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주일) 사순절 네 번째 주일 음악묵상
산 자와 죽은 자를 포용한 공간 ‘카타콤’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초대교회 교인들은 로마제국의 탄압을 피해 카타콤(catacomb)이라고 하는 지하 공동묘지에 숨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카타콤은 본래 로마인들의 매장지였습니다. 고대 로마법에 따르면 로마 성 안에는 시신을 매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카타콤은 로마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에 있었습니다. 카타콤은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은 한 일반인들이 찾기를 꺼리는 곳이었지요. 그렇기에 오히려 최적의 예배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인이 늘어나고 제국의 박해가 심해지자 카타콤은 더 깊고 넓어졌습니다. 시신을 안장한 묘실을 연결하는 통로는 얼키고설켜 미로가 되었고, 수직으로도 층수가 깊어졌습니다. 칙칙한 동굴의 내벽에는 갖가지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카타콤교회는 고초를 겪는 가운데서도 지하 건축 기술력의 발전과 벽화 예술성의 진보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즉 카타콤은 공동묘지이지만 무서운 곳이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를 포용하는 공간이자, 자연캔버스를 사용한 갤러리 예술공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고초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켜낸 교회의 발원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카타콤을 표현한 음악 작품이 있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 P. Mussorgsky, 1839-81)의 <전람회의 그림> 중 8번 곡입니다. 제목에서부터 회화적인 느낌이 확 와닿듯이 10개의 그림에서 얻은 영감으로 작곡한 10개의 피아노 모음곡입니다. 실제로 전람회에서 그림을 몇 걸음 간격으로 전시하는 것처럼, 이 작품도 곡에서 곡으로 넘어갈 때 프롬나드(promenade, 산책)라고 명명한 짤막한 간주곡을 배치하여 특이한 구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독학으로 작곡가가 될 만큼 무소르그스키의 재능은 뛰어났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피아노곡이지만 음악적 밑그림이 워낙 탄탄하여 훗날 여러 음악가가 관현악으로 채색하였는데, 그 중 모리스 라벨(J. M. Ravel)이 편곡한 것이 가장 유명합니다. 으스스한 음악은 초대교회의 암울함을 그대로 표현한 듯합니다. 물체의 윤곽을 뚜렷이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빛이 가깝다고 하니 혹시나 희망을 노래하는 찬송이 멀리서나마 들리지 않는 지 귀 기울여 봅니다.
우리는 지금 언제 빛이 들어올지 모르는 카타콤의 어둠과도 같은 사순절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 어둠을 인내하며 믿음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고난을 감내한 초대 카타콤교회의 선배들, 그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오늘을 보내야겠습니다.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유튜브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kjuTikmx0oU