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러시아 정교회가 있다, 콘스탄티노플 정교회 말고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6월 평양 방문에서 북한의 러시아 정교회 회당인 ‘생명을 주는 삼위일체 교회'에 들렀다. 그곳에서는 푸틴을 위한 특별한 예배가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 동안 푸틴은 북한 교인도 별로 없는 이 교회에 왜 들렀을까? 언론은 북한과 러시아의 긴밀한 군사적 유대관계에 우려를 표하는 기사로 도배되었고 따라서 푸틴의 평양 러시아 정교회 방문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것 역시 고도로 기획된 행사였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전적인 협조로 이루어진 구소련 시절을 떠올릴만한 정치적 기획이었다.
(푸틴을 안내중인 대한 정교회 대주교 테오판 김, 사진 크렘린 풀 기자단)
푸틴과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이 작은 회중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교회는 바티칸 교황청 같은 중앙 집권적 형태와 달리 각 지역의 이름을 딴 정교회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그 동안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대주교가 각국의 정교회를 대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직책을 총대주교라고 불렀다. 그러나 키릴이 2009년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이 된 이래로 그는 푸틴과 합을 맞춰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을 총대주교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 기획은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약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튀르키예는 이슬람 국가로 이스탄불에 있는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그야 말로 이름뿐이었는데 총대주교라고 하는 안맞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기에 가난한 다른 나라의 정교회들을 도울만한 여력도 없었다. 대신에 러시아 정교회가 물량공세로 가난한 나라들의 정교회에 파고 들었다.
(평양의 러시아 정교회 전경, 사진 알키모프 막심/위키피디아/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콘스탄티노플 교회 산하에 두었다. 우크라이나를 나토(NATO)의 세력하에 두려는 서방 세계의 구미에 맞춘 행동이었다. 이에 분노한 러시아는 2018년 콘스탄티노플 교회와 결별을 선언한다. 한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종교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튀르키예도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에 우호적이지 않아서 2020년부터 이스탄불의 소피아 대성당을 이슬람 회당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푸틴의 평양 정교회 방문은 평양의 정교회를 모스크바 총대주교 밑에 두겠다는 의도로 계획된 것이었다. 푸틴 방문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한반도의 정교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1900년 러시아 국가의 명령에 따라 소수의 성직자 그룹이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가 되었다.
그후 20년 동안 러시아는 한국에서 작은 정교회 공동체를 키웠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한국 정교회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53년, 한국전쟁에 파견된 그리스 군목이 한국의 작은 정교회 공동체를 알게 되었고 서울에 본당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다음 해에 한국 대교구는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총대주교청의 일부가 되었다.
김정일은 2002년 러시아 방문 후 북한에 돌아와 조선 정교회 위원회를 설립하라고 명령했다. 그 다음 해에 4명의 신학생이 모스크바로 파견되어 공부했다. 2006년에 생명을 주는 삼위일체 교회가 봉헌되었고 러시아 교회 회원들이 참석했다. 2004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는 남북 종교인회의가 열렸는데 그 때 이미 북한 정교회 대표가 참석했다. 그 회의에 참석했던 내 기억에는 그가 사제는 아니었다.
이번 푸틴 방문 때 안내를 맡은 사제는 러시아 정교회 산하의 한국 내 교구인 ‘대한정교회’ 교구장 테오판 김대주교다. 이로 미루어 볼 때 2003년 북한에서 모스크바로 파견된 신학생은 사제가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테오판 김 대주교는 사할린 한인 3세로 열아홉 살에 세례받은 뒤 본격적인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른바 ‘모태 신앙’이 아님에도 고위 성직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2017년 대주교 서품을 받고 동시베리아 남부 투바공화국 수도인 키질교구장으로 임명됐고, 2019년 남북한의 러시아정교회 신도를 관할하는 대한교구장이 됐다. 대주교는 러시아정교회 성직 품계에서 총대주교, 관구장 주교 다음으로 서열이 높다. 러시아엔 한인 동포 신부가 10여 명 있는데, 대주교에 오른 사람은 김 대주교가 처음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 정교회(러시아 정교회는 대한 정교회)의 수장은 그리스계였지만, 성직자와 신도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해외 거주 그리스인, 러시아인, 루마니아인은 북미와 서유럽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방식으로 함께 예배를 드려 왔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 교회와의 관계 악화로 말미암아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한국에 자체 교회를 설립하기로 한 결정은 정교회를 통한 러시아의 팽창 정책의 하나였다.
2019년 러시아 정교회는 부활절 예배를 시작으로 70년만에 한국 활동을 재개했다. 아직은 교회 건물이 없고 상가에 입주한 전형적인 개척교회지만 용산 삼각지(용산구 한강로 1가 216-3)에 러시아 정교회(그리스도 부활교회)가 모스크바 정교회의 허락 하에 세워진 것이다. 본래 콘스탄티노플 교회 소속이었던 한국 정교회(성니콜라스 대성당)는 러시아 정교회의 출현에 상당히 불편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 푸틴-키릴 동맹은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 활동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한 사람들은 러시아 국가의 의제의 동맹으로 여겨진다. 아시아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이자 서방의 전략적 동맹인 한국은 놓칠 수 없는 ‘종교 전선(戰線)’이다. 이를 통해 키릴 - 푸틴 연대는 러시아의 잃어버린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서방교회로 분류되며 니케아 신앙고백을 공유한다. 정교회는 동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고 7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성상논쟁으로 한 번 크게 싸움이 붙었었다. 1453년 이슬람에 의한 비잔티움 함락 즉 동로마 제국의 종말 이후 정교회는 각 지역교회로 축소되었고 서방교회는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초기에는 신구교가 죽을 듯이 싸우다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신구교는 연대로 방향을 틀었다. 21세기에 들어 기독교가 서방 세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교회의 독실한 신자로 알려진 푸틴은 동방교회의 부흥을 꿈꾸는 강자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 싸움에 이미 남북한 정교회도 피할 수 없는 걸음을 내 디딘 셈이다.
한편 지난 달 말 불가리아 정교회는 친러 인사인 ‘다닐' 주교를 총대주교로 선출했다. 불가리아는 나토 가입국으로 친서방으로 분류되어 왔는데 러시아 정교회에 우호적인 인사를 총대주교로 선출한 것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에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