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대물림>
[1] 책을 집필하다 보니 자서전이나 간증 수기나 심지어 노회 50년사 등을 부탁받을 때가 많다. 수개월 전 어떤 분의 요청으로 신앙 간증수기를 대신 써서 출간한 적이 있는데, 『날마다 교도소로 가는 수의사』(아래 사진)라는 책이다. ‘대도 조세형’과 ‘범서방파 김태촌’과 ‘탈주범 신창원’의 영적인 아버지요, ‘재소자의 아버지’와 ‘청송의 천사’로 유명한 김신웅 장로님의 산 증거의 내용이다. 너무 귀한 스토리여서 첫 장만 여기 소개해본다.
[2] 경상북도 청도 땅 부잣집에 18세의 믿음 좋은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옆집에서 혼례식을 한다고 아침부터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옛날엔 동네 어느 집에서 혼례식이 열린다 하면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남녀노소 잔칫집에 다 모여들어 축하도 하고 음식도 먹곤 했다. 아침부터 혼례를 축하하기 위한 하객들이 그 집으로 몰려들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 혼례식이 열리게 되었다.
[3] 나지막한 돌담사이로 보이는 마당 안에는 포장이 쳐져있었고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 신랑의 뒷모습이 처녀의 눈에 들어왔다. 담을 하나 사이로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던 이 처녀는 담장 너머로 혼례식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녀는 신기한 듯 난생 처음 보는 혼례식 장면을 처음부터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하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운데, 드디어 주례자가 등장하고 “신랑 입장!”이 공포되었다.
[4] 그러자 대기해있던 30살의 나이든 신랑이 예복을 입은 채 하객들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백년손님을 맞이하는 이 집의 신랑이 잘생겼을까 못생겼을까는 모든 하객들의 관심사였다.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옆집 처녀도 호기심을 가지고 신랑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5] 씩씩하게 걸어오던 신랑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지더니만 갑자기 거품을 문 채 “꽈당!” 소리와 함께 땅에 넘어져버리는 것이었다. 신부 가족은 물론 거기 참석한 모든 하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신랑이 될 사람은 소위 말해서 지랄병이라고 하는 간질병 환자였던 것이다. “속았다!”는 소리와 함께 “빨리 끌어내!”라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터져나왔다.
[6] 신랑이 될 그 남자는 친구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업힌 채로 동네 밖으로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의 장면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하객들은 마치 못 볼 걸 본 사람들처럼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일어서 총총걸음으로 하나둘 사라져 갔다. 신부 측 부모는 신랑 측 부모에게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날의 주인공이어야 할 예비 신부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으리라.
[7] 그녀는 그날의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계속 흐느껴 울고 있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동사에 철판을 걸고 열심히 한글을 가르쳐주던 야학 선생님이어서 참 착한 총각이라고 누군가가 처녀집에 중매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단이 난 것이다.
[8] 담 너머로 혼례식을 구경하던 이웃집 처녀는 이 모든 광경을 적나라하게 다 지켜보고 있었다. 이 처녀 역시 돌발적인 소동으로 인해 받은 충격이 꽤 컸다. 무엇보다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친구들에게 업혀 나간 예비 신랑의 모습이 좀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속에 그 총각이 자꾸만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거품을 문 채 쓰러지던 장면, 갑자기 여기 저기서 소동이 일어난 장면, 친구의 등에 업혀 쫓겨나던 장면, 하나같이 기가 막힌 충격적 장면 밖에 없었다.
[9] 불현듯 그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처녀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저 남자는 이제 다시는 결혼할 수 없을 거야. 간질병으로 소문난 저 노총각이랑 결혼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테지.”
이런 생각이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처녀의 마음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결심을 하게 된다.
[10] “저 총각은 이제 누구와도 같이 살 수 없어. 평생 혼자 독신으로 사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을 거야. 내가 아니면 저 사람은 절대로 결혼을 할 수 없을 게 분명해. 내가 저 사람의 아내가 되어 평생 보살피고 사랑해줘야겠다. 그래. 내가 저 총각이랑 결혼해야겠어!”
청도가 고향인 그녀는 외할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 군청에서 내무과장을 하시고 이모님은 군청 서기로 근무하는 부유한 가정이었다.
[11] 대대로 내려오는 개성 마씨 양반집 가문의 꽃다운 어린 처녀이고, 그 남자는 유복자로 태어나 다 스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산양 서너 마리의 젖을 짜 겨우 생업을 이끌어가던 아주 가난하고 초라한 청상과부의 외아들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남의 집 머슴으로 일하면서 지병까지 있어 30살이라고 하는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할 수 없었던 그였다. 18세 꽃다운 나이의 부잣집 처녀와 30세 가난뱅이 간질병 환자인 노총각,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두 조합이다.
[12] 하지만 문제의 노총각과 결혼할 마음의 결심이 선 부잣집 처녀는 부모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딸의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펄쩍 뛰며 말도 못 꺼내게 하셨다.
“이년이 미쳤나? 꽃다운 19세의 나이에 어디 시집 갈 데가 없어 열두 살이나 연상인 지랄병 환자에게 네가 시집을 가겠단 말이냐? 동네방네 소문 다 나고 남자구실 못할 그런 늙고 병든 놈에게 네가 시집을 가겠다고? 네 년이 미치지 않고선 그런 마음을 품을 수가 없을 게다.
[13] 부모 욕 먹일 일 없어서 그러냐?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제발 그 입 다물어라. 다시 그런 말하면 다리몽댕이를 부러뜨려 놓을 테니 그런 줄 알어!”
어르고 달래고 구슬리고 협박까지 해보지만 그 총각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한 번 결심이 선 딸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그 처녀에게 강하게 엄습한 것이다. 거듭거듭 그 사실을 확인한 부모는 더는 딸의 간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14] 그래서 마침내 딸은 간질병 환자인 그 노총각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18세의 멀쩡한 부잣집 젊은 처녀가 30세의 간질병을 앓고 있는 12살이나 더 나이가 많은 총각에게 시집을 간 것이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간질병 환자와 그에게 시집간 처녀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감동이 크다 보니 혹 누가 지어낸 소설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15]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실제로 있었던 실화이다. 바로 본 저서의 주인공 김신웅님의 모친과 부친의 생생한 리얼 스토리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머니의 긍휼이 아들인 그에게 그대로 전수된 것이라고 말이다. 김신웅 장로님에게 사람들은 ‘청송의 천사’ 혹은 ‘재소자들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특히 탈주범 신창원은 장로님을 자기 부친보다 더 따르고 존경한다.
[16] 한 때 조폭 두목이었던 고 김태촌씨도 장로님만 만나면 무릎을 꿇은 채 “아버지, 기도해주세요!”라고 했다. 수년 전 신창원을 특별면회하기 위해 장로님과 함께 광주교도엘 가서 한 시간 그를 지근거리에서 면회를 하고 온 적이 있다. 멀리서 장로님을 보자마자 “아버지!”하고 뛰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수의사란 직업은 부업이고 재소자들을 돕는 일을 본업처럼 살아오신 정말 존경스런 분이시다.
[17] 김 장로님은 자신에게 붙은 별명을 달가워하지 않을 정도로 겸손한 분이신데, 재소자들이나 교도관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긍휼의 은사가 그분에게 전이 되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다. 부모의 성품과 신앙은 자식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김신웅 장로님이 바로 그 증인이시다.
[18] 오늘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김신웅 장로님의 모친처럼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나온 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오늘도 새롭게 다짐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잘 살아서, 나의 성품과 신앙이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