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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가 대동중학교 시절 야구를 했는데 청소년 야구대표팀 감독과 포철공고, 서울고 야구팀 감독을 역임한 유태중(대동중 18회, 1967년 2월 졸업)과 동기였다고 하며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1951년생, 경남중 24회 1967년 졸업)이 'MBC FM4U 두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2013.12.27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중학교 때 나훈아가 야구선수로 뛰었다. 나는 부산 경남중학교, 나훈아는 부산 대동중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면서 장기자랑을 할 때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서라벌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호랑이 그림 화가로 유명한 서양화가 이목일 화백(1951년생, 서라벌고 13회 1970년 졸업)[15]은 '그 시절부터 이미 노래 하나는 끝내줬던 인물'로 기억한다. “1학년 때 우이동 골짜기로 봄소풍을 갔었어요. 그때 홍기(나훈아의 본명)가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불렀는데 함께 소풍 왔던 이웃 동덕여고생들까지 환호성을 질러 골짜기가 온통 함성으로 뒤덮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이후 가수로 데뷔한 이 자랑스러운 홍기를 위해 친구들이 너도나도 엽서를 사서 방송국에 신청곡을 보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또한 80년대 중반 서라벌고등학교를 다니던 후배들은 선생님들이 과거 나훈아 학생에 관해 뒤쪽에 앉아 조용했고, 나중에 스타가 되어 학교에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고 한다.
나훈아는 빠른 51년생으로 50년생들과 함께 1963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바로 중학교를 입학하지 않고, 1년 후 자신과 같은 51년생들과 함께 1964년에 중학교를 입학했다. 그래서 중학교 동창들부터는 전부 나훈아와 같은 51년생이다. 위에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정황 상, 나훈아는 51년생이 정설이라고 한다.
데뷔
1966년에 '천리길'을 발표하며 데뷔하였다는데 실물 음반은 확인되지 않고, 대신 가장 오래된 실물 레코딩 노래로 1968년 8월 16일 내 사랑이 확인되고, 그 다음으로 1969년 5월 29일 발표된 천리길이 있다. 다만 2020년 KBS에서 진행한 콘서트 준비를 하며 본인이 데뷔 54년 가수 생활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아 본인은 1966년 데뷔를 확실시 하는 듯하다.
특징
묵직하고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음과 특유의 절묘한 고음, 이를 활용하면서 나오는 전매특허인 꺾기로 대표되는 나훈아 특유의 창법은 가요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으며, 수많은 가짜 나훈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유달리 나훈아의 노래는 가수가 자기만의 색을 입혀서 노래하는 것이 엄청나게 부담되는 노래로 유명한데, 나훈아의 노래를 소화하다 보면 자칫하면 어설픈 모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이나 나훈아의 창법은 엄청나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히트곡이 본인이 작사하고 작곡한 곡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 의해 작곡된 히트곡도 꽤 많다. 일례로 2005년에 발표한 "고장난 벽시계(윤중민 작사, 박성훈 작곡)" 같은 곡은 의외로 나훈아가 작사 작곡을 하지 않았다. "행운", "남자라 울지 못했다" 등. 자작곡 중 다른 가수에게 준 곡도 있는데 이중에서 유명한 노래로는 <땡벌>(강진이 부름)이 있다.
사실 "땡벌"은 나훈아가 1987년에 이미 직접 불러서 발표했었다. (당시 땡벌을 부르는 나훈아 방송 영상). 또한 1991년에 원로가수 정원이 "인생은 본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사만 바꿔서 불렀다. 나훈아는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잘 주는 편은 아니다. 땡벌 외에는 이자연이 부른 "당신의 의미", 심수봉의 "여자이니까" 등이 대표적인 곡이다. 자작곡 전반을 보면 평생에 걸쳐 블루스와 민요를 트로트에 접목한 형태의 음악적 시도를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영영, 사내, 공, 테스형 등등 나훈아가 작사한 곡들의 대다수의 특징을 보면 한 소절이 7음절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가사를 외우기 쉽고 부르기도 편한 것이 나훈아의 특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가창력 만큼이나 자타가 공인하는 장점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무대 장악력과 무대 연출능력을 꼽을 수 있다. 콘서트에서 한 팔만 들면 자기가 작사 또는 작곡한 노래이고 작사와 작곡을 다 한 노래를 부를 때는 양 팔을 위로 올리는 퍼포먼스를 취한다.
평가
1970년대 이후 한국 가요계를 주름 잡으며 남진과 함께 한 시대를 양분했던 인물이다. 히트곡만 무려 120곡이 넘어 나훈아는 히트곡의 숫자에서도 국내 최다는 물론이고, 앨범 발표수만 해도 무려 200장 이상, 1,2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서 3,000곡 정도의 취입곡을 자랑한다. 트롯의 황제, '가황(歌皇)' 등의 수식어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