씨 27도에 연중 기온 차가 1~2도에 불과해 사시사철 태양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곳의 역사는 다소 비극적이다. 선사시대부터 원주민 차모로 족이 살고 있던 이곳에 17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왔고, 식민 통치를 거부한 원주민들은 4만 명 인구가 1500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치열하게 투쟁했다.
이후 1899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뒤 스페인에게 북마리아나제도를 독일에 팔도록 강요, 잠시 독일의 통치를 받았고 1918년에는 일본이 사이판을 비롯한 북마리아나 제도의 섬 일부를 독일로부터 빼앗았다.
제국주의 통치에 의한 비극의 하이라이트는 태평양전쟁으로 비롯된다. 일본으로부터 약 2,000~2,500㎞ 떨어진 이곳은 항속거리 5,000㎞ 짜리 폭격기 B29를 보유한 미국이 폭격의 중간 기지로 탐내는 섬이었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 졸지에 전략적 요충지가 돼 비극이 시작됐다. 미군이 사이판을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하자 일본군은 옥쇄(玉碎ㆍ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 죽음으로 버팀)를 결정, 4만3,000명의 군인이 싸움 끝에 죽거나 바다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이 가운데는 징용된 한국인 1만2,000명도 포함돼 있다.
이후 마리아나 제도는 연합국에 반환돼 미국의 군사기지로 전환됐고, 이곳에서 출발한 미군 비행기는 원자폭탄 ‘꼬마’(Little Boy)와 ‘뚱보’(Fat Man)를 일본 본토에 투하해 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현재의 사이판은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를 뒤로 하고 관광ㆍ휴양지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일본군이 “천황 만세”를 외치며 바다로 몸을 내던진 반자이절벽이나 일본군 위령탑, 한국인 위령탑 등은 유적으로 보존돼 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중에 주인공이 사이판에서 유령을 만나는 설정이 종종 등장하는 것은 사이판의 비극적 역사가 일본인의 가슴에 어떠한 상처를 남겼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사이판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꽤 친숙한 관광지다. 현재 사이판 관광객 중 한국인 숫자가 일본에 이어 두번째인데, 사이판 관광청 사람들이 “한국인이 일본을 추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공언할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KBS TV 오락 프로그램 ‘여걸6’ 촬영지로 전파를 타고, 한국계 호텔인 월드리조트가 지난해 오픈한 것도 관광객 증가에 한 몫을 했다.
사이판은 자연 경관이 좋은 것 말고도 해양스포츠, 골프, 낚시, 쇼핑 등도 세계적인 환경을자랑한다. 백사장이 아름다운 마나가하섬을 방문하거나 밤시간 라스베이거스식 매직쇼 ‘샌드캐슬쇼’를 구경해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